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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역사서

[스 3:1-13] 사역의 본질은 잊지 말자! (김동열)

김동열의 날마다 묵상하며
 
에스라 3장1절-13절 말씀


혹자는 “현대 교회는 감성세대(emotional generation)에 맞게 다양한
사역을 개발하고 영상 목회(multimedia ministry) 시대로 접어 들었다”고
말한다.
교회 규모에 상관 없이 대형 모니터가 십자가를 대신하고 있을 정도로
이젠 교회내 영상 시스템이 없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교회로 인식된다.

목회(ministry)가 목양 대상(congregation)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회중의 스타일과 문화를 모르면,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교회의 사역은 계속해서 연구 개발돼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교회 연구와 효과적(?)으로 사역하는 현대 교회들을
조사하여 오늘날의 지역 문화와 특색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자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사역을 위한 사역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역의 목적과 본질을 잃어가는 것, 그것이 큰 문제다.

이런 시점에, 70년의 긴 단련으로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신앙의 순수와 열정을
회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운다는 내용의 말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고레스의 조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온 결정적 사유는
성전 재건이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돌아왔고, 거의 6개월간 성전건축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기초공사를 시작한다(스3:8).

그런데 관심을 갖게하는 것은 사역(성전 건축)에 열정과 헌신을 쏟아
부으면서도 사역의 목적과 핵심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왜 성전을 건축해야 하는지, 분명한 인식과 함께 실천이 따르고
있다.

바로 예배이다.
주님과의 만남이다.

성전의 기초를 놓기 전에 먼저 예배를 회복한다.
주변 거주민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단을 세우고
조석으로 예배를 드리고 규례대로 각양의 절기예배를 회복한다.

제사장 에스라는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적는다.

    "그 후에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칠 월 초하루부터 비로서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전 지대는 오히려 놓지 못한지라" (에스라 3:5-6).


우리는 어떤가?
사역을 위한 사역에, 봉사를 위한 봉사에 모든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나?
아니면, 우리 생각에 이 정도는 해야지 하고 자족하려고 사역에 열심을
내고 있지는 않은가?

사역을 개발하고 사역에 헌신하지만 사역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이 기본을 잃어버리면, 사역 때문에, 봉사 때문에 시험을 받게 된다.

목회하면서 직분을 세우는 일과 교회 건축할 때가 제일 힘들다고들 말한다.
관련 당사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시험 들어 교회를 떠나게 되고,
심각하게는, 교회가 갈라지는 아픔도 겪게 된다.

그런데 겹겹이 둘러쌓여 있는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2만명 조금 넘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대사역이
성공할 수 있는 바탕은 무엇일까?

사역의 본질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전을 건축하는 중에도 그들은 서로 찬송으로 화답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한다.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에스라 3:10-11).


주님의 영광과 은혜 속에 사람들이 기쁨에 넘쳐 주의 일을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큰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윽고 성전 기초가 놓이자, 사람들은 벅찬 기쁨과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줄줄 눈물을 흘리거나 대성통곡을 했고 한 쪽에서는 큰 소리로 여호와를 찬양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예배와 사역이 아름다운 조화 가운데 세워지는 교회가 누리는 기쁨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우리 모두의 기도요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