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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산장에서



사진은 글 내용과 직접은 무관함
 

최근 친구의 산장에 다녀왔다.
친구 내외의 특별한 배려였다.

도시에 비교적 가깝고 따라서 길은 잘 닦여 있지만 그야말로 첩첩산중. 산 너머 산, 산 뒤에 산이고 겹겹의 산마다 명암과 색깔이 달라 보였다.

작은 개울 위에 놓인 콘크리트 다리를 건느자 자색 지붕의 아담한 집이 보였다. 때마침 흰눈이 퍼부어 만상이 소복하게 솜옷으로 갈아 입고 있었다. 상록수마다 '장식추리'로 보였다.
설경 감상에 빠져 있을 새도 없이 도착하자마자 옷 갈아 입고 친구와 함께 눈 치우기 작업에 나서야 했다. 산장 진입로에 비탈길이 두 군데여서 얼면 차 운전에 위험하기 때문.  

우선 눈발이 일차 그치길 기다렸다가 '소금'(염화칼슘) 자루를 들고 비탈길로 향했다. 소금을 듬뿍 뿌려 놓고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 근처 개울은 맑고 물고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서 소금 녹는 물이 흘러들 생각을 하니 물고기들에게 미안했다. 이윽고 눈이 녹아 길은 하얀 솜옷을 벗어놓기 시작했다.

겨울철이라 썰렁하긴 하지만 친구의 별장은 쉼터라기보다 작은 도서관에 더 가까웠다. 수 만 권의 장서가 벽면을 거의 100% 메운 서가마다 빼곡이 들어 차 있었다. 친구는 목회자/음악인 겸 평론가인데, 책 대부분은 문학/미술 서적이고, 사상전집과 고문집들도 꽤 많았다. 목회 관련 도서는 모두 자택에 있나 보다.
이 별장은 주변 동네 유지들에게도 공개해 공간을 제공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튿날 밤도 시 경찰서장과 모임 회장 등 동네 유지들이 묵게 돼 있었다.   

산장 화장실은 한파로 세면기 물 파이프가 얼어 있어 해빙기로 녹이는 시도를 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해빙기까지 고장 나 작동이 안 되는 데다 전원까지 자주 끊겨 친구 말로는 일이 "꼬여만" 갔다. 친구 내외와 해빙기 제작사 측 사이에 수많은 통화가 오가는 도중 나는 손님이 되어 따스한 안방에서 벽면을 온통 차지한 책들을 훔쳐 봤다.

같은 문학 토핔으로 이처럼 엄청난 양의 책을 대학 도서관 외엔 본 적이 없다. 산장 본 건물 뒤의 두 철제 컨테이너에도 역사적 논문집 등 책이 가득 차 있었다. 친구가 진정한 다독가로, 또는 주경야독으로 서책을 파고 들었다면, 지금쯤은 내노라는 문학 대가 또는 학자가 돼 있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일선에서 은퇴한 최근에야 비로소 등단 시인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 한동안 목회와 평론에 전념했다는 말인 것 같다. 사실 친구의 '함자' 석 자는 교계나 목회일선보다는 음악계와 음악평론계에 드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그리고..말이 친구지, 나보다 나이는 훨씬 많다. 그래도 늘 서로 정답게 말을 터 놓고 지내온 사이다. 가끔 내가 너무 버릇 없지 않나 속으로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와 말씨를 바꾸려니 왠지 서먹해질 성 싶기도 하다. 친구가 이해해 주는 한은 계속 말을 놓고 지낼 생각이다. 

수 십 년 전부터 우리 부부와 서로 알고 지낸 사이인 형수(난 친구 아내는 무조건 이렇게 부른다)가 정성껏 차려 놓은 밥상을 대하니 구수한 시골 냄새가 절로 났다. 오가피 줄기를 넣었다는 영계백숙인데 인삼 대신 오가피만 넣은 셈이다. 오가피는 별장 뜰에다 길러 놓아 봄철이면 친지들이 와서 즐긴다고 한다. 오가피 순은 맛도 좋거니와 영양분 리스트 또한 환상적이란다.

그밖에도 고추가루를 벌겋게 풀어 녹인 두부찌개 등이 가히 별미다. 형수는 마냥 덕스럽게 생긴 인상만큼이나 덕스럽고 관대해, 이미 비운 그릇도 마구 퍼 담아 되채운다. 내가 친구를 짐짓 '꽈배기' 입질을 하거나 짖꿎은 농담을 해도 넉넉한 웃음으로 받아 준다.

쥐새끼 소리 하나 없는 하룻밤을 정말 푹 잘 자고 있다고 꿈 속에서 생각했는데 아닌 밤중 형광등이 켜지고 곁에서 거창하게 코를 골며 자던 친구가 부스스 일어나 앉더니 내가 듣든 말든 말을 주워 섬기기 시작한다.
이러쿵저러쿵 거는 말 주변에 이런저런 말대답을 하다가 왠지 이상해서 "지금 몇 시여?" 물어 봤다. 새벽 두 시란다! 새벽 두 시면 새벽기도 시간도 아닌데 왜 깨우고 난리냐고 묻고는 코를 고는 시늉을 하는데도 친구는 아랑 곳 않고 계속 지껄여 댄다. 끝도 없이 두 시간을 꼬박 그러고 있었다.
그러다 둘 다 제 풀에 깊이 잠든 시각에 새벽기도를 호소하는 누군가의 알람 소리가 난 듯 한데 그냥 계속 자 버리고 말았다. 이튿날 동이 터서 자다 깨니 지난 '야밤'에 둘이서 나눈 대화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대체로 인간사가 이 모양인가 보다.  

뒤늦게 창밖을 내다 보니 아뿔싸..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거의 폭설 수준이다. 
투명 우비를 챙겨 입고 언덕길을 다녀 온 친구의 얼굴엔 난감난색이 또렷하다. 어제 오후 애써 뿌려 놓은 '소금'이 모두 무용지물이었다는 황당한 보고다. 이래서 예수님께서도 일기예보의 중요성을 언급하시지 않았을까. 아무튼 간밤, 친구의 정담 등쌀에 잠까지 설친 몸으로 강제노역까지 하려니 맘이 천 근이나 된 듯 무거워지려다, 이내 오랜만의 몸풀기 운동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사람의 됨됨은 맘 먹기에 달릴 수 있다.

오늘 밤이면 동네 유지들이 몰려 온다는 생각에 더 아스라해지는 속맘을 달래며 두 자루 씩의 삽과 비, 남은 '소금' 등을 챙겨 총총히 비탈길로 향했다. 덮인 눈을 쓸어 보니 아니나다를까 어제 소금에 잠시 녹았던 길바닥이 방탄유리처럼 꽝꽝 얼어 붙어 있었다. 이제부터 허리가 빠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친구는 나더러 "너 잘못 걸렸다"고 웃으며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무딘 삽날로 얼어붙은 눈 위를 찍어 봤지만 좀처럼 안 깨졌다. 친구가 삼지창 형 쇠스랑을 가져왔지만 별무효과였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한 해라도 떠 주고 날이 좀 풀리는 듯 하자 삽날을 아래로 밀어 넣는대로 얼음이 깨지며 튀어 올랐다. "음, 고 사이에 노하우를 익혔구먼" 하는 친구의 말에 "얼씨구, 진작부터 눈 치우기 전문가야"라고 자임해 봤다. "역시나 임자 잘 걸렸다"는 비아냥이었다. 
 
그렇게 둘이서 여러 시간 씨름하는 동안 소복 차림이던 언덕길이 어느 새 맨살을 드러냈다. 삽질에도 여전히 굳건히 버티는 눈얼음 위엔 남은 소금을 한꺼번에 들이부었더니 잠시 후 시냇물로 변해 제법 졸졸 소리를 내며 흘렀다. 친구가 "이젠 고기잡이를 해야나부다"며 웃었다.   

손자손녀들이 올지 모른다는 친구의 귀띔에, 혼자 간격이 떠져 돌아오던 길 다릿목 여기저기에다 삽질로 큼직한 사랑 마크(하트)를 그려 놓았다. 혹시 차창을 내다 보던 아이들이 만에 하나 "할아버지가 하트 그려놨다"고 하지 않을까 라는 헛(?) 상상을 하며. 아이들은 눈 쌓인 별장을 꿈나라처럼 좋아한단다. 나로서도 아이들을 향한 사랑 고백이기도 할까. 우리 아이들도 어릴 때 눈 위에 무늬 놓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산장에 거의 되돌아왔을 즈음 갑자기 쾅 하는 굉음이 골짜기를 메아리 쳤다. 깜짝 놀라 소리 나는 쪽을 바라 보니 멀리 진입로 입구 쪽에 작은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있었다. 부지런히 걸어서 다가 가 보니 두 청년이 내려 차체를 둘러보고 있었다. 뒤 범퍼 왼쪽이 왕창 부서져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물었더니 "졸다가 그만.." 하며 웃었다. 한길 쪽을 바라보니 눈 위에 커다란 쌍곡선이 여러 번 휘어져 있는 게 졸린 데다 눈에 미끄러지면서 쇠로 된 안전 펜스를 들이받은 모양이다. 탄력성이 강한 펜스는 끄떡 없고 차만 망가진 셈.   

나도 밀려오는 졸음을 견디며 운전한 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참으로 위태한 상황이다. 졸리면 가까운 안전장소에서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 펜스를 세게 들이 받았으면 자칫 계곡 아래 떨어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친구도 뒤늦게 멀리서 "무슨 일이야?" 물으며 다가왔다. 설명해 줬더니 "젊은이들, 조심해야지" 하며 혀를 끌끌 찼다. 친구는 "이건 오늘 운전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충고인가보다"라고 나름의 해석을 했다. 그러나 저녁엔 모든 길 위의 눈이 깨끗이 녹아 차행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장시간 눈을 치우고 나니 비록 허리와 손바닥 등 몸 여기저기가 쑤시는 곤비한 상황이지만, 적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적어도 산장 관광비 벌이-친구는 나더러 '관광비'를 내라고 억지를 부리며 졸라댔다!-는 했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가벼웠다. 게다가 형수가 거듭 차려준 밥상에 정성이 듬뿍 담겨 보양보신이 충분히 됐다.

여가 시간엔 친구의 책 정리를 좀 해 줬다. 도서분류학을 공부한 일도 없지만 산재한 책을 빼어다가 대강 카테고리 별로 꽂는 작업을 나름대로 해 나갔다. 닥치는 대로 구입을 했는지 동일 저자의 동일 저서도 여러 권 됐다. 지금도 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매달 수 십 권씩 구입한단다. 아무리 책이 좋더라도 이쯤이면 과욕이 아닐까 싶다. "그런 걸 읽는 사이에 성경이라도 좀 더 읽지" 하려다가 삼켰다. '영적 교만' 혐의를 받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은퇴하면 성경읽기도 점점 은퇴하게 되나..아닐 테지만 노파심에서다.

아예 산장을 친구의 호를 따 명명한 도서관으로 만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권했다. 안 그래도 그런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희귀 고서들, 논문집도 수 백 권 된다고 했다. 각 분야의 전공생이나 학자들이 알고 나면 "환장"할 그런 자료들이 하고 많다고 강조한다. 나 자신 워낙 책을 좋아하지만, 별로 부러운 생각이 없어 "잘 해 보라"고 넌지시 축복(?)해 줬다. 그 왕성한 수집욕 만큼은 존중하면서.

오는 길에도, 친구의 서가 만큼이나 즐비한 아기자기한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석양 속을 달렸다.
짧지만 즐거운 이틀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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