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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회상하며


나의 어머니는 키가 자그마하여 아담했습니다. 
평생 살찐 적이라곤 없으시고, 손끝 마디마디까지 여성다운 분이었습니다. 미인의 고장으로 유명하다는 평안북도 강계 출신이시지만, 그리 '얼짱'은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누구든 그렇 듯, 옛 사진 속 젊을 적 애띤 그녀의 아름다움은 내 속을 감탄하게 만듭니다.

어머니는 여든 평생을 지내실 동안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겪으셨습니다.
결국 진짜 죽음이 예상되는 '위기'까지 이르렀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겪다 떠나셨습니다.
왜 그러셨는지 가끔 속으로 자문해 봅니다만, 까닭은 거의 확실한 듯 합니다.
싸탄 마귀가 늘 노린 대상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별 어려움 없이 평안히 떠나신 분들은 마귀가 노린 대상이 아니란 뜻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젊은 때 연탄가스에 하마트면 목숨을 앗기실 뻔 했다가 담임목사님의 즉석 처방(동치미 국물)으로 회생하셨고, 
암 말기 환자로 '사형선고'를 받으셨다가 기도로 완치되셨으며(재발 없었음)..
폐결핵이 완치됐다가 재발해 상당기간 고생하셨고,
휴가철 관광선을 타셨다가 타인의 실수로 배 바닥에 넘어져 거의 곱사등이 되셨고
한겨울 자살 가스폭발/화재가 발생한 건물 위층에 계셨다가 간신히 탈출했지만, 훗날까지 건강을 크게 위협한 엄청난 충격을 받으셨고..
말년엔 심장질환으로 허파/간/신장의 동시 약화 등으로 계속 죽음의 문턱에서 위협 받으셨습니다.

물론 세상의 어머니마다 온갖 수고와 고생을 겪곤 하지만,
어머니는 그밖에도 수많은 아픔과 인고의 나날을 지내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제게 "얘, 이건 너한테 첨 하는 얘기란다"라며 긴 회고담을 꺼내셨습니다.
울음과 웃음을 거듭해 가며 들려 주시는 놀라운 얘기들이었습니다.

풍족하고 믿음 좋던 한양 조씨 집안 출신이었건만, 친지의 중매로 10대의 어린 나이에 가난한 김씨 집에 갓 시집을 와서는, 그나마 시어머니와 남편, 시누이들의 홀대에 애간장을 태우셨습니다. 
중국 공산화 직후 만주 심양에서 텐진(천진)항을 거쳐 인천으로 가족이 피난 나올 당시 장장 860리를 도보로 걸으셔야 했습니다. 당시 18세 나이로 첫 아들을 등에 업고 젖을 먹이면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외롭게 걸으며 아기와 함께 한 없이 울기도 하셨습니다. 발바닥은 부르트다 못해 물집이 온통 깔렸고 얼굴은 흙먼지로 새카맣게 뒤덮였답니다.  

간신히 챙겨 나온 금품들 중 상당량을 '마적단'이라고 불리는 만적들에게 뺏겨야 했습니다. 주님의 도움과 은총으로 서울에 도착했지만, 피난 시절 어린 두 아들을 차례로 잃으셔야 했고 훗날 셋째 아들(저의 동생)도 잃으셨습니다.
1.4 후퇴 당시 친지의 도움으로 대구에 피난 내려 가 자리 잡았지만, 한국 전 직후에 누구나 겪던 어려움을 겪으신 데다 사업을 갓 시작하신 혈기방장하던 아버지의 성미를 모두 참아내야 했습니다.  
그밖에도 저의 숱한 불효 등 수많은 괴로움을 견디셨습니다. 

그런 한편, 어머니의 삶은 승리로 가득 찬 삶이었습니다.
선대로부터 물려 받은 신앙을 하시라도 잃거나 주님을 부인한 적이 없었고..
평생 교회와 가족을 사랑하고 기도로 일관된 삶이었습니다. 십일조를 거른 적도 없습니다.
마지막 몇 년간은 사고 후 등에 산처럼 불쑥 튀어나온 등뼈로 침대에 편히 맘대로 주무시지 못하게 된 것을 기도의 연장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누워 있는 시간보다 기도하며 앉아 계실 때가 더 많았습니다. 주님의 종들을 위한 기도는 늘 배가하셨습니다.  

별세를 몇 주 앞둔 때도 아프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새벽기도회로 향하시기가 일쑤였습니다. 다만 나중엔 숨이 차 그나마 포기하셨습니다만.
평생 교회를 사랑하는 섬김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전도사도 전도부인도 아니었건만 은퇴권사직을 받으신 뒤에도 남 못지 않은 바쁜 돌봄사역으로 영혼들의 목장을 돌아 보시다가 알뜰한 후배에게 넘겨 주셨습니다.

어머니를 끝으로 우리 집안의 선대는 모두 떠나시고 이젠 2,3세들만 남았습니다. 
이제 와 나를 돌아 보니, 나는 어머니의 발톱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역시, 앞서 가신 할머니, 아버지, 나의 어머니만 못하구나 라는 절감에 마음 괴롭습니다.
주변을 둘러 보면, 이렇다 할 기도의 사람이라곤 친척 댁 밖엔 없습니다.

마지막 떠나신 어머니만한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이젠 더 없음을 볼 때 통한의 눈물이 흐릅니다. 어머니를 본 받기 원합니다. 나도 기도의 사람이길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내 무릎을 기도의 자리 위에 굽히게 하소서.
나의 곧고 오만한 목을 겸손의 자리에 꺾게 하소서.
어머니의 기도와 같은 기도를 내 입에..
어머니의 눈물과 같은 눈물을 내 눈에
담게 하소서!

믿음의 밧줄,
기도의 생명줄,
섬김의 끈이 끊이지 않게 하소서.

어머니의 믿음을 닮게,
그 누구, 그 무엇보다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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