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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의 지난 칼럼들/뉴하우스의 돌보며걸으며

새 아침을 감사하며 (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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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하우스의 돌보며 걸으며

전에 나는 아침이 달가워 본 적이 없었다.

겨우 일어나 학교 가기 바쁘던 어린 시절엔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지구 건너 편, 아직 아침 아닌 곳에 가 있고 싶을 정도로 환한 햇살이 원망스럽기마저 했다. 

새벽 기도를 가 본 적도 손꼽을 정도다. 비몽사몽 간에 하는 나의 기도는 무의미했고 몸은 와 있으나 정신을 차리려고 발버둥 쳐야 하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큰 소리로 하는 기도가 들려 오는 것은 곤욕이었다. 이렇게 새벽에 맥을 못 추는 나는 새벽이란 단어가 싫었다. 

아침이 싫든 좋든 학교 수업과 직장 때문에 아침과 싸우는 나의 투쟁은 계속됐다.

결혼을 하고 나자, 더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어서 아침에도 남편 중심, 아이 중심으로 생활의 바퀴가 굴러 갔다. 그러면서 서서히 아침을 맞는 마음도 무디어져 간 것 같다.

자고 깨면 오는 것이 아침.
싫고 좋은 감정이 빠진 생활 일부분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삶의 굴레였다. 

이런 나에게 아침을 기다리는 맘을 갖게 된 것은 훈련이나 타국에 파병되는 남편의 빈 자리로 시작되었다.

남편의 부재 중에는 소리에 민감해진다. 겁 많은 나는 저녁만 되면 무서워진다. 그래서 일찍 잠 자리에 드는 게 상책이었다. 별 다른 생각도 느낌도 필요 없는 잠 나라로.
그리고 빨리 아침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다음 날 아침 라디오에서 그 날의 새로운 뉴스가 귀를 먼저 깨우고 아침을 알리는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의 소리에 힘입어 나의 하루도 시작된다.

학교 가는 아이들과 출근하는 사람들의 부산스러움. 들고 나는 사람들의 모습. 차의 시동이 걸리는 소리. 집 뒤로 아득히 보이는 숲 속의 공간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고속도로와 줄을 잇는 차들의 모습 등이 이렇게 반가워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곳저곳의 교통량과 사고에 관한 다급한 뉴스 소리도 계속 전파를 탄다. 사람 사는 이야기와 일상의 시작이다. 내가 그 가운데 같이 있고 더불어 산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이제는 밤이 아니기에 어디서 나는지 모르는 소리에 민감할 필요도 멊다. 환한 햇살 때문에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소리에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아침이 점점 좋아져 간다.

이렇게 아침이 좋아질 무렵 한동안 잊고 살았던 지난 일이 생각 났다.

어느 날.
오래 병으로 고생하던 '칼'의 엄마가 하나님 품으로 가 버렸다. 내 아이와 동갑인 어린 아들을 놔 두고.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는 아이들의 수영 미트에서 였다. 병색이 완연하고 지쳐 있는 그의 말투는 더는 이 땅의 삶에 애착과 미련도 없는 듯했다. 고통이 가져다 주는 산물이었다. 얼마 후 그렇게 그녀는 가 버렸다. 

"이럴 수도 있구나."
"부모의  책임을 다 못하고 하나님 앞에 갈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마음의 평안을 앗아 가고 아침이면 당연히 자고 깨는 줄 알았던 일상이 깨질 수 있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한동안 불편하게 만들었다. 죽음 앞에서 약해지고 인간의 한계를 느끼던 시간이었나 보다.

그 때문에 그 후론 지금까지 하지 않던 기도가 시작되었디.
"나의 아이를 키우고 양육하는 동안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기를…"
이 땅에 사는 동안 나의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습관이 되어 갔다. 그 어느 기도제목 보다도 더 절실하고 우선이었다. 

그리고 한참 후 이렇게 아침이 좋아져 갈 무렵 매일 나를 맞는 새 날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셔서 내가 살아 있고 나의 생명이 연장된 날인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새 날이 밝아옴으로 나는 오늘이 어제보다는 더 나은 날임을 또 알아 간다.

오늘이 살아 있는 날 중 가장 내가 젊은 날이다. 가장 건강한 날이다. 가장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날이다. 가장 많이 일할 수 있는 날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 주시듯 어김 없이 새벽을 여시고 또 새 날로 나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 하루를 마친 후 이런 저런 부끄러움과 죄로 얼룩진 심령을 깨끗하게 하시고 기억도 안 하시는 하나님.
하얀 도화지 같은 새 날을 주신다. 용서와 새로운 시작, 또 한 번의 기회다.

지난 날의 것들 중 지혜만 거두고 나머지-회한도, 후회도 미련도 아픔도- 다 어제와 함께 보내고,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는 좀 더 참되고 좀 더 경건한 것, 옳고 정결하며 사랑할 만한 것, 칭찬할 만한 것들, 좀 더 덕이 있고 기릴 만한 것들을 생각하리라.
이것이 아침과 오는 새날의 의미다. 그래서 내게는 오늘이 항상 그 많았던 어제보다 더 좋은 날이다.

이렇게 내가 살아 온 만큼의 많은 날을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어김이 없이 내게 많은 햇살과 함께 새 날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알아 간다.

날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이 날이 밝아 오는 틈으로 보인다.

어쩌다 새벽에 눈이 떠지면 짖어대는 반가운 새 소리로, 아니면 아직 남아 있는 새벽만의 공기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듣는다. 서서히 떠 오르는 해로 인하여 밝아 오는 날이 이렇게 나를 설레게 한다.

그래서
아침에, 오늘을 감사한다.
내게 주신 오늘, 허락된 삶, 참 귀한 날이다.

어제는 역시나 못 미치는 하루였어도
오늘은 또 새날이다.
다시 한 번의 기회다.
깨끗하게 하시는 놀라운 사랑과 떠나지 않는 사랑으로
새 힘을 얻고 다시 시작하는 오늘이다.


오늘을 시작하기 앞서
많은 생각과 계획도 잠시 내려 놓는다.
그리고 비로소 눈을 들어 본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환한 햇살이 가득한 날도
그렇지 못한 날도
부족한 인간이 모여 사는 흠 많은 세상마저도 아름답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날이기에 아름답다

이렇게 날마다 베푸시는 새로운 은혜를 생각하며
아침에 갖는 여유가 감사하다.
혼자인 것 같은데…혼자가 아닌
사랑과 은혜 믿음을 주시는 분이 함께 하시는 날이다.

아침이 이렇게 나를 들뜨게 해서 감사하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전도서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