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얼마 전, 지옥과 천국에 관한 S모 목사의 책을 한 권 입수했습니다. 너무 바빠 나중 찬찬히 읽기로 하고, 일단 대강 훑어 보기만 했습니다마는..결론은 황당 그 자체입니다.
한때나마 대형교회 목회자였고 비교적 건실한 보수신학자 출신이라는 그 분이 어떻게 이런 비성경적인 책을 쓸 수 있는지 가히 충격적입니다. 게다가 그는 카톨맄 작가인 단테의 '신곡'에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아는 분인 한 신학자에게 견해를 물었더니, "내용상 경우에 따라 이단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 책에 대한 구체적인 비평을 언젠가 할 생각이 있습니다만, 우선 우리가 갖기 쉬운 천국에 대한 몇 가지 상식적 차원의 오해들을 좀 고쳐 볼 기회를 가지면 어떤가 싶네요.
우선, 성경은 분명히 두 가지 천국을 말합니다.
하나는 거듭난 사람의 심령에 이뤄지는 천국이며, 성령께서 임하시면 이미 이뤄진 나라라는 것입니다.
주권주의자(dominionists)들, '신사도운동권'이나 비밀집단, 패러처치 등의 엄청난 착각과는 달리, 천국 내지 하나님의 왕국은 결코 예수님의 재림 전 이 지상 시스템 속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세상의 신/임금인 마귀가 한시적으로 다스리기 때문이지요.
또 하나의 천국은, 우리가 다 아는 대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우리가 장차 가서 영원히 살게 될 처소가 있는 바로 그 곳입니다.
천국 1은 우리가 현세를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 땅에서도 맛볼 수 있는 그런 성령의 권능과 평화 등을 우리가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든 안 믿든, 우리는 이미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혀 있는 하늘나라 시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국 2는,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직 우리가 체험할 수 없는 것이어선지 많은 오해들이 있습니다.
천국 전 요르단 강?
죽은 사람이 천국을 갈 때는 반드시 '요르단'(요단)강을 건너 간다는 사상/개념이 있어 왔습니다. 천국을 카나안 복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대에 예슈아(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제2세대가 카나안으로 진입하면서 건너야 했던 강이 요르단 강이었지요.
우리가 흔히 부르는 찬송가에도 있는 이 개념은 알고 보면, 비성경적인 발상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천국 들어가려면 '요르단 강'을 건너야 한다는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데도 찬송가 여기저기 또는 흑인영가 등에 그런 시사를 해 놓은 가사들을 봅니다.
예를 들면, '세월이 흘러가는데'(현행 새찬송가 485장)라는 찬송가의 후렴 일부는 "저 요단 강가 섰는데 내 친구 건너가네"라고 되어 있어, 이런 발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다음 찬송가들이 비슷한 개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246장/2절)
나그네와 같은 내가 (376장/3절)
세월이 흘러가는데 (485장/후렴)
저 건너 편 강 언덕에 (237장 1절)
저 요단강 건너편에 (243장 1절)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란하게 (489장 1절)
전능하신 주 하나님 (377장 3절)
주가 맡긴 모든 역사 (240장 1절)
참 즐거운 노래를 늘 높이 불러서 (482장 1절)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606장 후렴)
행군 나팔 소리에(360장 후렴)
비슷한 개념의 노래는 이밖에도 많습니다.
위 찬송가들은 한결 같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 요르단 강이 있다고 시사합니다만..성경엔 그런 근거가 없습니다. 카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요르단강을 건느지 않았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카나안이 천국도 아닐 뿐더러, 이 세상과 천국 사이에 요르단 강이라는 경계선이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래도 요단강을 곧 건넌다고 해 놓아야 유족에게 위로가 되지 않냐?"고 물을지 모르는데, 그런 위로가 없더라도 죽는 사람이나 애도하는 사람들이 거듭난 사람이라면 주님/성령께서 주시는 천국 같은 참 위로와 평화는 으레 받기 마련입니다.
내세 전 '강물': 신화적 개념
죽으면 어떤 강물을 건너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오히려 신화나 오컬트에서 왔기가 쉽습니다. 예컨대 그리스 후기 신화에는, 지상과 지하의 경계선인 어둠의 강물 '스틱스'(미움이란 뜻)가 나옵니다.
'지하의 신'인 하데스(또는 하이데스)의 종인 지하의 뱃사람, 카론은 헤르메스 신이 지상에서 죽은 자들의 그림자를 모아다 검은 아케론('고통의 강'이란 뜻) 강/호수까지 데려다 놓으면, 거기서 자기 쪽배에 태워 죽은 자들의 최종 안식처인 햇빛 없는 지하의 땅 하데스로 데려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카론에 관한 언급은 잃어진 서사시, '미뉘아드'에 처음 등장합니다.
카론에게 지불하는 배삯은 주화인 오블로스(=다나케: 드라크마의 약 6분의1 가치의 은화) 한 푼으로, 유족이 고인의 입에 물려 놓는답니다. 카론은 심술궂은 존재여서 그것마저도 없는 사람은 강가 늪/수렁에서 유령으로 헤매도록 내버려 둔답니다. 지금도 그리스인들 다수가 이 신화를 믿고, 시신에다 배삯을 물리곤 합니다.
아울러 천국을 험한 바다를 거쳐 간신히 도달하는 해안/해변/항구의 개념으로 비유한 찬송가 가사들도 많습니다.
또한 이 신화에 영향을 받은 문학작품들이 있지요.
고대 로마 시인 비르길리우스(영어: 버질, 라틴어: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 마로)의 작품인 '아이네드'(또는 아이네스)는 물론, 이탈리아의 카톨맄 작가인 단테(본명: 두란테 데글리 알리기에리)의 '신곡' 중 '연옥', 영국 성공회 작가인 존 밀턴의 '실락원' 등에는 죽은 자들의 이런 '지하 수상여행' 개념이 나옵니다.
[ S 목사가 문제의 책을 쓰기 전 영향 받았다고 한 단테의 작품이 '신곡'임]
이와 비슷한 전설로, 일본 불교에도 죽은 사람들이 사후 7일만에 세 번 건너야 한다는 산주노카와(三途の川)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시신의 관에다 6개 주화를 던져 넣는다고 합니다.
또, 미쯔라임 곧 고대 에짚트의 '죽은 이의 글'(死者의 書)에도 사람이 죽은 후 탈 것으로 강물을 건는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래서 서양의 수많은 관(棺)들은 배 모양으로 지어지곤 해 왔고, 지금도 그런 관들이 만들어지곤 합니다.
천국은 서쪽 황혼 너머?
둘째로, 천국은 동쪽이나 서쪽 어디엔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서쪽은 해질녘/땅거미, 동쪽은 해돋이와 자연스럽게 얽힙니다. '해 지는 저 편, 새 하늘에는'(찬 238장) 등의 노래에서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느낍니다. '후일에 생명 그칠 때'(608장) 3절도 다소 그런 맥락이라는 느낌입니다.
이 역시 후기 그리스 신화 등에서 발견되는 개념입니다. '오디세이'를 보면, 하데스는 평평한 지구의 땅 테두리를 휘도는 오케아노스(대양이라는 오션/ocean의 어원) 강의 "가장 서쪽", 곧 '태양의 대문들'과 '꿈의 땅' 저너머에 위치해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또 (황금사과를 지킨다는 세 님프/여신인 헤스페리데스의 형용사형인) 헤스페리스는 '저녁의'라는 뜻이며, 죽음 이편에 '저녁의 땅'이 있답니다.
에짚트 신화의 '죽은 이의 글'에도 역시 '서쪽'의 내세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영적인 장소이며, 땅의 어떤 방위나 방향과도 무관하고 그런 시공 개념을 초월한 곳입니다.
천국 황금종?
그 다음으로는, 천국에 있다는 거대한(?) 황금종들 이야기입니다. '기쁜 일이 있어 천국 종 치네'(509장)란 찬송가를 보면, 거듭나서 구원 받는 영혼들이 천국에 오를 때마다 그렇다는 분위기입니다. 또 찬송가 237장을 보면, 천국엔 거대한 황금종들이 있어 죽어서 천국 들어오는 영혼들을 맞아 준다는 것을 역시 기정 사실처럼 말하고있습니다. 과연 진실일까요?
이 역시 성경엔, 그런 언질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상상의 소산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지요. 물론 성경엔, 고대 사제(제사장)들이 입던, 하나님이 직접 디자인하신 성의인 에포드 옷가에 작은 금 방울들(golden bells)과 석류들을 달았다는 실화가 나옵니다(미쯔라임출국=출애굽기 28'34). 이 방울 소리가 울리지 않으면 사제가 죽은 것으로 이해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금방울이 천국의 '거대한 황금종' 설화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영어의 이 (작은) 골든벨즈(금방울)가 천국의 거대한 황금종들로 잘못 둔갑된 인상입니다.
또한 천주교 성당을 비롯한 다양한 교회 종탑의 종들이 때를 알리는 시종(時鐘)부터 교구민/주요인사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弔鐘)까지 다양한 종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다 보니, 천국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된 모양입니다.
성경엔 없는데도 찬송가나 복음성가에는 있는 이런 이상한 개념들을 바른 천국관에서 구분해야 한다고 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고 앞으로 갈 미래적 장소라고 해서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덧붙여진 이런 개념들을 성경 그대로의 참된 천국관으로부터 필터링 해 내야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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