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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카톨맄(천주교)

테레사 수녀의 어둔 구석들




여는 말

요즘 바티칸의 카톨맄교 교황청은 또 다시 자기네 명사들 몇몇을 '성인(saints)' 대열에 올려 놓으려고 막바지 숙의에 깊이 빠져 있단다. 성인이 될(?) 후보자 한 명은 널리 알려진 고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   

천주교의 엄청난 황당 교리와는 달리, 본디 성인/성자(a saint)란 말이 성경에서는 단순히 거듭난 신자, 곧 성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을 믿는 참 신자라면 누구나 성도라는 말이다. 

그러니..로마 제국을 닮아 귀족화와 계급을 좋아하는 천주교가 지정하여, 땅에서 하늘까지(헉~!) 높여 주는 그들의 '성인'은 성경 앞에서 한 마디로 완전 무의미하다! 인간 교황청은 고인들의 신분이나 지위나 세계를 좌우할 아무 권한이 없다. 더욱이 지옥이든 연옥이든 뭐든에서 천국으로 이동시켜 줄 권능 따위가 없다. 거대한 착각일 뿐.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천주교는, 다른 것은 둘째치고, 구원관/인간관/(거듭남에 관한) 중생관/내세관/교회관 등이 애매하다. 유한한 인간체제와 초월하신 하나님의 통치체제의 구분조차도 안 된다! 아예 차원의 구분이 안 되거나 설령 되더라도 교도들을 속여 우롱하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 지독히 안타까운 점은..수많은 신교 사람들이 테레사를 굉장히 거룩한 '성녀'로 알고 지낸다는 점이다. 혼자서만 그리 알고 지내지를 않고, 설교 강단에서 꼬박꼬박 테레사의 '선행'을 들추거나 그녀의 '명언'들을 인용하여 써 먹으면서 교인들을 테레사 찬미자들로 은근히 교화를 시도한다. 최근에도 어느 존경 받는 미국 신학계 명사의 신간 책을 읽다가 노골적으로 그런 기미가 보여 참 씁쓸했다.  

필자는 테레사에 관해 한 두 글을 쓴 기억이 있지만, 이번 기회에 최신 자료를 곁들여, 그녀가 결코 성녀나 성도일 수 없음을 입증해 보련다. 


우리가 알기로, 알바니아 태생으로 본명이 "아그네스 곤자 보아주"인 이 작은 여인은 12세 때부터 남을 돕는 일을 시작했고, 인도로 귀화해 캘커타에다 소위 '사랑의 선교회'(MC 또는 MOC)를 세우고, 인도 빈민과 행려병자, 소외된 자들을 돌보다가 1997년에 죽었다. 2003년 10월 19일에는 그녀의 소위 시복식(諡福式: 성인추대 전단계)이, 지난 해엔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국제 잔치가 치러졌다. 
테레사는 생시에 인도 빈민/환자들을 도운 일로 1979년 노벨평화상을, 이보다 앞서 1973년엔 소위 '종교노벨상'이라는 템플턴 상을 받기도 했다. 테레사는 MOC 일 때문에 거액의 기부금을 여기저기서 받았는데, 그 기금 대부분으로 세계 각국에 500여 수녀회를 세워, 자신의 죽음 당시만 해도 123개국에 610여 MOC 지부를 두었다.
여기서 우리는 MOC가 진정한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아울렡이기보다도 '사랑'을 빌미로 내세운 종교단체 내지 천주교 홍보 단체에 더 가까움을 어렴풋이 느낀다. 

 
테레사는 불가지론자? 

테레사가 카톨맄 '성인'은 될 수 있을 망정, 결코 성경이 말하는 성도일 수 없는 것은 죽기까지..거의 평생 - 약50년간 '하느님'/예수님께 대한 이렇다 할 아무 믿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진실은 딴 곳도 아닌 바티칸이 직접 밝혀낸(!) 사실이니까, 필자한데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말기 바란다. 

테레사 수녀의 신앙고백 아닌 회의의 고백을 자신의 말로 직접 들어 보자:

    "나의 신앙이 어디 있는가? (내 맘) 깊은 저 아래라도...아무 것도 없고 오직 공허와 어둠 뿐...혹시라도 하느님이 계신다면, 제발 나를 용서해 주시길. 나의 생각들을 하늘로 들어 올리기라도 할 때면, 그런 단죄된 공허가 있어, 바로 그 생각들이 날카로운 칼들처럼 되돌아와 나의 영혼을 찌른다...얼마나 아픈가, 이 미지의 고통!-나는 신앙도 없고, 퇴짜 맞은 느낌에다, 텅비어 있고, 신앙도, 사랑도, 열심도 없다...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하는가? 만약 하느님이 없다면, 영혼도 있을 수 없다. 영혼이 없다면, 예수-당신도 역시 진리는 아니다."

이것은 그 위대한(?) 수녀 자신의 불쌍한 고백이다. 이같은 그녀의 캄캄한 공허 상황은 1948년부터 1997년까지 (일부 짧은 완화기?를 빼고선) 줄곧 지속되어, 이 방면에 역사적 기록을 세웠다. 

테레사 옹호자들은 그녀가 과거 중세의 신비가들 같은 '의혹기'를 거쳤다고들 주장한다. 예컨대 아그네스가 수녀가 될 때 그 이름을 땄다는 프랑스 리시외의 수녀 생 떼레세는 자신의 의심을 "무(無)의 밤"이라 불렀고, 16세기 신비수사 '십자가의 성 요한''영혼의 어둔 밤'이라고 불렀다. 후자는 세계의 가장 영감 있는 영적인 도인(마스터)들이 모두 이 "필수적 단계"를 거쳐 성숙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카톨맄교의 성인들이란, 이런 의심의 텅빈 공허와 허무의 흑암과 밤을 통해 미지의 깊은 신비(?)를 맛보다가, 급기야 '성인들'의 반열까지 거뜬히 오르는(?) 모양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의심의 토마스(도마)도 가장 영감 있는 영적인 도사로서의 필수 단계를 거친 셈이다. 그런 식으로 의심을 정당화한다면, 주님께서 "의심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게나" 하신 말씀은 어떤 깊은 의미가 있을는지..
오늘날 관상기도/향심기도 따위를 통해 '무의 경지' 내지 무아경을 맛보려는 사람들도 신앙보다는 테레사 같은 의혹과 절망의 '신비'에 빠질 것은 물 건너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참고로, 테레사 역시 관상가(a contemplative)였고, 동시대의 요한 파울로(바오로) 2세처럼 열렬한 마리아 숭배자였다. 

물론 전술한 토마스를 비롯해 고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나 판관(사사) 기데온, 침례(세례) 요한, 갈릴리 수면 위의 페트로 등이 한때-일시적으로 의심을 하긴 했다. 그러나 주님 말씀대로라면, 의혹자보다는 믿는 사람이 훨씬 복되다. 
따라서 죽기까지 '하느님'의 존재조차 의심했던 테레사의 무엇이 복되고 거룩하기에 성녀인지 실로 의심스럽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앙은 가장 기초적인 걸음마 단계, 아니 이유식을 먹기 전의 교리라고 밝혀 준다(참고: 히브리서 5'12-6'2). 

테레사는 또 말한다: 

   "예수님은 그대를 향한 매우 특별한 사랑을 갖고 계신다. [그러나] 내게는 침묵과 공허가 너무 커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기도로] 혀를 움직여도 말하지 못한다...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나도 그 분의 자유로운 손길을 갖도록."

공허와 어둠의 신비란 이런 것인가..오랜 관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관상 끝에 만나는 신은 참 하나님이 아니다.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테레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그 어떤 딴 것으로도 천국에 못 간다면, 지명도에 의하여 가게 될 것입니다.그것이 나를 순결하게 해 주고, 희생하게 해 주고, 정말 하늘로 가도록 준비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론, 천국이란 곳은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사람만 갈 수 있다. 불쌍하게도 테레사는 자신이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을 죽기까지 예감한 것 같다. 진리 말씀에 흐릿트릿한 천주교의 숙명이랄까..    

육체적 고통이 곧 "하나님의 사랑"?

테레사는 고통과 금욕에 대한 뒤틀리고 오착(誤錯)된 견해로도 악명이 높았다. 육적인 고통이 곧 사람들을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만든다는 신앙 아닌 철학을 믿은 것.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곧 크리스토의 수난에 동참하는 육적 고통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성경적인 신자도 아닌 사실상의 비신자인 빈민/환자들에게 이렇다 할 구체적인 처방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마취제/진통제도 고의적으로 주지 않았다. 국제합리주의협회(RI)의 사날 에다마루쿠 회장은 테레사의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칼리가트)에서 아무런 마취/진통 과정 없이 맨 상처 그대로에서 핀셑으로 구더기를 빼 내는 동안 환자가 지르는 비명소리에 놀랐다.

칼리가트에 자원봉사자로 지원했던 한 소셜워커(사회보장직원) 역시 현지에서 이런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 쪽에는 남성 환자들, 한 쪽엔 여성 환자들이 있는데, 중/경환자 구분도 없이 식사/목욕/알약제공/붕대 교체 정도만 해 주고 있었다. 거기는 정신적인 안락도 없었다. 그 큰 방 안에 누워만 있을 뿐, 책도, 꽃도, 텔레비전도, 노래도, 게임도 없었다. 다만 몇 주, 몇 달, 몇 년을 누워있다가 죽어갈 뿐이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존재도 믿지 않던 '선교' 봉사자가 거액의 돈을 들여 세계 곳곳에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면서, 가난한 자들의 고통은 스스로 받아 마땅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이런 그녀의 발상이 옳은 것이라면, 왜 예수님은 모든 고통하는 환자들을 고쳐 주셨는가, 그냥 고통을 즐기도록 놓아 두실 일이지.
테레사는 그러면서도 매년 거액의 '헌금'을 바티칸에 보냈다는 보고도 있다. 그런 헌금이 하나님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통제는 인도에서 가장 흔한 약의 하나이며, 세계에서 가장 값싼 약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이 여인의 "고통을 즐겨라"라는, 거룩한 진리 아닌 하나의 철학적 발상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을 때까지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다. 
어느 나환자 남성이 고통 때문에 울부짖자, 테레사는 "고통은 곧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 환자는 "님의 하느님께 저를 제발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려 주실래요?"라고 물었다.
MOC은 얼마나 왜곡된 하나님 상을 퍼뜨리고 있는가!  

테레사는 누구 말마따나 실로 고통에 중독된 여인이다! 가난과 고통은 인간에게 주는 하느님의 선물로서 하느님께 근접하게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나누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고통의 비명소리를 "하느님의 귀에 음악" 정도로 간주했다. 거룩하긴커녕 끔찍하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에겐 이 철학을 적용하지 않았다! 여러 번 자신이 아팠을 때, 예를 들면 1996년 심장발작이 일자, 개인 제트 여객기를 타고 캘리포니아의 최고급 병원에 입원해 치료 받았고, 진통제도 거부하지 않았다. 이쯤이면, 성녀가 아닌 악녀-사악한 여성-이라고 해야 옳겠다. 어쩌면 인도의 수많은 고통스런 생명들과 싸구려 환경과 이름을 이용해 자기 호사를 한 셈이다. 또한, 앞뒤 안 가려 보고 이런 그녀를 무턱대고 기린 노벨상도 노블(noble)상은 과히 못 되는 셈이다. 

영국의학저널(BMJ)의 보고에 따르면, 테레사의 칼리가트에서는 피하주사기 바늘의 재사용, 열악한 주거환경, 예외 없는 냉수욕, 그녀의 명령에 따른 가치환자/불치환자의 비구분(감염 기회/악화 줄이기나 증상 개선/소생 기회가 적음) 등의 문제점들이 발견됐다. 세계적인 의학저널 '랜싵'이 내린 결론도 "환자에게 부적절한, 수준 이하의 환경"이다. 

아울러 테레사는, 수녀들이 그들이 다루는 질환에 대한 의학적인 연구를 하지 못하게 말리면서, "하느님은 약하고 무지한 사람들에게 권능을 주신다"는 이유를 댔다. 그럼, 고대의 신자 의사 루카(누가)는 뭐란 말인가? 테레사는 또 수녀들이 세속 도서와 신문을 읽는 것을 금지하고, 독립적 사고와 문제 해소책에 대한 순종을 강조했다.     

아무튼 테레사는 가난한 이들의 생명을 위하여 실질적으로 한 일들이 별로 없는 한편 낙태를 절대 반대했는데, 문제는 카톨맄교의 미련한(?) '윤리적' 방침에 따라 피임까지도 절대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인구폭발이나 생활 여건을 막론하고 반강제로 임신한 사람들이 충분히 테레사를 원망하거나 혐오했을 수 있다. 


독재자와 사기범의 벗? 

테레사는 생전에 문제명사들로부터 생각 없이 (때로는 속셈을 감추고?) 거액의 기금을 받은 바 있었다.  

얼마 전에 죽은 영국 출신의 미국인 언론인/논객인 크리스토퍼 히천스는 생시에 테레사를 신랄하게 "깠던" 한 사람이다. 그는 "마더 테레사는 빈민들의 벗이 아닌, 가난의 벗이었다"면서 아울러 최악의 졸부들의 벗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히천스는 그의 책에서 2001년 그가 바티칸의 초청을 받았는데, 아그네스 곤자 보야주의 성인위(位)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비평적 반증 청문회 때문이었다. [ 천주교는 이런 점이 꽤 재미있는 종교인 거 같다.] 그러나 그 결과, 히천스는 오히려 그녀를 더더욱 유명인사로 만들어 주고 만다. 

테레사는 아이티의 빈민들을 압제한 잔혹한 독재자, 장 끌로드 뒤발리에 가족으로부터, 또한 링컨저축대부금융(LSL)의 대표인 (훗날의 사기횡령 범죄자) 찰스 키팅으로부터도 거금을 받았다. 뒤발리에 대통령은 마약이나 (실험용) 시신 밀매 등에도 관여하여, 핍절한 일반 국민과는 달리 초호화판 생활을 했다. 테레사는 그의 아내 미쉘과 정답게 손을 잡은 사진을 찍기도 했다. 테레사는 기부금에 대한 답례로, 뒤발리에의 '(독재) 선정'에 찬사를 보냈다.

테레사는 또 키팅의 사기횡령건 담당 판사인 이토 랜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키팅을 적극 변호하면서 선처해 달라고 요구했다. [ MOC는 어떤 재정감사도 거부한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 랜스 판사에게 보낸 그 편지에서, 테레사는, 키팅이 너그럽게도 MOC에 125만 달러의 거금을 "쾌척했다"면서, 랜스에게 "키팅의 속마음을 볼 것"과 "(이런 경우) 예수님이 하실 만한 것을 하도록" 심사숙고하라고 충고했단다. 
키팅을 기소한 담당검사 폴 털리(로스앤젤레스 지검 부검사)는 이에 열 받아 테레사에게 정중히 보낸 편지에서, 키팅은 17,000명의 투자자들로부터 총 2억5천만 달러를 챙겨 먹은 뻔뻔하고 간 큰 도둑님이라고 밝히고, "어떤 교회, 어떤 자선단체, 어떤 조직체도 범죄자의 싸구려 양심의 위안거리로 이용 당해선 안된다"고 타일렀단다.
 
다음은 테레사에게 털리가 보낸 편지의 주된 내용이다: 

   "(수녀님).. 예수님께서 범죄의 열매를 기부받으셨다면, 과연 어떻게 하셨을지 님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남이 훔친 돈이 그 분의 수중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자기 양심의 부담을 덜어 보려던 한 도둑에게 예수님이 이용당하실 뻔 했다면 어떠셨을까요? 제 소견엔, 예수님이 즉각 지체 없이 그 돈을 법적인 물주에게 돌려 주셨을 것 같네요. 님께서도 그러셔야 합니다. 님께서는 사기횡령 혐의를 받은 키팅 씨의 돈을 기부 받은 것입니다. 그가 바라는 그 '면죄부'를 허용하지 마십시오. 그 돈을 갖고 있지 마십시오. 그 돈을 애써 일하여 번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십시오! 제게 연락 주시면, 님의 수중에 있는 그 재산의 실제 물주들과 직접 연결시켜 드리렵니다."
    
그러나 털리는 테레사에게서 아무 답장도 받지 못했다. MOC도, 아무도 그 '사라진' 돈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히천스는 "성인들(saints)은 재정감사에 면역인가보다"라고 토를 달았다. 이 경우, 단지 무신론자의 시각으로가 아니라 일반인의 시각으로도, 테레사보다는 털리가 훨씬 더 '성인'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해소되지 않는 목마름'(Unquenchable Thirst)이란 책이 있다. MOC 출신인 메리 잔슨 여인이 썼다. 잔슨은 어릴 때 수녀가 되어 테레사의 오른손 역할까지 승급했지만, MOC에 철저히 환멸을 느껴 필경엔 무신론자가 돼버렸다. 이 책은 MOC의 잔인성과 숨은 섹스 관련 문제까지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테레사는 또 그녀의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오늘날 평화의 최대 파괴자는 "낙태"라고 주장했다. 평화의 최대 파괴자는 호전적인 전쟁 욕구..아니 실은 온 인류의 범죄가 아닌가? 단지 낙태 뿐인가? 낙태만이 최악의 범죄인가? 혼자서들 정통 '생명종교'로 믿는 카톨맄교의 어젠다는 아닌지. 더구나..마취/진통제를 줄 수 있는, 아니 당연히 주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모두들 고통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알고 철저히 즐겨라"고 금지하는 것은 또 다른 평화의 파괴 행위가 아닌가. 적어도 의학적으로는 위법이고 비인도적 행위이기도 하다. 자녀들에게 테레사 식의 '고통의 사랑'을 베풀어 보라! 철저히 어른들을 증오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테레사의 정서는 어딘가 뒤틀려 있는 셈이다. 

사실, 테레사는 마리아 다음으로 현대 카톨맄교의 '간판마담', 선전홍보용이다. [ 마치 스베덴보리 사상의 '새교회'/새예루살렘교회의 간판마담이 헬렌 켈러이듯. ] 죽은 전 천주교황 요한 파울로2세는 테레사를 극진히 칭찬하고 격려했다.  하지만 그녀를 최후 구원이 아닌 캄캄한 어둠과 공허 속에 남겨 둔 것도 그 화려한 천주교의 교리 탓이다. 


아동성추행범을 적극 옹호한 테레사 

SF 위클리의 최신 보도에 따르면, 테레사는 또 생시에 변태 아동 성애자/성추행범을 적극 옹호하여 한때나마 복직시켜 준 사례도 있단다. 기가 찰 노릇 아닌가.

내용인즉, 아동성추행범으로 미 연방과 주 법원에서 선고를 받아 현재 25년형을 살고 있는 다널드 머과이어(한국식 발음: 도날드 맥과이어) 전 예수회(!) 사제(81)는 1970년대 후반 샌프랜시스코 주립대학교에서 가르치다가, 1980-90년대엔 샌프랜시스코와 워넡 크맄 등지에서 카톨맄 가족들을 위한 피정(수련회)을 수시로 갖곤 하면서, 수많은 소년들을 여러 번 성적으로 농락한 혐의를 받았다. 그런 한편, 머과이어는 90년대에 테레사의 MOC 각국 지부를 돕는 사역을 하면서, 아마도 테레사의 마음을 확 사로잡은 모양이었다. 

테레사는 1994년 머과이어의 상부기관인 시카고 예수회에 보낸 편지에서 "지난 7개월간 그의 사목활동을 중지시킨 슬픈 사건들"을 알았다면서, "머과이어 신부님이 이젠 자신의 행위의 부적절함을 시인하니까" 복직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머과이어는 한 피해가족의 신고가 접수된 뒤 '정신질환' 진료차 정신병동에 머물어 있었다.  
이 편지에서, 테레사는 성추행이 미국 사제직에 전반적으로 미친 스캔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이 사제직의 순결과 명성을 잘 지키도록 조심해야 한다"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저는 꼭 말해야 합니다: 머과이어 신부님께 대한 확신과 믿음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그 분이 그 중대한 사역에 되도록 빨리 복귀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이 편지는 머과이어의 성추행 범죄에 관하여 담당 검사/변호사들이 공유하고 있던, 예수회 상대 소송의 수 만 쪽에 달하는 관련 기록문서들 가운데 단 한 쪽이었다. 편지는 MOC의 공문서 양식을 사용했으나, 테레사의 서명은 빠져 있었다. 하지만 내용상 테레사가 필자임은 너무도 뻔했다. "나의 네(4) 고문들"이라는 설명 아래 수하에 있는 4명의 고위 수녀들의 이름을 나열했기 때문이다. 이 편지는 2003년 교황에게 복자로 승격된 그녀가 '성인'으로 거의 승격돼 가는 현 과정에다 일말의 영향(찬물?)을 끼칠 수 있다. 

천주교내 성추문에 회의를 느껴 탈교한 베스트셀러 소설작가이자 천주교 비평가인 앤 라이스는 이에 관하여, 거듭 되풀이하여 회자돼온 이 추문들 가운데 피해자(+)가족들에 대한 공감이나 관심, 공감은 "완전 결여"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테레사의) 이 편지의 관심은 사제들의 명성에 있다. 이것은 충격적이면서 실망스럽다."고 거들었다.
비둘기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다는 얘기다. 
 
최근 새로 발견된 머과이어 관련 기록문서 하나는 과시 점입가경을 이룬다. 지난 2000년에 죽었고 역시 '성인' 대열 후보자로 올라 있는 잔(존) 하든 예수회(!) 신부와 머과이어의 관계다. 하든 역시 테레사를 도와 일한 적이 있다. 그는 더군다나 요젶 라칭어 추기경(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을 도와 천주교 교리문답서 작성에 기여한 사람이다. 

바티칸은 2005년부터 하든의 성인 추대 여부를 고려해 왔다. 그러나 그와 머과이어가 서로 주고 받은 편지 내용들은 바티칸 사람들의 심경을 충분히 복잡하게 만든다. 편지에서 머과이어는 자신을 정신병동으로 가게 만든 (워넡 크맄의) 피해자 소년과 둘이 함께 샤워를 한 적이 있고, 바디 머사지를 요구했고, 여행 중 같이 지내면서 포르노 글을 읽어 줄 것을 강요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하든은 머과이어가 "객관적으로 방어할 만한" 입장이라고 옹호하면서, "적절히 사목생활에 개입하도록 신중히 허용돼야 한다"고 머과이어의 예수회 상관들에게 말했다. 그 결과 머과이어는 한동안 회복세를 타더니, 1994년 이후 더 많은 소년들을 추행했다. 그래서 피해가족측 변호사인 전직 베네딕토회 수사(!), 패트맄 월은 말한다: "머과이어 신부를 거리에서 자리를 뜨게 할 수 있었던 강력한 고위급 (예수회) 인사들"이 (제대로 조처만 했더라도) 94년 이후 피해자 수를 줄일 수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본의 아니게 머과이어의 성추행과 엮여 얽히고설킨 테레사와 하든 두 사람의 성인 추대 여부는 아직 오리무중과 같다. 테레사/하든/머과이어 등 셋은, 1981년 샌프랜시스코에서 첫 자리를 함께 했다. 당시는 이 도시가 이름을 딴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의 탄생 800주년 잔치를 치르던 때였다. 테레사는 하든에 의하여 행사에 초청받았고, 모임에서 머과이어를 소개받았다. 
테레사는 머과이어의 보수전통적이고 박식하고 열정적인 강론(설교)이 마음에 딱 맞아,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세계 곳곳의 MOC에서 예수회 창설자 이냐시오(이그나티우스) 로욜라 식 '영성훈련'(신교 사람들, 이 말 생각나는가..? 미국 감리교 인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교계 사람들이 로욜라 식 영성훈련을 한다! 물론 로욜라 역시 관상가였다.) 방식에 기초한 피정을 이끌어 달라고 부탁한다. 머과이어는 테레사처럼 초보수적이어서, 여신도들에게 자기 앞에서 늘 긴 스커트를 입고 다닐 것을 주문했고, 다른 예수회 사제들의 정치사회적 관용성을 늘 비난/공격했다. 

테레사의 후계자인 니르말라 현 MOC 총장의 증언에 따르면, 머과이어는 테레사가 MOC 피정/세미나/영성훈련 등 영성 수련을 "되도록 많이" 맡긴, 몇 안 되는 깊은 신뢰 대상이었다. 메리 크리스타 수녀도 "예수 크리스토님께 대한 (머과이어) 신부님의 엄청난 사랑은 그분의 말 마디마디와 몸짓 하나하나에서 환히 비쳐나오고 우러나왔다"면서 "그 분의 관심은 온통 우리 수녀들에게 성스러움을 향한, 더 깊은 열망의 감화를 끼쳐 주려는 데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 분의 슬기, 엄청난 성경지식, 성인과 같은 일상 매너는 우리 모두에게 심오한 영향을 끼쳤지요."

그러나 이렇게 "거룩"하고 인상적인 머과이어의 어둔 구석의 조짐은 이미 테레사를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1961년 그의 예수회 사제 서품(임직) 이후 불과 얼마 후, 일리노이주 윌메트의 로욜라 어캐더미(아카데미)에서 첫 강의 배당을 받은 뒤, 적어도 두 명의 소년을 성추행했다(수십 년 뒤 그의 첫 범죄 소송 건이 됨). 

예수회 당국은 우선 발등의 불부터 끄려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지만, 머과이어의 범죄가 예수회와는 직접 무관함을 법적으로 입증하려고 나섰다. 바로 지난해인 2011년 6월, 예수회 시카고 지회 상대의 소송에서 예수회측 변호팀은 바로 자기네 수하의 머과이어가 "사악하고 왜곡된 자로, 자신의 상당한 지적 은사와 지배적인 품성을 악용하여 모든 신조와 성직자로서의 다짐을 낱낱이 어겼다"고 해명을 시도했다. 

1993년 4월. 워넡 크맄의 한 독실한 천주교 신도는 자기의 16세 아들이 머과이어의 개인 도우미로 나섰다가, 신부와 함께 포르노 매거진을 보게 됐고, 함께 샤워와 수음을 했다고 신고했다. 머과이어는 곧 예수회 주요 사목활동을 정지당하고 펜실베이니어의 세인트 잔 비애니 정신진료소에 수용됐다. 

당시 피해자 가족의 호소 청원을 받은 하든은 직접 병원에서 6시간 동안 머과이어를 면담한 뒤 놀랍게도 그를 사면하기로 결심했다. '뿅~'이 '빙고!'가 된 순간이었다. 그는 1994년 1월 머과이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는 귀하가 어떤 성적인 범행으로부터 결백하다(!!)는 제 신뢰감을 확고히 표현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카톨맄 고위급들의 분별과 검증력은 한 마디로 그들이 늘 추구하고 강조하는 무(無)/제로에 가깝다는 우리의 믿음을 확고히 해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들 신비가들의 말대로, 그들의 '무'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결국 머과이어는 1994년 예수회 사제로 복직됐으나, 신부로서 어린이/청소년들과 가족들을 다시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회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특히 하든은 머과이어의 나쁜 '성적표'가 테레사의 MOC와의 미래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내심 전전긍긍한 끝에 결국 머과이어의 MOC 피정 관련 사목을 중지시켰다. 하든은 편지에서 머과이어의 모든 결백이 '입증'됐음에도 불구, "(테레사의) MOC 대상 사목 활동이 과연 허용될지 우려된다"면서 '캘커타의 성녀'와 만나 직접 담판을 짓겠다고 약속한다. 

얼마 후 1994년 2월 2일, 테레사의 편지로 보이는 MOC 공문이 시카고 예수회 지회(지회장 브랟 쉐이퍼: 현재 매서추세츠 브라이튼 예수회 공동체 담당신부/rector 겸 보스턴 칼리지 이사)로 날아들었다. 머과이어가 수녀에게 보낸 편지를 거기서 받았고, 관련 사태를 알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런데 편지는 "(머과이어가) 능동적인 사목을 재개하기를 바란다"면서 "그 분이 우리와 함께 사명에 (다시) 동참할 때는, 사랑의선교회의 우리 모두가 온 힘을 다해 그와 그가 예수 크리스토님께 받은 사제직을 방어할 것이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 후 이 모든 관계자들은 SF 위클리측의 어떤 질문에도 아무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히천스와 함께, 테레사를 강력 비판한 기록영화-'지옥의 천사'(Hell's Angel)를 공동제작한 영국의 지식인 타리크 알리는 위 편지 내용이 테레사의 이중적인 성품과 잘 맞아 떨어진다고 파악했다. 알리는 말한다: "수녀는 독재자들과 친근했다. 돈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 '병원' 시설은 열악했다. 병원마다 악몽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를 완전 가짜로 보게 됐다." 

아무튼 테레사의 열렬한 지지 후광을 받던 머과이어는 1994년 복직되어 사목 활동을 재개한 얼마 후, 새로 소년들의 가족으로부터 8건의 성추행 혐의를 받게 된다. 2006년엔 과거 수십 년 전 로욜라 어캐더미에서의 두 소년 성추행 건에 대한 유죄 판결을, 2008년엔 전에 한 소년을 성추행할 목적으로 주경계선을 넘었다는 기소를 연방 고등법원에서 각각 받았다. 검찰 기소에 따르면, 당시 그는 소년에게 머사지를 받으면서 소년의 항문을 손가락으로 후볐고, 확대경으로 소년의 성기를 '검사'했고, 함께 포르노를 보았다. 이에 대해 머과이어는 "다 예수회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상대측 수작"이라며 자신의 '완전 무죄'를 주장해 왔다. 

과거 93년에 머과이어를 정신병동으로 가게 했던 장본인인 피해소년의 아버지는 말한다: "머과이어가 다른 많은 사람들을 속였듯이 하든 신부와 테레사 수녀님을 속인 것은 불행이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성인(聖人)이 되려면 독심술사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레사가 설령 독심술로 머과이어의 속을 들여다 봤더라도 계속 옹호하려던 쪽이었을지 모른다. 예수회 사제직을 하늘처럼 우러러 봤으니까.

어릴 때 머과어이의 성추행 피해자였던 (가명)'잔 도우 129'씨는, "그렇게 성인으로 보였던 그 분(테레사)-약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옹호자였던 분-이 이런 데는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다니~!" 하고 통탄했다. 그런 철저한 모순이 아마도 사제계급을 중시하는 카톨맄교의 한 특성이 아닐까 싶다. 

  
맺음글 

지난 2002년, 바티칸은 '모니카 베스라'라는 인도 벵갈 여인의 복부 '암종양'이 고쳐졌다는 '기적'의 '보고'를 한 적이 있다. 베스라는 테레사의 사진을 넣은 로킽(locket)을 착용했다가 나았단다. 여인의 말인 즉 그 사진에서 한 줄기 광선이 뻗쳐 나오더니 암종양이 사라졌다는 것. 엘리샤처럼 죽은 뒤의 테레사까지도 영력을 발한다는 말인지. 그러나 그녀를 진료해온 의료팀의 란잔 무스타피 의사는 애당초 암종양이란 있지도 않았다고 밝혔고, 결핵성 포낭은 이미 치유됐다고 의사와 남편이 입을 모았단다. 
미신적인 한심한 여인의 '신심'과 엉터리 신비와 기적을 부각시키는 천주교의 맹점을 엿보여 주는 이야기다. 바로 남도 아닌 자신의 글로 봐도 '나부랭이'(?) 신심조차 없던 테레사에게서 무슨 치유의 기적을 바라겠는가. 
천주교의 수준을 대강 알 수 있고, 더군다나 테레사를 대단히 추앙해온 맄/케이 워런 등 일부 신교 사람들의 대단한 신심(?) 수준도 곁따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테레사 수녀는 20세기 카톨맄 주요 인사들 중 요한 파울로 2세와 함께 가장 유명했던, (긍정적 이미지의) 명사였다. 그러나 신적인 존재가 아닌 순수 인간이었고, 어쩌면 작은 믿음조차 결여된 보이는 매우 부족한 인간이었다. 
그런 구교 여성이 신교권에서까지 "모범적 크리스천"쯤으로 부각돼온 것은 분명 비진리이고, 우리 교계의 철저한 잘못이다. 테레사를 거룩한 아가페의 실천 모델(???)로서 인용하기 좋아하는 설교자나 기독교 도서 저자/역자들에게 향후 각별한 분별이 필요하다. 일반 교우 독자들이 바보 멍청이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