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묵상연구/요한복음묵상

예수님의 가족과 카페르나움 (요한복음묵상9)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페르나움에서 발견된 고대 유적지. 앞쪽이 '페트로의 집'으로 불리는 건물.
     뒤에 보이는 흰 건물이 4세기 회당. 1세기 회당 폐허 위에 세워졌었다.

김삼읽기힌트 : 김삼의 글은..성경 인명/지명/권명을 비롯한 모든 외래어를 그 나라 언어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을 원칙으로 추구합니다. 혹 한글식 표기법이 생경스럽더라도 이 점을 미리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경 각 권명 풀이도 글 맨 아래에서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묵상 8


예수님은 (시리즈 지난 회에서 다뤘듯) 카나(가나)에서 첫 이적으로 영광을 나타내시고..가족/제자들과 함께 카페르나움(가버나움)으로 돌아 가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동생들도 카나 결혼식에 참석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최소 6명의 남녀 동생들이 있었지요. 아우들은 시몬/유다/야코보/요세(또는 요셒)(마 13:55, 맑 6:3) 등, 누이들도 둘 이상이었습니다.

[ 최근 영화 감독 제임스 캐머란과 캐나다의 유대계 저널리스트 심카 제이코비치(야코비치)가 예수님의 '무덤'과 '석관'을 발굴했다며 거기서 발견된 석관에 새겨진 이름들이 '예수님 가족'의 무덤임을 밝혀 준다고 주장했지요. 심지어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거기 "있다"고 주장, 은근히 이 마리아가 예수님과 모종의 관계인 것처럼 몰고 가려는 코너링 분위기가 여실하지요. 하버드대학교의 프랑수아 보봉 교수는 '마리암네'가 전통적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진짜 이름이라고 주장했다는데..
사실 마리암네란 이름은 헤롣 왕가에도 있었습니다! 

이런 주장들은 성경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고 터무니 없는 억설입니다! 생각이 더 깊은 학자들은 이것이 얼마나 어거지 주장인가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예수님 가족 무덤에 왜 막달리 마리아와 '마티아'(마태)가 왜 있습니까?

예수님 가족들의 이름은 모두 당대에 흔한 이름들이었고, 아람어 '예슈아'도 그랬습니다. 오늘날 영미권에 자슈아(Joshua), 스페언어권에 '헤수스'(Jesus)라는 이름이 많은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데도 비슷한 이름들이 끼여 있다고 해서 그렇게 짐짓 단정짓거나 몰아가는 것은 학문적으로도 경박한 처사일 뿐더러 둘째로는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훼손/파괴하려는 유대계의 센세이셔널리즘적 음모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부활을 부정하려는 유대계의 음모는 고대로부터 악명이 높았지요.

캐머란-제이코비치의 관련 기록영화 '크리스토의 최후의 무덤'을 제작한 유대계 명사인 캐머란은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타이태닠'호의 주변 탐사에 근거,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뻥'이 더 센) 상상 영화 '타이태닠'의 감독이지요. 영화 '타이태닠'의 가장 큰 '뻥'은 아마도 마지막에 자살한 주인공 로즈를 비롯한 기존 익사자들이 모두 '타이태닠 낙원'에 가 있는 듯한 분위기일 것입니다. 어떤 관람객은 아예 "(그들이) 주님의 영광으로 들어갔다"고까지 단언했더군요. '뻥'이 '뻥'을 낳는 거겠지요?]

이런 "아니면 말고" 식의 무차별적인 억설을 갖고 무리하게 기독교 진리 훼손에 이바지 해 온 인사들이 역사에 흔할 터입니다. 물론 그 영혼들이 불쌍하지만 말입니다.
이슬람교 역시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도 없이 그냥 승천했다고 주장해 십자가를 말짱 제거하려는 시도들을 해 왔지요.

그런데 성경 진리 훼손에는 비단 타 종교뿐 아니라 무늬만 기독교인 카톨맄도 한 가닥 합니다. 즉 이 동생들은 마리아의 친 아들딸이 아니며 100% 모두 예수님의 '사촌' 또는 '이복 동생'들이라는 거지요. 마리아의 '영원정녀설'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지요. 이것 또한 황당한 어거지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동생들을 '마리아, 요셒'과 같이 함께 나열하기에 사촌 동생일 수 없는 것이며 예수님의 사촌이라면 오히려 침례(세례) 요한이어야 할 것입니다.

또 그들은 마리아 신격화의 일환으로 마리아를 '영원한 정녀'라고, 그리고 요셒을 마치 성욕도 없는 남성인 양 묘사하는데 자고로 아기를 이미 낳은 여인을 처녀/정녀/동정녀라고 부르려는 억지도 그러려니와 예수님의 동생들을 부모도 없는 고아들로 만드는 소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리아를 은근히 신격화하려는 카톨맄 사람들은 루카복음서 11:27,28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 무리 가운데 한 여인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님을 밴 모태와 님을 먹인 젖가슴은 참 복됩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더 복되다오' 라고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수님 당시 카페르나움의 상상도

그건 그렇고..예수님의 아우들은 카페르나움 등 갈릴리를 주 무대 삼아 사역하시는 형을 아주 우습게 보고 더 큰 도시에서 설파하라고 몰아 내다시피 하지요. 그래서 초막절(=수콭. 광야 천막생활 기념 절기)이 다가오자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형님이 하시는 일들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가세요. 스스로 나타내길 바라면서 파묻혀서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을 하시려거든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세요!" (요복 7:2~5 사역)

이것은 동생들도 형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형님은 고사하면서 아우들더러 먼저 명절을 지키러 수도의 성전으로 올라가라고 합니다. 당시는 비밀체포령이 떨어진 때였기에 주님은 극비리에 따로 올라갑니다.

또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은 한때 예수님을 "살짝 돈" 사람 내지 정신질환자처럼 취급해 예수님을 붙잡아 데려가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맑 3:21). 친가족들조차 주님을 메시아로 알아주질 않는 일종의 비신자들이었다는 말이지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나 할까요. 참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지만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들은 믿음이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동생 야코보를 만나시고(코A 15:7) 승천하시고 나자, 비로소 아우들이 형님을 참 메시아인 줄 알고 성령의 권능을 받고 뜨거운 복음의 열사들이 됩니다(행 1:14). 그후 야코보는 비록 12 제자들 중 하나도 아니었건만 페트로와 나란히 예루살렘 초기교회의 주된 지도자가 되고(행 12:17, 15:13) 믿음에 따르는 행동에 관한 성경 야코보 서신서를 쓰는가 하면(얔 1:1), 동생 유다 역시 유다 서신서를 쓰게 됩니다(유 1).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된다(마 20:16)는 교훈이 실감 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지요.

'위로의 마을' 카페르나움

여기서 잠시..
예수님과 가족, 제자들이 카나 결혼연회 후에 함께 내려간 카페르나움(한글성경 표기: '가버나움', Capernaum)은 과연 어떤 곳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릴리 호수 쪽에서 바라 본 현대의 카페르나움

카페르나움은 히브리어 '카파르나훔'(Kaphar-Nahum, 또는 크파르나훔, 케파르나훔. 요세푸스의 표기: '케파르노메')의 로마식 이름이며 '위로의 마을' 또는 '나훔의 마을'이란 뜻입니다. 갈릴리 호수 북서안(마 4:13~16 뤀 4:31, 요복 6:17~24)이며, 고대 12 지족들에게 분배된 땅들 중 제불룬(스불론)과 낲탈리(납달리) 지족 소속인 두 땅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바로 주님이 공생애 초기에 사역 근거지로 삼으신 곳이지요(마 4:13)! 이곳에 나자렡의 본가 다음으로 예수님의 두 번 째 집이 있었습니다(맑2:1). 예수님이 나자렡을 떠나 이곳에 자리잡으신 이유는 물론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 당하시기도 했지만, 고대 대언자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이 9:1,2, 마 4:14~17). 마을 이름 자체가 '위로의 마을'이라는 것은 매우 예언적 의의가 깊습니다. 예수님의 온 가족이 나자렡으로부터 이곳 카페르나움으로 이전했을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이곳은 고대 구약시대엔 이 이름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며 역사적 기록으로는 주전 2세기 하스모니아 왕조 때에 언급되기 시작합니다. 지중해로부터 가로질러 아람(쉬리아)의 다메쉨(다마스쿠스)으로 가는 '비아 마리스' 길목이었던 이곳은 토지가 비옥했고 고대 회당, 공동묘지 등이 있었으며, 인근의 타브가와 함께 상업이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흰 회당 아래 검은 부분이 예수님 당시인 1세기에 백부장이
                     현무암으로 지은 회당의 기초. 주후 70년경 파괴됨.
     
현대의 '텔 훔'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고대 유적에서 수많은 기름틀, 곡물방아 등이 발견되기도 했지요. 어업도 발달했지요. 상인들은 다메쉨에서 가져 온 고대 중국산 비단과 향료 등을 여기서 건어(말린 물고기), 과일들과 물물 교환했을 터입니다. 또, 고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엔 '카파르나훔 샘물들'이라고 불리는 '헾타페곤' 샘물들이 있었습니다.

이곳 인구는 약 1000~150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대체로 가난했기에 로마 백부장이 마을 사람들과의 친교/호혜 차원에서 회당을 건립해 주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침례 요한이 침례를 주던 요르단 강변에도 아주 가까웠죠. 이곳은 갈릴리 어부, 페트로/안드레 형제, 야코보/요한 형제도 살던 곳으로 이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곳도 주로 이 부근입니다(요 1:39). 페트로/안드레/필맆 등은 본래 벹새다 출신인데, 페트로는 카페르나움 여성과 결혼을 하면서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맑 1:29,30). 

카페르나움엔 세무서도 있어서(맑 2:14) 세무관 마태(레비)가 세무를 보던 도중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고 기꺼이 따라 나섰지요(마 9:9)! 마태는 기뻐서 이내 잔치를 베풀기도 합니다(9:10). 이 마태는 훗날 4복음서들 중에서도 첫번째로 나열된 복음서의 기자가 되는 영예를 안습니다. 마태는 이곳을 주님의 '본 동네'(=자기 동네, 자신의 동네)로 기록합니다(마 9:1).

이곳에 세무서가 있었던 이유는 사분령(4분할통치령) 영주였던 헤롣 안티파스와 동생 필맆의 영지와의 경계선인 데다 상업지역인 동시 어업지역이었기에 상인들과 어부들로부터 세금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카페르나움엔 또 종주국인 로마 제국의 소규모 용병 군 부대가 주둔해 있었습니다. 백부장(centurion) 휘하의 부대였지요. 카페르나움 고대 마을의 동쪽에서 이 군기지 유적이 발견됐는데 당대인들은 로마식 목욕탕을 짓고 즐겼습니다. 목욕 자체보다는 로마인들끼리 친교 목적이 더 강했지요. 상당히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부대는 갈릴리 총독 헤롣 안티파스의 수하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곳에 파병, 근무하던 믿음 좋은 백부장(centurion)의 아끼는 노예의 병을 주님이 고쳐 주시기도 했습니다(마 8:5~13, 뤀 7:1~10). 이 백부장은 카페르나움 주민을 위해 이곳에 고대 기념회당을 세워주었습니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이 회당에서 종종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맑 1:21, 요복6:59). 지금도 현지에 남은 회당 기초 아래 검은 현무암(화산암)으로 된 1세기 당대의 기초의 일부가 보입니다.
또 이 백부장의 노예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는데 주님은 백부장더러 이스라엘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십니다.

이곳은 또 주님이 생명의 떡 가르침을 주신 뒤 다수의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떠난 곳이기도 하지요(요복 6:66).   
주님은 그밖에도 특히 이곳과 또 이웃 마을인 벹세다, 코라찐에서 가장 많은 이적을 행하셨지만, 도무지 회개하지 않자 심판의 경고를 하십니다(마 11:20~24). 주님의 사역본부였던 곳, 바로 '위로의 마을'의 참 주인이신 위로자의 집이 있었고, 활동중심지로 삼으셨던 곳이 이런 불신지역이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라고 하겠습니다. 이 역시 등잔 밑이 어둡다는 교훈을 상기시킵니다. 

주님의 사역 초기에 집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침상째 아래로 달아 내려 주님께 치유받게 한 이적은 바로 주님의 집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맑 2:1~5). 사람들이 많이 모인 사실로 보아 그리 작은 집이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은 또 바로 인근에 카페르나움 산이 있는데 예수님이 수시로 올라가 기도하셨고 열 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함께 만나 뵌(마 28:16) 곳으로 추정됩니다.

이곳 회당 바로 곁에서는 또 '페트로의 집'으로 불리는 1세기의 집도 발견됐습니다. 바로 곁에 8각형으로 된 현대식 성당도 지어졌지요. 카톨맄 쪽의 어젠다는 예수님의 "가난"설 강화 차원(?)에서 페트로의 집을 사역 본부로 삼으셨다고 하는데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유대학자들은 이 페트로의 집을 단순히 당대 어부들의 '창고'일 수도 있다고도 말합니다.

아무튼 이모저모로 카페르나움은 예수님의 탄생지 베틀레헴, 나자렡 못지 않은 중요성을 띠고 있습니다.

성경 권명

구약

미쯔라임출국(미): 출애굽기
레비 서(레): 레위기
예슈아(예): 여호수아
판관들(판): 사사기
뤁 서(뤁): 룻기
슈무엘(슘) A/B: 사무엘 상/하
왕들 A/B: 열왕기 상/하
연대기(연) A/B: 역대기 상/하
에즈라(엦): 에스라
 느헤미야(느)
에스테르(엣): 에스더
욥 서: 욥기
노래들의노래(노): 아가
이사야(이)
예레미야(예렘)
예레미야애가(애)
에제키엘(에제): 에스겔
오바디야(오): 오바댜
미카: 미가
하바쿸(하): 하박국
제파니야(젶): 스바냐
하깨(핚): 학개
제카리야(젴): 스가랴
말라키: 말라기

신약
마르쿠스(맑): 마가
루카(뤀): 누가
요한복음(요복)
행전(행): 사도행전
로마서신서(로): 로마서
코린토(코) A/B: 고린도 전/후
갈라티아: 갈라디아
에페소(엪): 에베소
필리포(필리): 빌립보
콜로새(콜): 골로새
테살로니카(테) A/B: 데살로니가 전/후
티모테(팀) A/B: 디모데 전/후
티투스(팉): 디도
필레몬(필렘): 빌레몬
야코보(얔): 야고보
페트로(페) A/B : 베드로 전/후
요한서신서(요서) A/B/C: 요한 1.2.3서
요한계시록(요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