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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바울서신

[롬 8:14-17] 우리를 입양하신 하나님


바탕본문: 로마서 8'14-17


바탕본문: 로마서 8'14-17

로마서 8장의 이 부분은 커다란 진리를 우리에게 던져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분의 양자/양녀들로 삼으셨다는 진리지요.
How gracious!
How amazing!

인간에 불과한 우리가 신이신 그 분께 입양되다니,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고대의 법에 따르면, 입양되는 즉시 친부모와의 관계는 단절되고 양부모 가족의 일원이 되어, 그 모든 신분과 혜택을 누리고 그 유산의 상속자가 됐습니다.

실제로..소설/영화 '벤 허'를 보면, 주인공 "유다 벤후르"는 우연의 사고 탓에 범죄자로 낙인 찍혀 노예가 됐다가, 로마 집정관 아리우스의 생명을 살려낸 뒤 그 양자가 되어 친자식처럼 대우 받다가, 양부가 죽자 가문의 이름과 영예, 재산과 지위 등을 모두 상속합니다.     

사람인 양부모에게 입양돼도 이런 결과가 따르거든,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입양돼 그 분의 자녀가 되자마자 하늘의 모든 좋은 것들이 우리의 것이 되며, 영원한 기업(基業) 내지 가업의 보장을 받게 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지요.

어떤 기업, 어떤 상속 말입니까?

하나님의 맏아들(히브리서 1'6)이신 성자(聖子) 예수 크리스토가 하나님께 받으신 권세와 영광, 아들로서 누리고 받으시는 모든 좋은 것들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즉 우리는 그 분의 공동상속자(co-heirs)들입니다.

왜요..?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예수 크리스토의 형제들이기 때문이지요(요한복음서 20'17, 히브리서 2'10,11).
그래서..지금 믿고 거듭난 우리는 그 분과 함께 하늘에 앉힌 바 됐습니다(에페소서 2'6).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께 입양된 결과입니다.

그런데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이곳에서도 좋은 것들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말글에 아빠/아버지/아버님이라는 호칭이 있듯, 히브리어에도 '아빠'(Abba)가 있어, 우리 한글의 아빠랑 대동소이합니다. 


한 여성 목회자는..어릴 적에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하고 고마워, 하루 종일, 밤낮, 수도 없이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하고 속삭이기도 하고 외치기도 하며 다녔다고 간증했습니다.
세상에서 한 고아가 입양되는 즉시, 양부모를 "아빠,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우리의 참된 아버지는 하나님이시지요!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있는 이를 '아버지'라고 하지도 마오. 그대들의 아버지는 한 분 하나님, 곧 하늘에 계신 분이오." (마태복음 23'9)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께 입양되는 순간은 참 아버지를 찾아 모시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즉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며 그 분께 직접 기도할 수 있습니다. 유일한 중보/중재자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여.. 그 분의 이름으로!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이시고 그 분께 직접 대화할 수 있다니, 얼마나 큰 영광이며 큰 특권인지요.
오직 그 분의 은총과 온정으로 그 분께 입양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예수 크리스토를 믿음으로 받아 모시는 사람에게만 이런 혜택이 돌아갑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만, 하나님의 양자/양녀가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되돌아 보면..우리는 과거 어둡고 거친 세상에서 죄와 마귀의 노예 노릇을 하고 지냈습니다. 늘 죽음을 무서워 하며 살아 왔습니다.
마귀가 갖다주는 두려움과 공포, 억압과 억눌림과 부자유, 가난과 질병과 고통, 재해와 재난에 얽매여서, 떨며 신음하고 지냈습니다.
마귀가 던져 주는 세상의 유한하고 달콤한 것들에게 홀려 다녔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유대인처럼 율법의 종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파울은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는 종이 아닌 아들입니다! 아들이면, 하나님께로부터의 상속자이지요." (갈라티아 4'7)

우리는 두려움의 영이 아닌 입양의 영이신 성령님을 모신 때문입니다!
입양의 영, 그 분이 우리를 하나님께 이끄셔서 그분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이지요.


에페소 1'3-14을 보면..에페소 교회 성도들에게 쓴 본 서신서 앞 부분에서, 사도 파울은 문안 인사를 끝내자마자 서둘러, 하나님이 성도를 태초 전에 입양하시려던 계획과 그 실천에 관해 서술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주 창조 이전에 이미 자녀들-양자/양녀들로 예정해 주시고 마침내 성령님을 통하여 그렇게 삼아 주셨다는 거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들을 무던히도 자녀 삼으려 하셨습니다(예레미야서 3'19).
그러나 그들은 사사건건 하나님을 배신하여 큰 실망거리가 됐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남은 무리'를 택하셔서 그 후손들이 아들 예수 크리스토의 복음을 받게 하시고, 결국 오순절에 성령님을 통해 공식 입양하셨습니다!

또 이방인이던 우리들은 그들을 통해 복음을 받게 되어 아브라함과 그 후예들이 누리던 복을 누리게 됐습니다.
우리도 예수 크리스토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예가 된 것입니다.
웬 떡이고, 웬 '횡재'입니까! 하늘에서 통째 떨어진 복덩어리입니다.
[ 실로 주님은 우리의 떡, 생명의 빵입니다. ] 

 

하나님 아버지께 입양된 우리는 아들이면 아들답게, 자녀이면 자녀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왕에게 입양돼 왕자가 되어 왕궁에 들어와 살게 된 거지가 과거처럼 바깥 거지 행세를 해선 안 되겠지요.
아무리 거지 가문 출신이라도 이젠 어디까지나 왕자입니다.
왕자면 왕자답게, 공주면 공주답게, 궁중의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더는, 거지 행세를 하면 안 될 터입니다.

새 아버지이고 새 주인, 왕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종으로서 가졌던 세상 두려움과 공포를 떨궈야 합니다.
이제 더는, 벌벌 떠는 초라하고 비굴한 모습을 보여서 안됩니다.
믿음으로 담대히 일어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움의 영이 아니라 권능과 사랑, 절제의 영이지요(티모테B=딤후 1'7).
이젠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께만 경외하는 거룩한 두려움을 가질 뿐입니다.

걸뱅이, 가난뱅이 노릇을 해서도 안 될 터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해지심으로써 우리를 풍요롭게 해 주셨습니다.
크리스토 안에서 아브라함의 모든 풍요가 우리의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양떼에게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요롭게 얻게 하시러 오셨고(요복 10'10)..그 분의 뜻대로, 그 분의 이름으로 구하는 무엇이든 우리의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입양된 이상, 우린 이젠 세상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럼에도, 가끔 세상이 좋아 세상과 짝하다 결국 세상 풍속에 사로잡혀 그리로 되돌아 가는 '크리스천'들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이 상속권이 얼마나 굉장하고 엄청난 것인지를 모르는 거 같습니다. 

오늘날 신앙과 세상 사이의 경계선을 허무는 뉴에이지 운동이란 것이 풍미하면서 신자들까지 거기 묻혀 갑니다.
뉴에이지 운동에 빠지면 세상은 7색찬란한 '무지개'로 보이고, 기독교와 성경 진리는 흑백 화면 정도로 보게 되나 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무지개는 하나님의 언약이지, 세상 것들이 아닙니다.
올드에이지의 바벨론 문화에서 비롯된 '뉴에이지' 무지개는 가짜입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그들의 '새' 운동은 전혀 새로울 게 없습니다.
그들의 '무지개'란, 포장과 껍데기 뿐입니다.  

참된 새로움은 하나님의 새 일에 의하여, 오직 거듭난 크리스천의 영 속에서만 이뤄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입양 받았습니다.
[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기기만 하면 그렇게 됩니다. ]
그 분의 아드님, 예수님을 통해 우리 모두 그 분의 상속자들입니다.

오늘도 그 은총에 감사/감격하며 살아 가되,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양자로서 그 분의 영광에 참여하되, 그 분의 고난에도 참여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과 한데 연합하니까, 그 분과 함께 고난도 함께 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모든 고난을 받으시어 구속사역을 완성하셨으니, 이제 남은 고난은 우리의 몫입니다.

사도 파울처럼, 크리스토의 남은 수난을 우리 몸에 채웁시다(콜로새 1'24).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릅시다.
그것으로 인하여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든지 간에 주님은 우리에게 영광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입양된 영광스런 자녀로서 우리는 영광에 참여하기 앞서 크리스토의 수난에 참여합니다.


티엘티 성도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입양되어
그 모든 특권과 혜택을 누리되,
크리스토의 남은 수난에도 참여하게 되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