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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사도행전

[행 2:33] 이미 와 계시는(!) 성령님


   "그래서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드높여지고, 약속된 성령님을 아버지께 받으신 그 분은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습니다."
 
(행전 2'33 사역)


   
   "오소서 성령님"
   "성령이여 강림하사.."
   "임하소서!"

기도와 찬송가 속에 흔한, 성령님께 대한 이런 희구들은 비록 선의의 것이라도, 그릇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약 이천년전 오순절에 이미 땅에 내려오셔서 현재까지 지상에 계시기 때문이죠! 
그런 그 분을 다시 강림하시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수많은 교인들과 지도자들이 이 사실을 좀체 잘 깨닫지를 못합니다. 

자신이 몰라서, 현재 지상에 계시는 성령님을 그대로 받아 모시지를 않으면서, "아직 오시지 않는", "임하시지 않는" 성령님 때문에 초조해 하거나 안달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심지어 슬퍼하고 원망/불평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 "아무리 가깝고 싶어도 멀게만 느껴지는 분"쯤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다 우리의 오해 또는 무지의 결과이지요. 
 
정작 답답해 하고 안타까워 하셔야 할 쪽은 성령님이십니다. 
교회와 교인들의 이런 모습에, 우리 곁에 또는 우리들 중 거듭난 소수 속에 와 계시는 성령님은 "여기 그들 곁에 이렇게 가까이 와 있는 나를 그들은 왜 모를까.." 하고 서글퍼 하십니다. 


신자들의 이런 정경은, 마치 주님이 이미 예언과 약속대로 죽음에서 되살아나 현존하시는 그 새벽, 무덤가를 슬피 울며 떠돌던 막달라 마리아나 낙담하고 있던 기타 제자들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그들이 왜 그랬을까요?
주님의 말씀은 새카맣게 잊어 먹은 채, 그 분의 되살아나신 모습이 당장 눈에 띄지 않는 현실에만 급급했기 때문이죠.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주님이 살아있는 몸으로 직접 나타나 보여 주어도 자기 눈을 의심했기에, 주님의 책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또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동료들의 말을 듣고도, "내 손으로 만져 보기 전엔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믿을 수 없다"고 했던 제자도 있었지요.
물론 당시는 그들에게 아직 성령님이 임하시기 전이었습니다만. 


..뭘 말해 줍니까? 
신자들은 믿는다 믿는다 말은 하면서도 정작 실제의 진리와는 좀체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런 현상을 흔히 신앙생활 아닌 '종교생활'이라고 지칭합니다. 
 

이천년전 그 날 밤 다락방에서 주님께서는 분명히 11 제자들에게 "내가 그대들을 고아들처럼 버려두지 않고 그대들에게 오겠다"고 약속하셨고, 말씀 그대로 하늘에 오르셨다가 불과 며칠 후 정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영, 크리스토의 영이신 성령님으로서!

오순절 그날, 마티아를 포함한 12 사도들 뿐 아니라 나머지 제자들을 포함한 120 명에게 바람소리와 불의 혀끝 같은 모습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들 기쁨으로 영언(방언)을 했지요! 
그 때 이후 성령님은 내내 지상에 계시며, 참 교회, 참 성도들을 떠나시지 않고 현존하십니다!


이렇건대, 왜 아직도 "임하소서!", "오소서!", "강림하소서!"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까?
황당하지 않은가요..?
첫 교회, 초기 교인들을 본받겠다면, 말로만 그럴 게 아니라 그들처럼 우리도 이미 임하신 성령님을 믿음으로 받아 모셔서, 믿음으로 영언부터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이미 와 계신 성령님을 받아모시려 하긴커녕 계속 "오소서!", "임하소서!", "제발 와 주소서.."를 거듭거듭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믿음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이 상황은 뭔가요? 

 
   오래 전의 지난 날을 추억합니다. 
마루바닥에 꿇거나 쪼그리고 앉아 "성령이여 강림하사.." 하고 처량하고도 길게 늘인 장탄식을 넣은 장타령조로, 애절한 눈물을 흘려 가며 찬송가를 부르던 이전 세대의 모습이 믿음 좋고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 말입니다. 
잠시 후엔 좀 더 힘있게, "지금 강림하시사 영광 보여 주소서"라고 분위기가 발전합니다. 
그러다..주로 부흥집회 때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하면서 사실상 위와는 전혀 반대 뜻의 찬송가를 부릅니다. 

한 날, 한 번은, 한쪽에서 성령이여 지금 강림하소서, 오소서 하고 애걸복걸 탄식하며 울부짖더니..같은 날 또는 다른 날, 딴 쪽에서는 (이미 와) 계시네! 라고 박수하고 환호갈채하면서 기뻐 날뛰니(?)..이게 웬 난상 형국이요, 요지경 속이랍니까? 

대관절 어느 쪽이 맞는 겁니까? 
(물론, 말이야 후자가 맞습니다만, 가사대로 그렇게들 믿는지요..?)
극과 극은 필경 맞물린다더니, 혼동과 헷갈림과 착각도 은혜인지요..? 
아니면 지금..서로 다른 찬송가가 아직 성령님을 받아 모시지 못한 사람들과 이미 모신 사람들을 애써 차별화하고 있는 것인지요?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추정이나 다른 곳에 둘 게 아니라, 바로 영원 불변의 진리인 성경 말씀 위에 두어야 합니다!
성경이 성령께서 이미 지상에 와 계시다고 말하면 그게 맞는 말입니다. 
어떤 찬송가 가사에 뭐라고 했든지 상관없이, 성경 말씀에, 성령께서 이미 지상교회에 임하시고, 와 계신다, 현존하신다고 하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누군가가 쓴 찬송가 가사나 누군가의 기도가 번복하는 헛소리의 헷갈림을 우리는 머리 속에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성경 말씀, 진리의 참된 말씀을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이미 지상에 임하여 계시는 그 분을 자꾸만 "임하소서", "강림하소서", "와 주소서.." - 이러고 있으면, 이건 무지 차원도 넘어,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죠. 안 그런가요?
사랑하는 사람이 약속대로 공원 벤치 바로 옆에 와서 웃고 있는데도,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볼 생각은 않고, 마냥 시계만 내려다 보면서 "왜 안 오나?",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지?" 하면서..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다면 우습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지상교회와 지상 교인들 대다수는 지난 20세기 동안 거의 내내 그러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캄캄한 칠흑 속 같던 중세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를테면, 지난 이천년동안 성령님은 교인들에게 "외롭게" 소외된 채 거의 '천덕꾸러기'로 지내오셨습니다. 
이미 와 계신 그 분을 교회가 도무지 알아보질 못하고, 알아주질 않으니까요!
예수님의 이름을 빌려 존립하는 교회가 예수님의 영이신 그 분을 좌시하고 저만치 외딴 곳에 내버려 둔 채였으니까.

그리고 다수 교회는 참 성령님을 심지어 "왕따"시킵니다. 
그들은 첫 교회, 초기 교인들에게 임하신 성령님의 모습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 나름의 거짓 '성령' 이미지를 만들어, 뭔 영성이 이럽네저럽네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정작 성경대로의 참 성령님의 모습을 부정하고 배척합니다. 

첫 교회, 첫 크리스천들에게 내리신 바로 그 성령님의 모습과 권능을 배척하는 데는 교계의 보수파나 진보파나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에서 그들은 공통됩니다.
그래서 사실상 성령님의 손을 묶어두는 '중단론'/'종식론'(cessationism) 따위를 설파합니다. 현존하시는 성령님의 초자연적 역사를 덜 믿을수록 건전하고 바른 신앙인 양 엉터리로 부각시킵니다. 

그런가 하면, 마치 성령님을 독차지한 양 떠드는 오순절/'순복음'계는 영언(방언)이나 은사나 손뼉치기를 삶의 전부(?)로 여겨, 좀 조용히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내쫓는 형국입니다. 
그들은 자칫, 성령님의 은사들 가운데 '시끄러움의 은사'도 포함된 줄 아는 듯 보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영언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성경에 나타난 첫 교회의 모습에 따르면, 적어도 출발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성령님의 현존을 믿는다면, 첫 교회, 첫 교인들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영언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얼마 전 뭐라고 하셨습니까? 

   "믿는 사람들에겐 이런 표징이 따를 테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새로운 말(영언)을 할 것이며.." (마르코스복음서=맑 16'17)

곧 거듭나고 구원 얻은 신자들에겐 이미 누구나 영언이 저절로 따라 주니까,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입을 열고 혀를 굴리라는 말씀이 아니고 뭔가요?
분명히 영언은 (내가 예수님을 믿는) 표징들 가운데 하나(!)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물론 초기교인들은 그 말씀대로 누구나 영언을 했고요..
심지어는 유대인들 뿐 아니라, 그 후 몇 년 또는 몇 십 년 후, 전에는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보통은 개 이하의 취급을 받던) 바로 그 이방인(!)들의 한 명인 코르넬리우스(고넬료)의 온 가정, 더 나아가 에페소 교우들을 비롯한 이방의 모든 교인들이 영언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독자가 믿든 말든 말입니다. 


그럼..뭡니까?
우리 모두, 첫 교우들처럼 영언을 해야지요! 
거듭났다면 당연히 하게 돼 있지요!
안 거듭났으면, 당장 말씀대로 믿음으로 거듭나면 되는 것이고. 

"난 영언이 안된다"고 부정적 고백만 자꾸 되뇔 게 아니라, "된다!", "나도 돼!" 하고 입술을 열고, 혀를 굴리면 될 거 아닙니까?! 
믿음엔 행위가 따르지 않나요? 
뭘 두려워하나요? 
내 의지대로 하면, '절대주권주의'가 아니라굽쇼? 
성경의 약속이 중요한가요, '절대주권' 신학사상이 중요한가요?

영언을 하라는데 도대체 뭘 겁내나요? '귀신방언'? '이교방언'? 성경에 믿음으로 하면 귀신방언, 이교방언을 준다는 구절이 어디 나오나요? 왜 그런 헛된 의심과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아가나요?

하늘 기원의 이상한 새 언어인 영언을 하려고 기대한다면, 당연히 그 시각만큼은 한국어/모국어로 기도해선 안되지요! 그건 믿음에 따르는 행동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릇된 대상이 아니라 올바른 대상인 복의 근원 하나님께 당연히 구하고 받아야 할 복을 간구하는 것조차도 모조리 획일적으로 '기복주의'라는 그럴 듯한 명목으로 부정시하면서도..(그러면서 자신들은 '만복의 근원' 송영도 부르고, 축도도 받는 모순을 보임!)..아직도 "임하소서', "오소서!", "강림하소서!"라고 그야말로 그릇된 '기복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게 오늘날 교회의 현실입니다.  

"오, 성령님이여, 임하소서!"라고 절규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영언을 시작하기를 애타게 바라고 기다리시는 그 분의 맘을 몰라드리다니, 웬 불효입니까.. ㅠㅠ 

자신이 성령님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있으면서, 성령님을 되레 원망하고..
자신이 믿음으로 입을 벌리고 혀를 굴리지 않으면서 "왜 난 영언이 안 되냐?"고 한탄하고 절망하고..
그래서 안 되다(?) 보니, "그쳤다", "중단됐다"는 불신의 소리를 하고.. 
나는 안(못?) 하는데, 남이 땀 흘리고 코 흘리며 "럴럴럴러~" 하는 모습이 부러워 배 아프거나, 지저분한(?) 꼬락서니가 끔찍히도 보기 싫어 거부하고.. 

더 나아가, 속으로 또는 말로써 이 모두를 정당화하고..

바로 이것이 현대교회의 모습, 우리 자신의 적나라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이런 모습을 향해 주님을 뭐라고 하십니까?
"성경을 봐라. 거기 내가 뭐라고 했는지.." 하시지 않나요.
 
   "(안 믿는 사람들은 말고) 믿는 사람들에겐 이런 표징들이 따를 테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새 말을 하며.."

이 약속에 따라 오순절날 120명의 성도들이 한결같이 영언을 하지 않았나요? 
그것이 첫 교회의 모습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왜 끝 교회의 모습은 이 모양인가요? 
왜 이렇게 부정적이고 오만한가요?
왜 성령님을 더욱 탄식하시게 하고, 그 분을 '왕따'시키나요?
왜 영언을 하라면 할 것이지, 핑계가 많고 잔소리가 많나요?
모든 은사들의 첫 관문이 영언이라는 사실을 행전 2장을 비롯한 행전 도처에서 빤히 보고도 왜 안 믿으려 발버둥치나요? 
왜 첫 교회 성도들은 (영언/은사 면에서) 반복될 수 없는 "유일한" 부류라는 거짓 학설을 검증도 안 해 보고 믿나요? 
왜 첫 교회와 코린토교회가 (영언/은사 면에서) "서로 다르다"는-그래서 성령님을 이중적, 이분법으로 보는- 거짓 설을 검증도 안 해 보고 그대로 따르나요?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 영원불변이시고, 예수 크리스토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한결 같으시며, 성령님은 '중단'되거나 '종식'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왜 안 믿고, 전혀 근거 없는 '중단설'/'종식설' 따위를 함부로 마구 지껄여대나요? 

도대체 언제 어디서 '중단'됐다는 건가요? 
첫 성경전서가 출판되던 그 날..? 
그날 누가 봤나요, 돌연 성령님이 "중단", "종식"되는 광경을?
왜 진화론 같은 그런 헛 믿음을 갖나요?
신학자들이 하나님인가요? 성경보다 신학자들의 '썰'을 더 믿게?


제가 말을 함부로 한다고요?
아니 성령님이 '중단'됐다는 말은 함부로가 아닌가요??
그런 말은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나요..???
'중단론자'/'종식론자'들은 얼마나 성령님을 근심/훼방시키는 말을 함부로 마구 내뱉는지 아직도 감이 안 잡히나요? 
그들이 장차 받을 중대한 벌과 심판을 조금도 미리 감지하지 못하다니..ㅜㅜ
신학과 철학과 온갖 이론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성경 진리 자체로 돌아오지 않는 한, 진리 파악은 말짱 말글로만 그칠 뿐, 어렵습니다. 


성령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실 뿐더러 내려와 계십니다. 
지상에 현존하십니다.
지금도 믿음으로 바라는 사람에겐 영언과 은사들을 허락하십니다 .

그 분을 받아모시고 안 모시고는 나의 믿음과 의지에 달린 문제입니다.
믿음과 의지엔 자연스럽게 행동이 따릅니다. 
그것은 소위 '절대주권'과 상관 없습니다. 
모든 신자는 영언을 하게 된 것이 최고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절대의지입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기록하셨으니까요!

여태 그 분을 받아 모시지도 않고 영언도 하지 않고 있다면, 그건 내 책임이지 그 분 책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절대로!
믿음이 아니고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습니다(히브리서 11'6). 
그러나 믿음으로 그 분께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그 분이 믿음의 대가를 주시는 미스타포도테스-보상자가 되십니다! 할렐루야, 영원히 그분을 찬양! 

그래도 끝끝내 말을 듣지 않는 독자는 이 다음 하늘나라에서 절절이 후회할 것입니다. 
이 글이 님의 그 후회의 갈림길 노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티엘티 독자들은 누구나 성령님의 지상 현존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길..
누구나 영언을 시작하고 제 몫의 은사들을 챙겨 누리기를..

전능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