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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사도행전

[행전 20:29] 성장인가, 성숙인가?



"나는 압니다: 내가 떠난 뒤, 사나운 이리떼가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와 양떼를 마구 해칠 것을."(행전 20'29 사역)


요즈음의 교계에는 긍정주의란 게 팽배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더구나 그렇습니다.
오랜 교회성장 침체기를 겪어와서 더 그런 모양입니다.
"천만 신자" 운운하다가 요즘은 8백만 조금 웃도는 상황 가운데 "성장 저해 요인"들은 몽땅 적으로 몰아 경계하는 몸짓들입니다.

생존 위기 가운데 지내는 표정일 듯 합니다.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쉬쉬 하며 조심, 조심, 또 조심 하는 행보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뭐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입장입니다.
'성장'에 도움 되는 요소들은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실천하려고 듭니다. 프로그램이든, '영성'이든.
성장 도우미(?)로 한 가닥씩 하는 명사들은 죄다 늘 대환영입니다.
성장에 도움된다면, 무슨 책이든 닥치는 대로 사다 읽습니다.
성장에 조금치라도 보탬 될 것이라면 어떤 프로그램이든, 어떤 강사이든, 어떤 무엇이든 양보하지 않고 불사하겠다는 겁니다.
마치, 보약이라면 뭐든 탐하는 식성처럼 말입니다. 

성장, 성장, 성장..성장이 최대의 모토입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성장하도록.."라고 애타게 노래하는 듯 합니다.

반면, 교계에 흔한 문제를 지적하고 평가하려도, 턱 턱 막힙니다.
할 말이 많더라도, "성장할 때까지는 입 좀 다물어 달라"는 주문입니다. 
"우선 성장하고 보자" -이것이 그들의 경구입니다.

그러니, 듣기 좋고 읽기 좋은 말들을 주로 뿌리는 저자들의 책들이 판을 치며 나날이 앞서가는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성장이나 성장 욕구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성장이냐가 문제이지요.
과연 그저 성장만 하면 만사 '오케이'인지요..?

'건강한 교회'를 입버릇으로 되뇌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건강이냐가 역시 문제 되지요.
'건강한 교회'를 유난히 외치는 사람일수록 이상한 영성을 강조하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든 '영성'이란 것만 지니면, 건강한 교회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비판과 검증을 꺼립니다.
싫어하거나 두려워 합니다.
교파나 교단의 신학을 약간이라도 자체 비평하려면, 근본 토대가 무너진다고 주장합니다.
성경 말씀이 근본 토대인가요..서로 다른 신학이 근본/밑바탕인가요?
똑 같은 율법을 놓고도, 예수님마저도 당대의 종교 지도자를 강하게 비판하신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봅니다.  
성경과는 거의 무관한(?) 내용이면서, 교파끼리 서로 다른 신학도 많은 것을 봅니다.
그럴 경우 어느 쪽이 진리인가요? 객관적인 진리인 성경을 더 붙들어야 하지 않나요? 
교단 신학과 교파 교리가 우리를 천국으로 보내주나요? 착각이 아닐까요?

그래서, 교파와 교단을 모두 탈퇴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필자 자신, 교파/교단에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
교파/교단으로 나뉘는 게 본래 하나님의 온전한 뜻은 아니지만 허용한 뜻이겠지요.
그런데 '절대주권주의'에 따르면, 칼뱅주의만 진리이고 나머지는 모두 비진리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교파/교단에 속해 있더라도 성경을 신학보다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성경보다 신학을 더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경으로 올바로 풀어야 합니다.
특히 모든 이단의 모판과도 같은 어거지 식 풍유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을 조심해야 합니다.

요즘은 단순히 교파 신학이 아니라 영성이란 것조차도 분별과 검증을 꺼립니다.
그런 것이 성장이나 신앙에 도움된다고 믿기 때문이죠
과연 그렇게라도 성장하는 것이 주님의 뜻일까요?
그렇다면 성령 충만한 가운데 나날이 성장하던 예루샬렘 교회는 대형화로 치닫다가 왜 깨지고 흩어진 것일까요..?

본디 교회의 성장과 성숙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그 분의 뜻이 아닌 성장도 있다는 게 아닐지요? 그럴 겁니다.
그래서..성장이면 다 성장이냐?..성장다워야 성장이지..
뭐 이런 말도 나올 법 하죠.

맞습니다.
성장은 성숙을 겸비해야 합니다.
신앙과 지혜, 통찰의 성숙이 없는 성장은 제대로 된 성장이 아닙니다.

몸만 자라고 슬기는 자라지 못한 아이들을 주변에서 보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정신장애아들을 두고 비웃는 게 결코 아닙니다.
정신장애아 가운데도 영적으로 훌륭하게 성숙한 예를 저는 봤습니다.

성장! 성장! 성장을 꿈꾸고 외치고 부르짖으면서..
성경의 경건이 아닌 이상한 외래 영성에 빠져 있는 것은
올바른 성장이 아닙니다.
성숙이 빠져 버린 성장을 추구하는 꼴입니다.

성숙은 하나님 말씀만 온전히 추구하면서
성령님 뜻대로,
성령님 안에서,
초기 교회 모습 그대로 본받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토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게 이상향에 불과한가요?
불가능한 일인가요?
아니면 성경 진리보다 신학과 교파 교리에 빠져
성경대로의 이상이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인가요?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신앙 선배요 모범인 고대 사도들의 교훈을 되새기게 됩니다.

사도들이 언제나 긍정적이었다고요..?
무엇이나 사랑으로 덮었다고요?

천만에..
행전과 서신서를 보십시오.
위의 바탕본문을 보세요.
사도가 마냥 긍정적입니까?
물론 그들은 더 없이 긍정적일 때도 있지만,
교회의 어두운 미래를 우려하면서 항상 경고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초기부터 '성장통'을 앓았습니다.
거대 성장을 하다가 깨어지고 흩어졌습니다.
사도들은 교회가 온 세계로 전진하는 모습을 내다 봤지만,
아울러 곳곳에서 성장통을 앓을 것도 예견했습니다.

잘못된 성장통은 잘못된 긍정주의로부터 옵니다.  

구약 시대 때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 늘 긍정적이셨나요?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평을 삼가셨나요?

천만예요!
하나님은 너무나 자주, 이스라엘의 미래를
슬퍼하시고
우려하시고
부정적으로 경고하셨습니다.

늘 긍정적이지 않으셨습니다.


부정적인 말과 비판을 적으로만 아는 목자들이여..
그래서 분별과 검증까지도 두려워 하고 적대하는 지도자여..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는다는 것이..
비진리까지 덮는 행위로 치닫고 있음을 모릅니까?

어떤 사랑 말인가요?
하나님의 아가페는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걸 모르나요?

하나님의 사랑, 참 사랑은 진리가 빠져 버리면,
슬퍼하는 사랑임을 모르나요?

'영성', '영성', '영성' 하면서
'딴 불'을 피우고 딴 향을 좇아가는
현금의 목자와 지도자들이여..
신학교 교수들이여..

그런 영성이나 그런 사랑은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우려하시게,
성령님을 근심 되게 한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나요?

오늘날 영성을 찾는 사람들은 교회 사람들 뿐 아니라
뉴에이지와 온갖 오컬트를 탐닉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공통된 현상임을 모르나요?

그런 영성으로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장이 될까요?

게다가 수많은 현대 영성가들이 나름의 목적과 숨은 어젠다가 있음을 간파하지 못하나요?

관상 영성, 떠오름/이머징 영성, (성령님께 이끌림이 아닌) '목적'에 이끌림의 영성, '신사도' 영성..
그리고 뉴에이지와 주권주의(dominionism) 영성

그들은 천주교 사상을 신교 속에다 심어,
신교를 변질시키고,
이교적 명상을 마다하고 교회 속에 주입하여,
온갖 혼합 영성과 에큐메니즘으로 교회의 순결을 흩어 놓고,
성경 중심의 신앙을 약화시키고,
진리보다 돈을 더 찾게 하고,
성도의 심령 속에 이뤄지는 참 하늘 왕국이 아니라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 체제 속에다 땅의 왕국을 추구하게 하고,
세상 평화로 하나 되자!
모든 것을 합치자!
경제/시장과 정치는 물론,
종교도 통일하자! 

이런 어젠다가 진행돼 왔음을 모르나요?

왜 온 세계가 다 함께 영성, 영성, 영성을 찾고 부르짖는지, 아직도 감이 안 잡히나요?
적당히 모든 걸 활용하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신념을
아직도 신앙인 줄 믿고 붙들고 있나요?

지도자나 목회자가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 성도들만이라도 늘 깨어,
오직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진리이신 예수 크리스토님께
굳건히 붙어 있어
진리를 찾고,
진리 안에서 기뻐하는 참 사랑을 추구하게 될 겁니다.
 
이젠 성도가 깨어 일어나서
진리와 참 사랑을 붙들고
성삼위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사도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교훈을 다시 되새기고 보듬어야 할 때입니다.
지상교회의 어두운 현실과 미래를 예견한 그들의 예리한 통찰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숙 없는 성장의 결과로 온 화려한 건물과..
무지갯빛 오색찬란한 영성과..
긍정, 긍정, 긍정만을 외치는..

통찰과 분별이 결핍된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로써,
우리의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진리를 벗어난 사랑은
참 사랑일 수 없음을..

진리를 벗어난 영성은
이리떼가 뿌려 놓은 "양 잡이용 미끼"에 불과함을..
깨달을 때입니다.

우리 속에 침입한 가죽탈을 쓴 이리를 피하여
선한 목자인 우리 주님의 푸른 초장으로 달아나서
거기서 꼴을 뜯고 누워 쉼을 얻읍시다.

그렇다고 기존 교회를 이탈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든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권능을 받아
닻처럼, 바위처럼 든든한 진리이신 예수 크리스토님을 붙들고, 
내 믿음, 내가 지켜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님, 지켜 주신다!
어둔 밤에도 주님의 밝은 빛
인도하여 주신다"

주 나의 강한 바위니
나 거기 굳게 서리라
딴 곳은 모두 모래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