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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사도행전

[행전 11:17] 누가 하나님을 막으랴

"...내가 누구라고 감히 하나님을 막을 수 있겠나요?"
  (신약성경: 행전 11'17a 사역)

하나님은 그 분의 뜻하시는 바를 그 분의 권능으로, 능력껏 이루시는 전능자입니다.
그 분이 계획하시고 행하시려는 바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자, 그런데, 위 바탕본문 말씀을 우리는 바로, 잘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구절들을 소위 '절대주권론'에다 무리하게 적용하려 듭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막을 수 없기에,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강압적인) 뜻도, 그 뜻의 강제 실행도 막을 수 없다는 발상입니다.
그래서 개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자동으로 이루신다는 거지요.
그러나 위 말씀은 그런 절대주권주의를 뒷받침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분명 절대자(!)이시고 그 분의 보좌가 있는 천상계를 포함한 온 우주의 창조주 겸 최고주권자이심은 진리입니다!
아울러 그 분의 모든 말씀은 절대 불변, 절대 완전, 절대 완성, 절대 성취의 진리이죠!

그러나 그 분의 영이신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상황이건 막론하고 그 분의 뜻을 강제 집행하시지 않습니다.
그 분은 사람들을 통하여 뜻을 이루시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의지를 무시하고, 홀로 그러시진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해야 할 모든 것들을 대신 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되뇌지만, 하나님을 막을 존재는 우주의 그 누구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그 분 맘대로만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죠.
우리 주님은 모든 질병을 고치실 수 있는 예호바(여호와) 라파(Yehovah Rapha)이셔서, 믿음으로 그 분에게 나아오는 당대의 유대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환자들을 고쳐 주셨지만, 아무 믿음도 없거나 그 분을 거부하는 사람들까지 '절대주권'으로 무조건 고쳐 주시진 않았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 믿음이 없어 나아오지 않는 사람들까지 주님이 고쳐주실 수는 없었습니다!
믿음 없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또, 많은 사람들이 주님 면전에서 그 분을 거부하거나 그 곁을 떠났습니다마는, 주님은 그 분의 뜻을 위해 강제로 그들의 거부감을 꺾고 그들을 설득하여 끝내 바꾸시고 고치셔서 사용하셨느냐면, 그러시지 않았지요.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크게 오해하는 오류나 불행을 빚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오류가 우리의 삶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존중하십니다.
우리의 지/정/의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어디까지나 늘, 우리의 의지를 무시하고 그 분 뜻대로 강제 집행하신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어떤 사상가들은 죄로 인해 전적으로 부패한 심령의 의지는 이렇다 할 아무런 의미 있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의미 있는 행동을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 주장이 참되다면, 사실 아무도 구원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어, 하나님께 구원과 고침을 받고자 나올 수 없다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구원 받을 사람은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구원자 앞에 나오기까지는, 자유 의지-자발적 의지의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의지로 하나님과 그 분의 의를 선택하거나 저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거나 안 믿거나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 및 선택의 이슈는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택정(擇定)은 그 분이 주신 인간의 자유의지와 상치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영원히 그들의 '남편'이시길 바라셨지만, 이스라엘은 끝내 거부했습니다. 오직 참 메시아를 기다리던 남은 무리만 그 분의 최종 선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예수 크리스토님을 참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은 전체 유대계의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들도 비신자인 여느 민족처럼 거부 속에 계속 죽어 갑니다.

이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께 있을까요?
그렇지 않지요.
그들의 불신앙의 책임이고 자기 책임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선민(選民)으로 택하셨지만, 참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구원하실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정에 인간이 의지로 긍정적으로 응답해야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이 모든 것을 이룬다면, 하나님은 절대 주권으로 아담과 하와(이브)가 선악 지식의 열매를 따 먹지 못하게 하실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아담/하와가 그 열매를 따 먹은 것은 순전히 뱀의 꾀임에 속은 자신들의 자기의지를 통해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아들 카인은 자기 의지로 곡물 제사를 드렸고, 자기 의지로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절대주권으로 카인의 살인을 막으시지 않았고,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우리가 절대주권주의라는 것을 함부로 주장하고 적용하다가는 사람에게 의지를 주신 창조주님을 오해하여 그분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들의 자기의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은 극히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페트로(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로서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전에 그를 위해 기도하셨고, 이 기도는 결국 페트로를 눈물의 회개로 귀결시키셨습니다. 이 감동은 성령의 몫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는 성령님의 몫과 우리의 몫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한 불순종으로 성령님의 행동을 막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본문에서, 페트로가 "내가 누구라고 감히 하나님을 막을 수 있겠나요?"한 것은 코르넬리우스(고넬료) 가정을 복음으로 이끄시려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겠다는 뜻임을 우리는 간파해야 좋습니다.    
 
모쉐(모세)에게 이끌린 광야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철저히 불복종했습니다.
일시 말을 듣는 듯 하다가도 금세 다시 배신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계속 되풀이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강제로 선하게 만드시지 않고 내버려 두십니다. 또 직접 징벌하시기도 합니다. 
그 결과 그들 1세대는 예슈아(여호수아)/칼렙(갈렙)을 빼 놓고는 광야에서 모두 죽고 다들 망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그들을 이끈 모쉐조차도 죄와 과오 탓에 카나안(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1세대와 2세대를 성공적으로 함께 카나안에 이끌어 들이시지 않고 겨우 1세대 두 사람과 2세대만 그렇게 하셨을까요?
심지어 위대한 모쉐까지도 카나안에 들이지 않고 광야에서 죽게 하셨을까요?
그래서 주변 국가에 마치 '실패자 신' 같은 불명예까지도 감수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의지를 무시하거나 초월하는 '절대주권'적 통치자가 아니십니다.
죄와 불순종의 의지도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심지어는 거듭나고 성령 충만했다가 타락하는 사람의 의지도 내버려 두십니다.
결국은 불도장(화인) 찍힌 양심으로 내버려 두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인류 구원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지금도 구원의 문, 그 분과의 화해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계십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게 해 놓으셨습니다(요한복음서 3'16).
누구든지..! - 여기 제한이 없습니다!
아가페는 적용에 제한이 없는 무제한적, 무조건적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보혈은 온 세상 사람들의 속죄에 넉넉한, 권능의 보혈, 전능한 보혈입니다.

그러나..그 보혈은 오직 예수 크리스토님을 구주/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됩니다. 
주 예수님의 보혈은 누구나를 위한 것이지만,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모셔들이는 사람에게만 그 분의 대속의 효력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착각하고 혼동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교계엔 너무나 많습니다.

요즘 흔해 빠진 사상으로..예수님을 안 믿어도 구원의 길이 있다거나, 모든 종교와 모든 신들이 다 천국으로 가는 길인 양 주장하는 보편구원론은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소위 '제한속죄론'도 진리가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의 신학적 주장일 뿐입니다. 

진리는 오직 성경 그대로일 뿐입니다.
이상한 해석들이 성경일 수가 없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누가 막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겠습니까?
그러나 불신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은 그 사랑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막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은총을 자기 의지로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진리 말씀과 약속에 의지로 응하는 사람들,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온갖 은총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믿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하세요!
그 말씀과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