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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사복음서

[요 15:15, 20:17] 종에서 친구, 친구에서 형제로


바탕본문: 요한복음서 15'15; 20'17(부분)

      "이제부터는 자네들을 종이라 하지 않을 것이네.
     종은 주인이 하는 것들을 알지 못해.
     나는 자네들을 '친구'라고 했네.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모두 자네들에게 알렸기 때문이지.

    "..그대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오.."

 

세상 사람들이 한 가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종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거듭나고 구원 받기 전엔, 미처 깨닫지 못하던 것이지요.

혹,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 보십시오: 당신은 종이라고..노예라고.
아마도 좋아 할 사람들이 없을 겁니다.
화를 내거나 펄펄 뛸지 모릅니다. 무슨 소리냐? 왜 내가 종이냐?고.
자신은 엄연히 독립된 자아이고, 자유인이고, 스스로 주인인데 왜 노예냐?고 분노하며 반문할 터입니다.
자칫, 주먹다짐을 하려고 달려들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종이나 노예란 말을 싫어 합니다. 
종은 남에게 매여 복종하면서, 맨날 주로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사람이고, 천한 신분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자신이 내세울 이렇다 할 권리도, 자유도 없습니다. 풀려 나서 자유인이 되거나 죽기까지는 늘 그렇습니다.  

그래서..사람들은 종도 계급을 나눠, 더 높은 신분을 선망하고, 탐해서 삶의 목표를 거기에다 겨냥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지나간 역사를 보기 좋게 포장한 드라마인, 현대 사극들이 인기를 끌곤 하지만, 과거 왕국시대는 왕과 왕갓사람들만 주인이고 나머지는 사실 상 다 종들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엔, 지체나 신분이 높은 사대부 사람들은 자신들을 '양반'이라고 부르면서, 태생과 신분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보통사람/상사람/상민/상인(常人)..심지어 상한(常漢)/'상놈상년'/'상것'들, 게다가 쌍시옷까지 붙여 가며 힘 주어 상대를 낮추고 스스로를 차별화하곤 했지요.
그러다 보니, 그것이 욕설로까지 되었고, 점잖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저런 고연 상놈을 봤나!"라는 식으로 꾸짖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더 하층 계급인 천민들은 평생에 불가능해 보이는, 꿈 같은 소원이 이른 바 '면천'(免賤)-천민 신세를 면하고 보통 사람, 평민이 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알고 보면, 결국 양반 자신들도 다 임금의 종들이었습니다.
거기가 거기, 도토리 키 재기였다는 말이지요.

신분이 좀 높다 보니, 천민들을 자기 종들로 부리고 처지와 평소 삶이 좀 더 나았다 뿐, 임금의 노예이긴 마찬가지였지요. 임금님의 집인 대궐에 살아도 그랬습니다. 대궐 안에도 종들이 하고 많았지요.
임금을 섬기는 사람들을 뭐라고 했습니까? 신복(臣僕)/신하..다 나랏님 밑에서 섬기는 종들이란 뜻입니다. 
아무리 서로 계급을 종이란 신분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지요.


일찌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쉐(모세)를 통하여 출애굽-곧 미쯔라임(에짚트)에서 해방시켜, 그들을 자유민으로서 40년 광야 시대를 거쳐, 카나안 정복 시대에 들어갈 당시, 처음엔 모쉐의 후계자인 지도자 예슈아(여호수아)가 이끌게 하시고, 그 후엔 그저 그들을 영적으로 이끌고 재판을 해 주는 '쇼페팀'(단수 쇼펱) 곧 판관(判官. 또는 '사사'/士師)들을 세우셨지 왕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히브리 노예'로서가 아니라 자유민으로서 존중하셨기 때문이지요.
미쯔라임의 왕 파라오('바로')를 섬기며 무려 400년이나 종살이를 하던 옛 삶으로부터 그들을 자유민으로서 부르시어 해방시키시고, 오직 하나님 밑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도록 그렇게 하셨거든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이스라엘 백성은 점점 우상숭배 죄를 많이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 경우가 줄어 들자, 이 '쇼페팀' 제도에마저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처럼 강력한 절대 군주제도와 왕권을 부러워 하고 탐하게 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스스로 종 되려는 것이라고 말리셨습니다만, 그들은 종내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왕정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도 슈무엘을 통해 분명히 재삼재사 경고하십니다.
백성은 왕을 노예처럼 섬길 것이고, 왕은 백성을 종처럼, 노예처럼 부릴 것이라고. 백성은 한낱 왕의 소유물에 불과하다고.
그래도 백성이 좋다고 부득부득 우기자, 결국 슈무엘(사무엘)을 통해 초대 왕 샤울(사울)을 기름 부어 세우셨지요.

슐로모는 초기에 하나님이 주신 슬기로 재판하던 훌륭한 현왕이었지만, 나중엔 자기 장인인 파라오를 닮아선지, 세금을 쥐어 짜내고 백성을 온갖 노동 일에 혹독하게 부려 먹는 독재자로 군림합니다. 우상숭배자이기도 했지요. 


하나님은 원래의 왕으로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몸소 다스리시려고 율법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섬기는 종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제대로 섬기지 않으면, 스스로 죄에 팔려 죄의 종 노릇을 했지요.
죄의 종은 곧 마귀의 노예이고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 대신 죄에 노예가 되어, 죽음을 비롯한 율법의 저주를 무서워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사람은 의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오실 메시아는 의의 종-'나의 의로운 종'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바로 그 메시아가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이었지요.

메시아 그 분이 스스로 의의 종이 되어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순종함으로써 우리를 종과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오, 할렐루야~!


여러분.
자..좀 골치 아프고 어려운 얘기 같아도,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종들이고 노예들입니다.
스스로 죄에 팔려 종이 되고, 유혹거리를 통해 죄를 짓게 하고 온갖 율법의 저주를 대신 갖다 퍼붜주는 마귀의 노예들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요. 알 턱이 있나요?
뒤늦게 구원자 예수 크리스토를 통해 건져냄을 받고서야 비로소 알고 깨닫게 됩니다.
"아, 내가 그랬었구나..내가 죄와 마귀에게 종이었구나." 하고요.
 
그런가 하면, 유대인들은..나름대로 아도나이(나의 주님), 곧 주 예호바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메시아 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는데도 메시아를 거부하고 부득부득 율법을 지키며 살겠다고 하니,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율법의 종들로 살아가도록.

그러나, 그들 역시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니, 죄의 종으로, 마귀의 노예들로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시려고 보내신 지도자 모쉐 말입니다.  
이 '모쉐'라는 이름의 뜻이 뭐지요? 예, (물에서) 건져내어지다, 건짐을 받다..
그러니까, 이 모쉐란 이름 자체에 건져내는 이, 곧 구원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구원자라는 이름과 메시아 즉 기름부음 받은 분이라는 낱말들이 모두 고대의 비슷한 어원에서 왔습니다. '모쉐'라는 이름의 원형 동사인 '마샤'나 메시아의 원형 동사인 '마샿'이나 다 어원이 본래 '끌어내다', '이끌어내다'라는 뜻의 중동어에서 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예슈아' 또는 예호슈아라는 이름도 역시 구원자라는 뜻이지요.

다 예언적인 이름들입니다.
우리 주님의 '예수'라는 이름도 바로 예슈아와 똑 같은 '구원자'라는 뜻이고요. 

건져냄, 구원, 구원자, 구원자..
그러니까..이 모두가, 하나님이 곧 우리의 구원자시라는 뜻이지요!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를 종살이에서 건져내길 바라셨고 지금도 바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노예생활을 청산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종, 죄의 종, 마귀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길 그토록 열망하고 계신다는 거지요.

엑소더스!
해방!
자유!
그것을 그토록 안타깝게 바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걸 몰라요.


이스라엘, 유대계 사람들이 모쉐를 그다지도 존중하듯이..
미국인들과 세계인은 노예제 폐지와 흑인노예 해방을 이끌어 낸 링컨 대통령을 존중합니다. 
지난 번 대지진 피해를 입었던 아이티는 사상 최초로 해방을 부르짖던 흑인노예들이 혁명을 일으켜 세운 유일한 나라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노예제의 유산인 아파르트헤이드-인종차별을 종식시킨 사람으로 추앙 받지요. 

그런데..세상 사람들이 이런 명사들은 존중해 주면서, 정작 자기네를 죄와 마귀로부터 해방하고 구원해 주시겠다는 하나님과 그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존중하지는 않아요.
한편으로 노예해방을 그토록 바라고 표면상의 '해방자'를 존경하면서도, 정작 인류를 진정 해방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죄인들을 해방하러 오신 예수님을 그들은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한는다는 사실..

건져내시고, 구출해 주시고 구원하셔서 해방시켜 주시고 자유를 안겨 주시겠다는데도, 그냥 싫다고, 마다한다는 겁니다.
예수도 싫고, 예수쟁이도 싫고, 예수쟁이가 되는 것도 싫고, 다 싫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거, 일대 아이러니 아닙니까?
인류사상 최대의 아이러니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종들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말을 바꾸면,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면 여전히 종들이요 노예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류 대속(代贖)/구원 사역 계획을 모르고 지내면, 여전히 죄의 종, 마귀의 노예들입니다.


사도 파울은 그의 수많은 서신서에서 스스로를 예수 크리스토님의 종으로, 또는 수감자/죄수로 묘사하곤 합니다. '갇힌 자'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실제로 복음 때문에 오래 옥중에 수감되기도 했고요.
그가 감옥에 갇혀 지낼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오가며 같은 감옥에 함께 갇혀있기도 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이방인인 '오네시모'였습니다.

오네시모는 본래 노예였습니다. 노예였다가 혼자 탈출했기에 체포되어 옥에 갇혀 지냈습니다. 당시로서는 즉형감이었지요.
그런데, 참 일이 재미있게 되느라고..바로 노예주였던 필레몬도 크리스천이 됐고, 오네시모도 옥중에서 사도 파울을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됐습니다. ㅎㅎㅎ~ 그래서 파울은 그를 '옥 속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참으로 놀랍고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그래서 파울은 바로 오네시모의 주인인 필레몬에게 보내는 '필레몬서'라는 옥중서신에서 오네시모를 이젠 그만 용서하고 파울 자신을 위해 일꾼/사역자로 일하도록 받아 달라고 호소합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쓸모있는', '유익한'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제 오네시모는 주인인 필레몬의 뜻과, 하는 일을 알게 된 사람입니다.
이젠 자기 믿음의 아버지 파울의 사역을 알고 그 계획에 동참하여, 함께 옥중에서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전에는 노예로서 자기 죄 탓에 옥중에 갇혀 있었지만, 이젠 크리스토 안의 자유인으로서 스스로 주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처럼, 이름답게 유익한 사람이 됩니다.
동시에 그는 예수 크리스토님을 통하여 죄와 마귀, 과거로부터 해방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알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게 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이제 더는 모르지 않고, 그 분의 일을 알고, 그 분의 일에 동참하게 되는 영광을 얻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바탕본문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을 주님은 누구라고 부르십니까?
친구!
예, 그 분의 친구들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노예와 종살이에서 해방된 사람들, 이젠 주인을 알고, 주인의 계획을 알고, 주인의 아는 사람들을 주님은 '친구'라고 정답게 불러 주십니다.
마치 하나님이 고대에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부르셨듯.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라는 말, 우리를 그 분의 벗으로 삼으셨다는 말,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에도 나오지요.

    미쁘신 나의 좋은 친구..
    참 좋은 나의 친구..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여러분.
노예가 주인의 친구가 되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온몸이 자릿자릿할 정도로 황홀하지 않나요?
과거 노예였다는 의식이 별로 강하지 않다면, 자릿자릿한 느낌이 적겠습니다 마는^^..

아니면, 가령..'동이'가 면천해서 나중 숙빈이 됐다면, 비로소 제대로..황홀한 건가요?
한낱 천민에 불과했다가 임금님의 말벗이 되고, 결국 아내가 됩니다만..


과거에 세상 임금인 마귀에게 속고 죄에 팔려 종이었던 우리가 해방되고 예수님의 친구가 되다니~!
이건, 동이가 임금님 아내가 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말로는 이루 다할 수 없이 놀랍고 황홀한 사실이지요.


여러분.
그런데 그 뿐인 줄 아십니까?

주님은 더 나아가 그 친구들을 '형제'라고 부르십니다.
형제!
친구보다 가까운 사이는 형제지요.

주님께서는 자기 제자들을 일꾼으로 제자로 쓰시다가 나중엔 그들을 친구들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날 새벽, 그들을 '나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왜 그러셨나요?
 
이젠 하나님 안에서 한 자녀들이기 때문이지요.
주님은 하나님의 맏아들, 우리는 그 분의 아우들, 동생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예수님을 우리의 맏형(Big Brother)으로 모신, 다 같은 하나님의 아들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의 신분이 그렇답니다.
노예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형제로~!
이렇게 발전해 오고 승격된 신분이라는 겁니다.
여러분과 제가 말입니다.

기쁘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황홀한 사실입니까! 아닙니까?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지냅니다.
심지어, 성경에 적힌 대로 그런 진리를 알려 줘도 들은 둥 만 둥 거부하기가 일쑤입니다.
오직 극소수-일부만, 귀담아 듣습니다. 

답답하고 안타깝지요.
그래서 우린 더욱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노예-친구-형제의 신분 변천사를 그들도 맛보고 깨달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도 우리처럼 엑소더스(!)가 필요한 것입니다.
죄로부터, 마귀로부터, 그리고 율법의 저주와 종노릇으로부터 해방이 필요합니다.

오직 죽음이 두려워 하루하루 벌벌 떨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과 구원(!)과 영생-영원한 생명/삶-을 주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리고 믿게 해야 합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노예 -> 친구 -> 형제로서의 신분 승격과 왕들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아멘, 할렐루야.


티엘티 성도들과
미래 독자들을 모두
전능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도 은총과 평화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