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묵상연구/사복음서

[마 24] 주님의 말세 예언 (4)

 

바탕본문: 신약 성경 마태복음서 24장



마태복음 24장을 예수님의 말세 예언이라고 알고서 처음 읽는 사람들은 적지아니 놀라고 실망스러울 것입니다.
솔직히, 말이 성경이고 예수님 말씀이지, 기분이 현저히 '다운'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울"하기만 한 그 '블루' 무드에 마음이 졸아 들고, 무거워질 터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세 예언에는..'핑크빛', '장미빛' 또는 무지개 빛의 "긍정적"인 예언은 단 한 마디도 없고, 모두 줄줄이 잿빛 운명-dooms-만 나열돼 있기 때문이죠.     

주님의 말세 예언의 이 '다크 무드'는 세상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성도들을 향하여, "세상은 그렇더라도, 너희들만은 잘 되고 좋은 일만.."이라는 쯤의 뭔가 다른, 밝고 환하고 '긍정적'인 말씀도 없습니다.
그 대신, 성도가 미움 받고 잡히고 죽임 당할 것이라며..고작 해야 "두려워 하지 마라", "피할 땐 피해라"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와는 대조적으로..오늘날 미국 교회의 '명사'들을 비롯한 세계 교계 일각에서는 마냥 무지갯빛의 미래를 약속합니다.
예수님의 음울한 말세 예언과는 판이하게 다른 말들을 뿌리고 있다는 겁니다.

둘러 보십시오.
대다수의 교계 명사들이..교회의 세상 정복! 놀라운 회복! "킹덤 나우!", 교회의 대 부흥! 세상의 대 개혁! 따위의 눈부신 약속들을 남발하여 성도에게 펄펄 '기'와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도시와 시가지가 "성시화" 된다거나, 고속도로와 대로 주변, 각 동네를 마치 '지신밟기' 하듯 "땅 밟기 식" 중보기도라는 것을 하고 다니기도 합니다.  

마치 당장이라도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천년왕국이 새롭게 건설될 시대가 눈 앞에, 코 앞에라도 닥친 듯 그들이 설쳐대지 않습니까?
가히 지상천국 같은 착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들의 말만 들어 보면, 교회가 당장 세상을 완전 정복하고 "토털 빜토리" 선언이라도 할 것 같은 환각에 빠지지 않나요?

실로 교계 명사들은 온 성도와 세상에 핑크빛 미래를 약속하고 다닙니다.


그런데..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세 예언에 어디 그런 부분이 단 한 군데라도 있던가요?
마태복음 24장의 첫 절부터 끝 절까지 눈 씻고 봐도, 그런 화려한 장미빛 예언은 없지 않습니까.
다만 종말이 오려면 먼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돼야 한다는 말씀 뿐이며..그 복음을 위해 성도가 모진 박해와 환난을 겪고 순교할 뿐이라는 말씀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말세 예언이 과거 1세기만의 것이던가요?
말세 예언은 늘 말세 예언입니다.
종말에 관한 말씀은 종말에, 종말의 끝까지 이뤄집니다.


요시야 왕 시대에 부름받은 대언가(代言家=선지자/예언자)들 가운데 예레미야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 애가에 그의 예언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눈물의 대언가'라고도 불리는 그는, 경건한 요시야 왕을 주축으로 나라 안에 한창 놀라운 변화와 개혁이 진행되고 있을 당시 이미 머지 않은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며 유다가 망하고도 한참 후 까지 대언 사역을 지속합니다.

그는 울다 울다 눈물이 모자라 "어찌 해야 내 머리통이 물통이 되고, 내 눈은 눈물의 샘이 될 수 있을까!"라고 탄식한 사람입니다.

당대인 대다수가 그의 예언을 꺼려 그를 미워했고, 심지어 이를 갈며 죽이려고 달려 들기도 합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와 그의 대언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좋아 할 리가 없지요. 귀가 따가워서라도 이거 어디 편히 살겠습니까!

하지만 그게 억울해서가 아니라..
조국이 분명히(!) 반드시(!) 적국 바벨론에 망하게 돼 있는데도 사람들이 그의 예언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고, 도무지 믿어 주지 않고,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는 그것이 그지 없이 안타깝습니다.

온 유다와 수도 예루샬렘이 곧 망할 테니, 그 전에 미리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그나마 일부가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데도, 극소수의 선의의 사람들 외에는 정말 마이동풍이고 우이독경이고 '깜깜 무소식'입니다.

그러니 에고 답답..가슴이 막 터질 듯 하죠!
조국의 캄캄한 앞날, 잿빛 미래를 생각하니, 할 것이라곤 울기 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래서 맨날 더욱더욱더욱 뜨거운 눈물만 줄줄이 흘러, 앞을 가리는 겁니다.

예레미야는 급기야 대언자로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한하며 통탄합니다.
"오, 나의 재앙!", "오,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나를 온 세상에게 갈등과 폭력을 겪을 대상으로 낳으셨군요!" 하고 절규합니다. 
의인 욥처럼 그도 자신의 생일과 자신을 밴 모태를 저주하다시피 합니다.  
 

그런데..그의 '블루' 예언들은 20여년 뒤 고스란히 이뤄집니다.
아니 부분적으로는 이미 당대에 곧이곧대로 이뤄지기도 합니다.

물론 대조적으로, 예레미야 당대에도 장미빛, 무지개빛 '예언'을 하던 대언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귀를 간질여 주느라, 아부하느라 흉(凶)한 예언보다 "길(吉)한" 예언을 즐겼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명을 받잡아 언젠가부터 목에다 멍에를 얹고 바벨론의 지배를 감수하라는 예언을 하곤 했는데, '하나니야'라는 거짓 대언자가 하나님의 성호(聖號)를 팔아 장미빛 예언을 합니다:  
바벨론으로 옮겨진 성전 기구들과 잡혀간 왕과 귀족들이 불과 2년 내로(!) 다 되돌아올 것이라고.

이 때 예레미야가 하나니야에게 경고하지요:

    "샬롬(평화/잘됨)을 예언하는 대언자는 그 대언자의 말이 이뤄진 뒤에야 그가 과연 예호바님이 보내신 대언자인 줄 알게 된다"..
고.

그런데도 하나니야는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집어다 제 맘대로 꺾어버리고, 하나님이 바벨론 왕 네부칻네자르(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렇게 꺾으시리라고 입을 나불댑니다. 
성령님이 아닌 악령에게 받은 거짓 예언을 하면서도 두려워 하지 않고..죽음을 재촉하는 겁니다.

사람들의 귀가 솔깃해졌죠.
아, 다 좋게좋게 해결된다는 데야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오늘날도 사람들의 귀를 좋게좋게 간질여 주는 온갖 영성 '대언자'들의 말발에 사람들은 귀 기울여 들어 줍니다.  


하나니야 곁에서 어이가 없어진 예레미야는 듣다 못해 그냥 제 갈 길로 가버립니다.
잠시 후,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떨어집니다.

    "네(하나니야)가 꺾은 나무멍에 대신 내가 쇠멍에(네부칻네자르를 가리킴)를 만들어 놓았단다."

이어서 예레미야는 하나니야 당사자의 '블루빛' 앞날을 곧이곧대로 예언합니다.

    "들으시오, 하나니야. 예호바님이 그대를 보내지도 않으셨는데 그대가 이 백성에게 거짓말을 믿게 하더군요. 그래서 예호바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땅 위에서 없애 버릴 테다! 네가 예호바 앞에 망언을 한 탓이다. 올해 안에 네가 죽을 것이다.'"

정말 하나니야가 그 해 7월에 죽었습니다.
 
이처럼 핑크빛/장미빛/무지개빛 예언을 하는 교계 명사들의 말은 이뤄지고나서야 그 진실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계 명사들은 자기 꿈을 말하고 비전이란 것을 밝히면서, 성도에게 설렘과 큰 기대감을 불어 넣는 기법을 활용합니다. 
그러나 그 꿈과 환상은 이뤄진 후에야 입증될 동 말 동입니다.

그런데도 그 누구보다 자기 비전을 이룰 것처럼 나섰다가 와장창 박살 나 버린 예를 우리가 연전에 듣지 않았습니까.
성경의 '야베즈의 기도'를 세상 사람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식의 뉴에이지 형 기원으로 풀고, 나름의 비전을 이루는 데 써 먹으려고 했던, 모 명사..말입니다.
소위 "목적에 내몰린" 사람들입니다.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 주위와 배후엔 뉴에이저들, 비밀집단 사람들이 우굴거립니다.

이들의 황홀하고 환상적인 예언에 비하면, 예수님의 말세 예언은 어둡고 glooooooomy하기가 짝이 없지요.

누가 맞는 겁니까?
어느 쪽이 진짜인 겁니까?
누구 예언, 누구 말이 맞는 겁니까?


그렇다고..성경 전체가 다 마태복음 24장 같은 건 아니지요.
우린 섣부른 획일주의자가 돼선 안 됩니다.

사도 요한이 가이우스에게 "그대의 영이 잘 되듯 모든 일이 잘 되고 강건하기를~!" 하고 복을 빈 말씀은 당시 요한을 비롯한 성도가 로마 독재 황제들의 치하에서 박해를 당하던 때 한 것입니다.

성도는 그렇게 축복하고 축복 받아야 하며, 또 범사가 잘 되도록 마땅히 믿어야 합니다. 그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만사가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도에게 때에 따라 가난할 경우나 질병이나 박해나 환난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지요!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게 아니냐고요?
그게 아니죠!
성경은 바로 알고 바로 풀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인 성도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예언처럼 크리스토 안에서(!),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여(!), 예수 이름으로(!), 모두들 영이 잘 되듯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하나님은 진실로 원하시지만..그렇다고 마냥 태평하기만 하고, 어려움과 고난이 전혀 없다곤 말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녀들에게 박해와 환난, 도전과 훈련도 겸하여 허용하신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주님은 이 말세 예언에서 때때로 성도가 피할 길도 여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마냥 모두가 고난과 박해, 순교만 당한다고 말씀하시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와 세상의 앞날이 환할 것처럼, 마치 하나님의 왕국이 당장이라도 지상에 이뤄질 것처럼 떠들어대는 일부 교계 명사들의 말은 우리가 적극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름과 책을 팔아 먹고 있지만, 그 열매를 그들이 먹게 됩니다.
예레미야의 경고처럼 샬롬을 말하는 대언자는 그 샬롬이 이뤄지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 여부를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성경 전체가 잿빛이고, 긍정적인 요소는 전혀 없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걸..이 균형을 우리는 기억하고 슬기롭고 올바르게 판단해야 합니다.


티엘티 독자들은 슬기롭게 말세 예언을 깨닫고
성경의 모든 원리들을 활용하면서도
환난과 어려움을 견디고 마지막까지 늘 이기길!
전능한 주 예수 이름으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