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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 신드롬, 바람직한가요?

 

얼짱, 몸짱..세상이 만들어 낸 낱말입니다. 세상은 원래 그렇지요.
우리말글에서 '짱'은 별 뜻이 없습니다. 얼음장이나 유리장이 금 가거나 깨지는 소리일 뿐. 또 '배짱'은 배에 두둑한 힘이 들어 간 상태와 같은 담력을 뜻하지요. 

누군가 우연히 만들었을 터인데 순식간에 대 유행해 버린 이 말, '-짱'은 사람을 은근히 차별시 하거나 더 나아가 차별대우 하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짱/몸짱들이 한껏 이름을 떨치며 활개 치는 사회 속에서, '안 짱'과 '덜 짱'들이 모두들 차별대상 신세를 면해 보려는 건지 저마다 더 -짱이 되기 위해 나름대로 안간힘을 쓴다는 것-우리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특히나 시각문화가 극도로 발달한 웹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은연 중에 -짱이 아니어서, -짱이 되지 못해 '왕따' 당하거나 미움 받는다는 두려움에 싸이기가 일쑤입니다.

물론 자신의 순수 노력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워지고, 더 튼튼한 몸을 만들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나름의 자유. 하지만 얼굴과 몸에 특별히 비정상적인 문제가 없는 이상, 엄청난 돈을 들여 가며 거의 인간개조수술을 하다시피 구태여 억지로 깎고 다듬어 타고 나지 않은 '-짱'을 강제 조작한다는 것, 결코 건전한 방향은 아니며..결국 '짱' 되려고, 부모로부터 받은 내가 아닌 제3자의 얼굴과 몸을 갖게 되는 셈입니다. 물론 오히려 자식이 그렇게 되라고 적극 밀어주는 부모에 대해 할 말이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들마저도 -짱바람에 부대끼고 녹아가는 세월입니다. 과연 우리가 모두 이런 -짱들 되려고 태어나는 건가요?  

더 나아가 눈요깃감을 중시하는 사회는 동물도 아닌 사람 몸에다 급수를 매깁니다. 누구는 8등신으로부터 10여 등신 짜리까지 급을 정하고, 황금 아닌 사람에게 '황금비율'을 적용하다가 급기야는 노예나 동물처럼 '몸값'을 매기기도 합니다. 
또 -짱들을 높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줍니다. 그렇게 등급과 등신을 너무 추종하고 추구하다 보면 진짜 등신(等神)이 되기 쉽습니다. 아, 세상이야 원래 그렇습니다만.
세상은 그렇더라도..크리스천들만은 -짱 신드롬으로부터 해방돼야지요. 농담 아닌 진담입니다.

몇 해 전 한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과를 올린 어느 인사가 '거듭난 크리스천'으로서 기독교 사회에서까지 '짱'으로 명성을 떨치는 모습을 보고 한국 교계의 심각함을 느꼈습니다. 이 글로써 그 인사를 폄하하겠다는 아니라, 그 대회가 어떤 것인지 뉴스를 본 사람은 다 알기 때문입니다. 가릴 곳만 최소한 가리고 다 보여 주는 컨테스트가 아니었던가요. 그런 대회가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행사일 수 있습니까?!

구약 성경으로부터 잘못된 -짱 임프레션을 받는 교인들이 없지 않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본래부터 -짱을 추구하셨다는 식이지요. 아브라함은 천하 얼짱인 사라를 얻었고, 이짜크에겐 얼짱인 리브카를 주시고..몸짱 아들 에서를 이짜크가 편애했고..야콥은 얼짱인 라헬을 사랑했고..등등 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성경적인" '-짱 성(性)'이 도출되고 강조됩니다. 신부/신랑 감을 찾는 최우위의 조건으로 -짱성이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야콥의 -짱 선호 탓에 차별대우를 받은 레아를 더 사랑하셔서 많은 자식을 주셨고 더구나 레아에게서 메시아 선조인 유다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눈여겨 보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라헬을 미워하신 게 아니고 그 아들인 요셒도 끔찍히 사랑하셨습니다만..중요한 사실은 야콥의 -짱 선호 성향 및 차별성향을 하나님이 곱게 보시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또..에스테르(에스더)는 아하슈베로쉬(아하수에로) 왕의 왕비 후보로 삼촌 모르데카이의 도움을 받아 미인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간택될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스토리로써 -짱 선호 성향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하슈베로쉬는 자신의 잘못으로 술김에 첫 왕비를 잃었고, 자기 입맛에 따라 모든 처녀들을 한 번씩 '맛' 보고 에스테르를 선택했을 뿐, 미인대회가 무슨 기독교 대회도 아니며, 에스테르가 왕비된 사실이 -짱의 우위적 능력과 선호성향과 차별대우를 합리화 해 주진 않습니다.  

또 '노래들의노래'(아가서)를 갖고 -짱을 합리화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 궁 안에 1천 여인을 거느리고도 마음에 드는 여인을 단 하나도 얻지 못하고 레호보암 하나 밖엔 아들을 얻지 못한 왕 슐로모(솔로몬)의 눈이 추구했던 -짱의 아름다움이란 궁극적인 과제가 될 수 없습니다. 슐로모의 연인 슐라밑은 슐로모의 여성적 대칭인, 상징적인 이름입니다.

요즘은 교회에서도 찬양팀과 무용팀 등 앞에 내세우는 인물들이 많다 보니 웬만큼 -짱이 아니면 교회 안에서도 '출세'하기 어렵지 않나라는 차별의식 또는 "아니면 말지" 식 체념의식 등을 갖기가 쉽습니다. 너무나 -짱 환상에 젖다 보니 "하나님은 -짱들을 안 짱들보다 더 이뻐하실 거야".."과연 천국엔 안 짱들도 갈 수 있을까"라는 착각까지 없지 않을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종의 우위성을 갖고 경쟁하는 맛에서 살아갈 의미를 찾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함에는 더욱 묘미를 느끼고 삽니다. 지난 세월 속에서..두드러진 근육미나 몸의 특정 부위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던 친구들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근육체질일수록 얇은 셔츠를 입고 은근히 자랑하며 다니는 스타일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외모 탓에 은근하거나 노골적인 차별대우를 받은 상처로부터 온 깊은 열등감, 또는 불필요한 열등의식 탓에 고심하거나 인생살이에 회의를 느끼다 못해 자살욕구까지 느끼는 타잎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우아함은 현혹스럽고 미(美)는 허무해도
오직 주/야웨님을 두려워 섬기는 여인은 칭찬 받으리! (잠언 31:30 사역)

이 말은 '안 짱'들을 위로하기 위해 쓰여진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이 교훈은 레무엘 왕의 어머니, 곧 모후가 아들에게 준 교훈입니다. 이 모후는 자신이 하나님께 했던 서원으로써 얻은 소중한 아들이 왕이 되자, 현숙한 여인의 중요성을 두고두고 강조하면서 "네 힘을 여인들에게, 네 기력을 왕들을 망치는 길에다 쏟지 마라"며, 아울러 술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인 참된 칭찬을 받을 사람은 '-짱'이냐 아니냐에 달리지 않습니다.
타고난 -짱이든 아니든 오직 주/야웨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짱들은 자신의 '-짱'임을 자랑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누구든 그냥 생긴 대로 담담히 살아 갈 뿐입니다. 아무리 멋 있고 아래위로 "잘 빠진" -짱이어도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허무할 뿐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지옥 갈 운명이며, 막말로 그 -짱 됨은 지옥의 불쏘시개일 뿐입니다. 

안 짱들은 짱을 지나치게 부러워 하거나 질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안해 하거나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짱 신드롬은 심드렁하게 넘겨 버릴 수 있어야 하고, -짱 환상은 그야 말로 '짱!'(깨짐 소리)의 환멸을 갖다 줄 수 있음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목회자나 사역자, 지도자들은 사람을 결코 겉모습이나 외모로 차별해선 안 됩니다! 목회자는 미인/미남 컨테스트 심사위원도 아니고 '관상가'도 아닙니다. 곱상한 외모나 피부빛이나 인물을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로 평가하면 큰 일 납니다. 사람의 영을 무엇보다 존귀하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과 사도들은 한결같이, 외모에 치우치거나 겉모습으로 사람 차별 하는 소치를 경계했습니다: 

     야코보서 2:1-9(필독), 요한복음 7:24, 로마서 2:11, 코린토B(고후) 5:12, 갈라티아 2:6, 에페소 6:9, 콜로새 3:25 페트로A(벧전) 1:17, 3:3,

구약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빝서(레) 19:15, 신명기 10:17, 16:19, 욥 34:19.

인간은 겉사람 아닌 속사람이 문제입니다.
나의 실체는 거울에 비친 -짱이 아니라 속사람인 나의 영입니다.
얼짱/몸짱보다는 맘짱과 영짱이 더 중요합니다.

누가 영짱일까요? 거듭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맘짱일까요? 신적인 성품 곧 성령의 아홉 열매를 맺는 사람이지요.

주님 오실 때, 거듭난 영들은 주님과 같은 새로운 몸을 얻어 하늘로 들림 받습니다.
그 때의 몸은 세상에서 짱이든 안 짱이든 모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벽/완전한 몸입니다. -짱과 안 짱의 차별이 없는 영원한 정의와 공평의 사회가 거기 셋째 하늘에서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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