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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저런 글

바닷가 산책길에서


오랜만에 본격적인 방 청소를 하고 바람도 쐴 겸 바닷가 공원으로 산책을 나선다.  
새 봄을 맞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벚꽃과 목련꽃 등의 웃음이 요란하고 잔디가 이미 파릇파릇하다. 봄이라지만 큰 나무들은 아직 대부분 벌거벗은 채 가지마다 작은 싹 또는 볼그스럼한 꽃망울만 키우고 있다. 지금, 봄 기운을 재촉하는 이슬비도 내린다. 

물오리, 거위들이 부리 끝으로 풀을 뜯거나 물을 쪼으며 나직한 소리로 괙괙거린다. 거위들은 친구들이 날아오면 흥분하면서 큰 울림소리로 "응아따(응, 왔다?)! 응아따!" 환호하며 환영하는 거 같다. 길 가까이 선 녀석에게 '헬로'와 손짓으로 수작을 걸어봐도 눈만 뒤룩거릴 뿐 별 반응이 없다. "이슬비를 즐기시는 중이야. 자네 볼 일이나 보게"라는 듯.

청소 탓인지 목구멍이 가릉가릉해 심호흡을 해 본다. 어제도 이곳으로 걷기운동을 나왔었다. 모처럼 안개가 자욱히 끼여 모든 것이 구름 속 중천에 뜬 것 같아서 신비스러워 보였다. 나도 덩달아 붕 뜬 듯 기분이 흐뭇해진다.

요즘 내 딴에 혼자 개발한 독특한 걷기 방법은 팔을 제 무게로 내던지듯 흔들면서 가슴 앞으로 당겨 올릴 때마다 주먹 불끈 쥐기. 여러 달째 해 오는데 효과가 어떤지는 아직 모른다. 기분만은 괜찮다.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백인이 따라 시늉을 해 날 웃긴다.

집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 이내엔 연못 있는 공원이 여럿이다. 이 바닷가 공원은 유일하게 구내에 수십 대 분의 주차장이 있고 작은 이동화장실이 곁딸려 있다. 다른 공원은 구내 주차장이 없는 대신 모두 제대로 된 공중화장실이 갖춰졌다.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가장 큰 공원은 큼직한 인공 연못 옆 넓은 언덕에 온갖 나무 숲이 울창하고 못엔 낚시꾼들도 흔하다. 여기저기 고루 거닐면 시간이 꽤나 걸린다. 인근이 아시안 지역사회여선지 드나드는 사람도 아시안들이 가장 많다. 공원 나들이 온 사람들을 상대로 교인과 식구들이 함께 열심히 전도하는 곳이기도 했다. 짧은 영어로나마 몇몇은 눈물을 흘리며 새 믿음을 고백하곤 하던. 누군가는 타국에서 외로워 죽고 싶을 지경이라며 흐느끼던 곳. 

거기는 이름 모를 나무나 꽃, 풀벌레와 꿀벌들도 많고 어린이나 청소년들도 자주 찾는다. 큰 분수가 둘인 연못은 넓기만 하고 과히 깊지 않지만 얼룩잉어 등 팔뚝 만한 물고기들이 자주 보인다.
 
우리 옛 집에서 가까운 작고 아담한 공원은 사방이 차도로 둘러싸여 있어 한산한 편이지만, 큰 나무가 꽤  많고 수양버들도 있어 운치가 제법이다. 가끔 벤취에 앉아 점심을 먹노라면 눈이 호동그란 다람쥐들과 비둘기들이 떼거리로 모여 들곤 하는데 아무 먹이나 함부로 먹여 주면 건강에 좋지 않기에 유난히 눈치가 뵈는 곳.  

이따금 마켙을 오가는 길에 들러 작은 연못 둘레를 여러 번 돌며 걷는다. 올 때마다 최소한 한 쌍씩의 청둥오리들이 노닌다. 연못 곁에 작은 돌거북도 있다시피 이 곳엔 자라나 거북이가 엄청 많다. 과거 한 때는 퍼런 물풀과 마구 버린 쓰레기로 물이 더럽기도 했지만 못 한 가운데 분수가 둘 생긴 뒤로 수질이 깨끗해졌다. 오렌지색 플라스틱 울타리를 자주 쳐 놓는 걸 보면 안전관리를 잘 하는 편이다. 관리인 한 명은 늘 잘 웃는 중국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곁에 오르내리막 길이 있는 호수다. 다른 공원의 못들은 그냥 못으로, 이곳은 호수로 부르고 싶다. 왠지는 나도 모른다. 이 곳은 소나기나 폭풍우가 지나가면 지대가 낮은 한 쪽이 범람하여 길이 온통 질퍽해지는 탓에 예쁜 운동화를 신은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우리 아이도 어릴 때 데리고 오면 걷다가 투덜거리곤 했다.

그러나 나는 이 곳을 가장 좋아한다. 아이가 인근 언덕 위 학교에 레슨을 다니던 몇 년 간 가장 자주 찾던 곳이다. 아이를 기다리며 호수 둘레를 한 번에 열 바퀴 이상 돈 적도 있다. 둘레를 돌면 나름의 단상이 떠 올라 글로 정리해 보기도 했다. 산책이 갖다 주는 또 하나의 기쁨은 방언기도다.

내가 보기에 이 호수는 구석마다 개성이 강하고 계절의 변화도 가장 두드러진 곳이다. 철 따라 모습이 다채롭고 운치가 있다. 겨울 풍경은 처연하고 살벌할 정도지만 그래도 마음을 끈다. 
못 한 쪽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갈대밭과 수련들이 많아 전에는 여러 쌍의 백조가 발견되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통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약을 자주 뿌리는 탓이 아닌가 싶다. 그럴 때면 젖은 길 위에 무지갯빛 화학약물 방울이 떨궈져 있어 기분이 언짢아지곤 한다.  

약간 높은 언덕길 옆 숲엔 이 호숫가의 명물인 거대한 Y자 형 나무가 서 있는데, 굵고 곧은 밑둥지 한 쪽에 큰 구멍이 나 있고 약간 기울어져 있다. 사람들은 이 나무가 곧 언젠가 바람에 넘어갈 것이라고 예견하곤 했는데, 아직도 여러 해 째 끄떡 없이 건재한다. 뿌리가 깊어서일 것이다.

해마다 초파일이면 불교도들이 못가 여기저기서 자라/거북이들을 '방생'하는데 딱 질색이다. 거북이가 호수 전체에 너무도 우굴거려 징그러울 정도다. 그래선지 싱싱한 물고기들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그들 말대로 이 수많은 자라들이나 거북들이 '환생'하면 모두 독실한 불교도가 되려나? 아니면 힌두교도? 그러나 두 앞발로 합장하는 거북이를 여태 못 봤다. 졸음 속 일광욕은 즐길 망정. 그런 '윤회'.. 결코 달갑지 않다.
그냥 단 한 번 예수교도로 거듭났으니 주님께 부름 받아 공중 휴거될 때 세상살이 끝내련다. 

이슬비에 온 몸을 적시며 바닷가를 서서히 벗어난다. 
어둠이 내리는 산책로 위엔 이제 가는 빗발 밖엔 아무도 없다. 바닷가라지만 밀물/썰물만 뚜렷할 뿐 파도도 얕고 조용해 강 같은 기분이다. 줄줄이 굵은 바위로 된 둑도 낮다. 물결이 방파제를 넘는 모습을 아직 한 번도 보질 못한다.

썰물처럼 나도 이 저녁 이 곳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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