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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현대영성비평

헨리 나웬이 받은 뉴에이지 영향

관상영성가 헨리 나웬(딴 표기 '나우웬')은 카톨맄 예수회 사제였지만, 구교에서보다 신교 쪽에 유난히 더 알려진 인물이다. 일각에서 '20세기 최고의 영성'으로 꼽히기도 한다. 한국의 두란노서원 등 상당수의 신교 출판사들이 그의 책을 번역/발행해 기독교서점들을 통해 보급해 왔다. 그러나 그는 관상가/신비가/심리학자/동성애자에다 보편구원론자이기도 하며, 따라서 수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그가 아끼던 수제자 격인 라벝 조나스 박사는 루터교 출신으로서, 아내는 성공회 사제이지만 자신은 '빈 종'이라는 수도원/사찰의 대표인 뉴에이저이다. 나웬은 '빈 종' 설립식에서 축사를 했다. 나웬은 어느 모로 보나 뉴에이저였다고 할 수 있다. [티엘티 편집팀]



원제: 교계 지도자들이 헨리 나웬 사상을 증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등댓길 편집팀 아티클 / 티엘티 번역
[ ]표 안은 역자의 것


헨리 나웬은 생애 말엽의 책, '안식여정'(Sabbatical Journey)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 나는 믿는다. 예수님은 하느님 집 대문을 열어 주러 오셨고,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알든 모르든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오늘 나는, 내 성소((聖召/call)가 각 사람이 하느님께로 가는 나름의 길을 청구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본다." ('안식여정' 영문판, 1998년. 제51쪽)

나웬의 이런 주장은 성경적인 기독교에 전혀 맞지도 않고, 근본적으로 크리스토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부정하는 것인데도, 헨리 나웬은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 목회자들, 신학교 교수 등에 의하여 '큰 영성'으로 칭송 받는다.

미국의 '국가 목회자', 맄 워런(딴 표기: 릭 워렌) 목사의 부부도 헨리 나웬의 글을 높이 장려해 왔다. 또한 교수가 나웬의 책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기독교 대학들도 드물다. 첰 스윈돌(척 스윈돌), 데이빋(데이빗) 제러마이어 등 교계 명사들도 나웬을, 우러러 보고 크게 받들 인물로 여긴다. 

검증가 레이 영엔은 나웬의 인기에 대하여 말한다:

    "수많은 목회자들과 교수들이 나웬의 심오한 사상에 크게 매료된다. 실상 나웬 전기작가들 중 한 명이 1994년 3,400명의 신교계 지도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빌리 그래엄 다음 순위로 영향이 큰 인물로 꼽혔다."

그 까닭이 무엇일지도 영엔은 풀이한다:

    "나웬은 하느님께 대한 힘찬 디보션을 시적이고 위안적이면서도 현저하게 지적인 스타일과 합성시킨, '크리스천 인텔리겐차'로 불릴 수 있는 무엇으로써 강력한 공감을 자아낸다. 어느 인사는 나에게, 나웬의 매력은 누군가를 기분 좋고 편안하게 해 주는, 따스한 모성애의 포옹 같은 것에다 비견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나웬이 초종파적, 만유내재신론적인[각주:1] 성향을 지녔음을 살펴 보자.

앞서 언급한 대로, 나웬이 생애 말엽에 쓴 일기/저널인 '안식여정'에 따르면, 그는 임종하던 해에 차크라(요가에서 말하는 기가 모여있는 부위. 척추를 따라 7개소가 있다고 함. 일본 선불교의 '레이키'/靈氣와도 연계됨)에 관한 테잎을 듣고 있었다고 시인했다.

또한 같은 책에서, 뉴에이저 동성애자인 앤드류 하비와의 토크쇼에서 그와 대담을 나누면서 특히 하비의 신비스러운 친화성에 이끌렸다고 썼다. 하비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본질적으로 신적 존재(the Divine)의 자녀들이며, 지구 위에서와 우리 몸 속에서 우리의 근원(Source)과의 동일성을 깨달을 수 있다." 

의심할 나위 없이, 헨리 나웬은 생애 동안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다 못해 급기야 자기의 영적 관점을 바꿔 만유내재신론적인 성향으로 전환한 것이다.

사실 나웬은 신비주의 우물 물을 오래 길어 올리다 보니 이 뉴에이저 영성을 끌어안게 됐다. 그의 초기 저작물에서 그는 (그가 켄터키주의 겥세마니 수도원에서 한 번 만난) 토머스 머튼(딴 표기: 토마스 멀튼)에 흥미를 가졌다. 머튼은 중세 수도원으로부터 관상영성을 기독교계로 이끌어 들이는 데 기여했다. 머튼 자신도 신비주의로 이끌리면서 신/하느님은 모든 인간 속에 내주한다고 믿게 됐다. 

알고 보면, 나웬은 이미, 초기작 '내밀'(Intimacy 1969년), '창조적 사목'(1971년) 등에서 머튼에 관하여 언급한 바 있으며, 다소 덜 알려진 책, '살기 위한 기도-토머스 머튼-관상 평론'(1972)이라는 책도 써 냈다. 즉 머튼의 관상영성에 침잠하기 오래 전부터 머튼의 신비주의에 흡착돼 있었던 것.

나웬은 자신의 삶에 끼친 머튼의 '영향'을 시인했다. 이 책에서 그는 머튼이 힌두교 수도승 브라마카리와 교류할 때가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고 논했다: "머튼은 브라마카리에 관해 유머와 깊은 존중, 경의를 담아 썼다." 신비가(mystic)가 될 길을 찾던 머튼은 당시 수많은 "위대한" 동양 신비가들을 연구했고, 브라마카리로부터 신비가가 되려고 구태여 기독교를 떠나지 않아도 되며,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즉 중세 신비주의)의 벽 안에서 찾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머튼은 브라마카리의 조언을 받아들여 기독교에 신비주의를 끌어들이는 데 한 선구자가 됐다. 훗날, 리처드 포스터는 복음주의권 안에서 머튼의 목청이 되다시피 했다.

나웬은 '살기 위한 기도-토머스 머튼'을 쓴 뒤에, 관상영성에 관한 여러 권의 다른 책을 계속 써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심정의 길'(1981), '예수의 이름으로'(1989)인데, 후자는 맄/케이 워런 부부가 가장 선호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나웬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도덕으로부터 신비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맄/케이 부부는 나웬에 관하여, 라벝 슐러에게서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위급 프리메이슨인 노먼 빈슨 필을 뒤이은 긍정철학가인: 역자 주) 슐러 역시 뉴에이지 성향이 높다. '성공적인 교회 리더십을 위한 라벝 H. 슐러 학교'의 학생은 모두 나웬에 관하여 "살피고 들어야" 했는데, 워런은 그 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심정의 길'에서 나웬은 동양명상에 관해 말한다:

    "간단한 낱말의 조용한 반복은 우리 마음을 심령 속으로 내려가도록 도와 줄 수 있다. 이같은 단순 기도 방식은...우리를 하느님의 능동적인 현존으로 열리게 한다."

레이 영엔은 그의 '배도의 시대'에서 이 '능동적 현존'에 관해 언급했다.

    "하느님의 '능동적 현존'이 그(나웬)에게 불행히도 고전적인 복음주의 기독교가 아닌 고전적인 힌두교와 병존하게끔 가르쳐 주었다."

나웬은 또 다음과 같이 썼다: "기도는 '혼의 작업'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혼은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신성한 센터이기 때문이다...그것은 하느님의 심정 속이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일치의 충만한 실현으로 우리가 갈 수 있게 해 준다."

눈여겨 볼 점은, 나웬은 여기서 모든 크리스천들이 하나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것 속의 신이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든다는 만유내재신론 개념이다.

토머스 머튼처럼 나웬 역시, 신비주의 기도를 모든 기독교 전통 안에 침투할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만들려는 의도였다. 그는 복음주의 교회가 많은 장점을 지녔는데, 단 하나-신비주의가 "빠졌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침묵-관상기도를 해소책으로 발견했다.

[ 예수회 사제인 나웬이 도대체 뭔데 복음주의 교회를 염려해 주는 것인가? 쥐가 괭이 생각을 해 주는 것인가? 그야 말로 웃기는 얘기다! 언필칭 '복음주의'란 용어에 쉽사리 속지 말아야 한다. ]

이 악령의 교리는 제 아무리 나이스하게 들리고 매력적이고 아무리 헌신적(또는 디보션적)으로 보여도, 모든 것이 신적 현존(모든 것이 하나)이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그 말대로라면, 싸탄과 하나님도 하나라는 말이 되니 명백한 이단설이다. 헨리 나웬이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하나됨의 완전한 실현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 말이 참되다면, 예수 크리스토와 싸탄도 하나라는 말이 된다. 독자여, 그런 말은 악령이나 가르칠 만한 것일 뿐이다!

이 비평문에 의혹을 품으면서, 오히려 헨리 나웬의 글을 강매하고 증진하는 크리스천 서클 사람들(교수/목회자/교사 등)은 자신들이 토머스 머튼의 저작물을 보급하는 것과도 다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하나"라는 그들의 주장과도 같이, 헨리 나웬과 토머스 머튼은 본질상 하나이다.

그들은 둘 다 동양명상을 중시하고, 신에게로 가는 길들이 많다고 믿으며, 사람들은 물론 모든 것들 속에 신성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웬의 책뿐 아니라 그의 30년간의 저널, 아티클, 다른 책에 써 준 서문들, 담론/대담 등이 죄다 입증해 주는 진실이다.   

기독교와 힌두교 영성의 혼합을 시도한 책을 위한 서문에서 나웬은 다음과 같이 썼다:

    "저자는 불교/힌두교/회교라는 선물 앞에 놀라운 관용성을 보인다. 그는 크리스천의 영성생활을 위하여 그들(곧 전술한 종교들)의 위대한 지혜를 발견한다...라이언(저자)은 인도로 가서 기독교 아닌 다른 영적 전통을 배웠다. 그는 많은 보물들을 갖고 돌아와 이 책을 통해 그것들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 선물? 보물? 위대한 지혜? 나웬의 의식 수준을 알 수 있다. 그의 애독자나 그를 추천한 신교인사들의 수준을 포함하여.. 여기 영적 분별이라곤 전혀 뵈지 않는다! ]

나웬은 심지어 힌두교 구루인 에크낱 에아스와란의 '명상'이라는 책에 서문을 써 줬다. "이 책은 나를 크게 도와 준다."고.

그럼에도 불구, 많고 많은 기독교 인사들과 지도자들이 자기 따르미들, 독자들, 학생들, 회중들에게 헨리 나웬 쪽을 가리키고 있다. 이 지도자들은 헨리 나웬의 실체를 알든 모르든, 그들은 사람들 속에 영적 기만과 영원한 손실과 불이익을 끼칠 수 있는 그것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1. 萬有內在神論的/panentheistic. 모든 존재들이 신 속에 있다는 주장. 칼 크라우제가 고안해낸 용어로, 찰즈 하트숀, 매튜 팍스 등이 애용해 왔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