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수시로..작은 예배 도우미가 되렵니다.
[기존교회를 무시/배척하거나 대신하거나 무너뜨릴 의사로 이 자료를 올리는 게 아닙니다. 주변에 마땅한 교회가 없거나 형편상 예배 드리기가 어려운 분들을 우선 대상으로 합니다. 성도는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
우선 매주말 예배에 도움되는 가이드를 올립니다.
각자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적용하시길..
성도는 어디서든 예배할 특권/자격/의무가 있습니다! 교회란, 눈에 보이는 건물만이 아닙니다. 내가 있는 곳에 2,3명 또는 그 이상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거기가 곧 교회입니다! 거기가 예배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높이고 기뻐하고 그 분을 기꺼이 기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말 많고 글 많은 김삼은 어떻게 예배를 이끌까?..궁금한 분이 계실 터입니다. 저는 그냥 평범하게, 자유롭게, 아무 형식에도 구애 받지 않고 이끕니다.
순서라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성령님이 슬기를 주시는 대로..이끌린다고 해야지요.
1월 6일 아침경배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너무너무 좋으신 분이지요?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늘 우릴 사랑하시고..
마치 수 억만의 별이 깔린 넓은 우주의 바다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좋은 성품과 덕성을 지니셨지요.
그 분이 나의 창조주이시면서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친아버지처럼
아니 친아버지 이상으로 우리에게 정다우셔서
내게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신다는 겁니다.
지금 이 시간도..
[함께 부를까요?]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의 경배를 늘 받아 주시니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
선하신 아버지, 선하신 아버지.
참 선하신 나의 아버지..
그러나 그 분은 오로지 예수 크리스토 안에서 그러길 원하시며
그러실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크리스토 안에서..!
그 어떤 '길'도 예수님 밖에는 다 소용 없는 것입니다.
예수 크리스토..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러기에..이 시간도 예수님을 통하여 그 분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잠시 동안 그 어떤 것도 잊어 버리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오늘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며 중재하시는 분~!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래서 예배자는 오직 신령과 진리-성령과 말씀-으로
그 분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교회와 신자에게 내려오신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그 분을 의지하여 예배합니다.
한 번 입을 열어 고백해 보십시오.
-아버지, 사랑합니다 라고..
아버지 하나님,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나도 널 사랑한단다"고 하십니다.
널 사랑하기에 내 하나뿐인 아들을 네게 주었단다 하십니다.
오 할렐루야!
그 하나님을 우리는 사랑합니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기리고 싶지 않으세요?
저는 (기존) 한국찬송가 30장을 좋아합니다.
(김삼 번역)
1. 옛 아브라함이 경배한 하나님
예부터 길이 계시는 사랑의 주
여호와 자존자 천지가 섬기니
나 엎드리어 주 이름 늘 높이네
2. 주 신실한 약속 나 의지하면서
독수리 날개 치듯이 늘 오르리
주 얼굴 뵈오면 그 권능 기리고
그 크신 은총 영원히 노래하리
3. 뭇 천군천사가 늘 섬기는 주님
오 거룩거룩 또 거룩 전능의 왕!
어제와 오늘과 영원히 계시는
여호와 우리 아버지, 늘 기리네
4. 승리한 성도들 다 감사하면서
주 성부성자 성령께 영광 영광
옛 아브라함과 또 나의 하나님
끝 없는 찬양 노래로 늘 높이네
지금 부른 찬송가를 음미해 보십시오.
늘 대해온 성경 말씀을 기억하면서.
.................
(기도로 들어 가며)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그 분께 말을 거십시오.
그 분과 대화를 나누십시오.
무엇보다 그 분은 기도 속에서도 찬양을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그 분의 이름을 송축(blessing)하는 것을 즐기십니다.
찬양은 노래만이 아닙니다. 기도 속에서도 그분을 기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마치 수많은 하나님의 이름이 적힌 명함(비지니스 카드)과도 같습니다.
그 분의 '명함'을 읽으며 이제 그 이름을 불러 보세요.
--------------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바위, 나의 힘, 나의 든든한 요새,
높은 망대,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이십니다.
또한 나의 머리를 높이 들어올려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늘 양떼처럼 이끄시는 목자이십니다.
나의 목자-'야웨 로이'이십니다. 선한 목자..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 안에서..난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네. 아멘~.
나를 맘껏 먹고 쉬도록 푸른 풀밭에도 눕히시고
잔잔한 생명 물가로 데려가 말랐던 목을 축이게 하십니다.
늘 그 말씀으로 내 혼을 신선하게 하십니다.
그 분의 좋으신 이름 때문에(!)
우리를 의의 오솔길로 이끄십니다.
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비록 내가 캄캄한 죽음 골짜기로 걸어도 겁내지 않음은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날 위로해 줍니다.
주님은 내 적들이 보는 데서 내 앞에 식탁을 펼치십니다.
귀한 손님에게 하시듯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십니다.
그리고 나의 잔이 가득 찹니다.
참으로 주님의 선과 사랑이 나의 평생
날 따를 테니
나는 주님의 집에 길이길이 머물렵니다.
....
이 시간 나의 지은 죄를 자복합니다.
나의 맘과 생각과 입과 몸으로 저지른
모든 잘못과 죄, 실수와 과오를 주님 앞에 내 놓습니다.
모르고 지은 죄 알고 지은 죄들 모두모두..
주님 용서하시고 어린 양의 피로 씻기시고
나를 덮어주소서.
주위의 형제자매들, 함께 기도하는 모든 분들의
죄와 허물도 모두 용서하시고 씻겨 주소서.
우리 모두, 어린 양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여
아버지의 보좌 앞에 담대히 들어 갑니다.
오늘은 이런 예배가 처음이어서(뭐, 별 다를 거야 없지만, 정말 처음입니다)..
하나의 경배 도우미로서 맨 첫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아마도 요한복음 4장에서가 좋겠지요.
"우리 선조(사마리아인들)는 이 산(그리짐/Gerizim=그리심)에서 예배했습니다. 그런데 귀하들(유대인) 말씀으로는 예루살렘이 예배할 곳이라고 하더군요."
예수님이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여인, 나를 믿으오. 때가 이를 테니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그대들이 아버지께 예배하게 될 거요.
그대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오. 구원이 유대인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오.
하지만 때가 되면-그리고 지금이 그 때이지만-참 예배자들이 아버지를 영으로 그리고 진리로써 예배할 거요. 아버지는 그렇게 예배할 사람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라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사람들은 그 분을 영으로 그리고 진리로 예배해야 하오."
사실 오늘 이 예배를 위해 따로 준비한 메시지(영적 싸움에 관한..)가 있었지만..생각을 바꿔 이 말씀으로 대신합니다. 준비했던 것은 별도의 글로 올리렵니다.
사마리아는 고대에 남 왕국인 유다와는 반대 편인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권이었지요. 사마리아 사람들은 포로기 전후 종주국의 정책에 따라 이방인들과 통혼을 했기에 혼혈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를 않았지요.
그런데 유대인이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몸소 이 지방으로 들어서신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바로 그 날이 이 쉬카르 마을이 복음화 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전체가 복음화된 것은 수십 년 뒤의 일입니다(행전 8:4~25).
만약 이 여인이 (행전 8장에서) 예루살렘 교회 7집사의 한 명인 필맆이 복음 전할 때까지 살아 있었다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그제야 비로소 온전히 성취된 사실을 느꼈을 터입니다. 사마리아에서.
예수님은 여기서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예배에 관한 진리-예배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우선 예배는 장소에 묶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어떤 '곳'(place)이 아니라 예배자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고대는 장소를 중시했습니다. 까닭은 하나님이 지성소 안,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 곧 케룹 천사 형상이 날개를 드리운 '시은좌'(mercy seat)에 강림해 머무셨기에 그 앞에서 경배해야 했으므로 회막(tabernacle) 또는 훗날의 성전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예배는 하나님이 성령으로서 신자 속에 계시기 때문에 신자가 모여 예배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습니다. 장소가 아닌 예배자가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예배는 영과 진리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하나님 차원/채널로 우리 자신을 조율하되 성령님과 말씀 안에서 해야 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구약시대는 혼과 육 중심으로 예배했습니다. 사람들은 죄 사함을 받아야 감히 하나님 앞에서 경배할 수 있었기에 여러 짐승들을 쳐 죽여 그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경배의 도입이요 기본이었습니다. 다윋은 하나님 앞에서 있는 힘껏 몸을 흔들며 춤을 추어 경배했습니다. 레비인들은 정성껏 음악을 준비하여 있는 힘껏 목청껏 노래로써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포로시대 이후 점차 예배는 말씀 중심으로 바뀌어 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금식 등 인간의 혼과 힘이 본위였습니다. 그러다가 성령님이 강림하신 신약시대엔 사람의 영 중심으로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서 예배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행전에 나타난 예루살렘교회의 예배 모습에서도, 사도 파울이 한 말씀에서도 분명해집니다(행 2:41~47, 코린토A 14:26).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모임, 성도의 친교를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이것은 특정 교회만의 예배가 아니라 신약시대 교회의 예배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으로 진리로 예배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아직도 구약적인 장소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당을 '성전'이라며 부르며 성전에서만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것으로들 착각하지요. 새벽기도 모임도 그런 성격이 강합니다. 새벽 기도는 성경적이지만, 교회에서 모여야만 올바른 새벽기도인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디서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으로, 진리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섬겨야 합니다.
지금-신약시대/성령시대/교회시대는 혼/몸 중심의 예배가 아닌 영 중심의 예배가 중요하며, 그것은 성령님이 제공해놓으신 모든 자원을 활용함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장소보다는 신자들 자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크리스토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항상 함께 하기를..!
오늘 예배, 마칩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 정성껏 준비하렵니다.
원하시는 독자는 영적이고 좋은 찬양 파일을 올려 주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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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원이든지.. 다만 단 한 절이라도 그 기도를 뒷받침할 성구를 지니십시오. 그것이 요한복음 15:7을 따르는 길입니다.
대체로 순서는 급한 순서가 아니라면
바깥부터..먼뎃 사람부터 하는 게 좋습니다.
예컨대 우리 민족과 해외 한민족을 위하여..
남북 통일을 위하여, 억압 속에 고통 받는 북한 사람들을 위해..
대통령과 행정부, 국회/의회와 법조계,
내가 사는 도(주)/시/군/면/읍/리(카운티/타운/보로) 등의 지도자..등등
그리고 우리 교회, 내 이웃,
그 다음엔 나의 가족, 나 자신 등등. ]
이 모든 간구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 위에 서서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반드시 꼭 응답될 줄 믿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1. 그 분이 살아계심과
2. 그분을 찾는 이들 모두에게
보상자(마땅히 받을 대가를 주는 상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엔 대가가 딸리며
그 대가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