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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현대영성비평

'새 과학'과 관상 영성





새 과학과 관상 영성

출처: '등댓길' 편집팀(Editors at Lighthouse Trails)


[키레네님의 요청에 따라 번역한 것을 여기 올립니다.]



7월 4일자 '샌안토니오 익스프레스-뉴스'는 카톨맄 수사, 토머스 키팅[각주:1]에 관해 특필했다[각주:2]. 키팅은 수도원의 관상영성(contemplative spirituality)을 바깥 '평신도'들에게 소개한 도구 노릇을 한 사람이다. 그 기사에서 키팅은 지난 오랜 세기 동안 관상신비가들이 말해 온 것들을 재론했다: 

즉, 신비주의는 세계 모든 종교들의 공통기반 내지 일치점이라는 것.


이 신문 기사는 관상영성이 복음주의와 신교권 안에서 해온 심대한 역할에 관하여 본 '등댓길'(LT. 변증/비평 연구 사이트)이 왜 그처럼 우려해왔는지를 새삼 입증해 준 셈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불법의 비밀"(내지 '불법의 신비': 특히 사람과 신이 하나라고 믿는 유의 오컬트)이라고 성경[각주:3]이 부르는 그것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또 다른 관상 수사, 토머스 멀튼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관상 체험은 따로 떨어진 정체성의 합일도 그들의 혼합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정체성들이 '모든 것은 신(하느님)'이라는 사상 안에 (녹아) 사라져 버림이다."


  "관상기도는 '하느님 안의 휴식'과 같다고 수사(키팅)는 말한다"는 제목의 이 신문 기사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 요즘 서서히 모멘텀을 확보해 가는 토핔이다.


    "과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모든 물질적 우주의 근원의 '하나됨'(oneness)을 발견하려 하고 있다. 또한 생명의 모든 구조형태 속에 나타나는 '하나됨'과 관상기도의 영적 수행이 갖다 주는 그 하나됨에 의하여, 우리의 공통점과 모든 다른 인간과의, 그리고 기실 모든 자연과의 일치점을 인식하게 만들어 준다."  


여기서 "모든 물질적 우주의 뿌리의 하나됨"이란, '새 과학들'(new sciences) 또는 "영적 과학들"(spiritual sciences)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가리킨다. 이 '새 과학'은, 우주의 모든 세포가 서로 연계돼 있고, 관상기도를 수행함-그래서 침묵에 들어감-으로써 이 우주적 '하나됨'을 구현하도록 각성시켜 준다고 사회를 확신시키길 바라고 있다.


우연히도 이 신문기사는 때마침 본 '등댓길'이 워런 스밑[각주:4]의 저서- '놀라운 기만'(A "Wonderful" Deception)-을 펴 내는 시점에 떴다. 스밑은 그의 이 새 책에서 '새 과학'의 특징을 규명하면서, 기독교와 뉴에이지/새 영성 및 기타 종교를 맞물리려는 새 세계관에 대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포용에 대하여 과연 무엇으로 합리화 하려는지를 묻고 있다.


스밑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 '새 과학'과 '새 수학'-양자역학, 카오스론, 미상(未詳) 도형론(fractal theory)-을 필시 거칠 것이다. 이 '새 과학'으로 신/하느님은 초월적 존재인 동시에 만유 속에 내재함immanent)-즉 모든 것 속에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러 들 것이다"(AWD, p.165)고 통찰했다.


이 신문 기사는, 과학과 종교는 서로의 목줄기를 노려 왔으나 지난 한 두 세대 동안 흐름이 "바뀌기"(to shift) 시작했다는 키팅의 말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과학이 모든 세계 종교들의 신비적 체험 언어, 특히 우주적 하나됨의 감각과 시공간 너머와의 상호대화 및 의사전달의 감각과 매우 비스름한 언어로 말하고 있음을 인식할 만큼 더 바뀌어야 한다고 내다 본다.


세계의 신비가들은 신비주의가 모든 세계 종교의 공통분모라는 이 신념에 맞장구칠 것이다. 토니 캠폴로도 그의 책 '내 마음을 토로하며'에서 "신비주의 신학은 기독교와 회교 사이의 일치점을 제공해 준다"고 말한 바 있다(그 책 149,150쪽). 물론 토머스 멀튼도 모든 종교전통 사이의 이 일치점을 자주 논했다. 이것은 뉴에이저들의 '핵심 가치관'의 하나이기도 하다.


뉴에이지 도서 '위처럼 아래도'에서는, 오컬티스트인 올더스 헉슬리[각주:5]가 형이상학(신비학)은 모든 세계종교를 하나로 묶어 준다고 믿는 "영속적 지혜"에 관하여 한 말을 참조했다(그 책 2,3쪽).


신비주의 수행이 왜 모든 종교전통의 합일이라는 센스를 갖다 주는지 까닭이 있다. 침묵의 장소 또는 신비적 개조 상태는 사실 친숙령들(familiar spirits, 제임즈왕역 성경/KJV 레위기 19:31[각주:6])의 영역(領域)이기 때문이다. 신비주의가 모든 종교들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 자체가 신비학 수행은 성경의 하나님이 승인하신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로 가는 오직 한 길은 예수 크리스토뿐이며, 참되신 하나님 아래서는 모든 세상 종교들이 결코 하나될 수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모든 무릎이 오직 참되신 하나님, 구주이신 예수 크리스토 앞에 꿇고 복종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 신들은 결코, 참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거나 합쳐질 수 없다.


헨리 나웬이 신비주의를 수행하던 자기 삶을 끝내면서 남긴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아니었다고 믿는다며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가는 나름의 길을 찾도록 돕는 게 자기 사명이었다고 느낀다는 것이었다. 나웬은 이 신비주의관의 핵심 개념을 표출한 셈이다.


워런 스밑이 "'놀라운' 기만"에서 지적한 대로, 이에 대한 논거는 나웬 스스로가 밝혀 주고 있다: 

    "우리 내성소(inner sanctuary)에 머무시는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내성소에 거하는 신이기도 하다." 


누군가는..'등댓길' 또는 같은 입장의 사람들을 "편협하다" 또는 "율법적이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진솔하고 논리적인, 올곧은 시각이라면, 십자가의 가르침과 '만유내재신론'과는 엄연히 판이한 차이가 있음을 직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것이다.
   나웬의 견해는, 신/하느님은 인간 탄생 때부터 모든 사람의 심중에 계시다는 것이다.


나웬이 옳다면, 뭣 때문에 예수 크리스토를 구주로 믿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웬은 복음에 관해선 열의가 없었다. 바꿔 말하면, 복음이 그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인간 상황에 관한 나웬의 신념을 복음이 거부하기 떄문이다.

우리는 위 신문기사가 말한 이 '바뀜'을 성경이 경고한 바로 그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 4:1)


세상은 인류와 모든 생물이 하나의 신적, 우주적, "과학적"인 에너지 곧 새 과학자들이 만물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그 못지 않게 기독교도 관상기도 수행을 통하여 향해 가는 그 길로 '변천'해 가는 이즈음, 성경을 믿는 신자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실제적이고 빨리 움직여 가는 이 영적 기만에 관해 계속 경고해 줘야 할 것이다. 


  1. 베네딕토회의 일파인 트라피스트 수사(修士). 카톨맄 사제 윌리엄 메닝어, 버질 페닝턴 등과 함께 1970년대에 향심기도(관상기도) 운동을 일으킨 선구자. 20세기초 관상영성을 연구한 토머스 멀튼 역시 트라피스트였다. [본문으로]
  2. http://www.mysanantonio.com/news/religion/49894532.html [본문으로]
  3. 데살로니가후서 2:7 [본문으로]
  4. Warren Smith. 복음주의 변증학자이자 뉴에이지 비평가/저술가. 자신이 뉴에이저 출신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뒤, 뉴에이지 사상의 교회내 침투를 막는 데 맹활약을 해오고 있다. [본문으로]
  5. 영국 소설가. '굉장한 신세계'(Brave New World) 저자: 역자주 [본문으로]
  6. 친숙령들은 싸탄의 지배를 받는 대표적인 악령 그룹들의 하나로, 고인을 그대로 흉내내거나 하여 특히 심령학계, 종교계 등을 혼란에 빠뜨리는 특징이 있다. 가령 강신제(降神祭)에서 영매가 불러 들이는 고인의 '유령'은 진짜 영이 아닌 친숙령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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