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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님, 로또 하세요?

 




지난 해(2018) 한국 로또(lotto, 딴 발음: '로토'/'라로' 등. 영어로는 통칭 '라러리/lottery'라고 부른다) 판매율이 사상 최고였단다. 바꿔 말하면, 하루 아침에 팔자를 바꿔 줄(?)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만큼 나라의 총체적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말도 된다. 하기야 경제상황이 좋더라도 사행심은 어찌할 수가 없다. 경제 상황이 좋든 나쁘든 로또는 계속되니 말이다.  

이탈리아어인 로또는 '행운'이라는 뜻이다. 즉 아주 드문 행운 내지 재운이 따라 줘야 된다는 것. 속된 말로 '땡잡기'는 팔자소관이라는 것. 그런 점에선 웬만한 도박놀음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로또를 시행해온 나라에서마다 거의 다, 원래는 불법이었다. 영국조차도 그랬으며, 미국은 아직도 몇몇 주들이 불법화해 놓고 있다. 그런 데서 로또를 살려면 타주로 가야 한다. 왜 그럴까? 사행심을 조장하다 못해 향(向)도박 심리와 중독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시는 야바위를 안하겠다며 손가락을 자르고도 나머지 손가락으로 되풀이하듯, 허탕친 로또 티킽을 쓴 웃음과 침을 내뱉으며 찢어 내버리고도, 돈이 아쉬우면, 한 눈에 싸게(?) 보이는 방편으로 그 티킽을 또 골라잡는 것이다. 

로또의 평균 당첨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정보에 따르면, 미국의 로또인 '파워볼'의 경우, 1위 당첨 확률이 약 3억분의 1인데, 상어에 물릴 확률이 2억 6천분의 1이라고 하니, 미국 로또에 당첨되기 전, 미국 상어한데 물리기가 더 쉬운(?) 편이다. 우리나라는 그보다는 훨씬 높은데, 로또 1등 당첨률이 810만분의 1이란다. 미국에서 1년내 (돈벼락 아닌) 진짜 벼락을 맞을 확률이 240만분의 1이라니, 로또 1등 되기 전 미국서 벼락을 맞기가 훨씬 더 쉬울지도 모른다. 

한 주인공을 헹가래 쳐 주듯 그런 행운아를 뽑아 주느라, 너도 나도 열심히 사 주는 셈이기도 하다. 그 통에 전국의 수천 개 판매상이 부자가 되어 간다. 그 행운아가 풍운아가 되면 더 좋겠지만--그런 예도 없진 않지만--못 그러더라도 망운아(亡運兒)만 안 돼도 천만다행이다.  

행운이란 거창한 이름의 '로또'라는 것은, 알고 보면 장당 1천원 짜리 종이쪽지를 팔아 나라 세금을 보태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사면 살수록 모범납세자가 되는 것인가? 한 번씩 당첨될 때마다 세금 올가미(?)에 목을 내밀고 거액 납세자가 되어 준다. 그러기 위해 무수히 사 대는 티킽 판매액 상당량도 세금으로 간다. 경제 언론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소득에 따라 세 부담이 급증하는 "가혹한" 누진체계 구조이다. 세액은 소득 증가분의 몇 배 수준으로 늘고, 소득 대비 비중도 그렇다. 로또 당첨자가 당장 낼 세금부터 절절히 아까워 하고 자기 몫을 더욱 아쉬워 하게 되는 주된 이유가 그것이다. 


여기서는, 로또의 성격을 갖고 더 왈가왈부하기보다 로또가 과연 국민들이 저마다 동참하고 적극 탐닉할 만큼 도덕적이기도 한가를 따져보려고 한다. 사행심(射倖心)이란 말은, "요행이라는 과녁을 겨누고 활을 쏜다"는 뜻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니 베주머니로 바람 잡기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 개의 과녁을 맞추기 위해 무수한 연습 아닌 헛 손짓을 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무한에 가까운 개인 욕심의 증대와 그 중독성이다. 로또는 합법적인 도박과도 별 차이가 없다. "어마무시한" 돈벼락이 단번에 떨어지다 보니, 사람에 따라 "거한" 낭비벽과 '탕진성'도 따르게 마련이다. 횡재한 돈을 잘 요리해 써서 입신양명한(?) 사람도 혹간 없지 않겠으나, 탕진을 하다하다 철창행을 하는 사람도 없지 않단다. 흥청망청 쓰다가 심지어 파산을 하고도 다시 복권 중독된 사람들도 있다. 큰 돈을 허비하고 나서도 계속 적은 돈을 허비하니, 쳇바퀴나 굴레와도 같다. 


뭐 일반인은 그렇더라도, 크리스천에게는 로또가 어떤 의미를 줄까? 오래 전, 이름도 잘 알려진 교회의 한 교우가 로또에 당첨되어, 십일조를 했다는 실화를 들은 적이 있다. 십일조를 받은 그 교회까지도 횡재한 셈인지 모르지만, 퍽이나 떨떠름한 뉴스였다. 내심 십일조를 약조한 뒤 로또 티킽을 몇 번쯤 구입하다 맞춘 것인지, 하나님의 천사가 해당번호를 갖다 준 것인지 얼핏 갈피가 안 잡힌다. 

필자도 소장기에 평생 첫 로또 티킽을 한 장 거머쥔 적이 있다. 내가 산 것이 아니고, 사업을 하던 같은 교회의 친구가 사업자금이 아쉬웠는지 몇 장을 사다가, 내친 김에 자기네와 우리네--두 가족 성인마다 한 장씩 건네준 것이다. 정말 분별 없고 철모르던 시절이었다. 

우리 두 가족은 그 다음 주일부터 열심히 당첨을 위해 기도했다. 교회에다 미리 당첨 (확신?) '감사헌금'까지 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 목사님이 사역 도중에 로또 관행에 대하여 완곡한 경고를 하셨다. 딱히 누구라고 지적하지 않고서. 로또를 하는 교인들, 더 나아가 로또 당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하는 교인들이 꽤 많다는 인상이 들 정도로. 
그 분의 말씀은 한 마디로 '요행주의'라는 것이다. 또 그 자체가 배금주의요, 하나의 우상이라는 것이다. 처음 듣는 그 말씀에, 우리 두 가족은 신음처럼 속으로 길게 '아멘' 하며,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됐다. 

흔히 로또를 성경에도 나온 제비뽑기에 빗대기도 한다. 과연 로또가 성경의 제비뽑기 수준일까? 성경의 제비뽑기는 그렇게 뽑힐 수 밖에 없게끔 하나님이 관여하셨기에, 초자연적 역사의 결과였다. 그런데 내가 기도한다고 해서 과연 하나님이 로또 당첨 번호를 제비 뽑히게 해 주실까? 로또 당첨금으로 십일조를 냈다는 그 교인은 과연 하늘의 제비뽑기 선택을 받은 크리스천 행운아였던 것인가? 그래서 십일조를 내어 이름을 날린 크리스천 풍운아까지 된 것인가?

그럴 리 없다. 로또는 무작위의 우연으로 허공에 맴돌다 떨어지는 번호일 뿐, 성경의 제비뽑기일 수 없다. 그런 주장은 가히 신독적(神瀆的)일 수 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로또와 무관하시며, '절대주권' 같은 것으로 거기 개입하시지 않는다. 일확천금의 행운 간판을 내세워 백성의 푼돈을 긁어모으며 로또를 주관하는 세상 정부는 성경에 따르면, 악에 속한 집단이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통해 그들을 도우실 리가 없다. 

천사들도 그렇다. 성도가 기도로 구입한 로또의 번호가 당첨되게끔 로또 기계를 살짝 조작해 주는, 그런 '센스쟁이' 천사는 없다. 그런 귀신은 있을 수 있어도.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해 열심히 섬기되(신약성경 히브리서 1'14), 로또 당첨까지 챙겨 주는 착한(?) 천사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도의 영적 건강을 위해, 정신차리라고 로또 번호가 당첨되지 않게끔 막거나 떨어지게 "냅두는" 야박한(?) 천사는 혹 있을 지 모르지만. 
 
그러니, 혹 교인이 로또에 당첨됐다고 마냥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거나, 곁에서 동료 교인까지 뛸듯이 반가워 해 줄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 그것 갖고 영광을 돌릴 일은 더더구나 아닐 터이다. 당첨금으로 헌금 하고 십일조를 하고, 교회에 유익한 일을 하는 거야 본인의 자유겠지만, 또 그런 선행을 갖고 주보에 이름까지 내어주는 것도 그 교회의 자유겠지만, 바로 말하자면, 자랑스럽기보다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로또엔 요행주의 내지 사행심과 배금주의와 같은 세상 속사가 연계되는 탓이다. 

더 나아가 로또 당첨을 잔뜩 기대하면서 미리 '감사헌금'을 하는, "Give and take" 행각을 하나님과 교회 대상으로 벌이지 말아야 옳다. 그것은, 고대 로마 이교에서 신과의 거래의 모토인 '도 우트 데스(Do ut des: 제가 바치니 신께서도 주시리..)' 같은 따위의 '짓거리'를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상대로 하려 하는 것이니, 황당무계하고 괘씸한 행위다.  그런 것은 참되고 바른 믿음이 아니다. 허공중에 화살을 쏘아 바람을 맞추려는 것과도 같은, 허황된 믿음이다. 

우리는 사도들의 마음과 경건을 따르려 하는가? 사도는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자족을 곁들이면, 경건은 큰 유익이 된다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으니, 아무 것도 갖고 가지도 못하지.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일이고. 부유해지길 바라는 사람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빠진다네. 그런 것들이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 속에 빠뜨리지. 돈 사랑이 온갖 악의 뿌리거든! 그것을 붙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많은 고통에 꿰찔린 사람들이 더러 있다네."(티모테 A서=딤전 6'6-10,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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