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압니다: 내가 떠나고 나면, 사나운 이리떼가 양떼를 아끼지 않고 여러분에게 침투할 것이며, 또 여러분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일어나, 왜곡된 말로 제자들을 꼬득여 자기네를 따르게 하리라는 것을. 그러니, 깨어 있으시오!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끊임 없이 눈물로 여러분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시오." (신약 행전 20'29,30 사역)
오늘날 세상은 그야말로 "세기말적" 내리막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듯 보입니다.
주님이 예언하신 말세의 온갖 징조가 하루가 무섭게 세계 곳곳에서 연거푸 터집니다.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경제난과 각국의 온갖 난리/난동 소식에다, 이상 기후와 무서운 역병, 지진, 화산폭발 등 도무지 미처 정신 차릴 새도 없을 정도로, 자연재해와 인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이질 않는군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잦습니다.
인간 생존경쟁은 나날이 더욱 심해지고, 사람들의 마음과 몸도 더욱 타락하고 피폐해져 가며, 여기저기 국가의 사법계부터 무법 천지가 돼 가고, 정치 지도자들의 비상식적, 적(赤) 크리스토(그리스도)적 발언과 행동이 난무합니다.
누구나 '말세'를 입에 떠 올립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정말 슬프게 하는 것은..심지어 '교회'라는 교계마저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죠. 소위 교회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의 비성경적/비도덕적..배교적 행동과 발언도 늘어 신자들이 낙망하는 데다, 온 세계에서 기독교 박해가 강화되는데도 교회가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정말 가까운데, 교회는 왜 빠른 속도로 순결을 잃어 갈까요?
예수님께서 일찍이 세상 종말이 어떠할 것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성령으로 예언하셨듯이..
그 분의 사도인 파울도 이런 때가 곧 올 줄을 예상했댔습니다.
다른 사도들처럼 파울도 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다양한 예언과 예견을 했지만, 위 바탕본문에서도 급박한 내일을 보는 듯 경고합니다.
그런데..파울이 예언하는 교회의 앞날은 사뭇 부정적입니다.
'핑크빛', '장밋빛' 무드가 아닙니다.
주변을 둘러 보십시오..........
오늘날 소위 교계의 명사라는 사람들의 핑크빛/장밋빛/무지개빛 발언이 난무하고 있지요.
세상이 이 지경이 돼 가는데도, 하나님의 왕국이 땅 위에 당장 이루어질 것처럼 화려하고 굉장한 예견들을 펑펑 해 댑니다.
그들은 '변화'를 외쳐 대고, '비전'을 말하고, '새 시대'를 논합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과연 그들이 현세를 바로 보는 것이며..미래를 제대로 내다보는 식견이 있기나 한 것입니까?
주님과 사도들은 2천 년 전 이미 세상과 교회의 부정적 미래를 예언했는데, 이들은 어떻게 거의 정반대입니까?
이러니, 우리는 그냥 "밍숭맹숭", 기연미연하여 할 게 아니라..고대의 베레아 사람들처럼 "이게 정말 그런가?" 하고 성경 말씀을 되새겨 봐야 할 터입니다.
파울이 교회의 내일을 향해 뭐라고 했던가요?
바탕본문 말씀은..비록 에페소교회에 우선적으로 하는 말이지만, 다른 교회에도 대동소이하게 적용되는 교훈입니다.
"나는 압니다: 내가 떠나고 나면, 사나운 이리떼가 양떼를 아끼지 않고 여러분에게 침투할 것이며, 또 여러분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일어나, 왜곡된 말로 제자들을 꼬득여 자기네를 따르게 하리라는 것을.
파울은 여기서 단언합니다. 기정사실화 하여 "나는 안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느낌으로 대강 짐작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성령으로 내다보고 하는 말이죠. 참 성령의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쉽게 단언할 수 없죠.
어찌 보면 교우들이 시험 들거나 의혹이 일어날 수도 있는 말입니다. "아니, 저 분이 우리 교우들을 어떻게 보고, 감히..?"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파울은 주저하거나 서슴치 않고 말합니다. 그만큼 위급하기 때문이죠.
그런데..뭘 말입니까? 안팎에서 교회를 해치고 파괴하는 비진리 세력이 일어날 것을 말입니다.
그것도 먼 미래가 아니라, 파울이 떠나고 나면 그렇게 된다고 임박한 현실을 예고하는 겁니다.
그 정도로 교회의 변개/변질 상황은 급박합니다.
먼저, 그는 바깥에서 그런 세력이 들어올 것을 경고합니다.
외부 사람, 아웉사이더가 교회 안으로 침투하리라는 겁니다.
어떤 누가요..? 사나운 늑대들, 이리떼가!
여러분, 피에 굶주린 이리떼가 탐스런 양떼를 아껴 줄까요?
으르렁대며 달려들어 마구 찢어먹을 것입니다.
이리떼는 양떼를 전혀 아끼지 않고 닥치는 대로 헤치고, 해치고, 해치울 것입니다.
그것이 늑대들의 특성입니다.
그런 일이 에페소교회에 벌어질 것이라고 파울은 잘라 말합니다.
당대에 이것은 단순히, 로마 제국 정권이 크리스천들을 박해할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외부에서 안으로 침투하여 양떼를 채어 간다는 말이니, 오히려 율법으로 은총을 뒤틀어 교인들을 겁박하는, 당대의 할례 받은 유대교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받거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할 것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으로 몰아 넣었던 유대인 종교지도자와 민중은..그 제자들도 심하게 박대했습니다. 그들은 특히 한 때나마 자기 패였던 샤울이 파울로 변신한 것을 보고 미친 듯 이를 갈며 가는 곳곳마다 그를 죽이려고 했지요. 안 그러겠습니까?
행전과 파울 서신 기록을 보면, 파울의 선교에 최대 방해 세력은 당대의 유대교인들이었습니다.
선교 여정상 도착한 도시마다 먼저 동족을 찾아 유대교 회당을 들르곤 하던 파울은 그래서, 결국 동족 선교를 포기하고 이방인 선교에만 전념하게 되지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 대신 그 이후로는 소아시아와 멀리 바벨론까지 동족 선교를 주로 페트로(베드로)가 맡습니다. 페트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해 로마교회의 수장-주교-초대교황이 되어 교회를 다스리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는 천주교 측 주장과는 달리 정반대로, 일시 투옥됐다가 예루샬렘에서 사라진 후 소아시아와 멀리 바벨론까지 오가며 주로 동족과 이방인들 상대로 사역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페트로 1'1; 5'13 참조).
그러나 오늘날은 상황이 좀 다르지요.
유대계와 기독교 간에 과거와 같은 충돌은 보이질 않습니다.
적어도 표면상 평화롭게 지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 패러다임에서 과연 '이리떼'가 어떤 객체인지 둘러 봐야 합니다.
여기서 물론 '적'이란, 영적으로 적용해 봐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적'이란 말을 잘 써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적이라고 적용할 때, 자칫 위험한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사실 크리스천에겐 몸으로, 육적으로 상대할 적이란 없습니다.
몸과 혈기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죠.
이리떼는, 비단 사람뿐 아니라 또 마귀의 본성이기도 하죠.
그는 세상만 휘어 잡고 성도들은 그냥 가만 두는 게 아니라, 되도록, 할 수 있는 대로 성도들을 해하고 파괴시키려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대상을 두루 찾고 있습니다.
주님은 일찍이 말씀하시길.. 도둑은 양들을 해치고 죽이고 파괴시키려 오지만, 선한 목자인 당신께서는 양떼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히 주시려고 오셨다고 밝히셨지요(요한복음서 10'10).
여기서 도둑은 마귀를 우선적으로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 교회에 침투하는 이리떼를 경계하고 진리 안에 머물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황당하고, 따라서 우리가 더욱 경계해야 할 대상은 바로 교회 내부의 위험세력입니다. 교회 안에서 은연중 자생한 이 존재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다가 때가 되면 정체를 드러냅니다.
바깥의 적보다 안쪽 적들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또 여러분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일어나, 왜곡된 말로 제자들을 꼬득여 자기네를 따르게 하리라는 것을. 그러니, 깨어 있으시오!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끊임 없이 눈물로 여러분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시오."
이들은 진리를 뒤틀어 변개시킨 교묘한 말로 교인들을 꾑니다. 요즘 교계에 흔한 온갖 혼탁한 영성이 그런 것들이지요. 그래서 순진한 교인들이 곧장 거기 속아 넘어갑니다.
겉으로는 다 그럴 듯해 뵈거든요.
교회와 교인들의 장미빛, 핑크빛, 무지갯빛 미래를 '예언'해 주는 영성가들이 있지요.
그들은 미소로 다가와 교인들을 포섭하고 설득하지만, 속에는 무서운 비진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관상(觀想) 영성, '목적' 영성, 떠오름(이머징)영성, 신사도(新使道) 영성 등이 그렇습니다. 생각과 달리, 거기엔 참 진리가 없거나 희박합니다. 겉은 멀쩡해 봬도 안에 산소가 희박한 실내처럼 말입니다.
진리인 양 겉포장을 잘 한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이내 질식하고 맙니다.
이래서, 비성경적인 온갖 영성들은 독가스 같은 무엇입니다.
진리를 이리저리 뒤틀어가며 사람들을 꼬득이는데 주 목적이 있습니다.
교인들 꼬시기.. 영성가들의 목적과 어젠다가 그것입니다.
교인들은 그들의 목적에 이끌리다 못해 휘말려 듭니다. 그 결국이 뭘까요?
비슷하지만 아닌 온갖 사이비 진리 속에서 질식하며 죽어가게 됩니다.
제 말이 아니라 파울의 경고입니다: "또 여러분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일어나, 왜곡된 말로 제자들을 꼬득여 자기네를 따르게 하리라는 것을."
자, 이런 와중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으로 되돌아 와야 합니다!
성경 진리를 되찾고 되새겨야지요.
파울은 3년간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말씀 기억!
진리 상기!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비진리를 벗어나 참 진리로 되돌아 오는 길도 주님과 사도들의 훈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늘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고 성경에 밝아야겠지요.
우리는 진리에 밝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리떼의 기습을 극복할 길, 안에서 자생한 내부의 적을 이기는 길도 바로 이 진리 말씀입니다.
주님의 진리가 우리 속에 늘 머물기를..
그래서 안팎의 비진리를 이겨 늘 승리하기를!
'성경묵상연구 > 사도행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 2:33] 이미 와 계시는(!) 성령님 (31) | 2011.07.30 |
---|---|
[행전 2:17-21] 말세의 아이러니 (5) | 2011.04.17 |
[행전 12:1-19] 페트로 증발 사건 (3) | 2011.02.20 |
[행 27] 276명의 14일간의 표류 (3) | 2010.06.06 |
[행16:6-10] 성령님이 막으실 때 (10) | 2009.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