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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사도행전

[행 27] 276명의 14일간의 표류


바탕본문: 신약 (사도)행전 제27장


여태 살아오면서 정말 지독한 악몽 같은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죽음의 아귀 가까이 헤매던 추억이 있나요?

그 누구보다 그랬던 사람이 사도 파울(바울)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남 부러울 것 없는 유족한 생활을 하던 샤울(딴 표기-'사울', 파울의 옛 이름)은 선교사역을 하면서 엄청난 고생을 하고 수많은 재난을 겪습니다. 
행전 여기저기와 특히 코린토B(고후)서 11'23-33에서 확인할 수 있지요. 
그렇게 미리 선택되고, 예정 속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글 바탕본문의 내용도 그런 이야기의 하나입니다. 
행전의 이야기를 보면, 여기저기 초기 교인들인 여러 인물의 역사적/실제적/구체적인 체험담들이 점철돼 흥미롭지만, 특히 이 부분은 모험담처럼 느껴집니다. 
기자 루카(누가)는 이를 직접 겪었기에 매우 상세히 묘사하고 있답니다. 


당시 파울은 3차에 걸친 모든 선교여정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순교의 장소인 로마로 떠납니다. 로마 시민으로서 황제인 카에사르(가이사) 아우구스투스의 재판을 요청해 로마 군에 의해 압송 당하는 중죄수의 몸이었지요. 물론 자신이 열렬한 파리세 당원(바리새인) 출신으로, 이제 예수님을 믿어 복음증인이 됨으로써, 유대인들의 비위를 건드린 것 밖엔 아무런 죄도 없었고요. 


파울을 비롯한 몇몇 죄수를 호송하는 책임을 떠 맡은 사람은 '율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부대 백부장이었습니다. 예루샬렘을 출발, 지중해의 시돈 항에서부터 소아시아 해안을 따라 이탈리아까지 먼 길을 가야 했습니다. 

파울은 백부장의 호의로, 시돈에서 여러 믿음의 벗들의 대접을 받은 데다 사역 동반자의 한 명인 마케도니아의 테살로니카 사람, 아리스타쿠스를 다시 만나 동행하게 됩니다.   

아드라뮈테노의 배를 타고 뤼키아의 뮈라라는 곳에서 일행은 이탈리아 행 선박으로 갈아 탑니다. 그러나 풍세도 좋지 않고 배도 느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미항'(美港)이란 곳에 당도해 일시 정박했습니다. 

미항..거기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여기서 파울에게 생명에 관계되는 계시가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이름처럼 아름답고 정다운 항구였는지, 로마군 호송부대는 미적미적하며 지내다가 상당기간이 흘러 어느새 10월에 이르렀습니다. 10월이 되면, 지중해 해변의 계절폭풍이 드세고 잦아져 항해가 위험해집니다. 더욱이 얼마 후면 겨울이 다가와 해변이 얼 수도 있습니다.  

파울은 성령께서 알려주신 미래계시를 일행에게 그대로 전달합니다. 
  "여러분. 제가 느끼기에, 이번 항해는 매우 위험합니다. 하물과 배만 큰 손실을 겪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에도 지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 율리우스는 파울보다는 선주와 선장의 말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율리우스는 비록 파울에게 친절했지만, 종교인 죄수 한 명의 막연해 뵈는 예언보다는 다수인 항해 전문가들의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렸나 봅니다. 


율리우스는 여기서 한 때의 판단으로 일을 크게 그르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인 파울의 영적인 조언에 더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삶의 한 국면에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오는 영적인 귀띔보다 해당 분야의 경력과 인생 경험담 등을 더 의존해 상황 판단을 할 때가 잦습니다. 
성경적/영적으로 더 옳은 것을 정신적 차원의 지식으로 물리칠 때도 있습니다. 
또한 한 명이나 소수의 의견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더 쉽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다 일이 잘못되고 난 뒤늦게서야 "아, 그때 그랬어야 했을 것을~!" 하고 크게 후회하곤 합니다. 

선주와 선장 등 전문가들은 미항에서 겨울까지 지내기가 불편하니, 어떻게 하든 크레테 섬의 푀닉스 항까지 가서 거기서 겨울을 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지의 더 큰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습니다. 

백부장은 항해 전문가들의 말이 더 솔깃하게 들렸습니다. 
결국 그의 잘못된 판단은 파울의 말대로 앞날의 커다란 손실을 가져 오게 됩니다.

마침 잔잔한 남풍이 불자, 그들은 "이것 봐라. 이건 좋은 전조야. 신들이 우리를 도우신다."라는 양 신나게 출발하여 크레테 해안을 끼고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떠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아, 섬 한가운데로부터 유라퀼로(북동풍)라는 무서운 광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배는 드센 바람에 휩싸이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밀려, 어쩔 수 없이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카우다(일명 '클라우다')라는 작은 섬 부근에서 천신만고 끝에 거루를 잡았지만, 굵은 돛줄 등 밧줄을 선체에 둘러 감고 쉬르티스(모래톱)에 걸릴까 봐 돛들을 내리고 전전긍긍하면서 여전히 표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튿날은 넘실대는 풍랑으로 갖은 애를 쓰다 뱃무게를 가볍게 하느라 배에 실은 중요한 하물들을 식량만 제외하곤 몽땅 바다 위에 내던졌습니다. 
파울의 예언 그대로였습니다. 
사흘째는 하물을 다루는 데 쓰는 큼직한 연장까지 버렸습니다.   

이쯤 되자, 백부장은 새삼 파울을 바라보며 "과연 저 사람의 예언이 옳았구나. 남들보다 그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하고 속으로 신음했을 터입니다. 

이제는 여러 날 하늘에 먹구름이 꽉 끼어 해도 별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날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표류하기를 무려 10여일.    

거센 풍랑은 여전했고, 이젠 살아남으리라는 여망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두들 지칠 대로 지쳤고, 바다와 싸울 의욕을 상실했고, 삶을 포기할 정도가 됐습니다. 
그동안 배 위에서 마냥 흔들리며 시달리기만 하다 보니 끼니를 이을 생각도 전혀 못해, 배도 몹씨 고팠습니다. 
다들 죽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파울이 갑판 한 가운데 서서 큰 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진작 제 말을 듣고 크레테(미항)에서 떠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이런 손실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권하건대 이제는 용기를 내세요! 여러분 중에 아무도 목숨엔 지장이 없고 다만 배만 손상될 터입니다."

파울의 중대한 예언이 재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입니다. 

    "간밤에 제가 속해 있는 (신이신) 하나님의 천사가 제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파울. 두려워 마오. 그대는 카이사르 앞에 서야 할 테니. 그리고 하나님은 그대와 함께 항해하는 무리를 다 그대한테 맡기셨소.'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안심하세요! 저는 하나님을 믿기에 제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섬에 반드시 상륙하게 될 것입니다."

14일째 되는 밤. 
아드리아 바다 한 가운데서 이리저리 떠 다니던 한밤중-자정쯤이었습니다. 사공들의 육감에 어느 육지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어, 물 깊이를 재어보니 스무 길쯤 되었고 얼마 후 다시 재어보니 열 다섯 길이었습니다.   
"야, 육지가 가깝다!"라고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암초에 걸릴까 봐 고물로 닻 넷을 줘 놓고 어서 날이 밝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의 항해에 너무나 지친 사공들은 이 참에 육지로 도주하려고 눈치를 보며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척, 슬며시 거룻배를 바다 위에 내려 놓았습니다. 

이것을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파울은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서둘러 경고합니다. "이 사람들이 배에 남지 않으면, 여러분이 구조 받지 못합니다!"  

그러자 이미 파울을 신임하기 시작한 군인들은 재빨리 거룻줄을 끊어 사공들이 달아날 길을 막았습니다. 우리도 파울처럼 꼭 제때 할 말을 해야 한다고 느끼면, 용기 있게 단행해야 옳습니다.  

날이 어슴프레 새어 가자, 파울은 사람들에게 식사를 권합니다. 

    "오늘은 열나흘 째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계속 지키고 기다리느라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다들 허기진 상태입니다. 이젠 음식을 좀 드세요. 이것도 여러분이 살아남을 길입니다. 여러분 중 그 누구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쯤 파울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배의 온 무리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빵을 가져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한 뒤, 빵을 떼어 먹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들도 파울의 말에 맘을 가라 앉히고 함께 음식을 들기 시작합니다. 

드높은 파도와 바닷바람 속에 두려움이 가득했던 그들에게..장장 14일만에 처음으로 안도감이 찾아 든 순간이었습니다. 
빵덩이를 나누는 선원과 군인들, 파울 일행을 포함한 죄수 등 무리의 수를 헤아려 보니 모두 276명이었습니다. 

모두들 배부르게 먹은 뒤에는 뱃무게를 더 줄이느라 먹는 밀도 바다에 던졌습니다. 

드디어 날이 새었습니다. 
어느 땅인지는 모르나 저만치 경사진 해안이 보였습니다.  
배를 댈 수 있는지 의논한 뒤에 닻줄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올려 바람에 맞춰 해안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하필 두 물길이 합치는 곳을 만나 이물이 부딪쳐 배가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된 데다 뱃고물은 커다란 파도에 철썩 부딪치면서 부서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역시 파울의 예언대로입니다. 

병사들은 이 와중에 죄수들이 헤엄쳐 도망할 까 봐 모조리 죽이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순간 백부장은 파울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그들을 말렸습니다. 그리곤 영을 내립니다.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이 먼저 물에 뛰어내려 뭍으로 나가세요! "
    "그 다음, 남은 사람들은 널빤지나 기타 물건을 잡고 떠서 가세요."

그렇게 해서 276명이 모두 다 무사히 상륙했습니다. 파울이 천사에게 받은 예언 그대로, 머리털도 하나 상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구원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상륙한 그 땅은 멜리테 섬(현재의 말타)이었습니다.
그 섬의 원주민들은 그들 일행을 환영하고 따뜻하고 친절하게 돌봐 주었습니다. 또 신유은사자이기도 한 파울의 기도와 안수로써 섬의 지도자 포블리오의 아버지를 병에서 낫게 하자, 소문을 들은 다른 환자들도 모두 와서 고침 받았습니다. 

섬사람들은 파울이 고마워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고, 나중에 섬을 떠날 때는 필요한 물건들을 갖다가 배에다 잔뜩 실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겨우내 지낸 석 달 후, 일행은 다시 배를 타고 그곳을 떠나 로마로 향발합니다. 파울이 카이사르에 의해 순교하기까지 마지막 몇 해를 지낼 곳이었습니다.  


파울 일행의 이 항해를 통해 뱃사람들, 죄수들은 물론, 백부장을 비롯한 로마 병사들, 그들이 상륙한 멜리테 섬사람들까지도 파울은 여느 죄수가 아니라 존중 받을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아 보았습니다. 

참 신이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다들 분명히 느꼈습니다. 
그의 조언과 예언들, 권하는 말까지 모두 정확하게 이뤄지고, 조리가 있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넘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선상에서, 또 로마에서 파울에게 진정한 호기심을 갖고, 예수님을 들어 알고 믿게 됐을 것입니다. 
백부장 율리우스도 신자가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파울에게 맡기신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우리 가운데도 비록 파울 같은 성경 계시를 받진 못하더라도, 비슷한 사명을 받은 사람이 있을 터입니다.  
험한 인생항로 위에서, 유라퀼로 같은 극한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사람에게 감동을 끼쳐 마침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기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파울처럼 성령님께 민감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 담대해야 합니다. 
필요할 때는 눈치 볼 것 없이 할 말을 꺼내야 합니다. 


티엘티의 성도들은  
끝날까지 거친 인생 항해를 지속하면서 
'유라퀼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담대하여
승리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주 예수님의 전능한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