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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캪튼's 코너

기도반주곡에 관하여

출처: TGC

 

김삼


과거엔 고대 이스라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기악과 성악 반주곡이 있었을 법하다. 그러나 기도반주곡이란 건 없었다. 기도는 그냥 기도일 뿐, 무엇이 더 필요 없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기도반주라는 것이 생겨났다. 
오래 전 다니던 미국인 교회에서 합심기도할 때 기도 앞 부분에서만 잠시 찬양팀의 노래와 반주로 시작하고, 노래는 중단한 채, 얼마간 피아노 독주가 계속되다가 그마저 중단하고, 연주팀까지 모두 기도에 몰입하곤 했다. 

그러다 한국 교회에서 다양한 기악 형태가 반주에 쓰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됐고, 본래는 주로 찬송가 중심이었다가 복음성가, 경배찬양곡까지 쓰이곤 했다. 그런데 최근엔 급기야 어떤 노래이든 성악곡까지도 반주곡으로 쓰이는 것을 보고 놀라마지 않았다. 

또 현대 팦에 쓰이는 악기와 노래까지도 기도 음악에 쓰이고 있었다. 심지어 기도음악이라는 것이 평시 주일에 연주되는 찬양음악과도 별 다를 바 없이 쓰이니, 상당한 진화라고 할 수 있겠다. 

기악곡

기도반주곡이 적당한 볼륨의 기악일 때, 큰 문제는 없다. 특히 오케스트라나 비슷한 음색의 곡이 연속으로 이어질 때 부드럽고 도움이 된다. 뭔가 강렬한 내용의 곡이거나 특이한 분위기의 곡은 기도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사역자의 개성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 필자가 강렬한 음악을 싫어한다는 뜻은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기도나 호소에 관한 찬송가나 성가이되, 가사는 없는 곡이다. 그리고 곡과 곡이 관계조(relative keys)로 이어가며 계속 흘러가는 분위기의 곡이 바람직하다. 

성악곡

기도반주곡이 가사가 붙은 성악곡일 때, 문제가 발생한다. 첫번째 문제는 그 노래의 가사가 기도를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그 가사 자체가 뭔가 성경적으로 의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 성도 각자의 기도 내용과 오벌랩되어, 혼란을 자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노래나 교회노래 또는 크리스천 음악이면 기도 때 연주 또는 플레이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은 무지에 가깝다. 

가령 나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데, 찬양과 무관한 엉뚱한 복음성가가 흘러나온다면, 분위기를 그르친다.  더욱이 노래 중에서 일렠이나 드럼 등 열주(熱奏 또는 裂走)하기가 쉬운 악기가 비명을 지르듯 고음으로 튀어나올 때, 기도를 거의 망쳐버린다. 그럴 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린다. 그런 분위기 속에선 도저히 기도를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일대일 친교

기도음악은 민감하고 섬세한 무드이되, 영감이 넘치는 곡이어야 한다. 이른 바 '기름부음'이 있어 정말 기도를 이끌어 주고 돕는 음악이어야 한다. 우리의 기도를 이끄시는 성령님은 비둘기처럼 온유한 분이시다. 주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고요한 시각에 늘 홀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왤까? 아버지 하나님과의 일대일 친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깊은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일대일 친교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참아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기도음악이라는 게 악기나 목청으로 '폭음'처럼 질러낸다면, 기도하라는 것인지 음악을 감상하라는 것인지,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다. 어떤 기도회를 보면, 합심기도라고 해서 연주자가 점점 더 큰 소리로, 심지어는 "미친 듯이" 몸까지 흔들며 연주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나름 기도의 '경지'에 들어간 것인지 모르지만, 그 때의 음악은 경건보다는 광란에 더 가깝다는 인상이다. 

기도반주 자체가 기도다워야

기도반주곡은 자체가 기도다워야 한다! 기도 분위기를 나타낸 것이거나 돕는 것이 아니라면, 기도답지가 않다. 기도를 돕긴커녕 되레 기도에 방해되는 음악은 틀거나 연주하지 말아야 한다. 

특정 악기를 요란한 소리로 연주하거나 리듬과 강박이 너무 센 음악은 적합치가 않다. 흐름이 지속되는 음악이 좋다. 그렇다고 흐느적거리는 뉴에이지 음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결코 '보수 꼴통'인 사람이 아니다. 다만 기도음악이 되도록 은은하거나 조용한 열정이 담긴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하지만, 소위 관상(觀想, contemplation)과 연계된 '침묵기도'를 지지하려는 건 아니다. 

현대 기도반주곡과 같은 곡을 만약 그날 새벽 겥세마네 동산에 틀어드렸다면, 필시 기도하시던 주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떠나, 조용한 딴 장소로 옮겨가실 법하지 않은가. "오, 음악 좋네! 계속 틀고 있어 줘, 계속 기도하게.." 하실 거 같지가 않다는 말이다. 

기도반주곡을 준비하는 사람들아, 제발 좀 기도에 걸맞은 곡을 선곡하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섬세하게, 성령님을 생각하며 골라라. 외려 기도를 방해하는 곡을 리스팅하여, 기도하는 성도들의 속을 뒤집지 마라. 기도회는 기도를 위한 모임이지, 음악감상회가 아니지 않은가?

기도반주곡을 "제멋대로" 함부로 선곡하는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기도도, 반주의 의미도, 기도자들의 마음도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지만, 기도음악 자체가 기도다워야 한다! 

기도는 명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정적인 음악만을 선호하라는 건 아니다. 특히나 뉴에이지적인 곡이나 관상적(觀想的, contemplative)인 곡은 삼가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지, 명상이나 관조나 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상기도는 사실상 뉴에이지와 매우 가까우며 종교다원적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돼 왔다. 

끝까지 연주한다?

기도반주곡을 최후 기도자가 기도를 끝날 때가지 틀어도 괜찮겠지만, 직접 연주하는 경우 어느 정도 진행하고나서 연주자들도 함께 기도해야 바람직하다. 계속 연주만 한다면, 합심기도자들이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    
"연주하면서 영언('방언')기도가 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합심하여 기도에 열중할 때는 다 함께 보조를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 플랜과 선곡의 요령

기도음악을 선곡할 때 되도록 기도를 주제로 녹음/취입한 곡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도음악도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함은 말할 것도 없겠다. 가장 좋은 것은 음악을 익히 아는 기도사역자들과 음악사역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여, 좋은 곡을 마련하여 편집하고 기도회에 맞게 플랜을 짜는 것이다. 또 기도 이끄미 자신이 평소 분위기 좋은 음악을 편집해서 기도 때 이용하는 것은 더 좋다.   

합심기도회를 위한 음악이면, 찬양과 감사로부터 시작해 응답의 약속과 간구, 확신과 아멘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줄거리나 스토리 같은, 기승전결의 원리를 반영하여 하나의 긴 기악곡으로서 편집해도 좋다. 

곡 하나를 짧게 끝내면서 자주 바뀌는 형태는 좋지 않다. 찬송가라면, 가급적 4절까지 충분히 음미하면서 연주한 곡이 더 낫다고 본다. 기도의 흐름 때문이다. 복음송이나 경배찬양곡이라면, 후렴 등을 여러 번 반복하는 형태가 기도에 더 걸맞다. 

아무튼 기도의 흐름을 돕는 것이어야지, 음악이 바뀌느라 자주 끊어지고 공백이 생기다 보면, 기도의 '맥을' 자르고 힘을 빼는 격이 된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서로 관계되는 장조나 단조인 '관계조'를 활용해서 편곡하거나 편집하는 것이 기도반주로서는 매우 유리하다. 


아래에 기도할 때 틀거나(play) 연주하면 좋은 곡목들을 일부만 열거해 본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저 장미 꽃 위에 이슬
기도할 수 있는데
오늘 집을 나서기 전(기도했나요)
기도하는 이 시간
들어주소서
오직 주로 인해
은혜로다
온 맘 다해
나 노래하리라(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성령이 오셨네(허무한 시절 지날 때)
내 기도하는 한 시간
우물가의 여인처럼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예배합니다(완전하신 나의 주)
마음 속에 근심 있는 사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다양한 보혈 찬양곡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어둡던 내 눈 밝히사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주 음성 외에는
죄짐 맡은 우리 구주
구주와 함께 못 박혔으니
주 날개 밑
내 평생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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