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편집위 코너/샬롬의 평화칼럼

[눅 18:9-14] 누가 진짜 바리새인인가? (샬롬)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 18:9 ~ 14)



성도들은 바리새인이라는 말을 너무나도 많이 듣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이다. 외식하는 자들이다.
바리새인들은 맹인이 맹인을 이끄는 형국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은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모함할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수시로 궁지에 몰아넣을 질문들을 하였다.
그리하여 결국은 시기심으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못 박는데 적극 동조하였다.


그리고 나서 내리는 결론은 예수 믿는 나는 적어도 바리새인이 아닐거야~ 하면서
자신을 안위하며, 2000년전의 그 바리새인은 나쁜 놈들(?)이구나로 끝납니다.
바리새인에 대한 더 이상의 고찰과 진전이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결론을 유도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나는 예수님을 잘 믿고 있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율법주의자가 아니야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나는 바리새인과 같은 어떠한 행동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바리새인은 2000년전 유대땅에만 존재해 있고, 다만 성경 구절 가운데 나타나 있는 그런 존재일까요?

오늘 누가복음의 비유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을 이 바리새인과 같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눅18:9 이하)
즉, 우리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타인을 멸시할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니가 바로 그 바리새인이다... 라구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사람 바리새인과 세리가 주인공입니다.(눅 18:10)

우리는 때로는 기도의 능숙함과 거창함을 사모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는 과연 누구를 위하여 거창하고 능숙하게 잘 해야 하는 할까요?
하나님일까요? 사람일까요?

우리의 본심을 잘 살펴보면 그 중심이 사람에게 향햐여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니가 바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그 바리새인이다... 라구요

이제 두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바리새인의 기도를 들어보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 18: 11 ~ 12) “

토색하지 아니함
불의하지 아니함
간음하지 아니함
이것이 어찌 불의한 것이겠습니까?
율법과 계명 그대로 선한 것이지요

세리와 같지 않음(죄인이나 불의한 자가 아님)
정기적인 금식 소득의 십일조를 드림이
또한, 어찌 불의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안 의롭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눅18:14)
어찌하여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일까요?
자기를 높이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눅 18:14)

〔토색, 불의, 간음하지 아니함, 죄 짓지 않음, 정기적인 금식, 소득의 십일조 드림이
잘못 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은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리이지요
다만, 이러한 것을 준행함이 나의 의가 되어 교만이 하늘을 찌르며,
준행하지 못한 나보다 연약한 지체를 정죄하며 시험에 들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러한 것들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혹여 나의 기도가 이렇게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나는 동성애도 남색도 바람도 피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는 불의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는 조두순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는 고난주일/부활절/교회 절기에 맞춰 금식을 합니다.
하나님, 나는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나로 범죄케 하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기본적인 타인에 대한 존중과 예수 안에서 하나 된 지체로써의 자각이 없으며
말은 겸손케 하나 속에 가시를 지니고, 나를 남보다 낫게 여기고 잘난 척 하며
심지어는 하나님 앞에서도조차
"주님! 내가 이것 이것을 하였습니다" 라고 자랑하는 어리석은 기도에
예수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니가 바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 열심히 하는 그 바리새인이다...' 라구요.

기도는 자기만족과 과시를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그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1 5:14)

주님이 우리 성도들을 향하는 눈길로 보지 못하는 교만한 눈과 마음으로 행하여지는
어떠한 것도 주님은 받지 않으시며, 오히려 책망하실 것입니다.
니가 바로 그 바리새인이다 라고요.

오늘, 내가 주님이 아닌 나를 높였다면
오늘, 내가 주님조차 정죄치 아니한 지체를 정죄하였다면
오늘, 내가 타인의 실수와 허물을 보며 우쭐해 있었다면
오늘, 내가 조금 더 배웠다고 무식한 자를 무시했다면
오늘, 내가 조금 더 갖았다고 가난한 자를 멸시했다면
지금 내가 바로 바리새인이 아닌지......

어떤 분들은,
바리새인들을 대상으로 한 말씀들은 이 시대에는 적용이 필요치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 또한 이렇게 물으십니다.
그럼, 누가 바리새인이냐고.
바리새인에 대한 교훈과 훈계를 누구에게 적용하냐고.

주의 진리와 사랑이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