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1:9~14
두 반응
참 빛은 세상에 와서 각 사람을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이 빛은 세상에 와 계실 뿐더러 세상이 그 분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됐는데도 세상은 알지 못했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지요. 그 분이 당신의 땅에 오셨는데 당신의 백성이 반기지 않은 것입니다.
참 빛 곧 예수 임마누엘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크리스토께 전혀 서로 다른 대립 반응을 보인 명백한 두 그룹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대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죠.
1. 그 분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
2. 그 분을 받아들이는 자들
두 가지 반응뿐입니다. 그 밖에 딴 반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 반응은 없다는 말이지요. 받아들임도 안 받아들임도 아닌, 그런 밋밋한 반응은 결국 위의 1에 속하기 때문이죠. 오직 기꺼이 받아 들이는 반응만 2에 속합니다.
그 분의 백성들 대다수가 그 분을 받아들이거나 영접하지 않고 거부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입니다. 소수만 영접했을 뿐. 이것은 참 희한하고 기이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수천년전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더욱이 창세 후 초기부터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미리미리 예언하십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여 방문하시기 전에 이미 메시아는 예언돼 오다가 아브라함 대부터 본격적으로 확실히 알리기 시작하십니다.
그리하여 수천년 후 드디어 이스라엘 그들의 후손 가운데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어 태어나게 하십니다. 가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경륜이요 신비이지요. 천사들조차 놀랐으니까요. 인류로서, 특히 이스라엘-유다로서는 큰 영광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유다가 그 분을 반기지 않고 거절했다는 겁니다. 이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충격 아닌가요! 어떻게 그 분의 백성이 그럴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내 소유, 내 백성이 참 주인, 참 왕인 나를 거부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그런 더 없이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일부 신학주의자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소수를 선택하셨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소수를 선택하셨기에 다수가 거부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그렇다면 당신의 백성이 '거부'한다고 할 건덕지도 없는 셈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보다 신학에 치우치는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의 선택의 매커니즘을 도무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것은 "크리스토 안에서" 시행되며 인간의 반응이 반드시 결부됩니다. 강압적 절대 선택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이 반드시 응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했을 때 아브라함이 거부하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니님의 기대 대로 성령의 감화 대로 믿음으로 응했습니다. 아담/하와도 하나님이 강압했더라면 선악지식의 열매를 안 먹었을 터입니다.
아무튼 자기 백성에게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크리스토를 대다수가 거절했고 극소수만이 환영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초세기뿐 아니라 지난 역사 속에서도 마찬가지. 유대인들은 계속 예수님을 거부해 왔으며 지금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분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이 대대적으로 크리스토님을 환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거듭난 사람만이 진정 크리스토를 영접한 것이지요.
그냥 교회 다닌다고 해서 다 크리스토를 영접한 것은 아닐 터입니다.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그 분이 주님이심과 부활하셨음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로마서 10:9,10). 그리고 그것이 크리스천의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신앙 생활의 시작이고 초보일 뿐. 그런데도 이 초보단계를 거치지 않았거나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히브리 5:12~14, 참조: 6:1~2).
아무튼 크리스토를 참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의 권세
자..메시아를 영접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참 빛 곧 메시아를 영접하는 사람은 곧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입니다. 여기 등식이 있지요. 역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이 곧 참 빛 메시아를 영접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토를 이미 영접한 사람은 예수 이름으로 무엇을 하든 이뤄짐을 믿는 사람도 돼야 합니다. 바로 이 성구를 적은 요한이 이 점을 강조하고 있지요(요복 14:13,14, 15:16, 16:23~25)
예수 크리스토를 영접한 사람에겐 하나님의 자녀가 될 특권(권리)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라..얼마나 놀랍습니까! 정작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보기 전에야 그 권세가 어떤 것인지를 모릅니다. 알 턱이 없지요. 그러니 독자들도 다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십시오! 방법은..누구나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 됩니다(로마서 10:9,10).
[본 12절의 한글 번역 문장 일부는 원문이나 영문에 비해 이상하리만큼 약화돼 있습니다. 문장 맨 앞의 그리스어 (관계) 대명사 '호소이'는 '누구든지, 얼마든지'라는 뜻으로 옮길 수 있는데도 영문성경들과는 달리 한글성경은 오직 '쉬운성경'만 반영됐습니다.
'호소이'를 살린 본 절 번역은 이렇게 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 분을 모셔 들이는 사람들, 곧 그 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특권을 주셨다."
이 구절은 '누구든지'로 개방/오픈돼 있으면서도 그 분을 모셔들이는 사람들,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로 국한/제한돼 있습니다. 즉 조건부 열림(openness)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의 특권과 권리, 권세는 상상도 못할 만큼 엄청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경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 모든 '구디'(goodies)가 우리의 것이지요. 구원과 영생은 물론 예수의 이름 권세, 잃은 영혼에게 전도하여 건질 권세, 성령의 권능과 은사, 성령의 열매, 다양한 복과 건강, 형통/번영 등등 구디들은 너무나 많지요.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 크리스토를 통해 오는 온갖 것들입니다.
또한 이들은 크리스토 안에서 하늘 보좌에 앉힌 사람들입니다(에페소 1:6).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딸들은 핏줄로 또는 육정으로 또는 사람의 뜻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태어났습니다(13절).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영적으로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족보 상 다윋 왕손이셨지만 요셒의 씨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잉태되어 나셨지요.
세상은 핏줄 즉 혈통과 가문, 족보 따위를 자랑합니다. 영국 왕족의 혈통은 얼마나 서슬이 시퍼런지 심지어 '블루 블러드'(푸른 혈통)로 통하지요. 황실의 상징색도 로열 블루입니다. 미국 대통령 상당수는 영국 귀족 가문 출신입니다. 그러나 혈통과 가문이 내 영혼을 살려줍니까? 천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 크리스토를 영접함으로써 하늘 왕국의 왕손들-왕자와 공주들이 됐거나 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페트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선택 받은 세대, 왕의 사제,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분의 놀라운 빛으로 이끄신 그분의 은덕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페트로A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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