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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교회력과 교회명절

크리스마스-어디까지 진실인가?





크리스마스는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꿈과 낭만, 심지어 (행복 보다는) 행복감을 선사해 주는 명절입니다. 온 세상이 오색 등불로 찬란한, 화려한 성탄장식, 카드와 선물, 캐럴/칸타타/오라토리오 등 거창한 음악회, 연극과 만찬 등 교회행사들..

저 자신, 크리스마스에 얽힌 많은 그리운 추억들을 오래 끌어안고, 그러쥔 채 지냈지요.

한국전 직후인 어릴 적부터..성탄절이면 으레 미국서 날아든 다양한 구호물자 선물과 함께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탄절 카드장들을 들여다 보며 이국적인 깊은 꿈에 젖곤 한 적이 한 두 번 아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추리 주위를 맴돌며 춤추는 어린이들의 모습, 금박의 영문 글씨로 새겨진 제목 아래 화려하게 장식된 캐럴 '그 맑고 환한 밤중에'의 악보 등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우리 또래 사이에 유행했던 풍자적인 캐럴 가사 하나는 "기쁘다, 구제품 나왔네!" 였습니다.

초등학교 말엽 즈음 만난, 영화배우처럼 예쁜 '가정교사'(그룹지도) 선생님 한 분은 제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스승들의 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눈이 꽝꽝 얼어붙은 추운 겨울 달밤, 평소 수업에 게을렀던 저를 조용히 책망하고 영(?) 떠나셨다가 성탄절 새벽송을 부르며 다시 나타났지요. 그때의 감격이란! 그날 저는 교회에서 그분이 정성껏 가르쳐 주신 '귀중한 보배합'이란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그밖에도 성탄절은 많은 낭만적인 추억거리들을 나의 삶 주변에 낳고 뿌려 놓았지요.


그러나 어느 해부턴가 온 가족이 성탄절 전통과 결별했습니다. 성탄절 전통의 많은 부분들이 비성경적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디까지가 비성경적일까요..?


성경이 예수님의 탄생/성육신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대 사건으로 부각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구원사/구속사의 분수령을 이뤘기 때문이지요.

복음서 기자들은 아기 예수의 탄생과 당시 정황에 관해 퍽 상세한 기술들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로부터 탄생 후 나자렡 이전까지, 행전도 쓴 탁월한 사가(史家)인 루카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선구자이자 사촌 간인 침례(세례)요한과 아기예수의 탄생까지 각각 2장씩을 할애했습니다(참고: 성구의 장/절은 후대에 분류됨).
사도 요한은 주님의 성육신의 영적 의미를 한껏 부각시켰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도들과 초기교회는 아기예수의 '생일기념축제'란 것에 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출현하는 당대의 수많은 교회들이 단 한 번도 그런 절기를 지켰다는 사건이 보고되지 않았습니다(이것은 부활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여기선 언급을 생략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복음을 잘 이해하려고 애써 보면 알지만, 사도들과 초기 교우들은 절기 전통 지키기에 치심하지 않았습니다. 신약에서도 구약 절기의 이름은 나오지만 준수했다는 기록이 없고 되레 반대로 전통준수를 경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더욱이 유명하고 중요한 누군가의 생일치레를 했다는 말은 눈 씻고 봐도 없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을 중시하면서도, 그분의 생일기념잔치는 하지 않았다는 것 - 이것은 성경이 시사해 주는 중요한 패러독스-역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경은, 훗날 올지 모를 잘못된 성탄절 전통을 미리 예감하고 경계하지 않았겠나..저는 생각해 봅니다.

우선 성경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언제인지조차 밝히지 않습니다. 2000여년 후에도 여전히 기념해야 할, 그렇게 중요한 날이라면 왜 밝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어느새 언제부턴가 성경엔 없는 12월 25일이 성탄절로 둔갑해 있었습니다. 이 날은 사실상 로마의 태양신 사투르누스의 축제일인 사투르날리아인데 천주교가 이교적 관습을 양성화하는 차원에서 성탄절로 제정했다고 하지요. 아르메니아정교회는 그레고리력 아닌 율리우스력에 따라 1월6일을, 동방교회는 1월7일을 고집하고요. 서로 저마다 옳다니 누가 진짜 옳은 겁니까?
아무튼 개혁가들은 이렇다 할 아무 생각이나 아무 문제의식도 없이 이 관행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 오늘날 신/구교가 공히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습니다.

진실/진리대로 말한다면, 그 날이 사실상 아기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거짓을 양성화하여 믿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산타크로스의 현존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과도 일치하지 않나요? 어린 자녀에게 산타크로스가 사실이 아님을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성탄절이 주님 나신 날도 아니요, 꼭 지켜야 할 날짜와 관습도 아님을 용기 있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12월이 우리 주님이 나실 계절이 도저히 될 수 없다는 것은 여러 모로 입증됩니다.
여러 학자들이 다양하고 상세한 숫자/날짜 산정을 통해 12월25일 수가 없음을 증명했지만 시시콜콜이 참조하진 않겠습니다.

12월은 양떼와 목자들이 베틀레헴 들판에서 밤을 지샐 계절이 못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고 남습니다. 그리고 로마황제 카이사르 아구스투스가 하필 추운 12월에 온 영토 사람들에게 인구조사-센서스를 시킬 까닭이 뭔가요?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한 추운 겨울밤 주 탄생하신 이 날 거룩한 날이여"라고 노래합니다. 들의 목자들과 양떼, 아기 예수와 마리아/요셒 등이 한꺼번에 한 겨울 추위에 와들와들 떠는 모습을 정말 봐야 한다는 말입니까?

5W/1H의 사실 여부를 중시하는 미디어와 정보가 최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정체 모를 그날 12월 25일에 "오늘, 베틀레헴에 나셨네!"라고 전혀 확인도 안 된, 사실 아닌 거짓 진술을 해마다 되풀이합니다. "음, 내가 태어난 날이 아닌데.."하고 주님이 난처해 하시는 모습이라도 보는 듯 합니다.

그리고 '대강절'(대림절/강림절, Advent)이라..우리 주님은 2000년전 이미 임마누엘로 오셨다가 이제나 저제나 하늘에서 다시 오실 날만 기다리고 계신데, 우리는 카톨맄 전승 대로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하고 쉐잌스피어 연극대사라도 외듯 노래합니다. 유대교처럼 또 다른 제2의 메시아를 다시 기다린다는 말인가요....................?
 
'크리스마스'(=크리스투스+미사)란 말 자체가 카톨맄 냄새를 풍깁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을 애용하고 즐기는 한 (성경이나 신교가 아닌) 카톨맄 전통을 더 존중해 주는 셈이지요. 하지만 늘 강조하듯, 교회의 뿌리는 하늘 예루샬렘이지 결코 로마가 아닙니다!

카톨맄에서 온 성탄절 전통을 한 번 눈여겨 엿보십시오. 세상 생일과도 다른 점이 눈에 띄지 않나.. 세상 생일은 당사자가 태어난 것과 함께 점점 성숙해 가는 것을 함께 축하합니다. 그러나 성탄절엔 언제나 어른 예수가 아닌 아기 예수를 그리며 즐깁니다. 

왜 그럴까요? 카톨맄은 다름 아닌 아기 예수의 엄마 마리아를 중시하기 때문에, 예수가 '마마보이'로 남길 은근히 바라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영화 '크리스토의 수난'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분위기죠. 그들은 소위 '성체' 속에 들어 있을 만큼(?) 작은 예수와, 대조적으로 "큰 마리아(마돈나)"를 한껏 부각시켜 왔습니다. 중세 '성화'들, 동방정교회의 '성화상'이란 것을 보면 대부분 그렇게 표현돼 있습니다. 소위 '테오토코스'(신모/神母)라는 엄숙한 명칭과 함께. 

카톨맄은 분명히 비성경적인 마리아 숭상(그들의 '흠숭') 교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가 영원히 마리아 곁을 장식해 주길 바라는 것이며 성탄절 축하 때마다 신교도 여기 발맞춰 동조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한 카톨맄 사제가 지은 노래에 따라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라며 해마다 아기 예수께 자장가를 불러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대로라면, 우리가 왜 해마다 정체모를 날짜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해야 하는 것인지요?
주님께선 "나의 생일을 (적당히 정한 아무 날짜에) 해마다 기념하라" 하시지 않고 "이것은 내 몸/피이니..(떡과 잔으로 세운 새 언약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성찬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성찬으로 우리는 주님의 성육신, 삶과 죽음과 부활을 모두 함께 기념하는 것입니다!

신/구교가 함께 꼭 매년 엄청난 예산과 에너지를 쳐 들여가며 신/비신계(信/非信界)가 아울려 온 세계가 떠들썩하게 [크리스투스+미사]를 축하하는 것이 주님을 참으로 기념하는 방법일까요? 성경에 따르면 아니지요!

이것은 천년도 더 전에 마련해 놓은 '마리아교' 중심의 카톨맄 어젠다에 신교가 얼추 장단을 맞춰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즉 종말에 카톨맄 중심으로 세계종교가 통합되는 데 있어 크리스마스가 단단히 한 몫 한다는 것이지요. 

크리스마스 상혼이 미국 경제를 뒤흔들 정도이면..알 만 하지 않은가요?
빌리 그래엄이 교황을 금세기 최고의 영적 지도자로 쳐 주고, 영국 전 총리가 자진해서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미국 대통령들이 '교황'에게 굽신굽신 아부하는 모습에서 뭔가 감지되는 바가 없나요?

오늘날 관상영성을 비롯한 온갖 잡된 영성의 흐름들이 두드러지게 카톨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봐도 감 잡히지 않나요?

근래 미국에서 무신론자들이나 타 종교의 마파람에 의해 크리스마스 전통이 약화돼 감을 마치 기독교 자체가 약화돼 가는 듯 몰고 가는 친카톨맄 보수계의 의문성 캠페인을 봐도 뭘 느끼지 않나요?

소위 대강절(대림절/강림절), 크리스마스 주변의 온갖 전통들은 성경보다는 카톨맄의 냄새를 더 풍깁니다.
다양한 수많은 캐럴은 대부분 천주교나 그와 대동소이한 성공회에서 온 것들입니다. 적당히 신교식으로 번역됐을 뿐이지요. 성탄 시즌마다 애창되는 핸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처음부터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극장/자선음악회를 위해 작곡된 음악입니다. 

'크리스마스추리'란 것은 근원을 유추하기가 쉽지 않은 이교적 관습에서 온 것입니다. 그 꼭대기에다 오각별을 달아 놓고 몸통을 온갖 색등과 방울들, 캔디케인, 장식물들로 아기자기 주렁주렁 매단 모습을 높이 쳐다보며 황홀해 하는 사람들을 신이교도들, 자연주의자들이 조소/비소합니다. 고대로부터 상록수를 장식하고 숭상해온 이교적 관습과 별 다름 없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yule log' 전통은 이교와 기독교에 공통된 관습이지요.
  
오각별/육각별/팔방별이 아기 예수님과 무슨 상관인가요...? 그렇지 않은가요? 이런 '별'들은 오히려 유대 마법 카발라/연금술/신지학/심령술/형이상학/프리메이슨리 등이 중시하는 상징물이 아니던가요..

우리는 입버릇처럼 되뇌는 '동방박사 세 사람'은 멜키오르/알타이저/카스파르 등 정체불명의 세 왕/박사로 자리를 굳힌 카톨맄 전승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역시 성경진리이거나 진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네 역대 찬송가마다에 엄연히 수록돼 있습니다. 찬송가라니 이 전승의 뭘 '찬송'한다는 것인지..?

비신자들은 흔히 크리스마스를 통해 교회와 접하고, 감수성이 민감한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를 통해 기독교를 배워 갑니다. 그러나 성경과는 다른 전통에 알게 모르게 황당한 환멸감을 맛보게 됩니다. 크리스마스 화(化) 된 기독교는 어린이들에게 낭만과 거짓 꿈을 안겨줄지언정 그들의 삶을 살려주는 생명의 복음과 진리로 남기엔 역부족입니다.


제가 이런 유의 말들을 하면, 어떤 이들은 '교회파괴행위'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묻습니다: 제도적 교회가 더 중요한가요, 거듭난 사람들의 참 공동체인 눈에 안 보이는 가시적 교회가 더 중요한가요?

성경말씀이 더 중요한 것인가요, 카톨맄에서 유래된 전통이 더 중요한가요?

그리고..성경진리를 새삼 일깨우자는 것이 '교회파괴'라면, 성경진리를 강조할수록 주님의 몸이 더 파괴된다는 뜻인가요?
거 참, 오묘기괴한 논리입니다!


그리고 김삼이나 티엘티는 어린이와 가족들로부터 성탄절의 추억과 낭만, 사색거리를 앗아간다(??)고 혹 생각할 독자들이여. 그런 것들을 간직하고 안 하고는 티엘티의 강요도 아닌 본인의 자유와 선택이고요, 굳이 성탄절이 아니더라도 이 계절은 얼마든지 낭만과 추억과 사색을 살릴 수 있을 뿐더러..

기독교가 언제부터 추억과 낭만, 사색의 종교였습니까?
그보다 기독교는 말씀과 묵상, 권능과 영감, 믿음과 소망의 진리가 아닐까요.


온갖 잡다한 영성운동과 함께 크리스마스 전통도 성경 진리의 조명 아래 검증돼야 마땅합니다.
진리를 진리이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