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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교회력과 교회명절

표절 곡 '고요하고 거룩한 밤'

유튜브 캪처( https://youtu.be/cJWPoSJLi0s )

 

 

표절 곡 '고요하고 거룩한 밤'


현행 한국 찬송가, 일명 21세기 찬송가를 보면, 다양한 성탄절 축하송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한국인 작시, 작곡으로 된,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라는 곡이 있다. 언뜻 '고요한 밤, 거룩한 밤'과 혼동되는 가사다. 특히 작시/작곡자를 익히 알거나, '개편찬송가'를 아는 사람들은 기억하는 노래일 것이다. [성악가인 작시자는 필자의 어릴 적 은사이기도 했다.]  

이 찬송가의 내력은 상당히 흥미롭다.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겹쳐서다. 이 찬송가는 본래 교회음악인인 (고) 장수철 박사가 창작한(?) 곡에다 그의 친구인 음악교사, (고) 임성길 장로가 가사를 붙인 것으로, '청년찬송가'에 수록됐다가 오늘날 찬송가에도 실리게 되었단다.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일명 월드비전 합창단) 초대 지휘자로도 알려졌고, 찬송가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등으로 유명한 장수철이 어느 날 '절친'인 임성길을 찾아와 악보를 내밀면서 가사를 좀 붙여 달라고 부탁했더라는 것. 

그런데 찬송가 학자 오소운 목사에 의하면, 스토리는 사뭇 황당해지기까지 한다. 작곡자가 친구를 찾아와서까지 내민 이 곡은 자신의 순수 창작곡이기보다 사실상 미카엘 하이든(Johann Michael Haydn)의 다른 찬송가를 거의 그대로 표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변주곡'으로 편곡한 것이라고밖에 정말 평가해 줄 말이 없다. 
더욱이 전자는 성탄절용, 후자는 새해용으로, 두 곡의 절기 용도조차 비슷한 계절인 셈이다. 

두 곡을 유튜브 상으로 비교해 보기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v2UqacgLRzI

https://youtu.be/h-GWHntzOn0

우선 곡의 형식을 보면, 둘 다 똑 같은 A-A-B-A'이다. 구태여 차이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 셋째 줄 화음 진행이 서로 다를 뿐이다. 두 곡의 셋째 줄 화성 구조를 대조해 보면, 

장수철: V I V7 vi I V I vi v7/V V 
하이든: IV I V I V v7/V V 

이 마저도 뒷 부분은 비슷한 흐름이다.  그 다음으로, 첫째 줄과 둘째 줄의 화성 진행은 아예 전혀 차이가 없이 각 마디와 박자마다 똑같다! 다만 전자 곡이 8분 음표 중심으로 약간의 장식음을 덧붙인 것 밖에는. 

도대체 장수철은 무슨 생각으로 이 '변주곡'을 만들어 가져온 것일까? 왜 작시자인 친구에게 원곡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을까? 엄연히 표절인데도 불구하고, '창작곡'으로 속인 것일까? 아니면 그냥 장난으로 가져와 본 것인데, 어쩌다 보니 얼렁뚱땅 창작으로 전해지게 됐을까? 처음부터 속일 생각이 아니라 단지 합창곡에 가사가 필요해 변주곡 비슷하게 써서 해보려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일까?

만약 그 유명한 '교향곡의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친동생인 이 미카엘 하이든이 동시대에 살아있었다면, 어찌 됐을까? 분명 한국의 장수철이 자신의 곡을 거의 그대로 표절했다고, 또는 살짝 변조(變造)한 것을 갖고 허무맹랑하게도(?) '창작'이라 주장했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심지어 국제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하고 상당액의 배상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면, 다행일 것이다. 

전술한 오 목사의 해설에 따르면, 장수철의 이 곡은 처음에 청년찬송가(1959년)의 제194장으로 수록됐다가 8년이 지난 1967년, 가사 상당량이 편시된 채 개편 찬송가의 제86장으로 실렸단다. 살펴 보노라면, 상당히 신경써서 고친 셈이다.  당시에, 우선 첫 줄의 '눈이 오는 고요한 밤'이 문제시됐다. 아기 예수가 나신 유대 나라는 눈이 안 오는데 고쳐야 되지 않겠냐는 것. 물론 당연한 발상이다.  

 


더 큰 문제

그런데 여기엔 본론에 해당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냥 "유대 나라는 눈이 오지 않는데...' 정도로 단순하지가 않다. 성탄절이라는 명절이 기독교가 주로 전파된 고대 로마를 비롯한 서구의 천주교를 통해 성탄이 한 겨울의 절기로 둔갑했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는 멋 모르고 해마다 이맘 때면 힘차게 캐럴을 불러제꼈던 우리가, 이젠 뻔히들 알고 있는 문제점이 아닐까.

올해(2019년)도 다들 변함 없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지내봐서 알지만, 이 계절은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상당히 추운 날씨가 지속되는 기간이다. 과연 아기 예수가 이 추운 날씨에 고향으로 호적하러 간 부모에게서 나셨을까? 이 추운 날씨에 바깥이나 거의 다름없는 차디찬 돌구유 안에 강보에만 싸인 채 누워 계셨을까? 왜 당대 천하의 종주국인 대 제국 로마의 황제, 케자르 아우구스투스가 천하에 어리석은 사람 같게도, 하필 신민들에게 호적을 추운 한 겨울에 시켰을까? 어릴 때 즐겁기만 하던 상상과는 영 맞아들지 않고 당치 않은 모순인 것이다. 

문제는 그 뿐만 아니다. 어떻게 한 겨울날 목자들이 들에 나가 양을 쳤겠냐는 것이다. 성경이 아닌 크리스마스 캐럴에 따르면, 이 베틀레헴 목자들은 눈 구덩이 들판에서 양들과 함께 비스듬히 누워있으면서 갑자기 하늘에서 방문한 천사를 맞은 셈이 된다. 눈이 오고, 별빛 맑고, 목자가 양떼랑 자고, 박사가 예물을 들고 낙타를 타고 설렁설렁 찾아오고...좋은(?) 상상의 컴비네이션은 알뜰하게 다 갖춘 셈이다. 

천사가 기쁨의 소식을 전한다면서도, 만약 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정말 인간을 돕고 돌보는 밝고 따뜻한 맘씨의 천사라면, 먼저 당연히 "하~이고, 목자 여러분들! 양을 치기엔 너무나 춥겠어요? 정말 고생이 많아요~!"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지 않고 단지 이 한 겨울날, 메시아가 나신 소식만 큰 기쁨의 뉴스라며 눈 구덩이 속의 목자와 양떼에게 전해 주고 가기만 했다면, 천사나 그들을 파견한 하늘나라나 도무지 뭔가 무심하고 단단히 잘못된 것일 터이다. 
 
그리고 임성길의 본래 가사는 전반적으로 상당히 복음적이지만, 뭔가 앞뒤가 안 맞아 들고 순서도 안 맞는 느낌이다. 눈이 오는 고요한 밤에(1절) 동시에 별빛이 맑게 빛나는가(2절 참조)? 물론 눈이 오다가 그치는 수도 있겠지만. 또 들에서 목자들이 양을 치고, 천사가 노래로 화답하던(3절 참조) 동방 박사들이 약대 등에 바리바리 예물을 싣고 별빛 따라 찾아와 경배한 날이 모두 아기 예수가 태어나신 바로 그 날이던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 우리가 해마다 지키는 그 날은 사실상 아기 예수의 성탄일이 아니라는 게 엄연한 진실이다. 그렇게 볼 때, 이 가사는 물론 상당량의 성탄절 찬송가들이 성경 진리보다는 전설 같은 배경에 기초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개편 찬송가에 실리기 전, 임성길의 이 가사가 고쳐져야 했음은 너무나 당연했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동방박사가 경배한 그 대상인 아기는 이미 태어나신 지가 상당 기간 됐다는 점이다. 적어도 동방박사가 방문한 그 즈음에 태어나신 것은 아니다. 이건 비단 이 곡뿐 아닌 여러 캐럴이 저지르고 있는 모순이다. 

 

정작 중대한 문제: 두 곡의 평화 공존?

하지만 정작 무시 못할 중대한 문제는, (표절한) 이 곡과 함께, 개편 찬송가에 원곡에 해당하는 하이든의 곡도 새해용으로 따로 함께 실리면서, 양자가 우스운 공존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따져 보면, 한국 찬송가 역사상 있어선 안 되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래선지 (통일)'찬송가'를 만들 때는 이 찬송가(109장)는 빠진 반면, 하이든 곡은 실렸다. 

그랬던 것이..21세기 찬송가인 새찬송가를 만들면서, 또 다시 두 곡 다 실어버린 것이다! 장수철의 전자는 110장, 하이든의 '오늘까지 복과 은혜'는 551장으로 수록됐다. 일대 과오의 재탕이다! 오소운은 이것을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큰 실수다"라고 한탄조로 결론지었다. 원곡과 표절곡을 한데 실어버린, 참혹한 코미디 한 판이었던 셈이다. 과연 21세기 찬송가 편집위원회는 이 두 곡의 웃지 못할 공존 현상을 언제까지 지탱할까? 

찬송가 중 특히 크리스마스 명절에 불리는 곡들의 가사 대다수는 내용상 성경보다 전통에 의거한 사례가 잦다. 예컨대, '동방박사 세 사람'은 우리네 찬송가에 꾸준히 실려오다 결국 '동방에서 박사들'이라고 고쳐졌지만, 영어로는 여전히 We Three Kings of Orient Are라고 부르는, 원시의 경우다. 과연 박사들이 3명이었는지(비록 예물이 세 가지였던 것은 맞지만), 과연 그들이 모두 왕이었는지, 과연 그들이 오리엔트, 즉 멀고 먼 동양, 아시아나 심지어 또는 극동에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사실은 중동 내지 근동의 동쪽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 이 점과 관련해 필자는 구글링하여 위키피디어를 참조하려다 깜짝 놀랐다. 'We Three Kings of Orient Are'의 영문 위키피디어를 한국인들에게 소개하는 부분인 한글 요약문에서 작시/작곡자인 좐 헨리 핲킨스 2세(Jr.)가 성직자이자 '최면술사'였다는 것이다. 헉! 그러고 보니 핲킨스의 사진이 째려보는(??) 눈 또는 곁눈질에 가까운, 두 눈에 끼(?)가 서린 듯한 다소 익살스러워 뵈는 모습이 정말 최면술사 같이도(?) 보였다. 너무나 뜻밖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한글로 옮긴 번역자가 찬송가 작가라는 뜻의 영어 'hymnodist'를 발음이 비슷하게 들리는, 최면술사/'hypnotist'로 착각한 것이다! 이런 어슬프고 우스꽝스런 실수들이 찬송가 주변에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당 요약문이 시정되길 바란다. ] 

그런데 작가 핲킨즈는 저널리스트, 저술가, 법학자, 철기제조공, 현악기 연주자, 찬송가 작가(작시/작곡)에다 교회건축학자, 화가/삽화가/디자이너, 그리고 성공회 사제이자 주교, 신학교 교수 등 실로 다재다능한 인사였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노예해방 반대론자여서 그 점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지만, 성공회의 종주국인 영국에도 초청받아 장기간 머물 만큼 모범 사목자로 기려진다. 

핲킨즈는 이 곡 말고도 동방박사에 관한 가사(When From The East The Wise Men Came)를 하나 더 썼다. 이 곡 '동방박사 세 사람'은 원래 성탄축하행사의 일환으로 조카들의 '장기자랑'용으로 썼던 곡인데, 고금의 명 캐럴이 된 것이다. 그는 또 '크리스마스 추리 둘레에 모여서'라는 캐럴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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