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3)
할렐루야~
피하는 지혜로움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간혹, 마땅히 피해야 할 때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거나, 굳건히 버팀을 마치 “믿음의 척도”로 오해하고 계신 분들을 뵌 적이 있습니다.
과거 저 또한, “믿음”을 우직하게 버티는 것으로 생각하여 위와 같이 행하였던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모든 상황이 다 피해야 할 상황은 아닙니다.
때로는 목숨 걸고(?) 영적싸움에 임하여야 할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신앙의 가장 기본정신을 훼손할 때입니다.
신사참배 강요가 그 사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신사참배 강요는 신앙의 기본정신을 명백히 훼손한 것이지요
예수님 믿기 + 우상 숭배 = 차지도 덥지도 않은 신앙이지요
따라서, 주기철 목사님등을 필두로 많은 분들이 일사각오로 신앙의 정절을 지켜낸 것이구요.
그러나 마땅히 피해야 할 상황이 명백하며, 피할 길이 (어마어마하게 큰 길로) 보이게끔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면 그 때는 싸울 때가 아니라 피할 때입니다.
주님이 피하라 길을 여셨음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아니함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그분을 무시한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맹목적인 신념/의지”를 “강건한 신앙”으로 잘못 여김인 것 이지요
예화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큰~~ 홍수가 났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한 청년은 홍수가 자신의 집을 덮치지 못하도록 기도하였으나, 집에 점점 물이 차오르게 되었고 이 청년은 지붕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때 구조대원들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단호하게 ‘믿음으로’ 그들의 구조를 거절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구해 줄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도움은 내게는 필요없습니다”라구요...
그렇게 하기를 서 너 차례.
마침내 그 청년은 불어난 물과 함께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죽음 후에 이 청년은 예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나를 구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얼마나 주님의 도움을 구하였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나를 그대로 두셨습니까?”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이렇게 답변하셨답니다.
“너의 기도에 응답하여 내가 구조대원을 세 번이나 보내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는 나의 도움을 모두 뿌리치더구나”라구요...
우리가 얼마나 자주 이 청년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범사에 역사하고 계시는 하늘 아버지의 참된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소위‘기적의 문’만 열리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요?
성경을 보면 바울사도도 주의 말씀을 전하다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때 몰~래 탈출하여 그 위기를 넘긴 장면이 나옵니다. (행전9:23~25)
회심한 바울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전파하니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를 공모했으며, 그 사실을 전해들은 사울의 제자들이 사울을 밤에 몰~래 광주리에 담아내리지요
바울은 이렇게 하여 목숨을 건졌으며 이후 더욱 담대히 예수가 곧 그리스도인을 전하게 됩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니(행전 9: 23~25)
그러나, 로마로 압송되어 지도자들 앞에서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권리를 사용하여 로마로 향합니다. (행전 23:11)
바울 사도는 피할 때와, 모든 권리를 사용할 때를 잘 분별했던 것이지요.
심지어는 예수님도 주님의 때를 위하여 피하실 때가 있었습니다.(요8:59)
예수님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할 때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하였습니다.
그러할 때 예수님께서는 많은 능력을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피하셨지요.
그들을 제어할 능력이 없음셨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시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요8:59)
TLT 가족들은
영적전쟁에서의 철저한 승리와
싸울 때와 피할 때를 분간할 수 있는 지혜가 함께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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