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행전 16:30~32)
본의 아니게 긴~ 출장 기간동안, 신약 성경 대부분을 읽을 수 있는 은총을 누렸습니다.
과연 성경에서 제시하는 전도란 무엇인가를 나름 발견하였기에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위 본문을 갖고, 전도의 어떤 기술적 면모를 제공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수시로 갖고 있던 여러 생각들에 대한 정리라는 측면이 더욱 강합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전도를 하여야 할까?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할까?
어떻게 하면, 복음의 핵심을 단 시간에 정확히, 거부감 없이 전할 수 있을까?
저의 전도에 대한 기본적인 요구 사항은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게!! 였습니다.
물론, 성경이 어렵고 복잡한 면도 많지만, 구원을 얻는 데 어렵고 복잡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과 더불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약성경을 읽어 나가면서 두 가지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전도방법과 이방인에 대한 전도방법의 상이점을 보게 된 것이지요.
유대인에 대한 전도는 언약/약속의 상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 유일신 사상과 선민사상을 지닌 유대인에게는,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약속이 말세에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나타낸 것이지요
사도행전 2:14 이하에 나타난 베드로의 설교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이방인에 대한 전도는 어떠한 피조물도 신이 될 수 없다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바울과 바나바의 루스드라 전도가 그리하였으며(행전 14:8 ~ 15)..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사도바울의 에베소 전도 또한 그리하였습니다.(행전 19:26)
26 이 바울이 에베소 뿐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 주위에서 혈통적 유대인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사유로 주의 복음을 듣긴 들었으나 실족한 지체들은 볼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신실하심,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격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서, 복음을 듣도 보도 못하였으며 오히려 적대적이기까지 한 경우에는,
피조물의 유한성과,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과(요3:16),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이셨음을(롬1:20) 알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성령님의 도우심과, 허락하신 지혜와 슬기, 영혼을 향한 기도와 인내는
기본 중에 기본이 되어야겠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개개인에게 허락하신 모든 권리를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사용하였습니다.
자신이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의 학문을 닦았음을(행전22:3),
나면서부터 로마인이었음을(행전 22:28),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이었음을(행전 23:6)
이 모든 것을 사용하여 로마황제(가이사)에게 항소하여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는 바울 자신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로마에서도 주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행전23:11)
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한때 저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을 사용하지 않음을 믿음이 있다 여긴 것이지요.
그러나, 주께서 사용하라고 주신것을 사용치 않음은 믿음이 아니라 교만이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겸손함을 나타내 보고자하는 교만인 것이었지요 ...
바울은 복음을 변명함에 있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사용하였지만,
복음에 참여함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기 위하여 자신의 권리(고전9:5~6)를 과감히 포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변명함과 복음에 참여함에 대한 분별이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복음의 Key-Point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에서 지나치면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23)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그리하여 우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가 증거됨으로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 놀라운 역사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출장기간 중 간증으로 본문을 마치고자 합니다.
최근 저와 같이 해외출장을 가게 된 분은 카톨릭이었습니다.
아이슬랜드 화산 폭발로 하늘길이 죄~다 막히게 되어 귀국이 지연되자, 계속해서 하는 말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냐,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이냐, 세상이 왜 이러냐... 이런 말을 본인도 모르게 하더군요.
제게 볼 때는 복음을 전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계속 기도하면서, 마태복음 24장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두려워 말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두려워 하지 말자고 했지요...
아울러 시편을 인용하여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또한, 기회를 봐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중보자가 없음을 자주 언급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복음의 열매를 제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언급을 했었지요.
나는 뿌렸고 또한 누군가는 물을 주겠지요...
그러나 자라게 하실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주님을 의지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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