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녀.가정.결혼

개성 표현의 갈등과 극복 (뉴하우스)


 


                                                               독일의 벼룩시장


뉴하우스의 돌보며 걸으며



뉴하우스의 돌보며 걸으며

 

사람 하나 하나가 독특한 만큼 개인의 표현 방법 역시 다채롭다.
자기표현은 예술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만의 소유물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도 알게 모르게 나만의 취향과 창의력이 배어 든다.

특히 여성은 삶 주변을 자기 분신으로 여기는 나머지, 모든 것에 자신의 고유한 생각과 취향이 표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깊이 자리잡곤 한다.

이 집 저 집 다녀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 참 각양각색이다. 모두 자기 취향과 개성을 이렇게 저렇게 표현하며 나름의 정서를 가꾸고 산다. 특히, 쿠키 커터로 잘라 낸 듯한 장식과 꾸밈이나 사람을 위축시키는 고가품으로 표현된 취향보다는 간결하고 소박하나마 나름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센스 있는 표현을 대하노라면, 눈도 즐거워질 뿐 아니라 개인마다 독특하게 살아 가는 방식을 엿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사람마다 이런저런 모양으로 생활 속에서 드러내는 창의력은 항상 나를 자극한다. 원래 쓰일 목적은 따로 있어도, 짜여진‘틀’밖에서의 생각이 가능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이 풍부한 이들이 만들어 내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런 소지가 다분하건만, 돌아보면 늘 갈등하는 사람이었다. 모자라는 2%를 마저 채우고자 하는 갈등이 아니라, 아무 것으로도 채울 수 없어 황량하기만 한 생활공간에서 느끼는 무미건조함과 허탈함이 내 가슴 속마저 허전하게 하던 시절의 내 갈등이다.
집안이 균형 없고 쓸쓸해 보이는 횡 함이 나라는 사람의 연장선은 아니다. 마치 무소유자인양 보이는 나의 생활 환경이 나의 정서 표현은 더욱 아니다. 믿음의 생활화는 더욱 아니다.


아직 학생이던 시절. 갓 결혼하여 타주로 이사 온 우리 부부의 초기 삶은 남들처럼 좋은 직장에 좋은 보수가 기다리는, 신나는 인생 행로가 아니었다. 가구라곤, 먹고 자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 외에 수많은 책장들 뿐, 그 모두를 채우고도 남는 책들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나는 옆 집과 뒷 집 그 어느 집도 흉내 내기에는 너무나 개성이 강했다. 내 식의, 나만의 표현을 하고픈 욕망이 가슴을 꽉 채우고 있어, "적당히" 또는 "대강"과는 타협이 잘 안 되던 시절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내게는 편했다.

"엄마, 누구네 집에는 아무 것도 없어."

우리 집을 다녀간 교회 학생인 아들이 들려 주더라고 한 학부형이 귀띔해 준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가?"하며 혼자 의아해 했다. 그 시절 우리 집에 "아무 것도 없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에, 나는 전혀 이런 상황에 마음이 동요되거나 무조건 채워야 하는 강박관념도 없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마치 나의 모습인 양 흉내 낼 수 없어서 나만의 것을 표현할 수 있을 때를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기에 그렇게 비칠 수는 있어도, 나 스스로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런 나의 이상과는 또 다른 나의 현실, 이 둘은 공존은 해도 서로 견제하는 관계인 듯 평행선을 유지해 나갔다. 내가 바라고 기다리는 기회가 좀처럼 그리 쉽게 오질 않았다.

한 동안은, 적당히 작은 사이즈의 집이 많은 가구나 장식을 요구하지 않아 그런 대로 편했다. 단순하고 깨끗한 것도 아름다움의 표현임을 자부하며 살 수 있었다.
군에 들어 온 후부터는 주로 관사에 살던 우리는 식구가 단촐해 방이 여럿인 집이 차례가 오질 않는다.

그런데 독일에 발령이 났을 때는 달랐다. 식구 수에 비해 비교적 큰 집이 배정되었다. 처음에는 넓은 공간이 아주 좋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짐들이 다 도착하고 난 후에도 우리 집은 너무 썰렁했다. 얼마간 잊혔던 나의 갈등이 새삼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자부하던 단출함과 간소함 그리고 청결함은 더는 효력을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내게 필요했다.

결국, 가구 쇼핑을 나섰다. 미국과 달리 유럽은 질이 좋은 나무로 만든 좋은 가구가 온통 널려 있었다. 값도 미국에 비교하면, 많이 싼 시절이었다. 주위의 미국 아줌마들은 이런 실정을 잘 아는지라 가구 천국인 벨기에로 샤핑을 가곤 했다. 너도나도 자신의 현명한 가구 구매 팁을 나누며 행복해 했다.

그러나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숫자가 보여 주는 현실은 여전히 피할 수 없다. 아무리 내가 사는 미국에 비해 현저히 싸다 해도, 이 사실이 나의 가구 구매를 정당화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모를 리가 없다. 

그 뿐만 아니다. 다들 저마다 구입하는 비슷비슷한 가구가 왜 내 맘엔 영 들지 않을까? "뉴하우스네도 벨기에에 가세요"하며 주위에서 부추기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런 가구 구매가 진정 나 다운 삶의 표현인지 의문스러워졌다. 

그래서 의기소침해지기도 했고, 슬슬 마음을 접어도 보았다. 마치 잘 안 맞는 틀니라도 낀 듯 사느니 그냥 살아야지 하며 벨기에 가구를 포기했다. 그리고도 가끔은, 덩실 하니 운동장 같이 크기만 한 거실이 괜히 못마땅했다.

그러던 어느 사이에, 취향과 개성을 맘껏 표현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린다는 젊은 시절의 높은 이상과 꿈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돼 버린 내 모습이 놀라웠다. 그리고는 "이건 아닌데…" 하며 갈등하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이상과 현실이 평행을 이루도록 스스로 방치하진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 저 집의 흉내가 아닌 나만의 독특한 정서의 표현,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나다운 표현이 불가능한 것만일까?

결국, 나는 기도도 아닌 대화 같은 부탁을 하나님께 하기 시작했다. 아니 속에서 솟구치는 욕망이 기도의 '원동력'이 되고도 남았다. 

   "하나님,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요. 필요한 것을 사는 방법이… 내가 발휘하고 싶은 이 충동을 표현할 방법이… 대신 빚 지거나 거금을 들이지 않고도 살 수 있고 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텐데.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방법을 아실 텐데…" 

나는 "하나님 가르쳐 주세요." 하며 공손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안 가르쳐 주시죠?" 아니면 "그게 뭐지요?"라며 내가 보기에도 떼 쓰는 여자로 점점 바뀌어 갔다.

'기도' 역시도 절실하고 심각한 부탁에서 투정으로 바뀌어 갔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분명 어딘가에 무슨 방법이 있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다는 한 가지 신념으로 계속 떼 쓰며 때로는 한숨마저 섞인 '기도'를 한 동안 한 것 같다.

이건 믿음은 분명히 아니다. 적어도 지금 내가 아는 믿음의 성질은 아니었다. 

이렇게 떼 쓰고 푸념하던 나는 어느 날, 부대 안의 작은 책방을 들렀다. 마침 남편도 훈련으로 출타 중이고 해서 오랜만에 책방을 둘러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 날은 왠지 나도 좀 나만을 위해 돈을 쓰고 싶은 생각이 일었다. 눈으로 보기를 즐기는 나는 실내장식에 관한 잡지를 두 권 집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잡지에다 쓰는 돈이라 크게 느껴졌을 텐데, 그 날은 나 스스로 내게 쓰는 선심이라 과감히 큰 돈을 쓴다는 나만의 앞 뒤 안 맞는 상황 합리화를 하면서, 하나도 아닌 두 권씩이나 챙겨 온 것이다.

집에 와서 잠 들기 전, 여기저기 페이지를 넘기던 나는 '변형'(metamorphosis)이라는 주제로 중고품점(thrift store)이나 플리마켓(flea market=벼룩시장)에서 고물을 손을 보고 다시 칠하고 해서 다시 그럴 듯한 가구로 재생시키는데, 그런 가구가 수 백 달러에 팔린다는 글에 눈이 머물었다. 

잡지 한 페이지의 모든 글자가 한 자 한 자마다 튀어나와 눈 속에 머물다 가슴 속에까지 박힌다.

"아니, 이럴 수가! 이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하며 나는 잡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 동안 나의 이상과 꿈을 잊어 버리고 나의 현실 안에 갇혀 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세상에 일어나는 변화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그럴 동안 세상은 어느 새 내가 생각하고 표현하고 싶어하던 방식이 이미 유행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높기만 하던 장벽이 무너지고,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여 나를 흥분하게 하는 저녁이었다.

그 날 내가 산 잡지 두 권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는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나의 기도이자 투정의 응답임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안다. 

다시 잡지를 들여다 본다. 작품도 아니고 흠집 난 걸 큰 붓으로 캄플라주 하는 것쯤이야 취미 삼아 할 만도 했다. 헐값의 가구나 소품이 그럴 듯한 작품으로 거듭남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취향이 내게는 맞춤복 이상으로 편안하게 다가왔다. 

새 가구를 보면서 감탄을 하고 가지고 싶어는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나와는 걸맞지 않고 나라는 사람의 정직한 표현은 더욱 아니어서 돌아서곤 하던 때의 기분과는 전혀 다른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마음의 풍요로움으로 너무 흥분해서 잠이 안 올 정도다. 

우리가 사는 곳 뒤에는 축구장이 있다. 이 곳에서 매주 토요일이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플리마켓이 선다. 그때까지만 해도 축구장이 지척이라도 이 플리마켓에 가 본 적이 없지만, 나도 그 후로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행렬에 끼게 되었다. 

실은 이 때가 미국에서는 이미 중고품과 앤틱으로 인테리어 장식이 유행하던 때였다. 보수적이고 같은 세트로 완벽한 구색을 갖추던 스타일보다는 에클렉틱(eclectic/절충주의적)하게 변모해 가고 있었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중고품 상점에 들어가는 일이 쑥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남의 정크를 자신의 보물로 바꾸는 이들의 창의력과 어딘가에 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아름다움과 가치를 창조해 내는 많은 사람의 열정과 지혜를 보는 즐거움과 자극은 너무도 내게 신선했다. 

무엇보다도, 아주 적은 돈으로 아니면 부담이 전혀 없는 선에서 필요한 것을 사고 재활용하고 또는 탈바꿈도 하고 어떤 때는 오래 된 물건의 정겨움이 좋아 그대로 두기도 하면서 내가 사는 공간을 표현하는 삶의 재미가 너무 소중해졌다. 

하나님은 이렇게 나의 간절한 떼씀에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이 정확하게 나의 성향에 맞는 길을 열어 보여 주셨다. 안목이 생길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는 했어도 더는 필요한 것을 없어도 되는 것처럼 여기거나, 나를 나 되게 만드신 하나님이 주신 나의 성향을 없는 것으로 여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

더 나아가 세상을 사는 한 가지 방법에만 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끌어가는 듯 해 내 마음은 더 풍요로워 졌다.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이 내 생각과 상상을 초월함은 언제나 진리다.
내가 기도하고 떼 쓸 때에 맞춰 주님이 생각치 않던 돈을 주셨더라면, 아마도 나는 내가 지금 누리고 사는 이 풍요함보다는 일시적인 만족에 머물었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을 위해 또 갈등을 되풀이했을지도 모른다. 내게 있는 소유물에 종속되어 삶 자체를 누리고 기뻐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내게 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주길 원하셨던 것이 아닐까.

내가 애용하는 나의 소유물은 거금을 들여 구입한 것이 아니라서 돈과 연계된 물건에 대한 애착심이 내게는 있을 수 없다. 다칠 세라 흠이 갈 세라 전전긍긍하는 대신 맘껏 쓰고 즐기고 물건의 가치와 목적을 요긴하게 담당하는 게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또 돈을 주고 원하는 것을 쉽게 산 것이 아니라 발 품을 팔아 정크 가운데 건져 낸 보물이라, 단돈 $150 짜리 도자기장이 비록 완벽하진 않아도 내게는 자랑이 그치질 않는 소중품이다.

이런 물건들은 마치 나 자신을 보는 듯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허물 많고 죄인지도 구분 못 하던 세상 한 구석에 처박혀서 가치라곤 있어 보이지 않던 나를 건져 내시고 먼지를 털어주시고 닦아 주시고 새롭게 태어나서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소중함을 받는 나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리고 내 욕심과 정욕에 기인하여 내 삶에 들어 와 앉아 있는 물건들이 아니라 편안한 친구와도 같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허세의 의도로 내 삶의 일부가 된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나와 잘 어울리는 나만의 의도적인 선택이자 하나님이 나에게 맞게 주신 지혜의 산물이 주는 퐁요함이라 내 맘을 한 층 더 풍요롭게 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더는 갈등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갈등 대신 나는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사람으로 변해 갔다. 질풍노도 하던 내 마음과 간구도 차분해져 갔다. 

물론 우리의 심령이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이미 풍요롭지만, 나는 나의 주거 환경도, 나의 정서도 우리의 영혼이 평안함을 반영하는 편안함이 있는 성도의 삶을 꿈꾸는 자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경건과 지혜가 어우러진 절도 있는 한 폭의 예술과도 같은 성도의 삶을 날마다 꿈꾸는 자임을 나는 기꺼이 시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