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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정.결혼

아내들이여 (뉴하우스)




여성은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비록 외모의 출중함은 극소수의 여인이 받은 특혜일 망정 여인의 아름다움은 포괄성 있게 논의된다. 아름다워지고 싶지 않은 여인이 어디 있겠으며 자신을 치장, 단장하고 싶지 않은 여인이 어디 있으려나 싶다.

이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인의 아름다움을 외적인 요소로 정의한다. 혹은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속사람과 연계하기도 한다.

이렇게 위험한 선입관이 또 어디 있으랴마는 사람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게 마련이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은 외모로 사람을 취한다고.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한다. 여인의 고운 것도 헛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칭찬을 받으리라고 하신다.

아내들에게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고 하신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진정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은 우리의 속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지 쇠퇴하는 겉사람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런 하나님의 관점을 뒷받침하듯 아름다운 여인과 아내의 모습과 역할을 성경은 잘 그리고 있다.
영광스런 광채가 그녀의 얼굴이며 그녀의 덕은 남편의 면류관이며, 그녀의 지혜는 가정을 세운다.

현숙한 믿음의 여인을 잠언서는 잘 묘사하고 있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능력과 존귀로 옷 입은 여인의 아름다움은 눈부시다. 훤한 미모에다 좋은 옷을 잘 갖춰 입고 치장/단장을 잘 한 여인의 겉모습보다도 더 칭찬하고 싶은 모습이다. 

썩지 아니할 것으로 자신의 속사람을 단장하는 여인.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을 먼저 챙기는 겸허한 믿음의, 아름다운 여인의 가치를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친다.

연약한 그룻이나 남편의 사랑과 귀히 여김을 받는 아내, 그리스도인 아내는 행복하고 경건한 가정을 세우기 위해 남편의 필요에 합당하게 그를 돕는 배필로 지음 받은 창조 목적과  돕는 배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아내의 역할에 신중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돕는 배필

도우미 또는 돕는 자에 대한 세속적인 인식은 항상 상/하급, 주종관계의 뉘앙스를 풍긴다.

아니면 아내의 도움은 주로 먹고 마시고 자는 극히 기본적인 생존과 본능적 욕구 해결을 위한 도구로서의 인식에서 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과 사고는 타락한 인생의 죄에 물든 삶에 나타나는 결과물이지 하나님의 창조 의도도 아니요 목적도 아니다.

남편과 아내의  ‘하나됨’의 크고 놀라운 비밀을 성경은 말한다. 남녀의 결합을 큰 비밀로 표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 아내를 위하여 예비하신 풍성하고 복된 삶을 내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의 하나 됨은 육체의 결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남녀의 관계를 비유하신 것처럼 영적인 결합이다. 남녀는, 홀로는 완성되지 않는 반쪽에 불과하다. 남편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목적에 합당한 사람으로 완성하는 아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며 필수적인 요소다. 

아내의 영향력을 허용하는 남편의 성장이 그렇지 않은 남편보다 훨씬 빠르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듯이 아내의 ‘돕는 배필’의 역할은 온 인류에게 적용되는 모든 아내 된 자의 아름다운 역할이자 남편을 완성하는 아내들의 영광스런 삶이다. 이 불변의 진리는 인간의 타락 후에도 여전히 진리이다.

하물며 그리스도인 아내는 오죽하랴. 성령께서 친히 주님을 닮아 가도록 남편을 가르치고 이끄셔 가정을 섬기는 영적 지도자로 세우시는 이 은혜의 사역에 아내는 성령님과 동역자다.

     복종하라

에베소서 5:21-33 말씀은 하나 된 남녀의 관계, 가정의 질서,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역할과 위치가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서로 피차 복종하는 관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관계의 전제이다. 그리고 역시 가정에 국한된 남편과 아내들이 함께 모인 교회에서도 아내들에게 남편의 권위에 복종할 것을 명령하신다.

하지만, 시대의 변천은 이미 말씀의 희석을 불러 왔고, 남녀동등과 여권신장을 위해 투쟁하는 많은 단체와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증가하면서 그리스도인마저도 성경 말씀을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래서, 낡고 케케묵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듯한 이 ‘복종’ 개념, 역시 성경이 의도하지 않는 의미부터 다루어 정리할 필요가 있다.

성경이 아내에게 명하는 ‘복종’은 여자를 낮추어 보거나 강한 자 앞에 비굴해 질 수 밖에 없도록 약자에게 강요되는 그런 제스처가 아니다.

남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 의도로 남용하고 휘두르는 권력에 무조건 굴복해야 하며, 나약하고 힘 없고 한 '계급' 떨어지는 가치가 덜 한 여자에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올무도 아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틀에 자신을 끼어 맞추어야 하는 강요와 제도와 관습에 대한 굴복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복종’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은 오히려 세상이 만들어 낸 비성경적인 관념이다. 타락한 인간 죄성으로부터 생겨난, 인간이 만들어 낸 차별과 구속이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남녀를 향하신 거룩한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더욱이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는 비성경적이고 세속적인 남녀 역할의 인식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말씀이 주시는 각자의 가치와 역할을 알아야 한다.
서로 어떻게 대우하고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의 관점을 재조정하지 않고는,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복된 가정과 남녀의 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아내가 교회와 평행을 이룸을 보여 준다. 교회는 각 성도의 달란트의 헌신으로 세워져 간다. 성도가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온전히 표현하고 발휘하여 교회를 섬기듯, 아내 역시 자신의 삶을 쏟아 부어 남편을 완성해 가는 역할의 위대함과 가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복종’은 아내가 가진 달란트의 표현이자 헌신이다. 아내의 복종은 남편의 성품과 그의 역할에 미치는 아내의 영향력이다.

주신 달란트를 활용하여 남편을 세우고, 도전하기도 하며, 부족한 것을 채워 넣고, 남편의 완성을 위해 아낌 없이 부어지는 삶을 통해 아내 자신도 역시 채워지고 영화로워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나간다. 

또한, 아내의 이 복종은 남편의 권위에 대한 복종이다. 복종하는 자세는 주님께 하는 듯 함이고, 복종의 범주는 취사선택적 복종이 아니라 범사에(in everything) 복종함이다. 

그리스도인 남편의 권위 그리고 남편의 ‘머리됨’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말씀에 복종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시는 권위가 말씀에 순종하는 아내를 만든다. 굴레도 강요도 아닌, 스스로 기꺼이 선택하는 아름답고 현숙한 아내의 복종이다. 

    존경하라

성경은,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하시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할 것을 명하신다.

결혼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한 게 아니라 서로 행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누가 정의하는 것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나의 옳음을 내세워 논쟁에서 이긴들 상대방이 양보해서 이긴들, 얻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언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돌진했는지는 몰라도 그 과정 가운데 기쁨과 평안, 행복을 다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이론이다. 

아내의 남편 존경은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주신 권위를 인정해야 가능해진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역할 뺏기가 자신의 역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남편이 아내의 얼굴에서 광채를 빼앗고 영광스런 모습을 앗아 버리면서 ‘머리됨’의 권위를 행사할 수 없듯, 아내 역시 남편에게 돌려질 존경을 앗아 가면서 아내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것은 큰 모순이자 위선이다. 

아내의 모든 언행심사에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빠져 버리면, 남편을 돕는 그 모든 수고와 사랑 그리고 가정을 세우는 모든 일은 무의미하고 헛되다. 알맹이가 빠진 그런 수고는 어떤 아름다운 열매도 맺지 못한다. 

아내에게 존경 받지 못하는 남편은 그 속이 죽어 간다고 남자들은 표현한다. 흰개미(터마이트) 무리가 나무를 갉아 먹듯, 남편을 향한 존경이 담기지 않은 아내의 모든 경망스럽고 교만한 언행 심사는 남편의 속을 갉아 먹어, 종국엔 그 속이 텅텅 비게 되고 만다.

이렇게 속이 문드러진 남편에게서 영적 리더쉽과 아내 사랑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가정에서뿐 아니라 남편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의욕이 사라짐을 보게 된다.

세상은 가혹해도 아내의 존경과 인정을 받는 남편은 자신의 감춰진 능력을 십분 발휘할 뿐 아니라, 텅 빈 속을 채우려고 가정 밖으로 나도는 유혹의 자리에 설 이유도 없어진다.


그렇다면 아내는 남편을 어떻게 존경할 것인가? 아내는 남편을 존경할 만한 가치 여부를 먼저 따질 것인가? 

성경이 명한 대로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더 귀하지만 그래도 억울한 심정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아내가 혹시 있다면, 아래의 몇 가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팁을 제시해 본다.

남편에 대한 존경심은 일단 아내의 심령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베드로전서는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평안한 심령의(gentle and quite spirit)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안에 숨어 있는 우리의 속사람은 무엇이건 언행심사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부부 관계를 오래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부부의 대화를 3분만 들어도 5년 내에 이혼할 커플인지 아닌지를 거의 90% 이상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들 전문가가 이혼 가능성을 측정하는 잣대는 서로 사랑하는지의 여부도 대화의 내용도 아니고 성격의 차이도 아니라고 한다. (물론 정신질환이나 그 밖의 심각한 문제의 가정은 제외한 경우다)

이혼에 이르게 하는 악습 인자(因子)는 다름 아닌 해당 남녀의 부정적인 언어 습성에 있다고 한다.

즉,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말들을 내뱉는 악습이 불행한 부부생활을 초래하고 수많은 결혼을 이혼으로 치닫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대단한 연구 결과 같아 보여도,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이면 "그야 당연하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뿐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구약의 잠언을 비롯한 성경 곳곳에 말과 혀의 사용에 대한 가르침들이 수두룩하다. 

그뿐인가? 다투며 성 내는 여인과 같이 사는 것 보다 아예 광야나 움막에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고 있다. 남녀가 같이 있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다툼과 성냄이 있는 곳에서는. 

그러나 성경을 읽는 남녀가 아직도 순화되지 않은 언어 생활에 길들여 있어 평상 시 대화나 토론이 다툼과 성냄으로 번진다면, 자신이 익어 있는 언어의 악습을 전혀 의식 못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부부관계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대화의 주도권은 여자에게 달렸다고 한다.

언어 능력과 구사력이 더 능한 여자가 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그렇다. 그러나 말 많은 곳에는 죄도 많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내는 자신의 언어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첫째로, 관계 전문가는 대화의 첫 머리를 부드럽게 시작하는 아내의 화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반면 여자의 과격한 언어와 거친 음성은 모든 대화와 토론, 논쟁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성경도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만 한 연구결과가 꽤 신빙성 있게 들린다.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고 음량이 증폭되기 시작할 때 남편의 뇌 속에 일어나는 생물학적 반응을 검사한 결과 이성적으로 생각/판단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전두엽의 활동이 마비된다고 한다.

즉, 남편의 뇌에 감정의 홍수가 일어나 아내와의 이성적이고 차분하고 절제된 대화가 가능하지 않게 돼 간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언성을 높일수록 그녀가 원하고 기대하는 남편의 반응은 왜 얻지 못하는지 이해가 된다.

이렇게 남자의 전두엽이 마비된 경우, 그의 반응 방식은 자리를 뜰 것인지 아니면 싸울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 대다수 남자는 방어자세로 들어가면서 벽을 쌓고 무반응 무응답으로 대처하기도 한다. 싸우려는 남편의 반응은 폭력으로도 나타난다.

그뿐만 아니라 감정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 비교적 자유자재인 여자보다 남자는 한 번 감정의 홍수를 경험하면 여기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가끔 댓글 사회에서 토론이 논쟁이 되고 감정이 상해 인신공격까지 가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잘못된 언어의 사용이 불씨가 된 사례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나 비판과 단죄, 상호 공방, 빈정대는 경멸의 표현 등은 상대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게 만들어 정작 쟁점을 떠나 서로를 탓하고 급기야 상처를 주고 받다 누군가 한 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흔히 본다.

어떤 대화나 토론을 잘 풀어 나가려면 우선 부드럽게 시작하는 것이 나머지 대화의 방향과 긍정적인 결과를 위한 바탕 도로를 미리 깔아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거칠고 험하고 성난 어조는 반드시 비난을 낳고, 비난은 경멸을, 경멸은 방어 내지는 반격, 그리고 방어는 서로 벽 쌓기에 이르게 한다. 이런 언어의 악습 탓에 둘의 결혼 생활은 죽어 간다. 한 집에 살되 남남처럼 사는 수많은 부부가 생겨난다.

비난, 경멸이 섞인 거친 대화는 서로의 관점의 차이를 좁힐 수 없다. 그런 거친 대화와 논쟁은 반항하고 저항하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여운만 남긴다.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둘째로, 아내가 남편의 ‘머리됨’에 복종하고 남편을 존경한다는 것은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사는 종속관계를 의미하지 않음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터이다.
결혼 생활은 서로 잘 유지해야 하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이렇게 서로 노력해야 하는 많은 것들 중 무척 중요한 부분이 바로 대화이다. 대화도 기술이 요구된다.

남녀는 서로 멀어지는 대화에 올인 하기도 하고 서로 가까워지는 대화를 주로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서로의 언행심사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수 있다. 다만 불만과 비난을 혼동하지는 말자. 불만은 상대의 특정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지만, 비난은 상대의 인격과 성품자체에 부정적인 언사를 가하는 행위다. 

비난은 주로 상대를 탓하거나 인격모독 내지는 살해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거친 대화의 시작은 비난하기 위한 전주이기도 하다. 그리고 비난은 자연히 경멸의 단계로 넘어간다. 이것이 서로 멀어지는 대화법임은 말할 것도 없다.

경멸은 오랜 세월 동안 갖고 있던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불씨가 되어 시작된다고 한다. 주로 서로의 관점과 견해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상대를 경멸하는 표현을 일삼는다. 

“당신은 항상 돈을 낭비해.”
“당신은 매사에 늘 이런 식이야.”
“그럼 그렇지. 당신이 뭘 알겠어?”

모두 경멸하는 언어의 습관이다. 

사람의 단점을 하일라이트 하면 할수록 단점은 커지고 커 보이게 마련이다. 같은 이치로 장점을 하일라이트하면  할수록 장점이 두드러진다.
누구에게나 장점도 단점도 있는데 어느 면을 하일라이트 할 것인지는 나의 선택이다.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의 부족함을 대신 채운다. 어차피 한 몸이기에. 둘이서야 온전한 하나의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대화할 때 남편에게 감정의 홍수가 나지 않도록 온유하고 조용하고 평안한 심령으로 지혜롭고 친절한 말을 입술에 담는 경건의 훈련이 아내들에게 필요하다.

매사에 다투고 성내는 대신 절제하자. 화 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또 분을 내어 죄를 짓지 말고 사탄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한다. 

다툼과 성냄으로 남편을 존경할 순 없다. 

타인 앞에서 남편을 비난하고 경멸하는 행동으로 남편을 모독하여,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갈라 놓는 행위를 일삼지 말자.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잠언 12:18)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잠언 10:32)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누가 더 가사를 많이 하고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에 주로 있지 않다. 내 방식의 관철도 아니다. 상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해 줘야 하는 행동과 이벤트의 리스트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인 남녀 간의 역할 그리고 하나님이 남편과 아내에게 주신 말씀의 수용이 아내가 원하고 받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앞선다. 가사 분담이 주는 일시적인 만족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남편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사랑이 있다. 

성경은 남녀 결합의 비밀이 크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말씀에 순종하여 남편의 권위에 복종하며 남편을 존경하는 아내의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그리스도인 아내들이여!
영광스런 아내들이여!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아는 능력과 존귀로 옷 입은 여인으로 당당해지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맘껏 활용하여 남편을 섬기며 완성해 나가는, 돕는 배필의 의무와 가정을 세우는 중요성을 알자. 그리스도인 아내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 그리고 영광스러움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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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서 5:21-33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