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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바울서신

[고전 2:12] 검증해 봐야 합니다 (티엘티경배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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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홀로 참되신
진리의 하나님!

가장 높으신
지혜와 지식의 하나님
아버지를 기립니다
그 성호를 높여 드립니다

우리에게 슬기를 주시고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통하여
신령한 판단력을 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판단이 우리의 잣대가 되어
우리의 앞길과 범사를 헤아려
판단하시고
길라잡이인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복하여 따르게 하소서

성부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 성령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
은총과 사랑의 너비와 길이, 높이와 깊이를
우리에게 알려 주소서
가르치소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 눈을 밝히시어
부르심의 소망
성도들의 기업의 영광과 풍요로움
주님의 강력한 힘으로 일하심
우리에게 베푸신 권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하소서

[복음성가 '우리들의 무기는 육체가 아니오'를 부릅니다.]

   우리들의 무기는 육체가 아니오
      그러나 강하오 참으로 강하오
   우리들의 무기는 육체가 아니오
      그러나 강하오 성령 안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요
      강한 힘이요 참으로 강하오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요
      강한 힘이요 성령 안에서

[이 노래, 다시 한 번 더!]

[오늘 메시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의 영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코린토A 2:12 사역)

오늘날 세상을 둘러 보면 점점 좋아져 가는 것과 나빠져 가는 것, 주로 두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물론 머물러 있기만 하는 현상유지 내지 정체현상도 있지만.
그런데 이젠 이런 것들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점점 어려워져 갑니다.

가령 좋아져 가는 것의 하나로 인터넷을 꼽을 수 있겠지요.

1990년대 초만 해도 우리가 거의 잘 몰랐던 컴퓨터/인터넷을 통해 지금 참 편리한 세상이 됐음을 실감합니다. 정보의 대양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무한정 건져 활용할 수 있게 됐고, 멀리 수 만 리 떨어진 사람과도, 과거엔 무선/전신/전화 등으로만 가능했던 대화가 이젠 화상이나 채팅으로 한 사람만도 아닌 여러 사람들이 동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지구 저 편에 있는 사람과도 함께 손쉽게 기도할 수가 있으니 얼마나 편하고 좋은 세상인가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나의 정보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남의 것으로 둔갑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집니다. 봐선 안 될 성질의 것, 남의 추한 비밀도 순식간에 화면으로 드러나는 사태도 빚어집니다. 온갖 음란물 앞에선 어린 자녀들도 거의 무방비 상태일 때가 잦습니다. 모든 인간사에 대한 까발리기, 벗기기가 무차별로 저질러지니 참 속절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는 인터넷에서 웃다가 하루는 울기도 합니다. 심지어 악성 댓글과 채팅에 충격을 받고 분하여 자살하는 소동까지 생깁니다.

따라서 인터넷은 우리에게 유익도 주고 해악도 준다는 결론을 얻습니다.
세상 만사, 다 그렇지요.

따라서 세상에서 유익을 얻을지 손해를 볼지를 미리 알아차려 유익을 최대화 하고 손해는 최소화하는 슬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정말 그래야 할 대상 분야의 하나가 바로 영적인 지식입니다.
영적인 지식, 영적인 정보는 오늘날 인터넷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장르의 하나입니다. 영적인 자료, 종교정보를 찾는 네티즌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다는 귀띔과 여론 조사 결과도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영혼에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특히 신자들은 극히 조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영적인 정보를 가장 가볍게 손쉽게 수집하고 그것을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소화시키는 네티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요즘처럼 안방에 가만히 앉아서도 얼마든지 정보수집이 가능한 현대엔 정말로 위험한 현상이 아닐 수 없지요. 대다수 네티즌들이 그런 영적 정보의 바다 앞에서 취약한(vulnerable) 상태입니다.

산더미 같은 쓰나미도 처음에 멀리서는 시원하고 아름다운 밀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경계 의식을 흐트러 놓거나 방심하게 만듭니다.

싸탄은 간교하여 우리를 무감각하게 둔감하게,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놓곤 온갖 유혹을 갖다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싸탄과 그의 졸개들은..요즘 웬만한 신자도 돈과 성 앞에 맥을 못 추고 쉽게 나자빠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들이 오래 써 먹어 온 상투적인 수작이고 수법이고 작태인데도, 우리는 쉽사리 잊어 버리고 어느 결에 또 다시 그에게 당하곤 합니다.

싸탄은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우리를 습격하기도 하지만 미소를 머금은 '인자한' 얼굴,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넌지시 찾아 들기도 합니다. 한없이 아름답고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누구나 존중해 온 "확실한" 인사들, 특히 교계 명사들을 통해 당당한 모습으로 감히 거부하지 못할 권위로써 우리에게 근접하기도 합니다. 명사라면 "꺼벅 죽는 시늉"을 하는 신자들은 이럴 경우 참으로 손쉬운 먹이가 될 법 합니다.
흔히 아무나 다 오케이로 응해 주는 흐늘흐늘한 상태를 무골충 또는 "허파에 바람 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그 옛날 사도 파울 당대에도 그런 신자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교계 명사들 하나씩을 끼고 무슨 파, 무슨 파로 당파를 짓는가 하면, 누가 모종의 이상한 색깔의 복음을 갖다 줘도 조금도 경계하거나 의혹하는 빛 없이 척척, 넙죽넙죽 받아 먹는 사람들이 고대에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그 인사가 인물이 잘 생기고 체구가 훤~하다거나, 사자후 같은 웅변가 또는 매끈한 달변가이거나, 번쩍번쩍하는 계급장 또는 구슬꿰미처럼 수많은 명문 학위를 줄줄이 꿰어 찼거나, 쉴새 없이 배꼽을 잡게끔 자주 웃긴다거나, 사람의 심리를 속속들이 꿰뚫든지 강약점과 장단점들을 쪽집게처럼 집어 준다거나, 사람을 확 사로잡는 기막힌 절륜의 문필가 또는 두꺼운 독자층을 확보해 온 베스트셀러 저술가, 크게 소문난 겉보기 윤리와 '모범'의 행동인일 때..
우리는 눈과 귀가 솔깃하여 쉽사리 받아 들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서와 오관 중심이어선 안됩니다. 슬기와 예지, 통찰과 분별도 갖춰야 합니다. 우리는 비둘기처럼 순결하기도 해야 하지만, 뱀처럼 예리하기도 해야 합니다. 사실은 모든 감각보다도 영적 감각과 분별력을 더 중시하고 키워야만 합니다.

사도 파울과 친교하던 당대 신자들 중에는, 파울의 서신서들을 읽고 "그 글에 참 무게와 힘이 있다"고 평했다가도 정작 현지에 나타난 본인을 만나보고 나자 "왜소하고 빈약하다. 말도 어째 시원치가 않다"며 실망하고 실체를 알아 보기도 전에 평가절하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코린토B 10:10).
아마도 파울은 예수님처럼(이사야 52:14, 53:2) 겉모습으로는 정말 볼품과 흠모할 데가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반면,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고 스스로 헤아리고 스스로 남과 비교하며 으스대는 교계 인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인사들은 오히려 교인들이 쉽게 환영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 흔한 풍토이죠.

그래서 파울은 편지 속에서 "여러분은 외모만 보는군요!"라고 통탄해 마지 않습니다.
자..우리 파울의 이 편지를 계속 읽되 쉽게 풀어 볼까요?

    "여러분이 크리스토께 속했다고 믿습니까? 우리도 그렇다는 사실을 생각하셔야지요.
    주님이 내게 주신 권위와 권능은 여러분을 허물려고 주신 게 아니라 여러분을 세워 주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선 내가 아무리 자랑한들 지나치지도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편지로 여러분을 놀래 주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여러분과 떨어져 있을 때에 편지를 갖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들은 만나서 함께 있을 때도 이리저리 흠을 잡을 게 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들과는 감히 짝하거나 견줄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수에 넘는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 분수에 맞게 나눠 주신 그 분수에 맞게 처신합니다. 바로 여러분들에게까지 다다른 이것이지요.
    우리는 미치지 못할 사람으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 간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토님의 복음으로 여러분에게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남이 한 수고를 갖고 분수에 넘게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의 믿음이 더해질수록 우리의 제한을 따라 여러분 가운데서 우리가 더욱 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파울은 계속 구체적으로 경고합니다.

    "내가 우려하는 바는 혹시라도, 뱀이 하와를 그 간교한 꾐으로 속인 것처럼 여러분들의 마음도 미혹되고 변질되어 크리스토님께 대한 한결같음과 순결에서 벗어나 부패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누가 가서 우리가 전한 적이 없는 딴 예수를 전하고, 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던 영을 여러분으로 하여금 받게 하고, 여러분이 받아 들이지 않던 딴 복음을 전해도 여러분은 잘도 그냥 넘어 가는군요!
 

    내가 비록 말에는 능하지 못해도 지식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이 점을 여러분에게 밝히 드러냈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높이려고 스스로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여러분에게 전했다고 죄를 지은 것입니까?..

    크리스토님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자신들이 하는 일도 우리와 똑 같다고 자랑할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의 기회를 끊어 버리렵니다.
    그들은 가짜 사도들, 기만하는 일꾼들, 자신들을 크리스토의 사도들로 위장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닙니다. 싸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싸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들인 양 가장하는 것도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들의 끝은 그들의 행실대로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슬기로운 분들이면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기꺼이 용납하는 군요. 누가 여러분을 노예로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오만하다고 하거나 뺨을 때려도 여러분은 그냥 넘기는 군요!"
(이상 코B 10:7-11:20 일부 중략. 사역)

지금 파울은..거듭났다는 신자들조차 얼마나 어리숙하게 싸탄의 꾀에 잘 넘어 간다는 것을 그림처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요즘은 눈을 뻔히 뜨고도 눈/코/귀를 베이는 세상입니다. 자칫 한 눈 팔다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영적인 신세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서점을 보십시오. 얼마나 그럴 듯한 제목들과 베스트셀러 작가/저술가/문필가들이 많습니까? 얼굴과 이름, 학식과 실력, 기교로다 내로라는 교계 명사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게다가 외국 도서들은 번역자들이 저자들의 모든 문제점을 다 그럴 듯하게 에둘러 빼 내고 걸러 내어 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조리하고 재포장 하여 내놓지요?
 
그러면 독자들은 아무 의심이나 별 생각 없이 또는 약간의 의혹을 품었다가도 한결 같은 '긍정주의'로 호평하는 딴 사람들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는 금방 혹해서 읽어 나갑니다.
분명히 그 책엔 비진리가 있고 문제점이 많은데도 순식간에 거기 빠져 들고 저자와 일심동체로 '인사이더'가 돼 버리는 것입니다. 일단 그러고 나면 다음부터는 그 저자가 뭐라고 말을 하고 뭐라고 글을 써도 다 '만사 오케이'로 100% 통과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다면.. 여러분은 파울이 경고한 코린토 교인들과 다를 바가 뭡니까? 주는 대로 넙죽넙죽 다 받아 먹는 순진한 가축들과 다를 바가 뭐냐는 것이지요!

성경은 분명히 그런 무조건적 긍정주의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무조건적 적극주의, 무조건적 긍정주의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 때로 향할수록 우리는 정신 차려야 합니다. 싸탄은 광명한 천사, 또는 삼키려고 아가리를 벌린 사자처럼 우리에게 달려 듭니다.

그러기에 사도 요한은 모든 영을 일일이 다 검증해 보라고 촉구합니다(요서A 4:1).
이 엄숙한 명령을 우리는 지켜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확한 원문 중심으로 번역된 성경 이외의 모든 책들을 인사이더가 아닌 아웉사이더로서 봐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통달하고 영적인 분별력을 키워 이 비진리의 쓰나미, 거짓의 밀물을 슬기롭게 견뎌내야 합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되 뱀처럼 슬기로워야 합니다.

크리스토의 예지, 성령님의 깊은 통찰력이 여러분에게 넘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