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언제나 기대하고 기다리시는 대상이 있습니다.
바로 그 분과 그 분의 약속을 믿어 주고 믿음으로 나아 올 사람들입니다.
또 그 분의 말씀과 약속은 늘 믿어 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씀과 약속들은 믿음으로 나아 와 갖지 않으면 내겐 무용지물이지요.
믿음이 있고 없고에 따라, 믿음으로 그분에게 나아가고 안 나아가고에 따라 그 무궁무진한 약속들은 손 안의 보물일 수도 있고 한낱 그림의 떡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은 믿음의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1. 성령님은 지상에 현존하시며
2.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은 인간이 지키든 안 지키든 영원히 변함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다윋처럼 믿음으로 그 분의 약속에 순응하는 사람을 기다리시며 찾으십니다(히 11:6).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늘 그 약속에 응하여 실천할 믿음의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딴 건 다 하셔도 거짓말은 하실 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분의 말씀이 신실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거짓말장이이며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지만 하나님은 에메트-신실과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로마서 3:4).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으로 대표적인 것은 구원은 물론, 권능과 기름부음, 은사와 신유, 복과 번영, 영적 싸움에서의 승리 등입니다.
그런데 많은 지도자나 교우들이 갖는 생각은..반사적 획일주의입니다.
즉..
은사주의자들, 번영신학자들이 다 잘못됐으므로
성경에 약속된 당연한 은사나 복/형통/번영 등을 구하는 것은 다 잘못됐고
오히려 정반대로..
은사를 사모하지 않고
성경의 복과 번영 원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성경적'인 정격신앙이라고 믿는 경향입니다.
그건 그야말로 신념이지 신앙이 아니지요.
성경을 신학 원리로 대체한 마인드셑입니다.
이런 반사적 획일주의가 안티기독교와 함께 사실상 본의 아니게 서로 맞장구를 치며 판을 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드리냐면..
다수 판단에 따라 가장 안전하고 모범적/성경적이라고 생각되는 입장에 설 때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결과가 되기 쉬운 탓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은사의 관문/기초 격인 방언을 들 수 있지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방언을 하지 않는 것을 되레 자랑 삼아 말하더군요. 치우치지 않는(?) 것이니 정상(?)이고 안전(?)하며 신학적이니까 성경적(?)이라는 것이지요.
음. 그게..그렇게..되나요..?
히브리서 11:6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즉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두 가지를 믿어야 하는데..
첫째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
둘째로, 하나님이 그 분을 찾는 사람에겐 보상자이시라는 거죠.
'보상자'가 뭔지 아시는지요..? 신약 성경에 딱 한 번 쓰인 그리스어 '미스타파도테스'라는 이 말은 그 옛날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자임하신 '상급'이란 말과 거의 같은 말입니다(창세기 15:1b). 이것은 무엇을 썩 잘 한 데 대한 상과는 사뭇 다른 개념입니다.
정확하게..마땅히 내가 받을 대가를 치러 주는 주인/상사라는 뜻입니다.
이거, 놀라운 말 아닌가요! 즉 하나님은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은 마땅히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봐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당연한 대가를 받을 만한 수고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치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히브리서 11장 1절에 있는 대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 비가시적인 것들의 증거입니다. 눈엔 아직도 안 보이고 손엔 아직도 안 잡히지만, 이미 보이고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으로 간주/확신한다는 것이지요. 비유컨대 영적인 가상실제이지요.
그게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모든 약속들은 그 분의 언약이며..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에 늘 신실(faithful)하십니다. 성실하고 충실하십니다. 어제나 오늘, 내일 언제나 변함 없으십니다. 그래서 든든한 '바위'로 비유됩니다. 오히려 아침마다 새롭습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들은 하나님의 신실성으로써 효과가 100% 보장(guaranteed)됩니다. 믿거나 말거나.
문제는 사람 쪽입니다. 하나님은 늘 자기 약속을 지키시는데 사람들이 그 약속들을 도무지 믿어줘야 말이지요! 페트로가 물 위를 잘 걷다가 왜 갑자기 푹 빠져 들어갔나요?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99% 믿어도 1% 안 믿으면 의심입니다. 그게 하나님 책임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책임입니까? 결과와 효과가 100% 보장이 안 돼섭니까?
예수님이 딱 부러지게 보장하시는 게 많지요.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했느니라". 신유도 그렇고 구원도 그렇고. 신유는 구원 패키지 안에 포함돼 있습니다. 그걸 활용하고 안 하고는 우리에게 달린 거지만.
주님은 "그대들이 내 안에 머물고 내 말이 그대들 안에 머물면..모든 게 이뤄진다네" 라고 약속하십니다(요복 15:7). 우리가 그 분의 계명을 실천할 때 "내 이름으로 그대들이 무엇이나(whatsoever, whatever) 구하면 시행할 것"이라 약속하십니다(요복 14:13, 15:16b, 16:23b,24,26). 그런데 웬만한 신자들은 이걸 안 믿는다는 말이지요. 아, 겨자씨만한 믿음 갖고 선언해도 산이 번쩍 들려 바다에 풍덩~! 빠지리라고 약속하는 데도, 요 겨자씨만한 믿음이 없다는 말이지요.
예컨대, 방언하려는 사람들이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방언하는 믿음은 구원 얻는 믿음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방언을 하게 하신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가 믿고 입을 벌려 자국어 아닌 새 언어로 방언을 해야지요. 그 새 언어가 아직 채 안 느껴져도 믿음으로 하다 보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국어 아닌 이상한 발음이 나오면 그게 방언이라는 겁니다.
하반신 불구자가 신유를 믿는다면, 이미 고쳐졌다고 믿고 본인이 믿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과정이 전제돼야 합니다. 아, 고쳐지고 나서 걷는 거야 누구든 할 수 있지요. 그건 확인이지 믿음이 아니지요.
이 믿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신학주의자들이 하나님을 절대주권자로만 굳게 믿고 절대주권적인 처사를 마냥 기다리기만 합니다. 기다리다 안 오면 하나님 뜻이 "아닌" 것이고요. 편리한 논리요, 자기합리화이죠. 미안하지만 제 경험에 따르면, 그런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약속된 것들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건 신념이고 기대심리, 확인심리이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아니니까.
자, 복과 형통 이슈는 어떤가요?
분명히 성경은 신자의 복과 형통을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그 어떤 것보다 복과 형통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말고.
이렇게 말하면, 복/형통을 반대하는 (신자 아닌) 교인들은 꼭 삐딱하게 나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 살고 잘 먹는다"는 거죠. 그런 분은 성경의 원리를 비판할 게 아니라 본인이 세상으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물론 세상에서 근면으로부터 복권/로또 등 요행으로 부유해지는 일이 없지 않죠.
근면과 그 결과는 하나님의 복의 일부가 아니던가요? 세상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누리는 것이 본래 창조 당시 하나님이 복 주신 결과가 아니던가요(창 1:28)?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뺏긴 복을 믿음으로 되찾는다는데 왜 말이 많습니까? 세상적으로가 아니라 복음적으로. 믿음으로 말입니다.
아브람이 잘 되고 복을 받은 것이 세속적인 방법으로였습니까?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님, 그대의 영혼이 잘 됨 같이 그대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길 바란다(요서C 4절)는 말이 세속적 방법입니까?
크리스천은 복과 형통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히브리서 11:1, 6절 등의 원리를 받아들이고 실천함으로써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신실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재정적인 복의 경우 십일조를 곁들임으로써 더 가속화되고 효력이 발휘되지요. 십일조는 재정을 포함한 내 삶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긴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물론 믿음 없이 드리는 십일조도 있긴 있지요.
어떤 반대자들은 십일조를 꼭 바쳐야 믿음의 표현이 되는 건 아니다고 말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묻지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꼭 이짜크를 제물로 바치지 않아도 그 믿음을 충분히 입증받을 수도 있으시지 않았나요? 왜 굳이 이짜크를 바치라고 하셨습니까? 굳이 이짜크 '불고기'가 필요하셨던 건가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장 아끼는 것조차도 하나님께 드릴 만한 마음가짐이 있었는지를 확인하신 겁니다.
십일조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신과 가족의 생명 다음으로 가장 아끼는 재물의 전체도 아니고 십 분의 일을 원하시는 것은..하나님이 진정 우리의 돈이 필요해섭니까? 아니 하나님이, 때 묻고 세균 득실거리는 원화와 달러 지폐 따위가 왜 필요하신 겁니까! 금도 은도 하나님 것이고 온 지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이 왜 굳이 코 묻고 땀내 나는 우리의 돈을 필요로 하시냐는 말이지요.
십일조는 우리의 재정을 포함한 삶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냐 없냐를 보시는 시금석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해 보시는 양식입니다. 십일조는 헌금/헌물보다 더욱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십일조는 자원보다는 순종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수 십 구절씩 줄줄이 성경구절을 동원해 가며 십일조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 다수가 기본적으로 삶을 맡기는 표시로서의 십 분의 일을 바치려 하지를 않지요. 그러면서 한 술 더 떠 자기합리화를 하고 군중심리를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만 안 해도 좋은데 십일조 반대 글, 반대 책까지 써서 돈까지 법니다!
아, 심지어 단상에서 십일조 반대 설교까지 하는 목회자들이 있으니 정말 기 찰 노릇이지요. 그런 설교자들은 교인들이 근면하게 돈을 잘 벌어 헌금만 챙겨 주면 교회가 잘 돼 나갈 것이라고 든든히 믿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의 복보다는 교인들 '빽'(bag & back)을 더 믿는 셈이지요.
그러니 이래저래 손해 보는 쪽은 교회보다는 먼저 그 자신들이지요! 믿음의 보상과 복의 원리를 거부하는 것이니까. 교인들에게 복의 원리를 안 가르쳐주니까. 그런 설교자는 사실 상 교인과 교회의 복을 뺏는 겁니다. 중간에서 은총을 가로채어 내 던지는 꼴입니다.
결국 이런 분들은.. 자연원리, 일반은총으로서의 부의 축적만 믿지, 성경 계시, 특별은총으로서의 부와 형통은 안 믿는 셈입니다.
은사나 권능, 이적과 신유, 복과 형통 등을 믿음의 당연한 결과로 안 믿는 사람들은 은연 중 자연히 성경을 윤리도서 아니면 신학의 소재로만 대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구원은 받아 놨으니 이젠 '장땅'이다..사랑 사랑 사랑이면 다 된다.. 성경보다 신학이면 더 든든하다..뭐 이런 식이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그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신이기가 더 쉽지요.
은사도 안 믿고 권능도 안 믿고 이적도 안 믿고 신유도 안 믿고 복과 형통도 안 믿고 십일조도 안 믿고..한 마디로 성경에 약속된 모든 것을 예수 이름과 믿음으로 받는 원리를 안 믿고..
그렇다면 남는 건 간신히 구원 받는 믿음 뿐이지요.
오직 딱 하나 - 자기 구원만 달랑 믿겠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그런 분은..주위야 어떻든 영화관람권 갖고 극장엘 들어가듯 그 구원 티킽 갖고 한시바삐 하늘 저 편의 천국을 가는 것이 최대의 과제요 소망인가요..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교회 일과 복음전파는 누가 합니까? 다들 구원 티킽 갖고 한시바삐 천국 갈 생각을 하며 천국행 열차/비행기/로킽 좌석 다툼을 하며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적당히 절로 되어주는 게 교회 일이고 복음전파인가요?
구원 받는 믿음만 가지면 오케이..
나머지는 다 불필요하고 불건전하니 신학에다 떠 맡기면 된다..
- 이거, 너무 짧은 생각 아닐까요~?
수 백 수 천 가지 약속을 제공해 놓으신 하나님의 심경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서 생각을 고쳐 먹길 바랍니다.
주/야웨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시고
여러분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주/야웨님이 그 분의 얼굴을 여러분에게 비추어
은총 베푸시길 바랍니다
주/야웨님이 그 분의 얼굴을 여러분에게로 향하시어
평화 주시길 바랍니다
이같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하니..
아버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형편상 2월 둘째 주일 정식 경배 도우미를 올리지 못해 메시지만 뒤늦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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