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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기타 서신

[요일 4:10-21] 아가페의 4차원 (경배 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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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사랑합니다
성자 예수님, 사랑합니다
보혜사/위로자이신 성령님, 사랑합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지금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도 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사랑이십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성령님은 사랑의 영이십니다
할렐루야~!

[잘 아는 노래입니다 I Love You, Lord]

  나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 목소리 높여서 찬양
  내 왕이여 이- 노래가
  주님 귀에 기쁨 되게 하소서

  I love You, Lord
  And I lift my voice
  To worship you, O my soul, rejoice
  Take joy, my King, in what You hear;
  Let it be a sweet, sweet sound in your ear.

  오 아버지, 사랑합니다
  내 영과 맘 다 바쳐 찬양
  내 왕이여, 이 노래가
  주님 앞에 향기 나게 하소서

  주 예수님, 사랑합니다
  내 몸과 맘 다하여 찬양
  내 왕이여, 이 노래가
  주님 앞에 예물 되게 하소서

[이어집니다 There Is Something about that Name]

  예수 예수 예수
  그의 이름 참 귀하다
  나의 주님 구주
  비 온 뒤의 향기 같아
  예수 예수 예수   
  하늘 땅아 선포해
  세상 왕국 다 사라져도
  주님 이름 영원하다

  예수 예수 예수
  주님 사랑 영원하다
  나의 구주 사랑 
  따스한 저 햇볕처럼
  예수 예수 예수
  나의 삶에 늘 비치네
  세상 모두 나를 버려도
  예수 사랑 변치 않네

[이어서, 기존 찬송가 512장]

  내 주 되신 예-수 사랑합니다
  주님 앞에 내-죄 다 아룁니다
  날 대속한 은-혜 참 크-시어라-
  나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주님 먼저 나-를 사랑하셔서
  저 십자가 달-려 내 죄 사했네
  큰 가시관 쓰-신 주 이-마 볼 때-
  나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나 살 동안 주-님 늘 사랑하고
  혹 죽어도 예-수 더 사랑하리
  숨 쉴 동안 항-상 주 찬-양하고-
  나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오 영광의 하-늘 끝 없는 기쁨
  그 밝은 곳에-서 주 늘 기리리
  나 금관을 쓰-고 주 노-래하리-
  오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성령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끝 없는 아가페 사랑을 우리 맘에 부으소서!

오 성령님, 우리 맘에 폭포수처럼
주님의 사랑을 부어 주소서!

내 힘으로는 하지 못할 사랑
주님 사랑으로 할 수 있으니
아버지의 아가페 사랑을 내려주소서
성령의 첫 열매 맺게 하소서

믿음 소망 사랑-셋은 늘 있어도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소서
목 말라 갈망하는 우리에게
무한한 성령의 사랑을 넘치게 넘치게 넘치게
내리소서

그래야만 나도 주님 따라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할 수 있겠나이다
주님처럼 십자가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며 사랑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의 사랑 없이 난 아무 것도 못합니다
주님의 사랑 없는 나는 그 무엇도 아닙니다
주님의 아가페 사랑 없이는
다 뜻 없는 사랑, 다 헛된 사랑

오직 주님 사랑 안에서
내 삶은 의미가 있고
내 죽음도 뜻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지금 이 시간
넘치게 우리 모두에게 내려 주소서
주님 사랑이 곧 나의 사랑 되게 하소서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울어도
내 힘으로는 아버지 사랑 행할 길 없어
내 온 삶이 주님의 사랑을 담는
그릇이기를 원합니다
나의 영과 맘이 주님 사랑으로 채워지기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 묵상하렵니다

하나님의 말씀, 요한서신A(요일) 4:10~21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서A 4:7~21 개역 개정)

오늘은 좀 긴 성구를 읽었습니다만..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물론 '사랑'이지요. 사랑!
중요한 구절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자,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저 하늘 저 편 멀리..제1층천, 별들 너머 2층천 하고도 3층천-세 가지 하늘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꼭대기 층인 3층천에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을 보여 주시고 알려 주실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가만 계신다면, 그 보좌에 가만히 앉아 계시면, 우리가 그 분의 사랑을 깨닫기가 어렵지요. 무한하지도 않고 유한한 우리,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가 어떻게 그 분의 사랑을 느낄 수나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그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몸소 내려오신 겁니다. "내가 나의 사랑을 인생들, 사람들에게 알려야지~" 결심하시고는 땅에 내려 오셔서 친히 사람과 함께 하시면서 그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예수 크리스토이십니다!
오 우리 주님을 찬양~! 사랑의 아버지께 영광~!

되풀이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그 누구보다 사랑을 많이 말하지요. 모든 사도들 중에 가장 사랑에 관한 말을 많이 합니다. 물론 파울도 '사랑의 시'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코린토A(고전) 13장을 썼지만,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릴 만큼 많은 사랑의 계시들을 주님께 받아 전해 줍니다.

주님은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시고 입증하시기 위해 사도 요한을 택하셨습니다. 주님의 열 두 제자들 중에서도 페트로/요한/야코보 3명을, 그 가운데서도 요한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푸셨지요. 이것은 주님이 결코 제자들을 차별 대우하신 게 아닙니다! 요한에게 베푸신 사랑을 통해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알리기 위한 뜻이 있으셨기 때문이지요.

마지막 만찬의 밤. 마르쿠스 요한의 어머니의 다락방에서 주님과 열 두 제자들이 최후의 유월절 저녁식사를 나눌 때, 요한은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누울 정도로 정든 모습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할 때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기대어 눕기 때문에 요한은 더욱 더 주님께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요한은 마태/마르쿠스/루카 등 다른 세 복음서(=공관복음서)와는 어조와 내용과 표현이 다른, 그만의 독특한 (요한)복음서에서 거듭거듭 자신을 "주님의 사랑받는 제자"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자신만이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뽐내거나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지요.

주님이 나타내기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요한이라는 그릇/도구를 통해 드러내시려고 했던 것이지요. 요한이라는 '채널'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파도, 물결을 우리에게 띄워 보내려 하신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요한은 우리 모두 잘 아는 요한복음 3장16절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극진히) 사랑하셔서 독생자 즉 외아들 성자님을 우리 위해 아낌 없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고 알려 줍니다.

오늘 읽은 요한 서신에서도 이 사실이 재 강조됩니다. 9절을 보십시오. (풀어 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그 분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 분을 통하여 우리를 살리시려는 것입니다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화해의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곧
1. 그 분의 외아들 예수 크리스토님을 세상에 내려 보내시어
2. 그 분을 통해 우리를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3. 그래서 사랑은 곧 화해의 제물로 아드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곧 아가페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두 번 되풀이해 말합니다(8b, 16b).

여러분. 따라 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감각이 옵니까? 느낌이 옵니까? 여러분. 사랑의 신은 베누스(뷔너스)도, 아프로디테도, 큐피트도, 에로스도 아닙니다! 그런 잡신들은 모두 사실 상의 악령들에 불과합니다.
 
참 사랑의 신은 바로 야웨-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의 아가페 사랑만이 참된 사랑입니다. 이 사실들을 세상 사람들은 모릅니다. 모를 수 밖에요. 그들은 예수 크리스토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What irony! 여러분, 아이러니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목말라 찾고 바라고 갈망하고 얻고 누리기를 원하는 그 사랑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예수 크리스토 안에 있는데도..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참 사랑이 없어 목말라 굶주려 죽어가면서도 예수님을 거부하니 얼마나 아이러니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 밖에는 사랑이 없고 참 사랑의 길이 없다고.

예수님은 곧 유일한 길, 진리, 생명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의 아버지 하나님이 곧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그 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크리스토 밖에는 아가페- 참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그 밖의 모든 사랑은 그냥 모방, 카피에 불과합니다. 예수 사랑 없는 부모와 자녀들의 사랑, 형제 우애, 친구들의 사랑, 부부/이성들의 사랑..이 모두가 모조품, 모방이며 카피에 불과하며 흔히 거짓 사랑이기가 쉽습니다.   

참 사랑은 아버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해 보내어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신 것-바로 이것입니다. 그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나타났다고 요한은 증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사랑-아가페를 받을 방법이 무엇인가요?

우선. 예수님을 믿어 성령님을 모셔야지요!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고 내 속에 맞아들이는 것이 곧 크리스토의 영, 하나님의 영을 모시는 길입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내 맘의 옥좌, 내 영의 왕좌 위에 내 삶의 중심을 그 분에게 맡겨 드리고 나는 거기 종속될 때, 내 속에 사랑의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사랑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아홉 열매 중 첫째 열매가 바로 사랑이지요(갈 5:22). 많은 사람들이 자기 노력으로 열매를 맺으려고 안타깝게 노력합니다. 열심을 냅니다! 애씁니다. 열심이 곧 사랑인 줄 알지요.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남을 위해 희생합니다. 남을 섬깁니다. 힘써 봉사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희생하고 눈물을 흘려 봐도 내 속에 성령의 권능으로서 아가페 사랑이 깊숙이 심기지 못했을 때, 흔히 나의 노력으로 그치고 맙니다.

그래서 파울은 말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어 주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줘도
내게 아가페가 없으면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충격 아닙니까! 내 전재산을 빈민들을 위해 몽땅 갖다 바쳐 자선을 하고 구제를 해 본들, 내 몸을 바쳐 화형시키라고 내어 준들, 내 속에 아가페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허무할 데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자선=사랑]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코린토A 서의 이 사랑을 charity 즉 자선으로, 자선을 곧 아가페로 생각하는 발상은 천만 위험한 오판이라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만큼 자선을 한 사람도 없다고들 하지요. 그녀의 단체 이름도 '사랑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입니다. 그런데 테레사는 왜 반평생 아니 생애 말엽까지도 하나님의 존재조차 제대로 믿어지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불안 속에서 살았을까요? 그녀가 베푼 자선은 참된 아가페가 아닙니다!

아가페는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외아들 예수 크리스토가 날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고 그 십자가 앞에 나 자신을 내던지는 순간 비로소 내게 부어지기 시작하는 사랑입니다.
나 자신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내 힘으로, 내 의지로, 내 돈으로, 내 기술로, 나의 인술로 사랑할 수 있다가 아니라..성령님께서 내게 부어 주시는 사랑의 권능이 아니면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없어 그 앞에 고꾸라져 나 자신을 내 던질 때, 나 자신을 포기할 때, 비로소 맺혀지는 열매가 아가페 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의 '사랑', 그냥~ 인류애에 불과합니다. 헬렌 켈러의 '사랑', 그냥 인본주의적, 사회적 사랑에 불과합니다. 그런 사랑은 조금만 힘써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런 걸 아가페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가페는 오직 하나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사랑이었고 우리 속에 계신 아버지의 영, 크리스토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서만 맺힐 수 있고 나타낼 수 있는 열매입니다. 크리스토의 영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성도들의 믿음의 통로-채널을 통해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사도 파울은 에페소서에서 말합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엪 3:16~19 개역 개정)

여기 18,19절 한글 개역/개정 성경은 번역이 좀 잘못돼 있어 혼동을 자아냅니다. 이 소중한 구절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되겠지요.

그리스 원문대로 직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이) 온 성도들과 함께 깨달으시길: 즉 (사랑의) 너비와 길이, 또 깊이와 높이..그리고 크리스토의 사랑을 아시길-그것은 지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채워지시길 (빕니다).

여러분..크리스토의 사랑은 우리의 지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지식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생각과 지식으로 사랑해 보려야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파울은 "깨달으라"고 합니다. 크리스토의 사랑을 "알라"고 합니다. 헷갈리지 않나요? 아니 사랑이 지식을 초월한다고 해 놓고선 한편으로 "깨달으라"니, "알라"니..도대체 어떡하라는 겁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상식, 보통 지식과 생각과는 판이하게 차원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특별한 지식의 소관이라는 것입니다. 영적 인식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네 가지 차원(4 dimensions)의 것입니다: 너비/길이/깊이/높이-4 차원의 입체적 사랑입니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와 함께 크리스토와 연합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모든 성도와 함께 크리스토의 몸에 접붙인 바 된 포도나무가지로서 그 몸의 지체로서 하나님의 아가페를 그냥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4차원의 아가페 사랑을 깨달으려면 계시로서의 아가페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계시가 뭡니까? 하나님이 그 외아들을 우리에게 거저 주신 그 사랑의 계시입니다! 사도 요한이 받은 바로 그 계시입니다! 요한에게만 주실 뿐 아니라 크리스토와 연합된 모든 성도에게 이 사랑은 계시로 주어졌습니다.

그 사랑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지식에 넘친다"는 번역이 그래서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너비와 길이, 높이와 깊이를 알려면 하나님 아가페의 계시를 성령님을 통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혀야 합니다.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바탕이 탄탄해야 합니다. 믿음/소망/사랑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으뜸이 사랑이지만.. 세 가지가 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안에 참 소망, 참 희망을 지니지도 않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나요? 노~!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그분이 살아계심과 그분을 찾는 이들의 보상자(Rewarder)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은 속으로 갈망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아가페를 부어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이 살아계심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신 임마누엘을 믿을 때, 우리 속에 아가페로 보상해 주실 줄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의 대가로서 사랑을 심어주시고 내려주시고 채워주실 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그 분의 충만함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채워주실 줄을 믿어야 합니다(19절 끝).

더 나아가..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권능대로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들과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게 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20절).

아가페를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우리 주님 예수 크리스토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은총이 넘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