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예배 도우미는 교회의 '대안'은 아닙니다. 부득이한 형편 상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분들을 위한 도우미일 뿐입니다. 신자는 모이기, 성도의 친교에도 힘써야 합니다. )
크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영광 받으소서
찬양 받으소서
멜키쩨뎈의 계보를 따라
하늘 대제사장 되신 주님
우리의 예배를 이끄소서
신령과 진리
성령과 말씀으로 경배하게 하소서
성령의 기름을 지금
우리에게 부으소서
우리 믿음의 창시자, 완성자이신
예수 크리스토의 이름을 높입니다
주님, 홀로 모든 존영을 받으소서
찬양 받으시기 합당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왕들의 왕, 주들의 왕
만세반석-영원한 바위
든든한 우리 소망의 닻
영혼의 항구이신 예수
경배합니다
찬양합니다
사랑합니다
오 할렐루야!
나의 구주, 구세주
나의 구속자!
길과 진리와 생명
양의 문과 선한 목자
우리의 목자장
우리의 스승과 지도자
길라잡이와 상담가
기묘와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평화의 군주
찬양 드립니다
엎드려 경배합니다
이름을 높입니다
죽임 당하시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
능력과 풍요, 슬기와 힘,
존귀와 영광,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
찬양과 존귀, 영광과 능력을
길이길이 돌려 드립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습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 지혜와 감사
존영과 능력, 힘과 권능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영원히!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주/야웨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상 나라들이
우리 주님과 그 크리스토의 나라가 되어
그분, 길이길이 왕으로 통치하시리
할렐루야,
가장 높은 곳에 호산나!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
주님의 행적, 크고 놀랍습니다!
모든 나라들의 왕!
주님은 길이 의롭고 참되십니다
누가 주님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으리
누가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 거룩하십니다!
주님의 의로우심 나타났으니
만국이 와서 주님께 경배하리
[ '찬양하라 내 영혼아'를 부릅니다 ]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모든 것
주 찬양하라감사하라 오 내 영혼
감사하라 오 내 영혼
내 속에 있는 모든 것
다 감사하라경배하세 온 성도여
경배하세 모두 함께
우리의 맘과 힘 다해
주 경배하세
오 주님, 감사합니다
두 세 사람이 주님 이름으로 모인 곳에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여기 계심을 믿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 주소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의 귀를 열어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마음 활짝 열고
이 시간 주님을 환영하오니
은혜와 평화
권능과 은사
슬기와 힘을 부어 주소서
성령님의 기름을 부으소서
넘치는 영감을 주소서
이 시간 주님의 강한 손을 펼치시어
아픈 사람을 고쳐 주소서, 온전케 하소서
가난한 사람은 "나는 풍요롭다"
약한 사람은 "나는 강하다"
외로운 사람은 "주님은 나의 벗이다"
슬픈 사람은 "주님은 나의 기쁨이다"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소서
믿음 소망 사랑을 부어 주소서
넘치게 넘치게 넘치게
그 나라와 그 의!
주님의 나라, 주님의 의를 구하게 하소서
아버지 보좌 앞에 나아옵니다
어린양을 통하여..
주님께 지금
나의 죄를 자복합니다
생각과 말과 행실의 모든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소서
주님의 피, 어린양의 보혈로
나를 덮으소서
하늘 대제사장 주님 밖에는
나를 씻기실 분이 없습니다
아버지, 우리 모두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의, 의의 옷을 온전히 덧입게 하셔서
죄를 이겨 늘 승리하게 하소서
강하고 담대한 주님의 용사로
삼으소서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를 대적합니다
싸탄아, 능하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경배 장소에서 손을 뗴고
썩 물러갈지어다
주 예수
주 예수
주 예수 이름으로!
성도를 괴롭히는
모든 질병과 연약함과 통증
이 시간 묶임 받고 떠나라
전능한 나자렡 예수 이름으로!
성도들에게 건강과 힘
에너지와 활력을 선포합니다
능력의 이름, 주 예수 이름으로
저들의 삶이 풍요롭게 하시고
주님 나라, 주님 영광,
주님의 교회 위하여
번영하게, 번성하게 하소서
우리가 심는 복음의 씨는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맺게 하시고
우리가 심는 헌신의 씨도
넘치는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오, 할렐루야~!
아버지께 영광 돌립니다.
경배합니다
찬양합니다
거룩한 그 이름
존귀한 그 이름
권능의 그 이름
높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엎드려 주님께 절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고 향기로 받으소서
[ '놀라운 그 이름', His Name Is Wonderful 을 부릅니다 ]
그 이름 기묘라, 주 이름 기묘라
그 이름 기묘라, 예수 내 주
능력의 왕이며 만유의 주시니
그 이름 기묘라, 예수 내 주위대한 목자, 오 영원한 바위
전능한 하나님-
다 경배하-고 주 사랑하-세
그 이름 기묘라, 예수 내 주오 나의 위로자 오 나의 지도자
오 나의 변호자 예수 내 주
왕들의 왕이며 주들의 주시니
그 이름 놀랍다 예수 내 주
오 사랑의 대왕 늘 신실한 주님
평화의 군주님-
겸손히 나-와 꿇어 절하-세
그 이름 놀랍다 예수 내 주
(천천히)
위대한 목자, 오 영원한 바위
전능한 하나님
다 경배하-고 주 사랑하-세
그 이름 기묘라
예수 내 주
(더 느리게)
그 이름 기묘라
예수 내 주
[말씀 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리스토에 관한 초보적 가르침을 넘어서서 죽은 행실로부터의 회개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 / 침례(세례)들과 안수,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기초를 되풀이해 닦지 맙시다.
(히브리 6:1,2)
오늘은 각별히 중요한 말씀을 드리렵니다.
기독교의 기초 교리에 관해서 입니다.
제 글에서도 그런 말들을 써 왔지만..
신자들은 신앙 생활의 성숙에 관하여 나름의 개념과 잣대들이 있습니다. 아니면..그러기가 쉽습니다.
과연 신앙의 성숙이 뭔가? 신자는 도대체 어느 정도 성숙해야 하는가? 어떤 것이 성숙인가? 어디까지 자라야 하는가? 무엇이 수준인가..등등.
살아 가다 보면 수많은 신자들과 부딪치게 되는데..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성숙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거나 갈등합니다. 어떤 분들은 아예 성숙에 대하여 관심조차 없습니다. 또 무엇이 성숙인지를 몰라 갈팡질팡하거나 그냥 제 풀에 주저 앉아 있는 경우도 많지요.
저는 오래 전 대학 시절에 성숙 문제로 갈등한 적이 있습니다. 약 2년간 방황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고 정지한 듯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듭났는지조차 분명치가 않고 만사에 왠지 자신이 없고 힘이 없었습니다. 전에는 중요했던 일에 소홀해지고 귀찮아지고 매사에 의욕이 줄어 들었습니다.
당시는 대학교 후반기였기에 학업에도 많은 영향이 미쳤습니다. 영적으로 방황하고 안으로 속으로 갈등을 겪으니까 학업에도 관심과 열정이 안 가고 영 회의가 느껴졌습니다. 학교 친구들과의 우정도 겉으로는 유지되는 데 자연히 깊지가 못했습니다. 안으로 속으로만 갈등했습니다.
가끔 관련 대화를 나눠 봅니다만 해결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교회 대학생회의 한 선배에게 속을 털어 놓고 도움 비슷한 것을 받느라 했지만 나중 알고 보니 별 실속 없는 도움이었습니다. 그 선배도 나름대로 고민과 갈등을 겪는 분이었지요. 허탈했습니다. 공허로웠습니다. 마음의 빈 구석을 메울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엄마 뱃속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부모님은 교회의 오랜 직분자들이지만 그분들도 제 답답한 영적 갈등 해소엔 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즈음 어머니가 말기 암으로 의사에게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기도원에서 기적적으로 완치 되셨지만 장기간 회복과 요양이 필요했고, 나를 끔찍히 사랑해 주시던 할머니가 기도원에 올라가 생활하고 계셔서 그지없이 아쉬운 데다, 동생이 시름시름 앓더니 몇 달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어머님을 고쳐 주신 하나님을 믿었지만 나 자신 영적 시련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주님 밖엔 호소할 아무 대상이 없어 주님께 매달리며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처음엔 절망과 나락의 구렁텅이, 깊은 늪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깊은 곳에서 부르짖나이다!" 라는 시편 기자의 절규가 실감이 가 저도 같은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무렵. 그러니까 약 2년간 긴 방황을 하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한 때였습니다. 당시 서울 변두리의 작은 교회에서 학생회를 맡아 전도사 사역을 하던 중이었지요. 매 주일 학생들을 돌보고 설교를 하느라고 했지만 나 자신 자갈밭 위로 "따갈따갈" 돌맹이 굴러 가듯 한 나날이었습니다. 월말 사역비를 탈 때면 하찮은 월급쟁이 같은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즈음 그 교회에서 부흥회를 개최했고 유명 부흥사가 왔습니다. 저는 (대학 초기부터 지휘법을 연마했지만) 당시는 성가대원으로 들어가 열심히 어울렸습니다. 그 설교자는 어투가 좀 가볍고 가끔 욕지거리도 섞어서 하고 젊은 교우들에겐 "어이, 일어 나!" 식 반말을 하곤 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둘째 날 새벽모임이 끝난 뒤 잠시 남아 그날 메시지 본문을 읽는데 문득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뭄에 메말라 트고 갈라진 땅 위에 비가 내리듯 하염 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인지도 모르게 울다 돌아 보니 모든 교인들이 사라지고 혼자였습니다. 그 뒤로도 틈만 있으면 눈물이 쏟아지곤 했습니다. 한동안 그랬습니다.
그 본문은 레비 서(레위기) 1:3~9 말씀이었습니다. 대사제(대제사장)가 수송아지에 안수하여 백성의 죄를 전가한 다음 잡아 피를 뿌리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머리와 기름을 벌여 놓고 내장과 정갱이을 물로 씻고 그 전부를 단 위에서 살라 번제 즉 화제로 삼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이 수송아지는 물론 예수 크리스토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저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가 그 수송아지에 안수하는 순간 전가됐듯, 내 죄가 모두 예수님께 고스란히 전가됐다는 생각에 미치자 감격하여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 동물의 피를 뿌리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몸의 각 부분이 태워져 제물로 바쳐졌듯 주님께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바치셨다는 생각에 나 대신 죽으신 주님의 은총이 감개무량했습니다. 내겐 지난 세월 특히 2년간 이런 감사와 감격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나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만사에 기쁨이 넘치고 교회 일도 흥미로워지고 작은 일이 쉽게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단계였습니다. 과거 어릴 때도 몇 번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이 우리 가문에 역사하신 사건과 일들을 할머니와 부모님의 간증으로 자주 듣고 자랐습니다. 그것을 여기서 일일이 다 밝힐 수는 없겠지요.
중학교 갈 당시는 입학고사를 치렀는데 제가 평소 좀 게을러 사실 그 학교에 갈 실력이 넉넉치 못하다고 제 가정교사 선생님이 최종 평가를 해 주셔서 마음 한 구석 찜찜하고 염려가 됐습니다. 그런데 시험 치러 가던 날, 교회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고 나자 마음이 홀가분해져 아무 염려 않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며칠 후 합격자 발표를 보니 저의 초등학교 출신 응시자들 11명 가운데 저 혼자만 합격돼 있었습니다.
그러나..저는 신학대학을 거치고 대학원을 거치는 동안 정보지식은 늘고 말도 많아졌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이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딱딱한 보수신학을 하면서 지적으로 치우치게 되고 영이 굳어져 갔습니다. 많은 교수님들, 친구들과 우정을 주고 받았고 교회에서도 다양한 사역을 열심히 하고 경력도 쌓여 갔지만. 다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은 변함 없이 믿고 있었습니다.
유학 차 아내와 함께 미국에 와서는 이른 바 '바닥' 생활부터 시작했습니다. 학업을 하면서 주말엔 파타임으로 거친 일도 여러가지 했습니다. 이민생활 초기가 누구나처럼 고달팠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누릴 기회가 있었고 '중단설'(cessationism 일명 종료설)이 맞는 줄만 알았던 방언이란 것이 오늘날도 현존한다는 사실을 정말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 소중한 것을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불과 몇 년 후 완전히 이적을 통하여 생각지도 않던 미국인교회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곳은 성령의 9 은사가 골고루 나타나는 데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했던 권능사역 이를 테면 신유/악령구축 사역이 구체적으로 질서 있게 실시되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거기서 더욱 내실을 기하며 다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전부는 아니었고 지금까지 계속 여러 모로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이끄셨고 그 후 뒤늦게 언론사역, 목회사역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 간증이 길어졌는데..
오늘 본문은 신자의 영적 수준 제고와 성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토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고 성숙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초보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때가 돼도 성장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주위에서 문득문득 발견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문제점이 히브리 5:12~14에 일목요연하게 지적돼 있습니다. 즉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는 신자들입니다.
놀랍게도 일반 성도는 물론 교계 지도자층, 학식층, 엘리트 층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들은 성경과 성령님의 깊은 것에 관해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곤 합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해 왔다면 이젠 더 나은 단계, 더 장성한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전진해야 합니다. 제자리 걸음을 해선 안됩니다. 엄마 젖만 빨지 말고 유동식을 거쳐 단단한 식물도 먹을 수 있게 커 가야 합니다. 지각을 사용함으로써 단련을 받고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독교 초보 교리가 나열돼 있습니다. 그것들이 무엇입니까?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 기본적인 유신론, 침례/세례들(물침례/성령침례), 안수, 죽은 자의 부활, 영원한 심판(지옥 포함)입니다. 이런 것은 대단한 수준이 아니라 기독교의 초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강조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미 용서하신 과거의 죄악은 두고두고 회개할 필요가 없지요.
누군가는 페트로가 평생 닭 우는 소리만 나면 울며 회개했다는데 큰 오해입니다(마태 26:34,35, 69~75 참조). 페트로가 이 기독교의 초보를 모를 리가 없지요. '죄인의 수괴'였다고 자임한 파울도 순교자 스테판 살해 죄를 평생 회개하고 있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오물 쓰레기를 내던지듯 우리의 지난 죄는 잊어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현재 수시로 짓는 자범 죄를 고백하면 됩니다(시 32:5, 히 4:16, 요서A 1:9). 또 유혹에 빠져 죄에 져서 뒤늦게 회개하기보다는 우리 모두 유혹을 이겨 죄를 예방한 것을 감사하는 삶으로 전환돼 가야 마땅하지요.
둘째로는, 하나님에 대한 기초적 신앙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영국 국교회 고위급 사람들 가운데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여부조차 긴가민가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 지도자이고 목회자라니 놀랍지 않은가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그분이 살아계심과 그분을 찾는 사람에게 믿음의 대가를 치러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이 바로 그 뜻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침례(세례)들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엔 침례들에 관해 상세한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물침례는 우리를 구원시켜 주는 권능이 없습니다. 다만 주님과 함께 장사 지낸 바 되고 부활로써 연합된다는 상징일 뿐입니다(롬 6:3~5).
그러나 침례는 구원의 진리를 깨닫는 중요한 경험이며 믿는 사람은 누구나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침례입니다(마3:11. 행 11:16). 성령침례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시초적 표징으로써 방언도 하게 돼 있습니다(맑 11:16).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행전의 여러 기록이 이를 입증합니다. 성령침례는 제1차적 성령충만(=성령으로 채움받음)이며..방언은 모든 은사들의 관문입니다.
성령침례를 받은 사람이라야 신령한 분별을 하게 되며 신령한 노래도 하게 됩니다. 신령한 노래는 복음성가나 찬송가가 아니라 바로 방언으로 하는 초자연적인 찬양, 영적인 노래입니다. 성령님의 모든 사역은 초자연적입니다. 그분은 영이십니다.
넷째로, 부활을 믿는 것은 초보단계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날 때 부활도 함께 믿어야 마땅합니다(롬 10:9,10). 의인들뿐 아니라 더구나 악인들도 심판 받기 위한 부활을 하게 됩니다(요복 5:29)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명사로 알려진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안 믿습니다! 악명 높은 '예수세미나' 신학자 상당수는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부활을 철학적/추상적/개념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로마서 10:9에 따르면, 거듭난 사람일 수조차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부활을 간신히 믿는다 해도 초보자 신세를 면치 못할 터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영원한 심판을 믿어야 합니다.
의의 재판장이신 예수 크리스토는 반드시 마지막 날 이후 온 세상을 심판 하십니다(시 96:13, 요복 5:22, 행 24:25, 히 9:27, 10:27, 얔 5:9, 페A 4:5, 펱B 3:7, 유 1:15, 계 16:5 ). 행위의 심판도 있습니다(롬 14:10, 코B 5:10, 팀B 4:1, 펱A 1:17, 계 20:12,13).
영원한 심판을 받으면 영원한 형벌이 시행되는 영원한 불못에서 영원히 타오르며 고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 초보자도 못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몇 가지를 믿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우리는 성숙하는 신자로 자임할 수 있습니다.
예수 크리스토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우리 모두 자라가기를..
이 복음으로 여러분이 견고하게 되기를..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여
영광이 영원히 있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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