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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

길/진리/생명





김삼

"예수님이 그(토마)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 길과 [그] 진리와 [그] 생명이라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나아올 사람이 없다네.'"(요한복음 14:6. 사역)

예루살렘의 그날 밤은 무척이나 길었다. 그나마도 십자가 처형을 앞둔 주님께는 너무도 짧은 밤이었을지 모른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퍽 길면서도 살깊은 메시지를 주시며 다독이신다. 걱정은 하지 말라고, 자네들을 위한 하늘 집들은 다 마련해 둘 테니 그 길로만 오라고 하신다. 물론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갸우뚱거리다가 믿는 체질인 토마는 그리로 가는 '그 길'을 모르는 데 어떻게 가느냐고 묻자 주님은 위의 유명한 답을 해주셨다. 주님은 "그대들이 이젠 나를 알고 나를 봤듯..아버지 하나님도 알고 본 것"이라고 풀이하신다.

길/진리/생명! 마치 아버지/아들/성령이 하나이시듯 주님 안에 이 세가지가 한데 뭉쳐있다.

주님은 길이시다. 정관사가 붙은 '그' 길이시다. 유일한 참 길이라는 뜻이다.
광야 지대가 많은 고대의 이스라엘은 길이 매우 중요했다. 목자가 양을 이끌어 다닐 때는 특히 그 목자 나름으로 잘 아는 길이 필수적이었다. 양들을 거느리고 쉽게 효과적으로 통과할 길을 익히 아는 것이 목자의 명성과 직결돼 있었다.

"..그분의 이름을 인하여 의의(바른) 길로 나를 이끄시네"(시편 23:3b).

이처럼 주님의 길도 주님의 이름과 직결돼 있다. 나(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잘라 말씀하신다. 그런데 요즘 신학자들, 심지어 빌리 그래엄 같은 '대 전도자'들도 주님의 이 엄정한 말씀을 슬며시 삐딱하게 돌려놓는다. 그들 나름의 해석을 보자.

"..내가 [하나의] 길과 [하나의] 진리와 [하나의] 생명이라네..나를 통하지 않고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은 있을 수 있다네"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듯 싶은데 슬쩍 뒤틀어 놓는다. 용두사미 격, 구렁이 담 넘기 식 해석이다. 요런 걸 왜곡 또는 오도라고 한다. 예수는 하나님께로 가는 하나의 길(a way)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오직 단 한 길(the way)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붓다/공자/무하마드도 제각기 '길'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엄이 그럴 리가 있나?" 하는 독자는 제목에 '그래엄' 이름이 들어간 필자의 여러 칼럼에 실린 그의 어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태양이 하나뿐이듯, 지구와 달이 각각 하나뿐이듯, 내가 하나뿐이듯, 아버지 하나님께 가는 길도 하나뿐이다. 그런데도 그 길이 여러 개인 양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은 헷갈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참으로(원문은 '아멘'), 참으로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는데 양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들어가는 사람은 도둑과 강도요..나는 그 문이라오. 누구든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는 말도 있다. 문이 아니면 들어가질 말아야 한다. 왜 예수님이 그 길이라는데 자꾸 딴 소리를 해댈까? 예수 크리스토만이 길이 아니라 마리아도, 앞서 간 성인들도, 천사들도, 성현들도, [랍비 예수가 아닌] 랍비 메나헴 멘델 슈니어슨도 '길'이라고들 입을 모아댄다. 그러니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렇게 아리송하게 헷갈리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세상에서 환영받는다. 답답하게 좁은 길이 아닌, 시원하게 탁 트인 넓은 길로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세상에서 크게 환영받는 사람: 요주의 인물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미움을 받는다고 전제했기 때문이다(요15:18,19).

예수 크리스토는 그 진리(알레테이아/아멘)시다. 그 진리를 알아야 자유로워진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절대 진리란 없다고들 한다. '참'이란 말은 가장 흔히 남용되는 말의 하나다. 저마다 참이라고들 한다. 저마다 진짜라고들 한다. 온 세상과 우주에 있는 게 다 진리라고도 말한다.

빈 마음에 명상하다보면 떠오르는 게 다 '진리'란다. 그런데 실은 속빈 강정이다. 알고보면 빈 마음에 떠오르는 건 진리가 아니라 빈 마음을 좋아하는 악령들이다. 그런 빈 마음과 명상, 떠오름을 좋아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악령들과 신나게 뛰놀다 결국 캄캄한 지옥으로 새어버린다. 지옥 문간에서 후회해봤자 너무 늦다!

한국 불자들과 심지어 일부 기독교인들마저 존경하는 '큰 스님' 성철씨가 죽기 전에 내린 총 결론이 뭔지 아는가? "사탄님, 당신은 가장 위대한 붓다이십니다!" 였다.

길이 아닌 길, 문이 아닌 문, 진리가 아닌 진리를 추구하다보면 다 그런 결론이 나기 마련이다.

예수님은 그 생명이시다. 그분 말고는 생명을 얻을 생각을 말아야 한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양떼)이 생명을 얻고 더 넘치게 얻게 해 주려고 왔소."(요10:10)

일찍이 첫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 곧 아들 하나님을 포함한 성삼위이셨다. 그 생명은 불순종과 죄, 죽음으로 인해 상실됐다. 참 생명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 크리스토를 통해서만 회복된다.

그런데도 예수 아닌 딴 곳, 딴 존재에도 생명이 있다고들 떠든다. 그래서 온갖 생물이 살아가는 이 땅을 '신'(지신)으로 섬기는 이들이 있다. 지구를 잘 모시고 섬기자고 얼러대는 일부 환경주의자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주님은 마귀를 세상의 임금이라고 하셨다. 결국 지신=사탄이다.

피조물은 생명을 주지 못한다. 오직 창조주만이 생명을 주신다. 예수 크리스토는 아버지와 함께 창조주이시다. 그분 자신이 생명이시다. 바로 오늘도 성령으로 우리 속에 불어넣어주시는 생명 그것이 예수 크리스토의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이다. 썩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생명이다. 예수 이외에는 다 가짜 생명이고 결국 죽음으로 이끌린다.

한 길로만 걷자.
한 진리만 얻자.
오직 참 생명만 살고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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