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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삶맛에세이(김삼)

"까는" 설교

김삼 
필자는 남을 까는 설교는 해 본 기억이 없다. [여기서 "깐다"는 말은 바닥에 자리를 깐다거나 알을 깐다는 뜻이 아니라 "남을 좋지 않게 말하다", "혹평하다" 등의 뜻이다. 칼이 아닌, 말로 하는 '난도질' 비슷한 개념이다.] 평소 필자의 글투에 익은 독자는 "그럴 리가!?" 하고 단박에 (반신반의도 아닌) 깊은 의구심에 잠길 법도 하다. 물론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나.  

다수 설교자들이 그렇겠지만 필자도 강단에 나서면 두려우신 하나님을 먼저 의식하게 된다. 그 하나님 앞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죄많은 인간이 어떻게 불꽃 같은 눈동자의 그분 면전에서 감히 남을 깔 생각을 할 수 있겠나.

어찌 보면, 사실은 그럴 만한 구체적 동기가 없지 않았다. 오래 전 준목(일명 '강도사') 시절이었다. 필자가 섬기던 교회의 담임목사로부터 부교역자들이 교대로 한 달 간 새벽 설교를 하라는 지시를 받아 그 일환으로 강단에 서게 됐다. 그런데 설교자들은 익히 알겠지만, 새벽 기도 참석자들의 자세를 보면 가관이다. 과연 간곡히 기도하러 나온(물론 늘 그러진 못하겠지만) 사람들인지, 그냥 직분자로서 잘 보이러(?) 나온 것인지 가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어느 날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보이려고 나와야 한다"고 필자 딴엔 꽤 따끔한 설교를 했다. 참석자 전체-더 나아가 온 성도들-를 위한 말이었지, 특정인사를 염두에 둔, 모나고 뾰족한 신소리 내지 딴소리는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금세 화근이 될 줄이야.

그 다음 주일 낮. 대 선배인 수석 부교역자에게 조용한 소환을 받았다. 요런조런 말을 강단에서 했느냐고 물어 왔다. 그랬다고 답했다. "앞으로 설교사역을 계속하면 알겠지만 강단에서의 그런 언변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부드러운 경고였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달게 들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뜨려다 못 들을[들어야 할?] 소리를 듣고 말았다. '당회실' 쪽에서 요란한 고함소리가 나는데 담임목사가 한 분의 장로를 꾸짖는 모양이었다. 얼핏 듣기에 "준목이 그런 설교를 했다고 장로가 교회를 빠지면 되느냐"는 호통이었다. 그때까지는 [교회가 집에서 상당거리인] 그 장로가 새벽기도에 오래 빠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필자의 설교 때 실언 탓이었다.

우선적으로 그 장로(?)의 잘못이고 또 그 개인의 체면 문제가 얽혔기에 "추후 사과할 성격도, 잘잘못을 따질 성질도 아니다"는 고위급 판단과 지시에 따라 사과할 기회도 없이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 바람에 새벽설교 책임을 한동안 면할 수 있었지만, 참 부담스럽고 즐겁지 않은 추억이었다. 그 장로를 만날 때마다 겉으로는 피차 웃었지만 속으로는 그 때가 생각나 한 편으로 괴로웠다.  

그 뒤로는 그런 유의 '까기'성 설교는 원고 준비 때부터 적극 삼가고 조심해야 했다. 다만 폭넓게 알려진 이단이나 종교다원주의자 등 성경진리를 거스리는 자들은 가끔 이름을 거들기도 한다. 성도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남의 까는 설교는 많이 들어왔다. 필자 바로 앞에서 필자를 태연하게 마구 내리까고 짓이기는 설교도 들어 봤다. 약 6개월간 듣기도 했고 수 주 동안도 들어 봤다. 그 설교자들이 까는 원인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필자로선 정말 어이없는 '이유'였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정말 타당한 원인이었다면 달게 듣고 회개했을 것이고 지금도 기꺼이 회개하련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합법적인 박해 행위였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감사할 일로 이어졌지만.

한 설교자는 알고 보면, 단지 필자가 성경에 순응하여 성령께 순종한 이유 탓에 분노해 길길이 뛰며 까고 있었다. 많이 아팠고 울어야 했다. 그렇게 줄곧 까던 6개월 뒤 그는 급기야 필자를 추방했다. 그 얼마 후, 그 교회는 모종의 내분으로 인해 두동강 났다. 떠나 버린 일개 준목 때문에 양분된 건 물론 아니고.  

다른 설교자는 퍽 영적으로 밝은 분이었다. 그런데 당장 고치지 않으면 안 될 전체 회중 차원의 전문기술적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그 다음 주일강단에서 구약 말씀을 갖고 필자를 극력 비판하는 것이었다. 너무도 놀랐다! 그 전엔 평소 그에게서 그런 설교를 전혀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늘 은혜로운 설교 뿐이어서 필자도 거의 매 주일 큰 감흥을 받곤 했다.

그러나 그날 설교는 필자가 그 때까지 들어 본 그의 설교들 중 유일무이하게 부정적 일변도였다. 대중을 위한 설교가 아니라 한 사람을 주대상으로 한 '까뭉개기'식 설교였다. 그러더니 그 날부터 몇 주간을 그랬다. 너무 어리벙벙하면서도 "아, 저런 설교가 어떻게 가능할까!" 하고 흥미로워 시종 쓴 미소를 지으며 들어야 했다. 새삼 설교자와 청중의 입장을 바꿔 서로의 느낌을 돌아 보는 계기가 됐다.

역지사지의 입장 바꾸기로 돌아와..필자의 글이 남을 고의적으로 까는 글이어서도 안 되겠다. 그런 인신공격성이 혹 발견되면, 어느 부분인지를 꼭 알려주기 바란다. 즉시 고치겠다! 그러나 필자의 논조가 타당할 경우는 그냥 내 버려둬 달라. 전체 독자들에게 필요한 비평일 수 있다.

강단에서 특정 인사를 까는 설교는 여하한 타당한 이유로라도 좋지 않다. 진리 문제를 놓고 예리하게 분석하는 설교가 아니라면 은혜로워야 한다. 특정 대상을 놓고 그렇게 깔 바엔 차라리 개인적으로 단 둘이 만나 직접 대화로 까 버리고 푸는 게 되레 낫다.

군대 상관의 군화로 '조인트'를 까인 기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금은 군대도 옛날과는 분위기가 자못 다르다. 강단의 목회자로부터 대중 앞에서 까이기 보다는 상관 방에서 일 대 일로 까이는 게 차라리 속 편할 것이다.
설교자여, 누군가를 까고 싶으면 조용히 만나서 직접 최대한 듣기 좋게 까라. 그리고 화해로 풀어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