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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사도행전

[행전 6:7] 성경적인 교회성장은?



김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증진되어 예루샬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아졌고, 심지어 수많은 사제(제사장)들까지도 이 신앙에 순복했습니다(신약성경 행전 6'7. 사역). 


현대로 갈수록 마냥, 교회당 크기와 교인수가 성장의 표본이 되어 간다. 바꿔 말하면, 성장 여부는 숫자와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이래서 대형교회여야 화제가 되고, 소형교회는 얘깃거리도 안 된다는 발상이 표준화 되다시피 한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럴까.

만약 규모가 크고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면, 사람의 경우도 거인이고 비대할수록 좋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골리아드가 다뷔드보다 더 성장했고 따라서 더 낫다는 황당한 논리가 성립된다. 그렇지 않은가.


언젠가 어떤 중대형교회 목회자가, 따개비(barnacles. 위 사진)들이 바위나 배에 들붙듯 대형교회 그림자/그늘 아래 있는 소형교회들은 큰 교회로 '흡수통일'되어야 모양새가 "좋다"는 식으로 발언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마치 '수평이동'을 부추기고 정당화하는 말 같아, 듣는 맘이 사뭇 민망하고 씁쓸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가 크든 작든, 여러 교회들이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게 하신다(행 16'5).


과연 어떤 것이 바람직한 교회성장일까?
이에 대한 성경의 답변은 뜻밖에도 간결하다.

우선, 말씀으로 성장해야 한다.

말씀으로 성장하지 않는 교회성장은 거짓 성장이다!
다시 말한다: 말씀이 아닌 다른 방편을 통한 교회성장은 참된 성장이 아니다.

예를 들자. 진리 아닌 것으로 '성장'하는 비정상 성장교회가 무척 많다. 거대 규모의 몇몇 이단 교회들이 그렇거니와, 성경에서 한참 벗어난 비진리를 진리인 양 설파하는 자유진보주의 교회들도 그렇다. 그런가 하면, 목회자의 온갖 비윤리성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하는 교회들 역시 문제 있는 골리아드형 성장의 현장이다.

그런데도 성장이 마냥 좋은 것인가? 성장, 성장, 성장 하면서 성장통(?)을 겪는 교회들이 많지만, 정작 어떤 성장이어야 할지를 먼저 생각하는 참된 진통을 겪지는 않는다.

성장은 말씀 곧 진리를 통한 성장이어야 한다.
첫 교회인 예루샬렘교회가 바로 그랬다(행전 2'41,47, 4'4; 6'7 참조).
하나님의 말씀이 증진되고 흥왕해야 한다! 전파되어야 한다. 퍼져나아가야 한다.
진리 말씀을 통한 성장이어야, 그래서 영혼들이 구원 받는 성장이어야 가치 있는 성장이다.

그밖에는 누가 뭐래도 다 쓸모 없는 헛 성장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요즘 목회자/지도자들은 "교회는 일단 크고 봐야 한다. 키워만 놓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일단 커져만 놓으면, 그 다음은 저절로 목청도 커지고 모든 것이 정당화 되고 합리화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성장욕구 저변에 깔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눈들이 시뻘겋게 성장욕구를 품고 '목적 있는(목적에 내몰린?)' 영성, 리더십 영성, '긍정 영성'등 온갖 영성을 찾고 온갖 프로그램과 온갖 볼거리를 제공하는 교회를 지향해 간다. 성장을 돕는 ""빠삭한" 베스트셀러 책이라면 모조리 구입해다 놓고 섭렵하고 흉내를 내어본다.

상상은 자유겠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그런 종류는 다 헛된 성장이다.


성경이 말하는 수적 성장은 말씀 진리를 통해서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지 수적 성장이 다 바람직하고 옳은 것이라면, 대형화 된 미국의 동성애자 교회의 성장, 몰몬교의 성장, 진보주의의 성장도 다 타당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라오디케아교회적 성장도 참된 성장이라고 주장해야 옳을 것이다. 
 
성장만 하면 오케이라면, 대형교회 지도자가 다 옳고 바른 사람이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수적으로 우세해진 모든 대형교회가 곧 진리이고 표준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미국 대형교회 지도자들을 보라. 성경 진리에서 한참 벗어난 헛소리를 하지 않는 인사들이 드물 정도이다. 대형화와 성장, 힘 기르기 자체가 목적이고, 그 목적을 위한 수단/방편은 모두 정당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단적으로..기독교 서점들을 가 보라. 모두 그렇게 돌아간다.

그런 성장이 좋아 보이는 지도자들은 그렇게 나아가면 될 것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지도자들은 말씀 안에서 성장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어떤 것이 과연 말씀에 의한 성장일까?

한 마디로, 성경 그대로를 100% 믿는 것이 말씀대로의 성장이다.
성경에서 입맛따라 이것저것 다 빼고 믿어서 성장했다면, 진리 말씀대로의 성장일 수 없다.

"동성애도 옳다"고 주장해서 크게 성장했다면, 참 성장이 아니다.
'중단론'이란 신학 학설을 주장하고도 성장했다면, 그다지 바람직한, 올바른 성장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초기 교회는 성령님의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고 행했다.
말씀도 가르칠 뿐더러 증언/전파도 하여 구원도 얻게 하고, 영언도 하고, 은사도 받고, 신유사역으로 병자들도 고치고, 가난한 교우들을 위한 구호사역도 했다.

성경을 믿고 가르치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복음으로부터 영언(방언) 신유..영적 은사들까지 몽땅 다 믿고 받아들이고 가르치고 실천해야 옳다!
믿거나 말거나, (사도)행전 속 초기 교회들이 그랬다.


그리고는 구원 받는 심령들이 나날이 늘어가야 한다.
교회 와도 맨날 맹숭맹숭하고, 구원 받는 사건과 그 기쁨이 없다면, 숫자가 늘어봤자 헛 성장이다.


또한 나누는 성장, 나눌 줄 아는 성장이어야 한다.
예루샬렘 교회는 모으고 쌓고 "사재는" 교회가 아니라 나누고 흩어 뿌리는 교회였다.
'가진 자'들도 제 것을 제 것이라고 하지 않고, 덜 가진 자, 못 가진 자, 없는 자, 가난한 자들을 위해 아낌 없이 쏟아붓는 교회였다.
가난한 교우들을 돕는 교회였다.

그런 것이 참 성장, 바람직한 성장이다.


끝으로, 참 성장은 쪼개질 줄 아는 성장이어야 한다.
역설 같지만, 파괴적 분열이 아니라 복음전파를 위한 쪼개짐이어야 한다.


필자는 과거 '대형교회는 쪼개져야 한다'는 칼럼을 쓴 바 있다. 그랬더니 이내 '대형교회 반대론'으로 부각되어 버리는 것을 봤다.

그런데, 딴 교회는 둘째 치고, 그 큰 예루샬렘 교회가 박해로 인해 쪼개지지 않았는가?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심지어 유대인들이 개처럼 여기던 쇼므론(사마리아)까지 가서 전도하지 않았는가(행 8'1,4,5).

그러니 참된 성장은 수적으로 성장한 뒤 혹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말씀을 주위에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대형교회들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대형화생존의식 같은 걸 갖고 있는 듯 하다. 사실은 그 반대인데 말이다. 대형교회가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는 진리를 미처 모르는 것 같다. 
대형교회가 자꾸 모으고 쌓고 쪼개질 줄 모르면, 이내 바벨탑이 돼 버린다. 역사 속의 바벨탑이 아닌, 현실의 바벨탑 말이다.

그런 교회는 얼마 못 가 전도도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
예루샬렘 교회 교우들은 흩어져 전도라도 했지만, 바벨탑이었다가 흩어진 교회들은 그냥 사장된다. 그런 교회당은 훗날의 관광 유적지로 남게 된다. 유럽 교회가 그랬고 미국 교회 또한 그렇게 돼 간다. 한국 교회도 그렇게 안 되리라고 보장 못한다. 앞날이 훤~하다.

그러므로 참 '성장모델'을 바란다면, 성경을 보라.
말씀을 묵상해 보라.

참 성장모델은 말씀에 의한 성장이어야 한다.
말씀 그대로 온전히 믿고 행하는 성장이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나누는 성장이어야 한다.
또한 복음전파를 위해 쪼개지는 성장이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지금이라도 온갖 허접쓰레기 같은 외래 영성을 버리고, 정신을 차려서 성경적 성장모델로 되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