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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선지서

다니엘서 메시아예언묵상 2

다니엘서 메시아예언묵상2


네부칻네자르의 꿈 속 신상과 돌: 메시아와 그의 새 왕국


―다니엘서 2장34,35,44,45절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상전이기도 한 바벨론의 절대군주, 네부칻네자르[각주:1]는 통치 2년째인 해의 어느 날, 악몽(?)을 꾸었다. 다양한 재질의 다양한 부위로 형성된, 거대한 신상(神像)의 꿈이었다. 그에겐 하나의 악몽이었지만, 실은 예호봐 하나님이 내리신 경고와 예언의 계시였다.  


우여곡절 끝에 다니엘이 해석해 준 이 꿈의 내용에서 장차 도래할 메시아 왕국에 관한 예시가 나타난다.  


왕이 지켜보실 동안, (어디선가 떠 내어진) 사람이 손 대지 않은 돌이 (나타나) 신상의 쇠와 진흙으로 된 발을 쳐서 깨부순 것입니다. 그러자 (그) 쇠와 진흙, 놋과 은과 금이 산산히 바수어져 여름 타작마당의 왕겨 같이 되었고 자취도 없이 바람에 불려 갔습니다. 그것을 친 (그) 돌은 큰 산이 되어, 온 세계를 가득 채웠고요. (이하 성구는 필자 사역)


여기서 금과 은, 놋과 쇠와 진흙 등으로 된 각 부위는 모두 각 시대에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한 역대 제국들을 상징한다. 이 제국들은 순서상 바벨론-메대/페르시아-헬라(그리스)-로마-이후 열강[각주:2] 등으로 추정/해석된다. 다른 해석도 있다. 


돌은 어디까지나 메시아를, 큰 산은 메시아의 왕국을 상징한다. 이 돌이나 산이 '교회'를 상징한다는 해석은 카톨맄적이다. 카톨맄교는 자신들의 제국적 교권이 세계를 정복해 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메시아인 예수 크리스토를 바위 또는 돌로 묘사한 대목은 성경에 너무나 많다. 대표적인 구절이 시편 118'22, 예샤야후 서(=이사야 서) 8'14과 28'16[각주:3], 제카리야 서(스가랴) 3'9 등이다. 


산에서(2'45) 절로 떠 내어진 돌, 곧 사람이 손 대지 않은 돌이란, 곧 나라 등 어떤 인위적/인본적/인공적 존재가 아니라 오직 신적이며, 하나님의 권능이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나라, 메시아 왕국의 도래는 어떤 초강력 제국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이루어질 왕국이다. 


그리고 메시아라는 바위는 모든 역대 제국과 왕조와 정권들을 완전히 부수고 바수어 가루처럼 흩어버릴 권능을 발하게 된다. 여기서 '바람'(2'35)이라는 요소는 생각 밖에 중요하다. 비록 단순히 시편 1'4을 연상시키는 문맥일 수도 있긴 해도, 성경에서 흔히 바람은 성령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어떤 제국의 힘도 빌지 않고 저 모든 제국을 겨처럼 흩날려버릴 바람은 오직 성령의 권능이라는 것!   


네부칻네자르가 통치하던 주전(=主前/BC) 약 600년에 이런 먼 미래적 예언이 주어진 사실은 생각만 해도 놀랍다. 더욱이 네부칻네자르는 다니엘의 이 꿈 재술(再述)과 해석 앞에 입이 딱 벌어지다 못해 시쳇말로 "벙 찧은 듯" 완전히 승복한 가운데, 다니엘 앞에 절을 올리기까지 한다(2'46)! 그만큼 다니엘이 위대해 보였고, 그보다도 다니엘의 하나님이 모든 '신'들 위에 위대한 신이심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다: 

왜 하나님은 한낱 이방 나라의 제왕인 네부칻네자르에게 이런  메시아 왕국의 먼 미래까지 계시로 보여 주셨을까? 

여러 가지로 대답해 볼 수 있지만, 가장 우선적인 답은 1) 네부칻네자르의 산 같은 교만을 깨우치시기 위함이었다. 2) 다음으로는, 히브리인들을 비롯한 모든 오가는 세대에, 머나먼 미래를 내다보시고 원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계획대로 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과 지혜, 그리고 그 분의 아드님이신 메시아의 도래를,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통해 말하고 쓰신 예언 문서인 성경을 통해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다! 


네부칻네자르가 용감하고 위엄이 혁혁한 군왕이면서 얼마나 교만하고 자주 변했나 하면, 자신도 채 기억 못하던 꿈을 다니엘이 하나님의 영을 통해 되살려 풀이해 주자, 왕이 거기 대해 감사하고 심지어 다니엘 앞에 절까지 하고도, (이어지는 다른 장에서는) 이내  꿈 속의 그 신상을 회상하면서 (꿈과는 다른) 금으로만 된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리고 거기 경배하지 않는다고 해서 평소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경배해 오면서도 늘 바벨론 왕실에 충성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거대한 풀무불에 던져넣을 정도로 어리석었다. 


네부칻네자르가 유다의 예루샬렘을 (주변국가와 함께) 공략하고 정복한 것은 그가 잘 나서도 아니고, 시대를 제패한 위대한 제왕이어서도 아니다. 단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일벌백계'로 훈계하고 깨우치실 목적으로 그에게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하나님은 교만하고 어리석은 제국 군주인 네부칻네자르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알리려 하셨다. 


네부칻네자르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급기야 풀을 먹는 짐승으로 화하여 단단히 훈련을 받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권위 앞에 꿇지만 그래도 정신 차리지 못한다. 그의 아들(또는 손자)벨샤자르 왕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비슷한 길을 걷는다. 



여기서 잠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데 그토록 오랜 기간이 필요했던 네부칻네자르의 배경과 업적을 살펴 보기로 한다. 


아슈르(아씨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이 죽고 나자 제국이 혼돈에 빠졌고, 그 틈을 타 아슈르의 관리였던 나부폴라사르(네부폴라사르, 나부아플라우슈르626–605 BC)가 스스로 왕이 되어 쉬나르 땅 곧 옛 바벨론에 도읍을 정하고, 신 바벨론 제국을 창건했다. 나부폴라사르 왕은 612년에 메디아(메대)와 손을 잡고 아슈르의 수도 니네베(니느웨)를 점령했고, 610년에 (성경의 레베카=리브가와 라반의 고향인) 하란을 정복했다. 그의 아들이 바로 네부칻네자르 2세였다.   



이쉬타르 성문


네부칻네자르 대왕의 권세와 영광이 어느 정도였냐는 것은 지금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보존된 고대 바벨론의 이슈타르 성문을 보면 다소 느낄 수 있다. 구운 벽돌 위에 청금석(靑金石) 내지 천람석(天藍石)을 입힌 듯한, 찬란한 모습이다. 

이 짙푸른 바탕 위를 장식한 여러 동물들은 바벨론이 섬긴 각 신을 상징한다. 그중 으르렁대며 앞으로 다가가는 늠름한 사자는 독수리 날개 무늬를 덧입고 있는데, 바로 그들의 모신인 이슈타르 여신을 대표한다. 성문 이름의 이유이다.  


이쉬타르를 상징하는 사자 부조. 독수리 날개 무늬가 덧씌워져 있다. 



현지의 폐허에서 수집한 원래의 자재를 갖고 원래의 문을 축소해 복원한 이 대문은 홑겹이지만 원래의 대문은 이중이었고, 이 문을 향해 열린 대로의 양편에 늘어선 성벽과 파수대 탑들도 이에 걸맞게 비슷한, 찬란한 장식들을 갖췄던 것으로 추정된다. ` 

고대에 이런 웅장하고 찬란한 건축물을 갖춘 바벨론 제국과 대왕 네부칻네자르의 위세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거나한 권좌의 네부칻네자르 대왕도 낮아져서 짐승처럼 풀을 뜯어먹고 지내면서 비로소, 하나님이 역대 왕조의 권력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처절히 절감했고, 결국 왕국은 자신이 죽으면서 후대에 물려주어야 했다. 그 후 벨샤자르 시대에 바벨론은 하루아침에 메대-페르시아 군에 망하고 만다. 세계를 지배한 제국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네부칻네자르가 꿈에 봤던 그 미래, 다니엘이 다시 알려주고 풀이해 준 그 꿈 속에 예고된 메시아 예수 크리스토님의 왕국, 모든 성도들을 위한 그 나라는 모든 역대 제국이 다들 망하고 나서도 영원히 지속된다. 할렐루야! 





  1. 아카드어 '나부쿠두리우슈르'. 이름 뜻은 '나부 신(神)님, 내 장자를 보호하소서'. 역사 속의 네부칻네자르 2세(치세연대: 주전 604~562년). 신 바벨론 왕조(Neo-Babylonian Dynasty)를 수립했고, 신 바벨론 왕조의 역대 왕들중 가장 오랜 통치기간을 누렸다. 네부칻네자르 1세는 이보다 훨씬 앞서 옛 바벨론 제4왕조(제2 이신/Isin 왕조)에 속한 왕으로 처음 이 이름을 썼을 뿐 네부칻네자르 2세와 무관하다. [본문으로]
  2. 열강이라는 용어는, 발가락은 열이기 때문에 단순히 하나의 통일제국이라고만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3. 비교: 페트로A=벧전 2'6.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