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수에 오른 베니 힌과 폴라 화이트
[ 글의 아이디어는, 애독자 yohan님의 제보에 의거했습니다. yohan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일부 내용이 추후에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
걸출한 신유사역자(?)라는 베니 힌이 요즘, 자신과 비슷한 노선과 성향의 여성 사역자, 폴라 화이트와의 '염문'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 구석에서는 '텔리밴젤리스트(텔리비전 전도자)의 솦 오페라(주부 대상 낮 연속극)'라고까지 빗댑니다. 화이트 역시 텔리밴젤리스트이거든요.
올해 57세인 힌은 굉장한 '초능력'과 '카리스마', 화려한 사역 경력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온 바 있습니다. 자신의 베니힌사역회(BHM)를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헌금/기부금 수입을 올려, 고가의 저택과 자동차, 전용 제트기 등을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힌에 비해 13세 연하인 화이트는 (2회) 이혼녀로, TV쇼 '폴라화이트투데이'로 명성을 떨쳐, 2006년의 경우 4천만 달러의 기부금/헌금 수입을 올린 바 있습니다. 최근엔 4 CD 세트 '건강한 관계의 창조'를 여하한 액수의 헌금을 받고 배포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힌의 아내 수잰은 "화해 못할 차이"로 남편과의 이혼신청을 한 바 있습니다. 당시 힌은 "(네) 아이들과 나는 전혀 이런 일을 예상치 못했다"며 "이혼은 나와 그들 맘 속에선 최종적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힌은 수잰과의 30년 결혼생활 동안 둘의 삶에 아무런 부도덕도 개재된 적이 없다고 강조합니다.
수잰 역시 독립 사역자로 '한 가닥' 해 왔습니다. 플로리다의 '국제 정화의 불'(PFI)을 이끌고 있죠. 수잰은 자신의 따르미들에게 "넉넉한 종교 열정을 지니지 못했다면 '성령의 관장'(灌腸/enema)이 필요하다"고 말해 특히 경악을 자아냈습니다.
성령의 관장이라...어감만으로는 일단 '뚫어뻥'처럼 시원한(?) 느낌이군요.
힌(풀네임: 투핔 베네딕투스 힌)은 이스라엘 야파(한글성경의 '욥바')에서 태어나 자라다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무렵 가족이 캐나다 토론토로 이사왔습니다. 십대 시절 그는 캐나다 교계에 관심이 깊어져 가족신앙인 그리스 정교회를 떠나 복음주의 운동에 가담합니다.
자료에 따르면, 1974년 오샤와의 한 교회 홀에서 '미러클 크루세이드'(=기적 십자군)라는 신유 모임과 30분짜리 TV쇼 '오늘은 당신의 날'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후 국경너머 남쪽으로 내려 옵니다. 그의 경력 초기에 힌은 흰 수트를 입고 머리는 가운데 가름마를 하여 '나이아가라 폭포'를 닮았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지금은 모노그램이 새겨진 '네루' 재킽을 입곤 합니다.
그는 손도 대지 않는 '장풍'형 안수로 사람들을 뒤로 픽픽 쓰러 뜨리거나 거의 날려 보내는 "신통망통한"(?) '신의 불'을 과시합니다. 그러나 실제 치유 여부는 흔히 의문시돼 왔습니다. 특히 헤비급 권투선수 이밴더 홀리필드의 치유 사건은 특히 그랬답니다.
홀리필드는 "심장에 구멍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1994년 힌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유명병원인 매요 클리닠의 의사들은 그런 증상이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습니다.
힌은 자신의 사역 결과는 모두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갖고 큰 사업체를 운영해 온 셈입니다.
CBC방송의 '핍트 에스테이트'의 2007년 한 프로그램에 따르면, 힌의 수입은 자그마치 연간 2억 5천만 달러. 헌금말고도 '주기도문'이 새겨진 스텐레스스틸 태그, '번영을 위한 기름부음 오일' 등의 판매수익도 포함됩니다.
보고에 따르면, 힌과 화이트는 수십년간 친구로 지내왔답니다. 화이트는 자기 말로는 '엉망인' 미시시피 걸로 터펠로에서 자라났답니다. 다섯 살 때 아빠가 자살을 했고, 화이트 자신 13세까지 성적/신체적 학대를 당했답니다. 그러던 18세 때, '신성한 방문'을 받았답니다.
1991년 그녀와 두번째(직전) 남편인 랜디 화이트는 플로리다 탬파에 대형교회를 설립합니다. 그러나 집 선약금을 위해 1995년 한 노과부에게서 빌린 17만 달러를 갚지 못한 후유증으로 둘은 2007년 이혼합니다.
랜디는 한동안 혼자 이 교회(현재명: 벽없는국제교회/WWIC)를 계속 운영하다 최근 건강 악화로 사임하고 나자, 지난해 폴라가 전격 귀환, 랜디 대신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귀환 첫 설교제목은 '엄마가 돌아오셨다'였지요.
NI의 관련 기사
자 그런데, 둘의 '염문'의 진원은 지난 7월 23일 가판대를 때린 타블로이드 판 황색 언론 '내셔널인콰이어러'(NI 8월2일자)의 보도 내용. 이 신문은 사회 각계각층의 명사들의 '스캔들'에 관한 가십성 루머를 보도해온 것으로 악명 높습니다만, 힌-화이트가 나란히 손잡고 호텔행을 하는 사진까지 곁들여 쉽게 무시할 순 없는 정황이었지요.
이 기사에 따르면, 다음 몇 가지가 두드러집니다.
힌은 폴라 화이트와 함께 몰래 로마로 '로맨팈'한 여행 내지 '랑데부'를 했다.
힌과 화이트는 서로 손을 잡고 5성급 호텔 하슬러를 나와 앞길을 걷고 있다.
힌은 7월 13일경 ('데이빋 살로몬'이라는) "가명으로 대통령/회장급 최고 특실에 투숙"했다.
힌과 화이트는 호텔 하슬러에서 "사흘 밤을 보냈"다.
힌과 아내 수잰은 별거 중이지만 이혼은 안했다.
힌은 "바티칸 관리들을 만나려고 바티칸을 방문"했다.
둘 다 명사인 데다, 평소 둘의 '돈줄'이 돼 줘 온 막강한 후원 세력을 각각 둔 힌과 화이트는 허둥지둥 뒷불 끄기에 나서 각각 자기 웹사이트에다 성명서를 발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임을 부인하고 내셔널인콰이어러 기사를 '허위와 오도'라고 못박았습니다.
의아하게도 힌의 성명서는 하루만에, 화이트의 것은 며칠 뒤 사라졌습니다만, 힌은 7월 30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열린 집회와 기타 모임에서 좀 더 상세한 후속 '해명'을 발표했습니다.
당시의 성명서 전문은 때마침 복사해 둔 다른 사이트에서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http://apprising.org/2010/07/ 30/benny-hinn-and-paula-white- side-by-side
이 성명서를 통해 힌은 자신이 화이트와 20여년간의 '사역적 우정'을 지속해 왔고, 비록 "몇 년간 못 만나기도" 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힘이 돼 왔고 그녀의 "아픈" 과거 경험으로부터의 도움되는 조언을 나눠 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우정은 점점 강화돼 왔지만, 여태껏 늘 도덕적으로는 순결한 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힌은 현재 나도는 '거짓' 염문을 "강력히, 단정적으로, 절대로 부인한다"고 단언했습니다. 또 자신이 "이혼이 완결되는 그런 시기까지,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느끼기까지는 이 이상 둘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갖지 않기로 각각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성명 초기원문에서 힌은 자신과 폴라 화이트가 "각각 별도 여행"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만, 좀 색다른 해명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바티칸 관리들의 초청을 받아, 그곳에서의 미래사역 기회를 의논하고자 방문했댔습니다. 폴라 역시 비슷하게 그 지역 모임에 초청받아 갔습니다.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긴 했어도 단 둘이였던 적은 없고, 스태프/가족 등과 계속 함께였습니다."
폴라는 이랬습니다.
"본인은, 최근 바티칸 관리들을 만나러 간 이탈리아 여행에서 (우리 둘 사이의) 우정이 부적절했다거나 도덕적으로 불순했다는 일각의 주장을 강력히 반박합니다. 우리는 사역임무 상 해당지역으로 각각 여행했고 거기 있을 동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이 성명서에서 힌과 화이트는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는데, 호텔 앞에서 둘이 손을 잡은 사진의 진실에 대해선 아무 부인도 하지 않습니다.
표면상 복음주의 신교도로 행세해온 힌과 화이트 - 둘은 하필이면 왜 바티칸으로 나들이를 했을까요? 수상쩍지 않나요?
다음은 7월 30일 오클랜드 '이적 집회'에서 힌이 한 후속 해명의 골자입니다.
"며칠 전 바티칸에서 저를 초청했습니다. 2주 전 저를 '바티칸 (미술관) 예술품 후원자'(이하 POTA: 역자주)의 한 명으로 선정한 사실과 관련해서였죠. 이건 사실입니다! POTA는 바티칸을 후원하여 미켈란젤로의 모든 작품의 보존을 돕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제 그들이 하는 일을 돕는 사람의 하나란 얘기죠. 사실입니다.
저는 거기(바티칸)서 빌헬름 크라머(또는 크레이머)라는 사람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제게 말하기를 '재정적으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아십니까?'라고 묻기에 '그렇소'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제가 그녀(폴라 화이트)를 데리고 로마로 가서 돈을 기부하게 했는데, 그게 저의 어리석은 실수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용서를 구합니다. 하지만 순수한 실수였지 (모종의) 과오를 범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바티칸 POTA 국제 코디네이터/디렉터이자 카톨맄 사제인 마크 헤이두는 "우리의 유일한 관심은 성하님(교황)을 도와, 그분의 희망대로 바티칸 박물관의 놀랍고 역사적인 보물들을 보존하고 증진하고 방어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크리스천리서치서비스는 베니 힌과 폴라 화이트의 POTA 여부에 관한 신빙성 확보를 위해 바티칸으로 직접 조회해 봤습니다. 그 주된 내용은 과연 베니 힌이 바티칸으로 초청받았는지, 힌이 POTA가 됐는지, 화이트가 바티칸 관리들을 만나 돈을 기부했는지 등입니다.
그러나 헤이두는 "제가 아는 한, 폴라 화이트나 베니 힌은 어떤 관리를 통해서도 초청받은 바 없습니다. 우리 데이타베이스엔 그런 이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바티칸 고용자가 많으니 바티칸에 초청 받은 모두를 다 알 수는 없다는 여유를 남겼습니다.
여기서 POTA라는 게 뭔지 알아보면, 1982년 제정된 이 시스템은 바티칸 박물관 소장품들의 보존/복구/홍보를 위한 일종의 후원회로 회원등급에 따라 연 250/500/1000달러 씩의 후원금을 냅니다. 개인과 가족의 조건이 맞으면 POTA가 되는 겁니다.
POTA가 바티칸을 방문하면, 그들은 교황청 '사도궁'의 POTA 사무소의 환영을 받으며 개인 가이드를 통해 박물관 투어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힌에 관한 몇 가지 수상쩍은 의혹을 갖게 됩니다.
우선, 힌은 참 신교도나 복음주의자가 아닌, 종교다원주의자에 더 가깝다는 점입니다. 다원주의자는 참 신자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엄청난 이적을 행한다고 해도 마태복음 7'22,23에 해당하는 인사입니다.
그는 현재 언제라도 교황 등 구교 세력을 재정 또는 기타 방법으로 돕거나 돕기 원하고 도울 의사가 있는 사람이라는 암시를 던져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과거에도 교황청을 방문해 후원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답니다.
이같은 몸짓은 신/구교/정교회 등을 아우르는 청중을 유지하겠다는 '사역' 작전 상의 술책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의 사역을 지지하거나 돕는 배후의 구교 인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구교를 돕는 십자군을 뒤이은 존재로 자임해온 '성전기사단'(소위 '크리스천 프리메이슨' 고단자들), '성요한기사단(말타기사단)' 등 의문의 단체와 간접적인 연계를 갖고 있을 터입니다. (맄 조이너, 폴 케인, 밥 조운즈 등)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사실입니다.
이는, 힌의 네루 재킽 왼쪽 가슴 위의 십자가 모노그램으로도 시사됩니다(타드 벤틀리의 문신/옷문양/장신구 등의 십자가 상징물과도 비슷).
그를 안내했다는 '빌헬름 크레이머'라는 의문의 인사가 혹 그 유렆 단원의 일원일지도 모릅니다.
힌과 화이트의 사역체는 각각, 다른 4 사역체들과 함께 찰즈 그래즐리 미 연방 상원 재무위원회 의장에게 국세청 비영리단체로서의 탈세 여부에 관한 재무감사를 여전히 받고 있습니다.
둘의 사역체는 따르미들의 헌금/기부금으로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을 해 온 점에서 공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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