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 때와 대학 시절의 밸러리 키에라 더피 (넷째 손가락에 낀 '흠집을 찾기엔 너무 작은' 점 같은 반지가 보인다)
할로윈 열풍은 대단합니다.
요즘은 한국도 꽤 '할로윈 화' 됐습니다. 검색어 '할로윈'으로 한글 구글링을 하니 한국/미국 포함한 링크가 164만 개나 뜨네요. (이하 '핼러윈'으로 표기.)
좋은 현상일까요? 세상에서야 좋고 나쁘고의 감각이 별로 없겠으나.. 그런데도 위험한 날임은 비교적 잘 인식돼 있지요. 과거엔 납치/행방불명/파손/폭발/폭행/낙서/방화/강간 등의 사고/사건이 많았으나 요즘은 아동성폭행 위험에 집중하는 거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럴 때일수록 마귀를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둡고 컴컴하니까 그렇지요. 선한 마음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날입니다.
어른/어린이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이날 괴이하거나 끔찍한 분장/의상 차림을 하고 가면을 쓰기도 합니다. 별의별 모습이 등장하죠. 그리고 "츠맄오어츠맅"(장난 칠까요? 아니면 선물을 주실래요?)라는 장난기 서린 협박인사로 캔디를 타 냅니다.
밤이 깊어지면 성인들은 분장을 한 채 더 으슥한 가면파티를 벌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거 같아도 삽시간에 죄와 음란의 소굴로 변하기도 합니다.
상업계는 핼러윈이 연중 성수기의 하나이지요. 온갖 관련 장식품과 의상/가면들을 팔아대니까. 캔디 회사들까지도 환희의 아우성을 지르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날은 특별히 고래로부터 마법사/마녀와 연계된 위칸교(wiccan), 신이교(neopaganism), 비밀집단, 싸탄교, 흡혈교 등의 멤버들이 싸탄 내지 루키페르(루시퍼)의 '생일' 잔치를 벌이기도 합니다.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다음은 과거 마녀였다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밸러리 더피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핼러윈에 관한 중요한 경고 귀띔을 해 줍니다.
마녀로부터 새 피조물로
나의 진짜 얘기는 1971년 시작된다. 킨더가든(유치원)에 다닐 때이던 네 살이었고 11월에 만 다섯 살이었다. 당시에도 오컬트가 성행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마법에 홀리다', '스쿠비 두', '펑키 팬텀'(괴짜 유령), '십대 마녀 사브리나' 등 쇼의 광팬이었고 비슷한 만화들도 즐겨 봤다. 이런 것들은 물론 오컬트를 매력적인 사탕발림, 갈망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것들은 오컬트를 실제적인 심령적 어둠의 길로 제시하는 대신 어린이들의 판타지로 제시한 것이다. 나는 또 토요아침의 트릴러물 '괴물 특집'에서 초자연적인 것이 나올 때면 켜고 봤다.
당시 이미 책방 서가엔 점성술/마술에 관한 내용들이 즐비했다. 린다 굳맨의 '태양 사인' 등 다양한 책들이 많았다.
우리 집엔 이유야 어떻든 마법-악령햑 대사전이 있었다. 이미 네 살 때 그것을 매스터하다시피 했다. 특히 아자롵과 바포맽의 그림에 매혹됐다.
라디오에서는 코실 네(the Cosille)가 '물병좌 시대' 노래를 하고 있었고 오컬트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이미 네 살 때부터 저는 그런 것들이 꺼려질 이유가 없어졌다.
당시 전국 장난감 가게에서는 파커 브라더즈사에서 만든 '위자 보드'(ouija board)라는 작은 게임이 팔렸다. 그것은 고인의 '영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으로 심지어 이교도들조차 꺼리는 대상이었다.
내가 아직 네 살이던 그 해 핼러윈 날이었다. '신티어'라는 친구 집에 핼러윈 파티를 갔는데 불행히도 위저보드가 주된 놀이였다. 파티가 끝나 아이들은 다들 부모들이 데려 갔는데도 저랑 두 남자아이가 남아 넷이서 줄에 매단 사과 따 먹기, 의상자랑, 그리고 츠맄오어츠맅도 절반이나 다 먹은 다음, 신티어는 위저보드를 꺼냈다.
그건 속임수이면서도 매끈해 뵀고 아주 재미있고 놀라웠다. 영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상상해 보라. '위저'란 말은 '예' 대답을 뜻하는 불어의 '위!'(oui)와 독일어의 '야'(ja)에서 따온 말이다. 무엇에다 "예!"라고 답한다는 말인가?
요즘 크리스천들은 '에인절(천사)보드'라는 것을 대신 쓰지만, 이름만 바뀌었지 위저보드와 똑 같은 것이다. 즉 빛의 천사를 가장한 것일 뿐.
아무튼 이 보드는 작동했고(예..작동한다), "성 파울"로 자처하는 영과 접촉됐다. 나는 카톨맄으로 자라 성 파울에게 기도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 파울이 나타나다니! 그것은 즉시 네 아이들의 믿음을 얻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영은 내 질문에만 답하자 나머지 아이들이 화가 났고 그중 하나가 냅다 소리쳤다.
"왜 밸러리한테만 대답하는 거예요?"
그러자 보드는 '사이킼'(PSYCHIC) 즉 "영매"라고 답했다.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내겐 씨가 심겨졌고 엄마가 밖에서 빵빵거려 신티어네를 나왔다.
핼러윈 파티에서 가져온 캔디 자루와 함께 내겐 '패티', '제인', '모린'이라는 세 '안내령'(spirit guide, 오컬트에 개입된 사람의 "이끔이/지킴이" 같은 구실을 하나 사실상 고인의 영을 가장한 악령들. 역자 주)들이 따라 붙었고 그들은 내 눈에 나보다 열 살 더 먹은 언니와 같은 또래의 세 언니들 모습으로 보였다.
나는 안내령들을 숭배하기도 하고 서로 다투고 다시 화해하고 웃고 울기도 했다. 그들과 나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들이 됐고 나는 그들을 매우 의존했다.
나의 언니가..마녀?
나는 이때 또 정지발작(absence seizure: 일명 의식소실발작. 간질이나 호흡정지발작과 구분되며,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곤 하는 증상. 주로 4-11세 어린이들에게 일어나며 때로는 위험함. 역자 주)도 가져왔다. 나는 거의 날마다 정지발작을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단지 백일몽을 꾸는 것으로 오인하곤 했다.
그 당시 나의 언니는 다른 큰언니들이 동생들에게 으레 하는 '동생 집적거리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마녀"라며 '마녀 모임' 얘기를 꾸며 내어, 밤이면 마녀들에게 납치돼 모임에 참석한다는 얘기를 했고 나는 그녀의 말을 하나하나 다 믿었다.
나는 거기 너무 깊이 빠져 헤어나올 수 없게 됐다. 다행히도 언니는 지금 회개하고 구원받아 새 피조물이 됐다. 하나님도 나도 언니의 집적대기를 용서했다.
나는 초등학교 친구들에게도 나는 마녀라고 말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내 방에서 사람들에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시곤 했다. 아이들이 혼자 중얼거리는 것은 반드시 늘 상상의 것만은 아니다. 어른들이 단순히 생각하는 만큼 순수하진 않을 수 있다는 것요.
패티/제인/모린 등 세 '큰언니'는 나의 "지킴이"라면서도 실제 삶은 달랐다. 나는 삶 속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다. 한 친척 아저씨는 나를 성추행했고 반아이들에게 매 맞거나 욕설/폭언을 듣기도 했고 나의 한 오빠는 포르노 라이브러리를 갖고 있다시피 해서 나는 실상 동정을 잃다시피 해 이미 6학년 전에 동성애 행위를 부채질 했다.
마귀는 결코 지킴이가 아니다! 하나님과는 달리,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 우리의 상처받음을 즐긴다.
모계의 내력
나의 외할머니(내 어머니의 계모)는 우리 가족에게 늘 "마녀"로 알려졌댔다. 나는 마녀/witch라는 낱말과 발음이 비슷한 완곡어법인 줄만 알았는데..실제로 할머니는 부두교(voodoo. 서인도 제도/미국 남부의 주술 종교)와 강신술(spiritism/seances)에 관여돼 있었고 내가 태어나기 전 (외)할아버지도 역시 그런 것을 믿다가 돌아가셨다.
평생 자식을 학대한 할아버지는 이제 늘그막에 자신이 영적 학대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젊은 새 아내를 들였고 아내 역시 오컬트 신앙을 받아들여 결국 성경 말씀대로 온 집안 3-4대 가문이 몽땅 악령들의 소굴로 화했다(출애굽 20:5).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다. 나의 외가댁의 죄악은 우리에게 씌워져 나 역시 영적인 속임수에 갇혔다.
지금까지는 그 마녀 수업 단계였다면 이제 본격 수행 단계로 접어든다.
엄마의 죽음, 악령의 전수
1981년 2월 어느 날. 학교를 하루 쉬던 날이어서 어디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 9시에 엄마한테 제 계획을 말씀 드리러 아래층으로 내려갔지만 보이지 않았고, 지하실에도 역시 보이지 않아 다시 위층으로 올라와 부엌, 반쯤 빈 커피 잔이 놓인 테이블을 지나 마침내 화장실 입구에 섰다.
"엄마!" 하고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문을 열려고 하자 안으로 잠겨 있었다. 쇠붙이로 문을 반쯤 열자 엄마가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심장발작 같아 보였다. 머리는 변기 저너머 있어서 팔을 잡아당기자 엄마의 얼굴이 파랬다.
나는 911 응급호출번호로 신고를 했고 "엄마, 죽지 마! 엄마, 제발!" 하고 거듭거듭 소리치다가 건너 편 이웃집에 달려갔다. 당시 나는 14세인데 나의 안내령들은 "어린 내가 뭘 어떻게 하려고?" "하나님이 있다면 왜 내게 이런 일이?", "하필 내가 집에 있을 때 이럴 게 뭐람?" 하고 내 말처럼 중얼거렸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듯 했지만 나의 안내령들은 내가 안 불러도 가까이서 집적거렸다.
이웃 집엔 노모를 돌보는 간호사 한 분이 게셨다. 그는 술에 취해 있어 싫다는데도 나는 억지로 끌고 길을 건너 집으로 왔다. 그러자 자기를 도와 엄마를 부엌으로 옮기라고 소리질렀지만 대신 나는 전화를 걸어 오빠, 언니, 아빠를 불렀다.
비상구급대가 도착해 인공호흡을 통해 엄마의 숨을 되돌렸지만 집앞 계단에서 다시 숨이 멎자 인공호흡이 시도된 뒤 구급차에 실려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안내령들이 날 '위로'했고..나는 심지어 행운을 위해 집에서 로자리(묵주) 구슬 두 알을 갖고 나오기까지 했다. 당시 이미 본격적인 마녀였던 나는 '크리스천(여기선 카톨맄을 의미) 마녀' 행세를 하고 있었다. 나는 천주교 배경에서 자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정도의 말을 들어 알았지만 참 뜻은 몰랐다. 나는 안내령들을 "예수님으로부터의 파워"로 여겼고 내가 결코 악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싸탄은 삼지창을 들고 긴 꼬리와 염소발굽에다 뿔 달린 모습으로 붉은 연기 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면 우리가 이내 거부할 것이다. 그는 보기 좋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하고 나타난다(코린토B서=고후 11:13-15).
엄마가 죽고 나서 평소의 삶을 되찾았을 때 나는 내 외할머니의 부두교 수행 열매를 내 쪽에서 거둬들였다. 지난 9년간 정지발작으로 '백일몽', '까무러침' 증세를 보여오던 나는 드디어 원인 모를 특발성(特發性) 간질발작으로 진단 받았다.
정지발작이 그친 대신 간질발작이 더 잦아져 쓰러지고 경련을 일으켰다.
대학생활
대학 시절, 나의 마법과 주술 연구는 한층 깊어져 갔다. 나의 안내령들은 나의 모든 결정을 나쁜 쪽으로만 이끌었다.
입학한 두 달께, 나는 드라마클럽 모임에서 '키잍'이라는 남학생을 만났다. 그는 짙은 색 안경을 끼고 있었지만 마약을 하고 있는 표시가 났다.
키잍은 팬터지 롤플레잉 게임, 포르노, 마약 등을 동시에 하는 애 였는데도 나의 안내령들은 "바로 이 얘가 네 짝이란다"고 귀띔했다. 그 첫 해에 나는 졸업 후 그와 결혼하기로 약조했고 3학년 떄는 아빠가 "흠을 찾기엔 너무 작다"고 평가한 약혼반지도 키잍에게 선사받아 끼고 다녔다.
나는 키잍과 그와 대동소이한 그의 친구들 서클에 매혹됐다. 타로카드를 배우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를 점 쳐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점을 믿고 그것에 따라 저주와 맹세를 했다. 해몽도 해 줬고 오컬티스트만이 해 줄 수 있는 조언/상담도 해 줬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날 찾고 불렀고 대가도 받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오컬트 세계로 끌어들였다.
대학 전까지 나는 '자연숙련생'(natural adept: 안내령에 의해 재능을 부여받았다고 뽑혔지만 정식 훈련을 받지 못한 '예비마녀')이었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백색(선한 행세를 하는) 마녀인 키잍 친구의 후견/지도를 받았다. 놀랍게도 그녀 역시 자신이 파워가 예수님으로부터 왔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각 안내령과 좀 더 효과적으로 대화하기, 교묘한 위저보드 활용법 등을 배웠고 더 많은 안내령들이 추가됐다. 나는 처음으로 한 악령과 정식 채널링을 했다. 그러나 우리 식구 가운데 아무도 이런 나를 모르고 있었다.
발작..발작..또 발작
대학 시절 내내 나의 발작증세는 악화돼 빈도가 더해 갔다. 약을 과다복용해 약에 취할 정도였고 언제나 균형을 잃은 듯 보였다. 나의 안내령들은 대학에서 사고없이 지내는 게 다 자기네 덕인 줄 알라고 으스댔다.
나는 발작 전조도 보여 미리 위험 환경이나 노출 위기를 피하곤 했다. 이 역시 (그들 주장에 따르면) 안내령들 '덕분'이었다.
내가 3학년 때 키잍은 졸업해 2시간 운전거리인 집으로 귀가해 결혼을 위한 저축을 시작했다. 온통 혼자였다. 안내령들은 늘 있어도 정작 발작 때는 아무 도움이 안됐다. 발작이 끝나면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공허가 온다. 마치 범죄자에게 얻어 맞아 의식을 잃은 듯 하고 숨막히는 공포감이 엄습한다.
대학 시절 발작 때는 역시 간질환자인 간호사나 키잍에게 주로 도움을 받곤 했다. 키잍은 강의실에 있을 때는 돕지 않았다. 그러나 키잍이 없자 다른 친구의 도움을 받게 됐다.
스티븐. 그는 천주교 사제 수업을 받는 신학도였는데 내가 보기엔 경박하고 한심했지만 나 역시 괴짜 밸러리인지라 피차일반이었고, 어쨌튼 그는 나의 기사가 돼 주었다. 내가 발작할 때마다 으레 쿵! 하고 지니처럼 그가 나타나 간호사에게 데려다 주거나 안전한 곳이나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키잍 보다 더 나은 사람도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스티븐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키잍을 떨구었다. 흠을 찾기에도 너무 작은 반지도 돌려줬다. 그러나 스티븐과의 관계가 시작되면서 둘은 종교적으로 부딪치고 부딪치고 또 부딪쳤다!
천주교 대 마법교
우리는 어떻게 죄 용서 받느냐로, 왜 마리아에게 그렇게 빠졌나로, 수사의 어깨옷이 뭐냐로, 맨날 다퉜다. 우리는 둘 다 예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거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스티븐을 집에 데리고 왔고 그는 내 책장을 들여다 볼 기회를 가졌다.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거의 알아 볼 수 있다지 않는가. 나의 서가는 마법에 관한 비싼 도서들과 부적 장신구들, 여러 세트의 타로카드로 장식돼 있었다. 스티븐은 깊은 우려를 내비쳤다.
"밸러리. 성당으로 돌아 와!" 나는 속으로 "으, 싫어" 했지만 스티브와 모종의 합일점도 찾고 싶어 그러마 약속했다. 나는 그보다 더 예수님과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미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대중 어필
스티븐을 따라 한 성당에 간 나는 키가 작아 맨 앞에 나아가서 사제들의 화려한 제의나 동작을 지켜봤다. 그들은 내게는 주문(呪文)처럼 들리는 말로써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와 빵과 포도주를 예수 크리스토의 몸과 피, 신성으로 화하게 달라고 주문하곤 했다.
마치 마법 같은 그 행동이 한편으로 매력스러웠지만 나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내 나는 스티븐에게 한 번만 더 참석하면 소금기둥이 돼 버릴 거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내게 "밸러리, 이번엔 나랑 함께 우리 성당으로 가 보자. 거긴 은사파 성당이야"라고 말했다.
거길 간 것은 잘한 일이었다. 안 갔더라면 또 딴 방향으로 가버렸을지 모르니까. 사람들이 손을 들고 찬양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목소리가 커서 혼잡하게 들리고 두려웠다. 스티븐에게 "뭐 하는 거야?"라고 묻자 "괜찮아, 하느님을 찬양할 뿐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맨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앞에 꿇어 앉아 있을 동안 스티븐은 곁에서 기도하고 사람들이 소리치며 뛸 무렵, 나는 홀로 하나님 앞에 있었다.
왕의 궁정을 침입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더럽고 부끄러웠다. 죄 짓고 나서 하와와 함께 하나님을 피해 숨은 아담처럼 숨고 싶었다.
나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 주변의 찬양소리와 맞먹는 흐느낌 같아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미사가 시작됐지만 나는 아직 왕의 궁정에 있었고 그분 앞에 있는 듯 처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지금껏 가짜 예수에게 이끌려 온 사실과 자신이 엄청난 죄인임을 깨달았다. 이대로는 용서받을 수 없음을 느꼈다.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절감했다. 내 속엔 처음으로 그분의 뚜렷한 음성이 맘 속에 들려왔다. "지금 행로를 바꾸든지 단죄를 받든지 해라."
나는 울음에 목 메어 고백했다. "예수님, 정말 죄송해요!" 같은 말을 자꾸만 되뇌었다. 내 죄가 너무 많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다만 지난 20년간 하나님과 동떨어져 있었음을 알 뿐이었다. 마침내 그분께 여쭸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나의 죄책을 인정하자, 하나님이 깨끗케 해 주심을 느꼈다(시편 103:12). 나는 새 피조물이 됐음을 느꼈다! 갑자기 선 자리가 바뀌었다. 난 이제 사랑 받고 있다! 이젠 하나님의 딸 밸러리다!
나의 괴로운 흐느낌은 이제 기쁨의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나는 끝까지 남아 흐느꼈기에 스티븐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안절부절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앞에 꿇어 앉아 삶의 대청소를 받고 있었다. 거기가 카톨맄 성당이어서일까? 아니다! 나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역사하신 것이었다.
스티븐과 집에 돌아온 나는 즉시 쓰레기 자루를 꺼내어 거기에다 마법 책, 장신구들, 옷가지 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 모든 것을 담아 내다 버렸다.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당시는 몰랐으나 1988년 그 날은 나의 거듭난 날이었다.
나는 일시 오순절계 천주교인이 됐지만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전통이 아닌 성경만 가르치는 교회로 가고 싶어 결국 온복음교회로 갔고 이듬해 스티븐과 결혼했다.
1990년. 나는 제 자리를 잃기 싫어 주변을 맴도는 안내령들로부터 온전한 자유를 얻기 위한 축귀사역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그 무렵, 스티븐이 거듭났다. 다섯 살때부터 지속돼온 발작증세도 그 해 축귀사역이 끝나자 멎었다.
[ 간증자 밸러리 머피는 현재 뉴욕주에서 마녀들이 설치는 곳 부근에 살면서 매년 핼러윈 때마다 영적 싸움을 하고 있다. ]
기타 참고 글:
핼러윈의 정체와 몇 가지 흐름
http://newspower.co.kr/sub_read.html?uid=1395§ion=sc1§ion2=
'해리 포터', 장난이 아니다
http://newspower.co.kr/sub_read.html?uid=4023§ion=sc7§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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