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
(사진은 루터 부부의 무덤과 개혁가들의 초상화)
'성탄절' 시즌이 다가 오면 큰 관심사 하나가 예수님의 육친인 어머니 마리아다. 탄생 드라마 주역의 한 명인 데다 안 그래도 카톨맄 측이 '흠숭'하고 지대하게 부각시키기 때문.
카톨맄은 아울러 어른 예수 아닌 아기 예수를 매우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성탄절만 아니라 평소에도 '베이비 지저스'로 늘 머물러 주길(?) 바라는 듯한 인상도 언뜻언뜻 든다. 제대 한 가운데 '감실'에다 성체를 모셔 두고 매 미사 도중 성체성사 때는 예수님의 '몸'이 들어 간 원형 면병, 즉 성체를 모셔서 "먹기" 때문(=영성체)이다.
미상불, 웬만한 중세 성화들을 들여다 봐도 마리아는 으레 성큼 큰데 아기 예수는 자그마한 모습으로 마치 엄마의 둘러리를 선 듯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동방 정교회 측도 '테오토코스' 라며 신모로 받든다. 신보다 신모가 더 중요하단 뜻인가? 언제나 '빅 마마'에 '미니 지저스'이길 바라는가?
아무러나 여기서는..카톨맄 아닌 개혁가들의 마리아관을 좀 살펴 보련다. 한 가지 미리 귀띔할 사항은 이 글은 개혁가들의 지대한 업적을 단순히 깎아 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카톨맄 사람들도 바로 개혁가들의 이런 약점 내지 자신들과의 공통분모(?)를 기독교 개혁 측의 입장을 되도록 흐려 놓고 폄하하고 느슨하게 하는 데 악용하기 때문이다. 또 안티 기독인들도 대동소이한 입장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늘 개혁가들보다는 더 성경적인 입장을 고수할 필요가 있다. 말을 좀 바꾼다면, 마리아관에 있어 특히나 개혁가들의 생각보다 성경을 더 붙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르틴 루터의 마리아 관
1. '신모'
개혁의 선구자, 마르틴 루터는 마리아에 대한 존숭심이 대단했다. 마리아에 관한 한 루터는 기독교보다는 카톨맄 쪽에 더 가깝다. 그는 죽기까지 마리아가 신모 즉 '하나님의 어머니'였다고 확신했다.
"그 분은 사람의 어머니로만 아니라 하나님의 어머니로 [올바로] 불렸습니다..마리아님은 실제로 참되신 하나님의 어머니임이 확실합니다." (마르틴 루터: '마르틴 루터의 저작들, 바이마르 판/영문. J. 펠리컨 편집, 컨콜디아/세인트루이스/제24권/107쪽. [ ]표는 본 필자의 것.)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리아의 아들이 나의 유일한 아들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님은 신모님(하나님의 어머니)이십니다" (요한복음 강해설교에서, 1537~39년).
"하나님의 신성은 마리아님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이 마리아님에게서 나셨다고, 하나님은 마리아님의 아들이며, 그래서 마리아님은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그 분은 참된 신모님이시며 하나님의 '배태자'이십니다. 마리아님은 하나님께 젖을 먹이셨고, 흔들어 재우셨고, 즙과 국물을 요리하여 먹이시고 그밖의 것을 돌보셨습니다." (공의회와 교회에 관하여, 1539년).
2. '영원한 처녀성'
루터는 또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설을 믿었다. 그는 갈라티아서 4:4을 크리스토가 "오직 여인에게서만" 태어날 것임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이것은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이면서 아직도 동정녀라는 신조입니다."(같은 책 제11권/319~320쪽 참조).
또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예수님만이 유일한 아들이었다고 단정한다. 즉 마리아는 평생 다른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리스토님은..마리아님의 유일한 아들이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는 그 분 밖엔 다른 자녀를 낳지 않으셨습니다..'형제들'은 사실 여기서 '사촌들'을 뜻합니다. 성경이나 유대인들은 언제나 사촌들을 형제들로 부릅니다."(요한복음서 강해설교, 1~4장에서, 1537~39년)
"그 분, 크리스토, 우리의 구세주는 마리아님의 처녀 자궁 속의 진짜 자연적인 열매입니다..이것은 인간의 협조 없이 된 것이며, 그 분은 그 이후로도 동정녀로 남았습니다."(같은 책)
이게 말이나 되는가? 미안하지만, 참 상식 이하의 발상이다. 아니 처녀가 애를 배고 낳으면 그 때부터 엄마지 무슨 처녀란 말인가?! 눈 가리고 아웅 격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마리아가 열 달 동안 아기를 배고도 여전히 처녀의 증거를 지니고 있었다지만 아기를 낳는 순간부터는 완전히 처녀가 아니다! 마리아가 첫 아들을 초자연적으로 잉태했다고 해서 언제나 이 자연법칙에서 예외란 법이 있는지?
뿐만 아니라 성경은 여러 모로 마리아-요셒의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시사해 준다. 따라서 카톨맄 적인 마리아/요셒 영원처녀성 이론은 진리라기보다 전설이나 신화에 더 가깝다. 도대체 마리아-요셒이 영원히 처녀/총각(또는 생과부/생홀아비)으로 남겨 놔야 할 까닭이 뭔가?! 여기 카톨맄 측의 숨은 어젠다가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상징적 처녀성이 기독교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뜻일까? 마리아의 처녀성은 단지 예수 크리스토가 남성의 씨 아닌, 오직 성령님의 권능으로 잉태됐음을 밝히는 차원으로 그쳐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루터는 과연 정신 있는 사람인지, 과연 '신학자'인지 어리벙벙해진다.
3. 마리아 자신의 무원죄잉태
루터는 또 마리아 자신의 '무원죄잉태'(Immaculate Conception)를 믿었다. 한국 카톨맄에서 '무염시태'라고 하는 이 개념은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자유로웠다는 발상. 그런데 사실 카톨맄에서조차도 결정적으로 교리화된 것은 1854년이었음을 볼 때, 루터는 마리아의 영적 순결을 믿어도 너무 믿은 듯 하다.
루터 연구학자 아터 핖콘(세인트루이스컨콜디아신학교)에 따르면, 루터는 죽기까지 평생 이 사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루터도 마리아의 신적인 모성, 영원한 처녀성, 무염시태를 믿었던 것이다. 핖콘 역시 루터 물을 엄청 먹었는지 열성적으로 이 교리를 따른다.
"그러나 다른 잉태, 즉 그 혼의 주입은 -경건하고 적절하게 믿어지기를- 어떤 죄도 없었고 그래서 그 혼이 주입될 동안 그는 동시에 원죄로부터 깨끗해지고 그래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거룩한 혼이 주입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삶의 바로 첫 순간에 모든 죄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1527년 12월[?] '성모 수태의 날' 기념 설교에서)
"그 분(마리아)은 은총이 가득하시며 전혀 죄가 없으시니..하나님의 은총은 모든 선한 것으로 그 분을 가득 채우고 모든 악을 그 분에게서 없앱니다."(1522년 개인 소기도서에서 )
만약 마리아에게 전혀 죄와 악이 없었다면 왜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했던가?
"..내 마음이 하나님 나의 구주(Savior)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뤀 1: 47)
마리아가 전혀 무죄무흠하다면 구주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는 얘기이며, 이 방면에서 역사 속의 인간들 가운데 유일하게 예수님과 동등하다는 얘기 밖에 안 된다. 성경은 오직 예수 크리스토만이 무죄하시며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이라고 했다(히 4:15, 페트로A 1:19). 그밖에 그 누구에게도 그런 표현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루터는 1533년 가족 성탄절 설교에서도, 1545년 로마 교황청에 항거하는 설교에서도 이 사상을 설파했다. 그러나 만년에는 이 교리가 모든 신자들에게 강요돼야 한다고 믿지는 않았다. 성경에 그렇게 두드러지게 공적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신념은 그의 '오직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기도 했다.
4. 마리아 승천설
루터는 또, 비록 신조로 만들진 않았으나 마리아 승천설을 믿고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아 승천일 축제는 강력히 비판했다. 승천축일 설교로서는 마지막인 1522년 8월 15일 설교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동정녀 마리아님이 하늘에 계심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셨는지는 우리가 모릅니다. 성령께서 이에 관해 아무 것도 말씀해 주시지 않으니 우리는 그것으로 아무 신조도 만들지 못합니다. 그 님이 크리스토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신자면 누구나 그렇듯 마리아의 영혼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루터가 위의 뒷 부분에서 시사하려던 것은 단순히 마리아의 영혼만을 언급한 것은 아닌 듯.
아마도, 마리아 승천설을 믿는 루터와 수많은 카톨맄들은 휴거의 날에 마리아의 몸이 땅에서 부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테살A 4:15,16)!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믿는다.
5. 마리아 찬미와 존숭
루터는 마리아를 지극히 존숭하는 듯 하다. 마땅히 "존숭 받을 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성모축일'에 관한 설교에서 그랬다.
"마리아님 존숭은 인간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 분은 지고의 여성이며 크리스토 다음으로 기독교의 가장 고상한 보석입니다. 고귀함, 슬기, 인격화된 거룩함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 분을 높여도 모자랍니다. 영예와 찬양이 그분에게, 크리스토와 성경에 손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돌려져야 마땅합니다."(1531년 성탄절 설교)
루터는 또 다음과 같이 마리아에게 직접 말을 건다.
"님[2인칭] 같은 여성이 없습니다. 님은 이브나 사라 이상이시며 모든 고귀함, 슬기, 거룩함보다 더 복되십니다."(마리아의 엘리자벹 방문 축제일 설교, 1537)
루터는 전통적인 카톨맄 마리아 중재설을 믿진 않았으나..마리아의 '중재적 역할'을 전혀 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그니피카트(루카복음 1:46~55에 있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라틴어 마그니피카트)'로 시작되는 마리아님의 찬양)에서 마리아님 자신이 원하시고 표현하신 대로 마리아를 높여야 합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행적을 인하여 그분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마리아님께 대한 진정한 찬미는 곧 하나님께 존영과 찬미를 돌려드리는 것입니다..마리아님은 아무 것도 그 분 자신을 위하지 않고 크리스토를 위했습니다..마리아님은 우리가 그 분께 가기를 원하시는 게 아니라 그 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가기를 원하십니다." (마그니피카토 해설, 1521년)
다음은 루터가 1546년 비텐베르크에서의 마지막 설교 도중에 한 말이다.
"크리스토만 존중 받을 분입니까? 아니면 거룩한 신모님이 오히려 존중 받지 말아야 합니까? 이 분은 뱀의 머리를 밟아 으스러뜨린 여인이십니다. (마리아에게) 우리를 들으소서! 님의 아드님은 님의 그 무엇도 부인하지 않으십니다."
위에서 루터는 세 가지 오해를 했다. 1. 예수님 못지 않은 즉 예수님과 거의 대등한(?) 존중을 신모가 받아야 한다는 주장, 2. 뱀의 머리(싸탄의 권세)를 밟은 분은 뱀에게 발꿈치를 상하신 예수님인데도 인간 마리아가 그렇다는 주장(창 ), 3. 마리아에게 직접 기도 내지 대화를 시도한 것 등. 이 모두가 비성경적이다.
마리아는 메시아의 회임/탄생을 도운 믿음의 여인, 복스러운 여성이다. 예수님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위탁하는 등 끝까지 돌보셨다. 그러나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죄인이었고 따라서 구주 예수님의 구속/구원의 대상이었다. 마리아는 심지어 한때 온 가족과 함께 예수님을 미치광이로 생각하고 찾아다니기도 했다.
예수님이 뱀 즉 싸탄에게 발꿈치를 상하셨음은 고난을 상징한다. 따라서 뱀의 머리를 밟으셨음은 부활과 승리를 상징한다. 뱀을 밟는 권세는 주님이 부활/승리하심으로써 교회 전체에 주어졌지, 마리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마리아/성인/선조 등 죽은 사람들은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아니다. 심지어 천사들도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아니다. 성경은 이런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크리스토를 통해 해야 한다.
6. 교회의 영적 어머니?
루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마리아를 모든 신자들의 '영적 어머니'로 추켜 올린다.
"사람이 그런 '보화'를 높여 드릴 수 있음은 하나님의 큰 위로와 과분한 선입니다. 마리아님은 인간의 참 어머니, 크리스토는 그의 형님,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이십니다."(1522년 성탄절 설교).
"마리아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십니다. 물론 크리스토 한 분만이 그분(=마리아)의 무릎에서 길러졌지만..그 분(=예수님)이 우리의 것이라면 우리는 그 분의 상황에 처해야 합니다. 그 분이 계신 곳에 우리 또한 있어야 하고 그 분이 지닌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돼야 합니다. 그 분의 어머니 역시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1529년 성탄절 설교. 괄호 속 설명은 본 필자의 것).
그러나 루터는 마리아의 주님과의 '동등성', 예수님의 구주로서의 유일충족성을 마리아에게 넘기는 등의 잘못된 경건관습을 철저히 단죄했다. 또 기도 때 '아베 마리아'의 사용을 권장했다. '아베 마리아'를 반대한 게 아니라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기를 경고했을 뿐이다. 이 점에서 루터는 중대한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
"든든한 믿음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위험성 없이 '찬미 마리아님'(아베 마리아)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누구나 구원에 대한 위험 없이는 '찬미 마리아님'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1523년 3월 11일 설교)
"우리의 기도엔 신모님을 포함시켜야..아베 마리아는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일러줍니다: '아베 마리아, 은총이 가득하신 분. 주님이 님과 함께 하십니다. 여인들 중 가장 복되셔라! 복되셔라, 님의 태의 열매인 예수 크리스토! 아멘' 이 말들은 기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찬양과 영예에 관한 것입니다..우리는 아베 마리아를 묵상으로 하나님이 그분꼐 주신 은총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각 사람이 그 님을 알고 존중할 수 있게 기원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신앙이 없는 사람은 아베 마리아를 말하기를 삼가야 합니다."(개인기도서, 1522년)
위에서 루터는 마리아를 존숭함이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는 가당찮은 등식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루터는 성인들의 중재와 성인들에 대한 기원을 부인했다.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의 조직적인 가장 초기 신조와 일치한다.
이상과 같은 루터의 마리아관은 그의 후예들인 현 루터교가 대부분 받아 들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장 칼뱅
칼뱅은 루터보다는 훨씬 성경적인 마리아관을 지녔지만,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을 부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마리아에게 쓴 가장 흔한 용어가 '거룩한 동정녀'.
"엘리자벹(침례/세례 요한의 어머니)은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불렀습니다. 까닭은 크리스토의 두 본성(신성+인성) 속의 격(person)의 합일은..마리아의 태 중에 배태된 필사의 인간이 동시에 영원한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칼뱅은, 연상의 친척인 엘리자벹이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부른 데 대해 지나치게 비약시켜 가는 성향이 보인다. 예수님의 신성+인성 합일은 성령의 권능을 통해서지 마리아의 '태의 능력'이 아니다.
특히 다음에서 칼뱅은 전적으로 성경을 오해했다!
"헬비디우스는 너무 무지했음을 스스로 드러냈습니다. '크리스토의 형제들'이라는 몇몇 성구들이 있다고 해서 마리아가 여러 아들을 뒀다고 말했습니다." 칼뱅은 '형제들'이라는 말을 유대 관습에 따라 사촌, 친척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나 칼뱅이 잊고 있는 것: '형제들'은 친척 이전에 우선 친형제들부터 가리킨다는 사실, 그리고 마리아는 여느 여성과 (달리 가 아니라) 다름없이 엄연히 성욕을 가진 여인으로서 남편 요셒과 성생활을 하여 계속 자녀를 낳았다는 사실, 그래서 성경은 형제들뿐 아니라 예수님의 누이들까지 언급했다는 사실 등.
그런데도 칼뱅이 '형제들'을 사촌/친척으로만 이해한 것은 잘못이며 더구나 헬비디우스를 '무지하다'고 판단한 것도 너무 섣불렀다. 오히려 자신만 스스로 무지해지고 만 셈이 됐다.
우리가 풀어야 할 오해는, 하나님은 마리아/요셒이 예수님 출생 후에까지도 영원히 처녀성을 '간직'하길 원하실 이유가 없다는 점. 이 점은 복음서 기자의 뉘앙스로도 충분히 느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태복음서 1:18).
윗 구절에서 '동거하다'(=쉬네르코마이)는 성생활을 포함한 모든 부부 생활 패키지를 뜻한다. '동거하기 전에'는 나중 성생활을 포함한 동거에 들어 갔다는 뜻이 된다.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 1:25).
성경 원문은 명백히 여기서 요셒이 아들을 낳기까지 시한부로 금욕 생활을 했다는 뉘앙스이다! 이제 다음을 보라.
"첫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루카 2:7 개역개정)
당대의 과학자인 의사 루카는 위 구절에서 분명히 다른 아들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는 '첫아들'(프로토토코스 휘오스)이란 말을 쓰지 않고 오히려 '외아들/독자'(모노게네스)이라고 하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다! 루카는 명백히 예수님 말고도 마리아/요셒 사이에 분명히 딴 아들딸들이 있음을 명백히 암시하고 있다.
이상 성구들에서 우리는, 성욕이 있는 멀쩡한 사내인 요셒이 예수님 출산 이후 성욕이 있는 멀쩡한 처녀인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을 만한 까닭을 못 찾는다.
요셒이 그럴 이유가 도대체 뭔가? 마리아의 태는 단지 메시아 즉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채널로 한 번 사용됐을 뿐, 그 이후는 요셒과 마리아의 자유 소관이다. 하나님이 두 사람을 평생 맨 처녀, 평생 맨 홀아비로 남겨두실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요셒은 아직 총각일지언정 아기 예수를 낳은 마리아는 이미 처녀가 아니다! 아기를 낳은 여성은 아기를 밴(마리아의 경우 아기를 낳은) 순간부터 '애 엄마'이지 '처녀'일 수가 없다. 성경은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신22:15). 성경을 비합리적 전설이나 신화로 몰아가지 마라!
이런 점에서도..다시 한 번, 카톨맄 지배 계급인 사제들이 마리아/요셒도 자신들과 수사/수녀들처럼 처녀/홀아비로 늙어 갔길 은근히 바라는 심정이 그들의 마리아관, 요셒관에서 드러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아기를 출산하여 처녀성을 잃은 여인을 놓고 마리아만 신격화하기 위해 "한 번 처녀는 영원한 처녀"라고 우기는 것도 우습고, 신모이려면 영원한 처녀여야 한다는 거꾸로 된 신화적 공식도 우습다. 이것은 분명히 신화의 영향이지 성경의 영향은 아니다. 성경은 그런 공식을 말하지 않는다.
좀 발칙(?)한지는 모르나 한 번 이런 상상을 해 보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낳고 나서 한참이 지난 뒤 그동안 열심히/정성껏 성욕을 꾹꾹 눌러 뒀던 요셒이 슬슬 아내에게 접근하기 시작하자 대뜸 물리치며.."아니, 요셒! 감히 무슨 생각을..? 저는 이제 거룩하고 순결한 몸이예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낳은 몸입니다. 그러니 제 몸에 손을 댈 생각일랑 아예 마시고 이제부터 우리는 '고목'이 될 때까지 그냥 남녀유별, 서로 방/방을 나눠 사는 겁니다. 저는 여성이 아니고 당신은 남성이 아니라고 생각하셔요. 참으세요! 못 참겠더라도 끝까지 죽기까지 참으셔야 해요. 나는 메시아의 모친으로서, 당신은 그 남편으로서 길이 길이 하나님 앞에 순결과 절개를 지켜야.."
이게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 하나님이 생떼 같은 젊은 부부에게 그러시리라고 생각하는가? 앞으로도 생과부/생홀아비로 살라고? 만약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요셒 부부의 정혼을 허락하셨으며..왜 미리 부부 인연을 취소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냥 마리아만 홀로 아기를 낳으면 될 것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카톨맄 사제들은 "무슨 소리? 아니 우리도 참고 우리 수사/수녀들도 다 참고 있는데..파울 사도님도 참았는데 마리아/요셒님이라고 못 참을 게 뭔가? 다 참아야지!" 할지도 모른다. 누가 그랬는가? 하나님이 누구더러 다 참으라고 하셨는가?
요셒은 카톨맄 측의 기대처럼 영원한 '혼후노총각생홀아비'로 살아가야만 할 '성소'(聖召)를 받지 않았다. 만약에 요셒/마리아가 영원한 처녀성을 지켜야 할 일이었다면 가브리엘 천사가 '수태고지'란 것을 할 때 분명히 최소한의 참고성 조언을 했었어야 했다. "두 분..앞으로 성생활은 결코 안되니 생각도 마시고, 알아서 하시와요~!"- 이런 귀띔 말이다. 그런데 그런 구절은 눈 씻고 봐야 '수태고지' 속엔 없다.
그래도 여전히 마리아/요셒의 영원한 처녀성을 믿고 싶은 독자들은 자신들이 시범적으로 그렇게 살아 보도록 하되, 애꿎은 마리아-요셒은 생과부/생홀아비로 몰아가지 말기를 바란다.
칼뱅은 또 말한다.
"하나님이 마리아를 그 분의 아들의 어머니로 택하시고 지정하심에 있어서 그녀에게 최고의 영예를 하사하셨음은 부인될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성경은 마리아보다는 사도 파울이나 아브라함 같은 사람을 더 높이고 있지 않을까..? 앞서 간 신앙위인들의 박물관 같은 히브리서 11장의 명단에서도 마리아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생략했겠지만 말이다. 왜 행전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 중 12 사도나 7집사들 외에 마리아를 여성지도자로 꼽지 않고 있는가?
울리히 츠빙을리
또 다른 개혁가인 츠빙을리는 우선 예배부터 당대의 카톨맄 미사를 그대로 본받아 '주기도문'으로부터 시작, 바로 그 다음에 아베 마리아를 낭송했다.
그의 마리아관을 소개해 보면..
"아무 피조물에게도 속하지 않은 것이 그녀에게 주어졌으니 곧 몸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된 것이다."
"나는 마리아가, 복음서 말씀에 따르면, 한 순결한 처녀로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낳아 주셨고 어릴 때나 그 이후나 영원히 순결한 때묻지 않은 처녀로 남아있었다고 굳게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어머니, 항상 순결하시고 무죄하신 동정녀 마리아를 지극히 존중하는 바입니다."
"크리스토는..가장 덜 더럽혀진 처녀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 거룩한 아드님은 거룩한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는 것이 적절합니다."
"크리스토의 영예와 사랑이 사람들 가운데 늘수록 마리아에게의 존중과 영예도 늘어야 합니다."
이같은 츠빙을리의 생각도 역시 비합리적, 신화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는 또 출 4:22을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 교리를 방어하는 데다 써 먹었는데 전혀 걸맞지 않은 풍유적 해석이다.
결국 츠빙을리는 본심인지 아닌지 모르게 마리아를 신격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데이빋 라잍 교수(에딘버러 대 뉴칼리지/교회사)는 그가 엮은 책 '하나님께 선택받아-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마리아'(런던 마셜 피커링, 1989년)에다 이렇게 썼다. "현대 신교도들에게 가장 놀라울 한가지는 마리아의 지속적인 처녀성에 관한 개혁가들의 거의 보편적인 수납, 그리고 마리아가 죄인이라는 선언에 대한 폭넓은 거부감이다."(180쪽)
라잍은 이어서 "개혁가들의 이런 마리아관 가르침이 신교 교회에 이식되지 않은 것이 은총의 섭리인지"를 묻고 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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