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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기타 서신

[히 12:2] 명사주의를 벗어납시다


 

"(우리의 눈을 돌려) 예수님-우리 믿음의 창시자와 완성자만 바라봅시다!
 그 분은 자기 앞에 놓인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고
십자가를 견디셨습니다.
그후 그 분은 하나님 보좌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2:2 사역)   
   


이 글은 비평문이 아닌 주간 메시지입니다.

지난 1990년대 후반 이래 (엄두섭 목사의) 은성수도원 및 출판사나 온누리교회/두란노서원(대표 하용조 목사), 이동원 목사..등이 해외 도서나 명사들에게서 익혀 마구 뿌려 온 '관상영성'(contemplative spirituality)이 한국교회를 뿌리 깊이 물들여 왔음은 작금의 현실입니다. 
수많은 신학생들도 관상영성 아니면 경건한 영성이 아닌 양 처신하는 게 서글픈 한국 교계의 요즘 모습입니다. 성경 예언대로, 그만큼 온 교계가 변질돼 가는 조짐이 아닐까요.  
 
최근까지도 두란노의 매거진 '빛과소금' 등을 통해 일각에 '사랑의 사도'처럼 교계에 널리 프로퍼갠다이즈 돼 온 헨리 나웬(작고. 카톨맄 '예수회' 사제. 심리학자)은 기실 자타가 공인한 (소극적/inactive) 동성애자였고, 그의 '사랑'이란, 아가페가 아닌 휴머니즘적인 '인류애'에 불과했다는 것은 이제 웹 사회에서 폭넓게 알려진 진실입니다. 죽기까지 하나님의 존재조차 의혹스러워 했던 테레사 수녀도 대동소이한 인물이고.

요즘 언론의 입김과 '신유사역', 베스트셀러 등으로 명사가 된 온누리교회 손기철 장로도 현대 주요 문제영성의 하나인 신사도운동권(NAR)의 한 명이며..그가 하 목사의 관상영성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나쁜 뿌리에서 좋은 열매를 맺기가 힘든 탓이지요.
NAR의 대부인 피터 왜그너로부터 올해 스캔들로 연속 '부흥회' 일선에서 물러선 '타투맨' - 타드 벤틀리(역시 관상영성가!)에 이르기까지 '신사도', 대언자로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적 분별 없이 비성경적인 '주권운동'(Dominionism) 같은 문제성 활동에 관여돼 있습니다. (관상기도, 신사도운동 등이 왜 나쁜지는 본 티엘티의 다양한 글들 참조 바람) 

그건 그렇고..성경을 빌려 심리적/심미(審美)적으로 독자의 정서를 좌우해 온 나웬은 근본적으로 테레사와 같은 보편구원주의자였고 따라서 참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동역자/수제자였던 전 루터교인 라벝 조너스 박사는 '빈 종'이라는 일종의 절간 겸 수도원을 운영해 왔지요. 그러나 한국의 몇몇 기독교출판사들은 나웬의 대다수 저서를 베스트셀러로서 신교계에 뿌려 왔습니다.

사람들은 나웬의 잘 다듬어진 심미적이고 심리적인 달콤하고 얄팍한 윤리적 교훈에 귀를 기울이며 나웬 같은 사목자/목회자의 이미지를 하나의 이상(理想)으로 여기게 됩니다. 실제로 설교 때마다 나웬을 인용하는 목회자들이 매우 흔하다는 사실로도 입증되지요. 설교자들은 은연 중 나웬을 기독교 최고의 윤리적 귀감으로 교인들에게 귀띔합니다. 
그러나 엄연히 마리아 흠숭자, 이콘(성화상) 숭상자, 교황 숭상자였던 나웬의 '기독교'는 신교권에까지 쉽사리 접근할 수 있도록 잘 포장된 카톨맄주의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심리학적으로 부드럽게 근접해 오는 사람의 말에 더 귀를 솔깃하게 더 기울여 줍니다. 물론 심리학이 정신치유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많겠지요. 그러나 심리학의 권능이 기독교를 고양시켜 주거나 하나님 나라를 세우진 않습니다. 참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소산물인 심리학을 통해 건설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웹 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체득한 정서적, 심리학적, 심미안적,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인 관점으로 사역자/(교계)지도층을 맹렬히 규탄하고 공격합니다. 그래서 성경 진리를 통해 목회자를 '가름'하고 바라보기 보다는 인위적, 인간적인 바탕을 일단 채택/설정한 뒤에야 성경을 이용합니다. 그러기에 평화보다는 갈등과 분열의 씨앗들이 상존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웬의 글들을 통해 나름의 이상적 사역자상, 지도자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기에 지도자들에게서 완벽을 기대하고 요구합니다. (저는 '교계 지도자' 축에도 못 낍니다만) 김삼이 성경진리를 강조한다고 해서 김삼 자신이 완벽하냐..그렇지 않죠!

우리는 가장 완벽할 만한 고대 사도들에게서도 그런 '완벽'을 찾지 못합니다.
페트로는 성령 강림 이후로도 율법주의적 위선이라는 결정적인 실수를 합니다. 사도 파울은 마르코스(한글 성경: '마가') 기용 문제로 동역자/사도 바르나바스와 격한 말다툼 끝에 서로 헤어집니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마르코스를 동역자로 삼습니다. 
 
물론 지도자들은 높은 도덕적 이상과 완벽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그 완벽이란 하나님 앞에서, 성령님과 말씀 안에서 신령하게 추구해야 할 성격입니다. 헨리 나웬처럼 심리적/심미적으로 말글만 반듯반듯하게 포장한다고 될 완벽이 아니지요.

그러나 지도자들에게서 바라는 것이 많은 만큼 지도자들을 우상화 하기 쉬운 우리는,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 예수 크리스토만 참되시다(로마서 3:4)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계처럼 완벽하고 아름답게 창조된 천사들조차 타락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지요..?

지도자들에게서 환멸을 느낀다고 해서 하나님께도, 참 교회에게서도 '환멸'인가요? 그럴 수 없지요! 옛 대천사(=천사장) 헬렐(루키페르)과 그에게 종속된 천사들이 타락했다고 해서 개인의 수호천사를 비롯한 다른 선한 천사들에게서 환멸을 느끼지 않음과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연약하고 저마다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제는 완벽시하고 완벽화 하려는 인위적 노력에 있습니다. 심리적/심미적으로 잘 포장하고 가꿔서 자신을 완벽화 하려는 리더의 노력, 그런 지도자를 "완벽한 이상"으로 추앙하려는 노력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문제를 갖고 있고 그렇기에 인간입니다. 지도자들도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도자들도 윤리적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완벽 존중/추앙 대상인 헨리 나웬은 카톨맄 예수회 사제였고..동성애 문제로 평생 고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남성인 그가 딴 남성에게 장미 다발을 선사해서 당혹시킨 인물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런 '명사'들의 영성을 추구하는 것입니까?!
왜 지도자들은 그런 명사들과 그의 비성경성과 비진리를 우상화 하고 포장하여 '기독교 책'으로 팔아 먹는 건가요!? 성경 진리가 아닌 비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을 교회가 추구해야 할 이상인 양 버젓이 내 놓고, 베스트셀러로 가꾸고 하나님의 뜰이 아닌 거짓 정원을 가꾸고 꾸미는 것인지..?
왜 성경대로의 기도가 아닌 관상기도와 관상영성을 팔아 먹는 겁니까?!

최근 제3자에 의해 긴급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지난 세월 동안 주로 관상기도 등 교계 '명사'들의 문제 영성을 한국 교계에 무차별 대량 보급하면서 돈을 벌어 들여 온 서울의 모 대형교회는, 미국의 모 문제 명사 이슈에 관한 자체 비밀회의 끝에 비록 문제가 있더라도 가장 이익이 큰, 그 문제 도서의 출판을 계속 추진하기로 했답니다.

제3자의 이 정보를 접한 제4자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들 수익만 올릴 수 있다면 양들이 독초를 먹건 말건 문제되지 않는다는 논리인데 저는 저 말을 전해 듣고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남이 마구 팔아 먹고 돈을 챙기는 책을, 번듯한 포장과 그럴싸한 내용만 갖고 무조건 다 '진리'라고 냉큼냉큼 받아 먹는 어리석은 신자여선 안됩니다. 도서를 비롯한 모든 미디어에 담긴 영성적 내용들은 낱낱이/샅샅이 성경 진리의 거울 앞에 비춰 보는 검증 작업을 각 신자가 거쳐야만 합니다. 

우리가 바라 볼 대상은 '명사'들이 아닌 주님 예수 크리스토이십니다! 우리는 '명사주의 수용 불가'의 이 진리를 이미 사도 파울의 교훈들을 통해 알고 있지만 좀체 잘 실천하질 않습니다.
명사주의는 교회가 배척해야 할 대상이지 교회 안에 자리매김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부 대형교회, 기독교 출판사들과 서점들은 한국교계의 참 유익 보다는 돈벌이를 위해 문제 명사들의 문제 영성을 마구잡이로 활용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현실입니다.

사도 파울은 이런 명사주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철저히 경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신격화하는 신사도운동권에 속한 손기철 장로를 마치 예수님인 양 완벽한 이상형으로 떠 받들고 추구하는 사람들은 사도 파울조차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떠 받들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아울러 서로가 서로를 높여주고 신격화 하면서 '교계 명사',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파울처럼 낮아지고 또 낮아지고 바닥까지 낮아져 예수 크리스토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특이한 비성경적 문제 영성을 갖고 명사의 색깔/칼러를 추구하고 성경 밖에서 인위적인 완벽주의를 추구함으로써 교인들을 속여선 안 됩니다.

참 사역자는 어디까지 '섬김이'요 도우미요 종이지 대접받고 대우 받고 명성을 떨쳐서 이익을 챙기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 크리스토님 자신이 교계 명사 아닌 섬김이/도우미로 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명인사인 저, 김삼 역시 그러길 마음 깊이 원합니다.


티엘티 독자님들은
명사주의를 지양하고
오직 예수 크리스토만 바라보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