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의 날마다 묵상하며
마태복음11장 20-30절 말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선포하고 율법을 통해 계속 외치던
메시야에 관한 말씀들이 서론과 본론을 이끌어 왔다면,
세례요한은 설교의 클라이맥스인 결론 부분을 담당한 훌륭한 설교자이다.
구약의 모든 설교의 핵심 메시지였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분명하고 선명하게 선포한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고 모든 선지자들이 선포했다면
세례요한은 [이 분이 메시야이시다!]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모든 말씀과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역사의 주인공이시며,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그리스도, 역사 가운데 최고의 설교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선포하신다.
당시의 청중들은 그분을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고 그분의 사역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앉은뱅이가 일어났고 오병이어의 역사를 체험했고
죽은 자가 살아났으며 산상수훈의 말씀을 말씀 자신이신 예수께
직접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가장 많은 기적과 권능을 베푸신 벳새다와 가버나움을
저주하다시피 꾸짖으신다.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11:21).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 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마11:23).
가장 많은 말씀을 들었고 가장 많은 권능을 보았던 마을의 회중들을 향한
주님의 책망을 남의 소리로 흘려 버릴 수가 없다.
오늘 주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기에 그렇다.
주님이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냉철하게 우리 자신의 마음과 자세를 조명해 보자.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설교를 많이 들으면 들은 사람일수록 비판자로서
말씀 앞에 서 있을 가능성이 많다.
자신의 경험, 자신의 설교에 대한 생각, 자신의 관점과 필요를
기준으로 설교를 판단하고 점수를 가하는 평가자로 변한다.
그 이상 말씀을 듣는 2인칭이 아니라 3인칭의 위치에서
비판하고 평가한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싶으면 말씀에 대하여 화를 내며
말씀을 향하던 얼굴을 돌려 버린다.
말씀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믿음을 실족시키게 된다.
그래서 주님은 세례요한에게 자신이 메시야임을 응답하신 후에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11:6)고
말씀하신 것이다.
육신적인 즐거움 육신적인 은혜를 끼칠 때
벳새다와 가버나움의 군중들은 예수께 몰려 들었었다.
치유를 받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자신들의 육신적인 필요를 채워 주실 때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뒤질 세라 앞 다투어 앞 자리를 원했다.
조금이라도 더 주님께 가까이 있기를 원했다.
그런데 영적인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들은 무반응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메시야이심을 선포할 때에
하나 둘 조용히 떨어져 나간다.
회개의 눈물이 없다.
구원의 기쁨이 없다.
그리고 뒤에서 "바알세불"이라고 욕하고,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아냥거린다.
육신적인 필요에는 관심이 있지만 영적인 진리에는 철저히 무반응이다.
주님은 성부 하나님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간구하신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5-27).
주님의 말씀 앞에 서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육신적인 필요와 육신적인 은혜만을 바라며 축복의 말씀을 들을 때는
호응하지만, 영적인 진리의 말씀들이 마음에 부닥칠 때는
얼굴을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소원한다.
광야의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해 하는 심령으로
주의 말씀을 향한 갈급함을 느끼는 은혜를 간구한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변화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무엇을 고쳐야 할지를 찾으며, 무엇을 버려야 할지,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를
발견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헌신되기를 소원한다.
말씀에 듣는 것에 실패하면 이젠 더 소망도 기대도 없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오늘도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말씀의 초장으로 초대하신다.
풍성한 말씀의 초장 가운데서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고
진리 가운데서 평강의 평강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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