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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바울서신

[엡 5:18] 성령충만이..뭐라고요?(2)


김삼


거듭 되뇌지만, 성령충만(=성령으로써 채워짐)은 신위적(神爲的)/객관적/구체적인 개념이다. 인위적/주관적/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미 확고히 설정해 놓으시고 실행해 오신 개념이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하거나 제멋대로 해석/수정할 개념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 가지 아이러닠한 물음은..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신본주의를 그렇게도 애타게 강조하는 수많은 신학자/설교가들이 왜 성령충만을 성령님 자신이 쓰신 성경대로 보지 않고, 순전히 신학적 관행과 전통대로 제멋대로 틀잡아 굳게 믿으면서 그런 믿음을 남에게도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인본적인 성령관 자체가 신본주의 및 '절대주권'과 모순되지 않는가? 그런 건 신학적/관념적인 추론이고 신념이지 순수한 믿음이 아니다. 필자의 말을 틀렸는가..?

사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대물림하여 듣고 배우면서 자란 수많은 전통적 관념을 아직도 신념으로 굳게 홀드하고(붙잡고) 있다. 그런 것을 모두 성경 진리 자체로 바꾸고 다잡는 것은 참 요원하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결단/작심하고 성경을 순수하고 올바른 눈으로 대하면, 그 요원성을 단축할 수 있다.  



전회에서도 언급했지만, 성경대로의 성령충만 그러니까 성경 저자 자신(!)이신 성령님의 패턴/방식 그대로의 성령충만은..바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인 행전 2장에서처럼 반드시 영언(방언)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바꿔 말하면, 영언 활동이 수반되지 않는 성령충만은 적어도 성경대로의 성령충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영언이 빠진, 말만의, 이름만의 성령충만은 인본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적어도 신본적 개념은 못된다. 의심되면 직접 성경상으로 확인해 보기 바란다. 



   비유컨대..수박은 겉그림만으로 알 수 없다. 수박을 손으로 직접 만져 보고 냄새를 맡는다고 해서 수박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또 성령충만이라는 수박의 딱딱한 겉만 혓바닥으로 아무리 오래 핥아보고 그 무늬를 암만 뚫어져라 오래 노려봤자, 설령 수박의 정물화를 몇 백 몇 천 번 그려보고 조각한다 한들, 정작 수박 알맹이인 선명한 빨간 속살의 모습과 그 즙의 단 맛을 보지 못한다면, 그 수박을 아노라고 결코 감히 고백할 수 없다. 그냥 말과 글로만 '시원하고 맛있는 수박'이라고 할 뿐이고, 수박의 속과 맛은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나름 설명만 해 놓고 끝날 뿐이다. 

반면 성령충만에 관하여 올바로 해석된 성경말씀은 그 수박을 쪼개고 속을 파고 들어가는 칼날과 같고, 영언은 그 수박을 씹는 이와 맛을 보는 혓바닥 같은 것이다! 



파울(바울)이 성령충만에 대하여 말한 에페소서 5'18은 이 수박 속 그림과도 같이 생생하다!


   (포도주)술에 취하지 마시오. 거기 방탕이 있으니, 오히려 성령으로 채워지시오(사역). 

 

술에 만취하면 성령충만과 비슷하고도 대조적인 모습이 연출된다. 술 만취자의 대표적인 모습은 혀가 멋대로 돌아가며 시부렁시부렁 자기도 모를 헛소리를 주절댄다는 것. 마찬가지로 아니 대조적으로, 성령충만한 사람은 영언을 말하며 "중얼"거린다. 아니나다를까 바로 그래서(!) 오순절 당일 성령 받은 첫교회 사람들의 모습을 각국에서 몰려온 유대인들이 바라보고 영락없이 아침부터 새 술에 취한 것으로 보았다(행전 2'13). 


페트로가 뭐라고 했나.. "지금이 제3시(아침 아홉 시)니까 이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 술취한 게 아닙니다."라고 하지 않았나! [ 오순절날 성령강림 사건은 한밤~새벽 또는 이른 아침에 일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


이런데도 영언을 '외국어'라고 우기며 고집하는 일부 신학자나 식자들이 도저히 논리적/상식적이라고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외국어를 정상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아침부터 술취해서 주절거린다"고 할 사람은 (자신이 술취하지 않고서야!) 지상엔 없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외국어를 말하는 사람은 정상적이고 멀쩡해 보이지, 결코 술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소위 '종식론'/'중단론' 신학자들은 비상식적/비논리적/비성경적이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영언=외국어] 이론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상황이기도 하다. (쉽게 생각해 보라..필자가 틀렸는가, 그들이 틀렸는가?). 


오순절 그날 초기교인들이 한 그 영언은..오늘날 거듭난 신자들, 우리 일부, 현재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맨날 하고 있는 이 중얼거림 식 영언과 똑같은 것이었다!!!!!!!!!!!!!!! 

왜냐고..? 성령님은 어제나 오늘, 늘 한결 같으시기 때문이다. 


아직도 외국어가 진짜 '영언'이고 오늘날 신자들의 영언은 다 가짜이고, 거짓되고, 악마의 것이다고 굳게 믿는 독자는 주위에서 한 번도 외국어를 배우지 않고 초자연적으로 유창하게 말하는 진짜(?) 영언자를 한 명이라도 확인해 보고 (현직 언론기자인) 필자와 세기의 인터뷰를 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지 않고도 진짜 성령님께서 뚝딱 혀에 올려주신 초자연적 언변(utterance)의 영언으로 유창하게 우리말을 말하는 외국인이 지구상에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꼭 데려와서 소개해 주기 바란다. 필자가 가진 것들을 몽땅 그에게 주고, 그날로 필자는 절필하고 말 테니까. 

[ 안 그래도 최근 한 선교사가 그런 '사례'를 필자에게 증언(?)해 주었건만, 필자는 전혀 확신이 가질 않는다. 대신 분명히 배워서 아는 사례로 반(反)확신이 되었다. 그는 '초자연'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 그리고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을 "술취했냐?"고 직접 조롱해 본 적이 있거나 조롱 당하는 것을 목격한 독자는 본 대로 들은 대로 댓글로 증언해 주기 바란다. 


물론, 성령 아닌 세력의 활동으로 온갖 초자연현상이 실제로 발생하는 이 뉴에이지 시대에, 향후 누군가가 전혀 배우지 않고도 초자연적으로 외국어를 말하는 경우가 설령 발생한다 할지라도 결코 그것이 성령의 영언이라고 할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참 영언은 결코 외국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벨탑에서 흩어버리신 사람들의 외국어가 어떻게 하늘에서 떨어지는가? 

[ 앞서 언급한 그 선교사는 바벨탑에서 흩어져 따로따로 하게 된 그 언어도 "성령께서 주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좀 어이가 없다. 그렇다면 이교와 우상종교를 위한 언어 등을 포함한 역사상 지상의 모든 언어가 성령으로/영적/초자연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성경 기자들을 감화하신 바로 그 성령께서 주신 그 언어들이 왜 복음으로 이교와 우상종교를 정화시키지 못하는가? 사람은 본래 태초에 창조주님으로부터 언어적 가능성과 기능을 받은 것이지, 성령께서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초자연과 자연을 뒤섞는 소치이다! 더 나아가 성령님을 모독하는 말일 수도 있다. ]

이 점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악령의 힘으로 초자연적으로 외국어를 말하는 '영언자'가 언젠가 나타날 때 그대로 믿어주고 말 것이다. 소름 끼칠 노릇이다. 

  

결국 대다수 신학자들이 말하려는 내적 소지가 뭘까? 오늘날엔 실상 참 영언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설교 한 마디가 수 만 마디 영언보다 낫다는 암시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천 년 전에 성령님은 "뭐할라꼬" 강림하셨고, 첫 교인들 그리고 수많은 초기 교인들에게 왜 영언을 하게 하셨냐고 물을 수 밖에 없다. 불과 1-2세기의 초기교인들에게만 달랑 영언을 하게 하시고 끊으셨다면, 넌센스가 아닌가? 정녕 그렇다면, 성령님은 금방 회뚝 뒤집으시고 딴 세대를 차별 대우하시는 우스운 분이 되고 만다. 더구나 어제나 오늘, 언제나 한결 같으신 크리스토님의 영이실 수가 없다. 


그리고 왜 필자 자신은 현재 영언을 하고 있는 건가? '종식론' 신학자들에 따르면, 필자는 악마의 영언을 받아 맨날 악마를 찬양하고 악마의 뜻을 주절거리는 악마의 자식이라도 된다는 말일까?..착각은 자유(?)일지 몰라도, 오판은 금물이다. 내가 악마의 영언을 하고 있다면, 양심상 티엘티 블로그 따위로 웹계에도 나서지 말아야 할 터. 그리고 그렇다면, 필자야말로(!) 성령충만해 있지 않은, 성령충만해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성경을 읽어도 아무 깨달음이 없고 맨날 악마적 사고와 부딪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분명히 성령의 영언을 하고 있고, 엉터리, 가짜, 악마의 영언을 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이 필자에게 없다면, 지금이라도 양심적으로 모든 것을 접고 말겠다! 영언이 외국어라고 굳게 믿는 그 선교사는 (비록 뛰어난 전도자이지만), 또한 30여년전부터 성령께서 시키고 계신 필자의 영언을, 신학의 전능한(?) 이름으로 내 얼굴 정면에다 대고, "그러니까 당신의 영언은 가짜이고, 따라서 악마가 카피하는 영언이오"라고 간접모독하는 셈이 된다. 이 엄청난 등식의 결국을 미처 모르고 하는 자가당착적인 주장인 셈이다. 



말이 길어졌는데, 설교가들이 매 주일 아니 거의 맨날 강조하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외친다. 물론 그렇다! 그런데..정작 그 알맹이의 일부이고 지름길인 영언을 매번 빼 놓은 나름 '성령충만'만 온갖 화려한 레토맄을 구사해가며 언급하고 해설하고 강조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교인들의 성령충만관은 더욱 모호해지고 먹먹해지고 막막해진다. 알듯 말듯, 보일 듯이 보이지 않고,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것이 설교 세계 속의 '성령충만' 개념이다. 


반면 성경이 말하는 성령충만은 너무나 간결하고, 구체적이다. 복잡하거나 추상적이지 않다. 누차 언급해왔듯, 영언은 첫 성령충만 곧 성령침례(!)의 표징이자 재충만의 지름길이다. 


여기서, 독자의 이해를 좀 더 돕기 위해 오순절 당일 일어난 모든 사건의 증인이었던 루카의 기록이자 페트로의 설교인 행전 2장의 몇 절을 살펴 본다 .


   "오히려, 이것은 바로 대언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말세에 있을 일이다. 내가 나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줄 테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 그때에 내가 나의 영을 내 남종들과 여종들에게 부어줄 테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며..'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님을 높이시니, 그분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행 2'16-18,33 사역)


여기 '부어주다'란 말이 모두 3회 사용됐다. 모두 성령 채우심 곧 성령충만을 가리킨다. 지금 페트로는 신약시대/교회시대/복음시대/은총시대/성령시대를 여는 최초의 성령충만의 개념을 (예루샬렘에 모인 유대인들이 목격한) 첫 교회 교인들의 영언과 결부시켜 말하고 있다. 어떻게 아느냐고..?


사방에서 몰려온 유대인들이 페트로 등 초기 교인들을 새 술에 취했나보다고 조롱한 직후, 페트로는 그들이 아침부터 술취한 게 아니라, 바로 요엘의 예언의 성취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곧 페트로는 [성령강림사건=영언사건=성령충만사건]이라는 등식선상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그날 현장에서 목격하고 청취한 바로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성령충만이고 영언이다!!!! 그것을 부어주셨다고 페트로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사마리아 신자들의 성령충만 사건 당시, 마술사 쉬몬이 보고 들은 그것이기도 했다(참고: 행 8'9-23). 



적어도 초기 교인들이 체험한 성령충만은 (영언을) 말하고, 보고 듣는 구체적인 체험이었다. 이 '보고 들음'의 객관적 알맹이가 없는 성령충만은 성경대로의 성령충만이 아니다. 주관적이고 추상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령충만을 영언과 따로 떼어 말하자는 사람은 대물림한 모종의 신학적 이론에 세뇌되어 미처 생각지 못해 잘 모르거나, 또는 정직하고 진솔한 양심적인 크리스천이 못된다. 정말이다. 자꾸 아니다고 부정하지 마라. 너무나 뻔한 이 진실을 부정하면, 비양심적인 소치이고 성경보다 신학을 중시하는 소위다. 자기 입맛에 맞는, 가려운 귓전을 긁어주는 소리에 더 귀기울이는 행동이다. 그런 것을 반복하다 보면, 나름대로 양심에 불도장이 찍힌다. 그리되면, 성경 자체의 진리가 진리로 들리지 않고 비진리로 들리기 일쑤인 반면, 비진리가 진리가 되기 일쑤다. 


바른 신자라면, 온갖 신학 이론보다 먼저 성경에 귀 기울여야 옳다.    

성령님의 원의에 조율되자!

성경대로의 성령충만 개념을 확인하고 다잡아두자! 

그리고 설교자와 지도자들부터 성령충만 개념을 성경 그대로 정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