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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사복음서

[마 15:1-9] 신학이 우리를 구원하진 못한다 (김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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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의 날마다 묵상하며

 
마태복음 15장 1-9절 말씀


신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교회의 전통도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될 수 없다.

신학과 교리체계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준다.
말씀을 균형 있게 보게 하고 이단의 공격을 막는 훌륭한 도구이다.
또한 성경의 기본진리들을 교육하고 교육을 받는 데 아주 유용하다.
그래서 우리는 신학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계성을 갖는다.
신학을 체계화한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요,
한계성과 연약함과 죄성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기에 그렇다.
이 한계성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해석하지 못한다.
그 신학의 범주를 벗어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들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리 유용하고 좋은 신학과 교리라 할지라도
항상 말씀으로 조명하고 비판 받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신학이란 명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고
폐할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신학과 교리 그리고 교회의 전통으로 복음을 막지 말아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생명을 걸고 싸웠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외치고 부르짖었던 것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오직 보혜사 성령만이 그 말씀에 대하여 완전한 해석자이시고
온전히 적용하시는 주체이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은 장로들의 유전을 들고 나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일종의 논쟁을 벌이신다.

사실 지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들고 나온 장로들의 유전(tradition)은
아주 좋은 동기에서 만들어졌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순종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중에
바벨론 포로이후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이 구전 율법을 집대성하여 문서화한 것이 바로 탈무드이다.

말씀을 잘 지키려는 선한 동기로 만들어진 장로들의 유전은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깨닫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된다.
장로들의 유전의 체계를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틀안에서만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말씀의 깊은 뜻과 의미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

천지를 창조하는 능력과 권능의 말씀을
죽은 자를 살리고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무한한 능력의 말씀을
인간의 사고체계의 한계성 안에 제한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결과를 낳았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건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식사를 할 때 손을 씻지 않느냐" 하는 거다.
장로들의 유전을 어겼다는 거다.

이때 주님께서 날카로운 공격을 하신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마15:3).

당시에 장로들의 유전은 자식들이 부모를 부양할 재물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의미로
"고르반"(막7:11)이라고 서약하면
부모를 보양하지 않아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정했다.

하나님은 부모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자신들의 유전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위에 올려 놓고 말았다.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신다.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15:6).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8-9)

여기서 처음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강하게 책망하신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귀를 막고
그 분의 진리 앞에서 눈을 가리는 것은 없는가?
오랫동안의 교회생활에서 익숙해진 전통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께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을 예배하며 나아가는 우리의 심령 가운데
보혜사 성령께서 감화감동하시기를 간구한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적용케 하시고
지혜와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의지하면서
입술로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묵상이
주님께 열납되기를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