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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의 지난 칼럼들/뉴하우스의 돌보며걸으며

아들의 실토 (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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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가장 깨끗하게 잘 정돈이 돼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아들아이의 방이다.
Closet(벽장) 안과 서랍 등 수납공간들이 말끔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접은 셔츠, 속옷, 양말 등이 항상 가지런하다. 커서 혼자 치울 수 있을 무렵부턴 항상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아이를 일부러 가르친 적이 없다. 그리고 당연히 나의 벽장과 기타 수납공간들은 한 번도 완벽해 본 적이 없다.

주말만 되면 자기 방과 화장실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청소하는 아이.
누가 와 봐도 항상 깨끗한 방과 화장실. 소문은 꼬리를 물고 번져 간다.
나는 이런 아이 때문에 아이 교육을 잘 하는 엄마로 많은 엄마의 부러움의 대상이 돼 버렸다.

어쩌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니러 오시면 아들아이 방을 tour 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코스다.
기가 막히게 정돈된 방을 그의 질서 있는 삶의 단편으로 보며 아이의 속도 그러려니 하던 우리 어른은 모두들, 참 특이한 아이라 생각하고 또 마음 뿌듯해 하였다.

언제부터인지 빨래도 해 준 적이 없다. 그냥 다 알아서 한다.
세상에 나 같이 편한 엄마가 또 있으랴.  이렇게 자기 일은 알아서 하는 것이 그를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아들로 만든 것임에는 분명했다.

이것이 대학 가기 전까지의 이 아이의 사는 모습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 집에 다니러 온 아이는 놀랍게 변했다. 모든 게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바닥에 흘리는 것 하나 없던 아이의 방이 토네이도가 훑고 지나간 모습이 돼 버린 것.
당연히 나는 기숙사에서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고 ‘엄마표’ 잔소리를 준비한다.

우리는 군인 가족이다. 그래서 남편은 자주 집을 비운다.
아빠의 빈 자리를 채워 주느라 나름대로 노력해도 "I miss dad." 하며 울먹이는 것을 보는 건 예사였다. 언제부턴가는 울먹이는 대신 문 단속을 한다든가 무거운 것을 나르고 청소까지 도맡아 한다. 가끔 3 피트나 쌓인 눈을 치우는 것도 그의 몫이며 차를 닦는 것도, 잔디를 깎는 것도 다 아빠의 부재 중에 그가 대신 하기 시작한 일 들이다.

나는 기특하게 커 나가는 것으로 여겼다. 이럴 때도 되었지 하며.

이렇게 단순하고 철 없는 엄마인 나는 한참 후에야 이 아이의 독특한 lifestyle 의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그때는 routine 이 주는 안정감이 내게 필요했었어요.

똑 같은 것을 반복할 때 얻는 마음의 안정감이 잦은 이사와 몇 개월씩 집에 없는 아빠로 말미암은 빈 마음을 대신 채워 주고 전쟁터에 나간 아빠에 대한 불안감, 티비 뉴스에 죽어가는 사람 중에 자기 아빠가 없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오는 미안과 죄책감...
민감한 청소년 시기를 아이는 자기만의 독특한 환경에 나름대로 적응하고자 스스로 만들어 낸 자기만의 일상이 그를 청소하고 정리 정돈 잘하고 일 할 거리를 찾아서 알아서 하는 아이로 만든 것이었다.

대부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안다. 규칙적인 생활이 아이에게는 필수적인 것을.
같은 시간에 침대에 들고 책을 읽어 주고 기도해 주는 일상이 정신적으로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것을.

내겐 물론 이미 훌쩍 커 버린 아이이기도 하지만, 그의 실토를 들은 후 그의 잘 정돈된 방이나 서랍장이 나에게 더는 영광, 자랑거리는 아니다.

아이의 편해진 모습이 그냥 좋다. 이젠 더 꼭 짜인 생활의 틀 속에서 자신과 싸우는 모습이 아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성숙과 여유가 조금씩 보이는 것이 좋다.
맘의 여유가 있을 때, 자기가 하고 싶을 때 치우고 정리 정돈하는 모습이 좋아졌다. 어지럽게 널린 그의 살림살이가 이제는 아이가 거두고 치워서 안 보이게 해야 하는 아픔이 아닌 것 같아 나도 한결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이렇게 나는 또 한 꺼풀 벗겨진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리고 감사한다. 내가 겉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동안 하나님은 그 아이의 맘을 지켜 주시고 필요한 지혜도 주신 것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마음 속 구석구석까지 닿지 않는 곳이 없어 감사하다.

Psalm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