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
'아베 마리아'라는 노래가 무척 많다. 가사는 하나이지만 중세로부터 현대 악파까지 다양한 작곡가들이 '성모'를 지극 정성으로 흠모하고 받드는 마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가락과 화음들을 갖다 붙여 놨다. 구노, 슈베르트 등의 곡이 가장 대표적이다. 구노는 맹랑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신교측 작곡가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곡을 훔쳐(?) 반주곡으로 갖다 붙였다. 슈베르트의 곡은 특히 화음 진행이 매혹적이어서 널리 불린다.
연전에 워싱턴내셔널대성당에서 거행된 레이건 전대통령 추모식전에서 한 테너의 독창으로 '아베 마리아'가 불려졌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추모식 전체순서와 담당자 플랜을 짠 사람은 고인의 부인인 낸시 레이건 여사였다고 한다. 워싱턴내셔널성당은 신교의 일파인 성공회 소속이지만 '국가정치 교회당'이랄 만한 곳이고, 고인도 형식 상의 신교도였다.
오래 전 필자가 사역하던 서울 서대문 근처 모 교회의 중고등학생 문예모임에서 시 낭송 배경 음악으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가 현악으로 연주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미처 예상 못한 일이었기에 사후에 지도목사가 나와 "이런 음악 때문에 얼마나 수많은 신교도들이 죽어야 했는지 아느냐?"고 호통치며 한동안 엄한 훈계를 했다.
'아베 마리아'가 교회에서, 또는 정규 예배 시간에 연주될 수 있느냐를 묻기보다 가사내용 자체가 타당한 지를 묻고 싶다. '아베 마리아'는 성경적, 신학적, 교리적으로 맞는 음악일까? '아베 마리아'의 라틴어 가사를 보면 이렇다.
아베 마리아
그라티아 플레나
아베 도미누스 테쿰
베네딕타 투 인 물리에리부스
에트 베네딕투스 푸룩투스 벤트리스
투애 예수스
아베 마리아
마테르 데이(신모/'하느님의 어머니')
오라 프로 노비스 페카토리부스
눙크 에트 인 오라 모르티스 노스트리
아멘
옮겨 보면..
찬미, 마리아님
은총 가득하셔라
주님이 님과 함께
여인들 중 복되신 님이여
님의 태중의 열매가 복되십니다
거룩한 마리아님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 죄인들 위해 기도해 주소서
지금 그리고 우리 죽음의 시간에
아멘
앞 부분은 루카복음서 1장에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장(대천사)의 인사말과 비슷하면서도, 그럴싸한 찬양시로 바꿔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또 엘리자벹이 마리아에게 한 말, 성전에서 시메온이 한 말 등을 적당히 짬뽕해 놓았다. 즉 카톨맄의 마리아 숭앙사상에 맞춰 그를 찬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사경문이다.
그러나 가브리엘, 엘리자벹, 시메온 등은 결코 마리아 자신을 찬미하기 위해 이런 말들을 한 것이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샬롬, 은총 입은 분. 주님이 그대와 함께 하십니다..."란 인사말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을 뿐이다. 하지만 카톨맄은 이것을 "찬미합니다. 마리아"란 뜻으로 바꿔 버렸다.
2절은 그야 말로 가당치 않다. 마리아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중보적 존재라고 누가 얘기했나? 죽는 시간에 마리아가 기도해 주면 지옥에서도 천국으로 옮겨지나?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있나? 그러니, 카톨맄은 성경을 초월한 종교이다.
과연, 마리아는 우리의 찬미 대상일 수 있는가? 카톨맄에서는 6세기 때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마리아 숭배론(Mariology)을 구체적으로 교리화했다. 비단 마리아뿐 아니라 각종 성상과 성화, 천사들과 소위 성인(saints)들로 불리는 고인들까지 존숭하며 때로는 고인과 일종의 '대화'도 나눈다.
특히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성경엔 없는 '성모'라든지 '모후'(Our Lady), '신모', '모든 이들의 여왕' 따위로 부르며 예수 크리스토에 버금가는 중재자(mediatrix), 찬미의 대상으로 떠 받든다. 심지어 마리아를 무흠무죄하고 완전 순결한, 영원한 동정녀로 여긴다.
이 모두가 성경엔 없는 컨셉트다. 마리아는 육신적으로는 성령으로 예수 크리스토를 잉태하여 낳은 복된 여인이지만, 그 자신도 크리스토의 보혈 없이는 구속 받을 수 없는 평범한 죄인이었다가 거듭나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심지어 예루살렘 초기교회 조차 마리아를 여성 지도자로 받들어 모시지 않았다. 다만 예수님의 가정에서는 주님의 동생 야코보가 교회 주요 지도자였고 동생 유다는 짧은 서신서를 기록했을 뿐.
요셉, 마리아는 부부 간 대화에 탐닉한 나머지 12살인 예수님을 잃어 사흘동안 찾아 헤매어야 했다. 마리아는 한때 예수님을 정신병자로 오인하기조차 했다. 더욱이 예수 크리스토 외에 최소한 6남매를 낳은 평범한 어머니였지 '영원한 동정녀'가 아니었다.
더 나아가,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 크리스토 외에는 어떤 대상도 경배찬양의 대상일 수 없음을 밝혀준다. "찬양은 내 것이라"고 하나님 당신께서 못 박아 놓으셨다.
'아베 마리아'의 가사 내용처럼 마리아가 중재자/중보일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의 중보는 오직 예수 크리스토와 그분의 영이신 성령님 뿐이심을 명명백백히 증언한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의 대상도 아버지 하나님과 유일한 하늘 대사제이신 예수 크리스토이실 뿐이다.
카톨맄에서는 교황이 '성인'으로 지정한 고인들은 물론 천사들까지도 중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 '사제'(priest)로 서품한 신부들까지도 고해성사를 받는 등 중재자 노릇을 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예수 크리스토의 유일한 중보 역할을 가로채는 행위다.
사제의 중보 역할은 구약시대로 이미 끝났다. 그러므로 카톨맄과 성공회, 정교회 등 일부 교파에서 쓰이는 '사제'란 용어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사실 상의 사제는 모든 거듭난 성도들이다. 우리 자신들이 왕 같은 사제들로, 예수 크리스토의 이름으로 직접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 간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마르틴 루터의 정신을 따라 '만성도사제(제사장)'설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 같은 또 다른 '중재자'가 따로 필요 없다.
셋째로, 마리아가 우리의 대화의 대상일 수 있는가? 성경은 죽은 자들과의 교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마리아의 영은 분명히 하늘에 가 있지만 그 몸은 아직 부활하지 못해 땅에 속해 있다. 휴거(들려올려짐) 때 그 몸이 영혼과 합해진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아직 죽은 자들 그룹에 속해 있다. 마리아가 승천했다는 기록도 성경에 전혀 없다.
고인과의 교제와 대화는 비성경적이다. 그러므로 고인이 된 조상에게 절을 하거나 예를 올리는 것도 잘못이다. 어떤 죽은 성인들도, 심지어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의 대화의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성인은 특별한 고인이 아니라 거듭난 우리 자신들이 성인들이다.
단, 천사들은 우리의 수발을 드는 존재이므로 꼭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는 있다고 성경은 명시했다(히1:14).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아베 마리아'는 가사부터가 타당하지 못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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