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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안수, 어떻게 생각하세요?


   "목사님은 여성 안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 동료 목회자가 내게 불쑥 물어 온 말이다.
웃으며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글쎄요..쉽게 잘라 말하기 어려운 이슈이죠."

사실이다. 쉽지가 않다. 그래서 늘 어정쩡한 대답이 나오곤 한다. 여성안수 -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도 그렇고, 전혀 허용 불가라고 하기도 좀 그런..문제다. "뭐 그런 대답이 있나?"고 필자한데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그렇게, 칼로 무 토막 내기처럼 한 마디로 단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듣자니, 최근 세상을 뜬 옥한흠 목사는 수 년 전, 몰상식하고 야만적인 강단 위 '기저귀' 절대 불허 발언으로 말썽이 됐던 장로교 합동측 모 총회장의 황당 사건 이후, 여성안수 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제언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정작 '합동' 측 교단은 아직 이에 관해 어떤 구체적인 진전이나 가결도 안 된 것으로 안다.

미국의 기독개혁회(CRC) 교단은 본디 '네이파크'로 불리는 보수단체인 북미주장로교개혁교단협의회(NAPARC) 소속이었다가 여성안수를 허용한 뒤 제명된 바 있다. 

아마도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결정적인 빙거로 드는 것이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했던 파울의 교훈일 것이리라(코린토A서=고전 14:34,35; 티모테A서=딤전 2'11-15).

그런데 이 구절들은 정말 잘 해석돼야 한다. 여성이 어떻게 '잠잠하라'는 것인지, 정말 문자대로 지켜지는지 여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 주일학교엔 여성교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므로 결코 교회에서 "잠잠"할 수가 없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훌륭한 주일학교 여교사들에게서 배웠다. 

여선교회 회장들도 유난히 목청이 높다. 더 나아가 여전도사들, 여선교사들, (성경대학/신학교 등의) 여교수들도 "잠잠"하려면, 가르칠 수도, 복음을 전할 수도 없다!

영언(방언)자들도 여성들이 많고, 영언은사자들도 그러하며, 영언통역자들도 그렇다. 많은 여성들이 목청을 높여야 하고 말로 많이 "떠들어야" 하는 은사자들이다.

다른 건 제쳐놓고라도 교회 새벽기도회 때 여성도들의 기도 소리가 남성들보다는 늘 드높고 힘차다. 그들은 '잠잠'하긴커녕 시끄러움에 더 가깝다. 


이런데, 어떻게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것인가? 오히려 여성도에 비해 남성 교우들이 필요 이상으로 잠잠한 건 아닌지?
아마도 여성도들 전원에게 교회에서 아예/아주 "잠잠"하라면, 머지 않아 교회는 텅텅 비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각오와 용기가 있으면 한 번 시험해 보기 바란다.


여성도들이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뜻이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한다면,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잠잠하라"는 말이 일방적으로 쉽게 해석될 수 없다는 데 먼저 동의해야 할 것이다.

파울은 교회에서 여성들에게 잠잠하라고 했지만, 프리스킬라(프리스카/브리스가)는 남편 아퀼라보다도 더 열심히 목청을 높여 성도들을 신앙으로 독려하고, 특히 예수님과 성령님에 관해 아폴로 목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파울은 그런 프리스킬라를 그 누구보다 중요한 동역자의 한 사람으로 여겼다. 바꿔 말하면, 파울의 동역자들 가운데조차 여성이 잠잠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파울은 자신의 교훈에 스스로 어긋나 보이기까지 한다(팀A 2'12)! 그러므로 파울의 경우로만 봐도, 예외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으레, "프리스킬라가 교회 모임에서는 잠잠했을 것"이라고들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과연 무엇이냐는 물음도 함께 제기된다. 교회는 교회 건물인가, 교회 모임인가, '갖출 것'을 제대로 갖춘 제도인가, 아니면 두 세 사람 이상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인가?

이래서 쉽지 않은 문제이다.


희한하게도 그리고 놀랍게도 하나님은 신약시대 전통보다 '한참' 고대에 더 자유롭게 여성들을 쓰셨다!
나는 나의 글-'하나님이 안수하신 여성들'에서 이에 관해 설파한 바 있다. 거의 절대 남성 일변도처럼 보이는 구약시대에 여성들이 꽤 '활개'를 쳤다.

구약 성경엔 에스테르(에스더)서, 뤁서(룻기) 등 여성들에 관한 책들도 심심찮게 있고, 남성의 명단이 절대 다수인 메시아 족보에도 여러 여성들이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가르를 첩으로 들였다가,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가르 모자를 내쫓았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라 편을 드셨다. 이런 경우 누가 진짜 가장인지 얼핏 모호해진다. 

모쉐의 누나 미리암은 고대 이스라엘 초기의 드문 여대언가였다. 소고를 들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했다. 쿠쉬 여인을 둘째 아내로 삼은 모쉐의 행동을 비판했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일시 나환자가 되기도 했지만.

데보라는 이스라엘 역사상 유일한 여판관(사사)이었고, 훌다는 왕국 시대의 주요 여대언자였다.

성전시대에 성전음악인들은 절대다수가 남성들이었지만, 여성들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더욱이 교회시대에도 여대언자들은 여전히 잔존했고 여전히 대언을 했다. 교회 안에도 여성 영언자들/영언은사자들/영언통역자들/대언은사자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적 기름부음이 없었을까? 있었다!
그렇다면 고대에 하나님은 직접/몸소/손수 여성 안수를 하셨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왜 신약시대나 현대에 와서 오히려 후퇴한 기분이 드는 걸까?
마치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오랜 속담이 있는 나라에서, 오래 전 이미 여왕들이 다스렸듯 말이다.

파울의 교훈을 "지킨다"고 주장하는 여러 서구 기독교 국가에 왜 여성 목회자들이 있는 걸까?
여성사제를 절대 허용하지 않은 천주교는 진리의 종교이고, 여성 목회자들을 허용하는 신교 교파들은 거짓 교회인가?


이거,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교단 차원의 획일적인 여성안수에 대해 좀 유보적인 입장이다. 무엇보다 본인에게 그런 획기적인 -여성으로서 감히 목회자가 되야 하는 천부적인- 소명과 사명이 있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성 목회자들 가운데도 소명과 사명이 없는 엉터리 사역자들이 흔해 빠졌으니, 개인의 소명 여부를 일일이 심도 있게 분석/판단하지 못하는 제도중심적이고 영적으로 거의 무분별한 교파/교단들의 획일적인 안수가 분명 문제가 있을 터인데, 하물며 여성들이랴!


여성안수 가(可) 또는 불가를 드높이 외치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심도 있게 점검해 봐야 한다.


첫째로, 오늘날의 안수라는 것은 영적이기보다 자못 제도적이다. 초기교회의 안수는 근본적으로 영적이고 초자연적이었으나 오늘날은 카톨맄교에서 유래된 '성직'제에 주로 근거하고 있다. 초기교회 집사 안수 때는 제비뽑기 또는 소명에 따라 성령님의 기름부음(!)도 동시에 부여됐고, 후보자들은 성령충만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시행되는 오늘날의 안수엔 대부분 그런 것들이 결여돼 있기가 쉽다. 안수하는 사역자/지도자들 자신이 성령충만하지 않고 문제투성이여서 솔직히 안수 받기가 겁이 나고 꺼려지는 상황이 다반사가 아니던가.


둘째로, 일부 교파/교단에서 양산되는 여사역자들 가운데 똑같은 여성사역자인데도 신학교 졸업했거나 덜 마친 (한국식으로 말하면) 여자전도사가 형편상 제도적인 안수는 설령 못 받았어도 실은 성령님께 직접 기름부음 받고 안수 받은 사역자들도 많이 발견된다.
미국 목회자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현재 국제 교계에서 활동하거나 활개치는 많은 사역자들은 정식 신학공부나 제도적인 임직 안수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디서 어디까지가 여성안수라는 말인가?


셋째로, 필자의 딴 글에서도 비쳤지만, 원칙적으로 여성 안수 대상자들은 집사들도 있다. 예루샬렘 교회엔 표면상 7집사들 중 여성이 안 보이지만, 성경은 분명히 초기 교계에서 여성 안수집사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팀A 3'8-11).  
그러므로 위 성구에 규정된 남자자격와 대등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여집사들을 안수하는 것도 성경적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 되뇌지만,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여성안수라는 말인가?

성경에 여성 사제-신약시대엔 제도적인 '사제' 용어 자체가 비성경적인 말이지만-나 목회자들만 안수하라는 말은 없다. 현대의 안수제도는 주로 카톨맄교 '성직'제도에서 유래된 것이다.

어느 훌륭한 여전도사가 설령 교파/교단/교회에서 제도적 안수를 받지 않았을지언정 하나님이 직접 안수하셨다면 어쩔 텐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만났거나 들은 케이스들 중 하나님께 생생하게 쓰임 받는 훌륭한 여성 사역자/목회자들이 흔하진 않지만, 실제로 있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수파 사람들이 파울의 교훈을 들어 "결코 그럴 수 없다"라고 절대불가론을 편다면, 아주 아주 고대에 하나님이 쓰신 여성 사역자들은 뭔가?
미리암은?
데보라는?
훌다는?
그리고 안나/엘리자벹/마리아의 예언은?
신약교회에서 필맆의 네 딸인 여성 대언자들은?
아폴로 목사를 가르친 프리스킬라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건 예외"라고 할 것인가?

바로 그렇다. 예외가 있다!

그래서 획일적인 제도적 안수나 안수불가가 위험하다는 말이다.
그보다는 성경대로의 소명과 영감, 기름부음과 권능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예외'다.

필자는 제도적이고 획일적인 여성안수는 위험하다고 본다.
동시에, 제도적이고 획일적인 '여성안수불가' 정책도 못지 않게 문제시 된다.

[참고로..신사도운동권에서 기름부음을 남용한다고 해서 성령님의 기름부음 자체를 부정하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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