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
예배 때 사람에게, 또는 하나님께 박수갈채를 하는 교회가 매우 흔하다.박수엔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경우에 따라 손뼉치기를 금하거나 허용돼야 한다고 필자는 본다. 그 조절은 목회자 또는 리더에게 달렸다.
예배 중 손뼉을 쳐도 좋은 경우는 음악적인 박수다. 리드미컬한 찬송가를 부를 때이다. 2, 4 박자와 빠른 6박자 등 비교적 활발한 곡으로서 짝수 계열인 것은 박수가 무난하다. 그러나 속도도 빠르지 않은 3박자 곡을 갖고 박수를 친다는 건 넌센스다.
더욱이 예배중 성령님이 민감하게 역사하시는 경우는, 박수를 즉시 관둬야 한다. 성령님의 기름부음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깨 위의 비둘기가 훌쩍 날아가듯. 그러므로 교회음악 사역자는 기도로 준비하여 예배 중 성령의 흐름에 극히 민감해야 한다.
예배 중 그 외의 박수는 당연히 삼가야 한다.
가장 잘못된 박수는 예배 도중 인간을 향해 갈채하는 경우다. 성가대가 찬양을 잘 했다고, 독창자가 특송을 잘 했다고, 설교자가 설교를 은혜롭게 한다고, 특정 인사가 방문했다 해서 박수를 치는 것은 잘못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므로 전적으로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독창자가 찬양을 하고 나서 청중에게 절을 하고 청중이 박수갈채를 하는 것은 세상과 다름없는, 인간과 인간끼리의 '영광 교환' 행위다. 교회의 박수라고 해서 뭐가 다르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우리 교회를 방문했다고 그에게 기립박수를 하는 것은 하나님 보다 그를 높이는 격이 되고 만다. 그렇다 해서 "우리 하나님께도 또 박수를 보내죠!"하면서 손뼉을 올려치는 건 더 우습다. 부시와 하나님을 경쟁시키는 것도 아니고, 마치 아이들을 격려하고 칭찬하기 위해 손뼉을 치는 것과 다름 아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예배 드림이 확실하다면, 그렇게 대상이 고정됐다면, 모든 영광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옳다. 그러므로 예배시간에 어느 누구 인간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이 가로채는 행위임이 틀림없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위다.
"하나님께 박수를 쳐 드립시다" 란 말도 알고 보면 우스운 얘기다. 인간을 추켜 주고 인간을 상찬하는 행위를 하나님께도 쓴단 말인가! 박수는 남을 격려해주는 외에 공적인 분위기 조성에도 쓰인다. 공산당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 박수를 하나님께 쓴단 말인가.
하나님께 올바른 영광을 돌리는 법은 손뼉을 치는 것이 아니라 손이나 팔을 들거나 치켜 올리는 것이다. 두 팔을 치켜 듦은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맡기고 또 모든 영광을 돌림을 상징한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안길 때도 이 자세를 쓴다. 어린이가 가장 일찍 배우는 자세의 하나가 부모를 향해 팔을 드는 자세다. 그렇지 않으면 안기지 못할 줄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께 안기기 위해 팔을 펼쳐 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성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한 가지가 몸의 자세다. 호흡하기 가장 적절한 자세는 바로 서서 팔을 쳐 들었다가 흐트리지 않은 상태로 팔을 내린 상태. 긴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노래를 하는 것은 호흡기관과 몸에 부담을 안겨주며 공명이 되지도 않는다.
엎라잍, 스피넷 등의 소형 피아노를 설치할 때 벽에 붙여 두지 않고 뒤에 공간을 두고 설치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몸도 의자에서 등을 떼어 곧추 앉아야 목소리가 공명된다.
역으로 말하면, 팔을 쳐 든 자세가 인간에게 가장 좋은 자세요, 하나님께 승복하는 자세요, 그 분을 기리고 송축하는 자세다. 그러나 많은 교회가 팔 들기를 싫어하고 거부한다. 하나님께 안기기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시편에서도 손뼉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용어가 나오는데 무슨 소리냐" 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편에서 쓴 박수는 당시의 음악 미디엄으로서 숨쉬는 곳 등을 표시할 때 가끔 사용됐다. '제금'이란 타악기도 그런 곳에 사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의 박수는 음악적인 박수였지, 오늘날처럼 하나님을 추켜 드리기 위해 한 박수갈채가 아니다. 또 다른 박수 언급은 사뭇 상징적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실제적으로 하나님께 박수를 올렸다는 기록이 없다.
박수는 율법적으로 금할 성격도 아니지만 함부로 예배에서 자유자재로 할 성격의 것도 아니다. 경우에 맞게 쳐야 한다.
예배 때 사람에게, 또는 하나님께 박수갈채를 하는 교회가 매우 흔하다.박수엔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경우에 따라 손뼉치기를 금하거나 허용돼야 한다고 필자는 본다. 그 조절은 목회자 또는 리더에게 달렸다.
예배 중 손뼉을 쳐도 좋은 경우는 음악적인 박수다. 리드미컬한 찬송가를 부를 때이다. 2, 4 박자와 빠른 6박자 등 비교적 활발한 곡으로서 짝수 계열인 것은 박수가 무난하다. 그러나 속도도 빠르지 않은 3박자 곡을 갖고 박수를 친다는 건 넌센스다.
더욱이 예배중 성령님이 민감하게 역사하시는 경우는, 박수를 즉시 관둬야 한다. 성령님의 기름부음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깨 위의 비둘기가 훌쩍 날아가듯. 그러므로 교회음악 사역자는 기도로 준비하여 예배 중 성령의 흐름에 극히 민감해야 한다.
예배 중 그 외의 박수는 당연히 삼가야 한다.
가장 잘못된 박수는 예배 도중 인간을 향해 갈채하는 경우다. 성가대가 찬양을 잘 했다고, 독창자가 특송을 잘 했다고, 설교자가 설교를 은혜롭게 한다고, 특정 인사가 방문했다 해서 박수를 치는 것은 잘못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므로 전적으로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독창자가 찬양을 하고 나서 청중에게 절을 하고 청중이 박수갈채를 하는 것은 세상과 다름없는, 인간과 인간끼리의 '영광 교환' 행위다. 교회의 박수라고 해서 뭐가 다르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우리 교회를 방문했다고 그에게 기립박수를 하는 것은 하나님 보다 그를 높이는 격이 되고 만다. 그렇다 해서 "우리 하나님께도 또 박수를 보내죠!"하면서 손뼉을 올려치는 건 더 우습다. 부시와 하나님을 경쟁시키는 것도 아니고, 마치 아이들을 격려하고 칭찬하기 위해 손뼉을 치는 것과 다름 아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예배 드림이 확실하다면, 그렇게 대상이 고정됐다면, 모든 영광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옳다. 그러므로 예배시간에 어느 누구 인간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이 가로채는 행위임이 틀림없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위다.
"하나님께 박수를 쳐 드립시다" 란 말도 알고 보면 우스운 얘기다. 인간을 추켜 주고 인간을 상찬하는 행위를 하나님께도 쓴단 말인가! 박수는 남을 격려해주는 외에 공적인 분위기 조성에도 쓰인다. 공산당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 박수를 하나님께 쓴단 말인가.
하나님께 올바른 영광을 돌리는 법은 손뼉을 치는 것이 아니라 손이나 팔을 들거나 치켜 올리는 것이다. 두 팔을 치켜 듦은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맡기고 또 모든 영광을 돌림을 상징한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안길 때도 이 자세를 쓴다. 어린이가 가장 일찍 배우는 자세의 하나가 부모를 향해 팔을 드는 자세다. 그렇지 않으면 안기지 못할 줄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께 안기기 위해 팔을 펼쳐 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성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한 가지가 몸의 자세다. 호흡하기 가장 적절한 자세는 바로 서서 팔을 쳐 들었다가 흐트리지 않은 상태로 팔을 내린 상태. 긴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노래를 하는 것은 호흡기관과 몸에 부담을 안겨주며 공명이 되지도 않는다.
엎라잍, 스피넷 등의 소형 피아노를 설치할 때 벽에 붙여 두지 않고 뒤에 공간을 두고 설치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몸도 의자에서 등을 떼어 곧추 앉아야 목소리가 공명된다.
역으로 말하면, 팔을 쳐 든 자세가 인간에게 가장 좋은 자세요, 하나님께 승복하는 자세요, 그 분을 기리고 송축하는 자세다. 그러나 많은 교회가 팔 들기를 싫어하고 거부한다. 하나님께 안기기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시편에서도 손뼉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용어가 나오는데 무슨 소리냐" 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편에서 쓴 박수는 당시의 음악 미디엄으로서 숨쉬는 곳 등을 표시할 때 가끔 사용됐다. '제금'이란 타악기도 그런 곳에 사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의 박수는 음악적인 박수였지, 오늘날처럼 하나님을 추켜 드리기 위해 한 박수갈채가 아니다. 또 다른 박수 언급은 사뭇 상징적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실제적으로 하나님께 박수를 올렸다는 기록이 없다.
박수는 율법적으로 금할 성격도 아니지만 함부로 예배에서 자유자재로 할 성격의 것도 아니다. 경우에 맞게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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