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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컬트&오컬트

이단 대처를 위한 7가지 제언


이단 대처를 위한 7가지 제언

김삼


한국 교회의 이단/사이비 피해가 심화돼 간다는 공통된 분석 평가이다.

이단비평가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평소 "이단은 우리와는 별로 무관하다"는 식으로 딴 세계 일처럼 수수방관하면서 번거롭고 귀찮게 여기거나, 이단이라면 단지 오물/혐오물처럼만 대하고 회피하는 대다수 교회들의 무심과, 이단비평가들의 일로만 맡겨 두다가 뒤늦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 '뒷북' 처리 등이, 우선 파악되는 이단/사이비의 범람과 확산 문제의 주된 요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요인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도대체 이단/사이비 컬트, 문제종교 집단들은 왜 교회 안팎에서 자생하고 서식하는 걸까..라는 원인 소급 및 추적을 해 볼 때 나오는 답들이 있다. 대체로 이단비평가들이 별로 중시하지 않는 몇 가지 요소들인데, 글 본론을 읽다 보면 간파될 것이다.

이단들은 교회 초기 전후부터 현재까지 2000년 이상 존속해 왔으므로 뿌리 뽑힐 리는 만무하다. 그들은 공존하고 병존한다. 교회가 있는 이상, 그들도 있다. 진짜가 존재하고 있는 한, 가짜가 존립한다.
어떤 역설적 의미에서 그들은, 교회가 안일하고 나태하게 머물러 있지 않고 고심하고 대처하게 만드는 '필요악' 같은 존재다. 따라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더럽히기 위한 싸탄 마귀의 효율적인 도구이면서 그들 자신, 마귀의 희생물이다. 지금은 흥왕하는 듯 보여도, 배도(背道)하는 교회들처럼 그들은 궁극적인 심판과 저주의 대상이다.

우리는, 맨날 이단의 끊임 없는 발생과 끝없는 도전 앞에 전전긍긍만 할 게 아니라, 교회의 순수성과 처녀성을 흠과 티, 주름이 없이 지켜 나갈, 좀 더 드높고 성숙한 차원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단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본질적이고 구체적인 전략을 강구해 보자는 것이다.


    첫째로, 이단들이 노리는 것이 기성 교회의 약점들. 비성경적인 약점들이 있다.

이것들을 서서히 고쳐 나가야 한다. 그러나 율법적인 태도로 처리를 해선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디까지나 분별과 사랑으로써 고쳐 나갈 일이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라면, 신교권 거개가 여전히 카톨맄교를 기독교의 뿌리 쯤으로 생각하는 점이다. (그러나 교회의 참된 뿌리는 어디까지나 성령님이시고 하늘 예루살렘이다.) 
기독 교회사는 카톨맄 교회사가 아니면 절대 성립이 안 되는 줄로만 알며, 그러다 보니 우상들로 충만한 화려한 카톨맄 문화예술도 기독교 문화예술의 본산인 양, 뿌리와 파워인 양 대개 생각들을 한다. 카톨맄 전통/문화의 다량을 신교도 그대로 채택하고 있다. 마치 노예들이 자유로운 삶 속에서도 여전히 노예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듯.

좀 더 구체적으로..엄연히 카톨맄교에서 입수된 부활절/성탄절 따위의 비성경적 교회 전통을 거의 성경과 동일시하여, 흡사 절대 진리인 양 고수해 왔다. 유대교는 유대력이 있고, 동방정교회는 그들 나름의 달력이 있는데, 신교는 예나 지금이나 해마다 말 없이 카톨맄 교회력의 성탄절/사순절/부활절 등의 날짜를 대부분 고분고분히 따라 준다. 카톨맄 교회력을 신교 교회 교회력으로 따라 주니, 결국은 카톨맄 교회를 모 교회, 뿌리 교회, 모범교회 내지 참 교회로 모셔 인정하고 따른다는 암시적 논리가 된다.

아직도 부활절 새벽 동향(東向) 기도회, '부활 토끼', '부활 계란'이나 '싼타 할아버지', '크리스마스 추리'에 대한 아무 분별 의식이나 거부 의식조차 없는 교회가 훨씬 많다. 좋으니 좋다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것인 양, 성경 진리와 방불하게 고수해 왔다.
부활절/성탄절 전통이 빠지고 사라지면 교회가 망하고 쓰러지는 줄 알 정도로 구교 전통은 신교 안에서 거의 전능한(?) 힘을 발휘해 왔다.

과연 성탄/부활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자신과 성경의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해 주실까?

다른 일례로, 일부 신교 교파들은 목회자들의 옷차림도 '로만 칼러'를 그대로 따라 쓰는 예가 있는데, 웃지 못할 노릇은 로만 칼러가 본래 독신 사제라는 뜻이라는 점이다.


일부 학자들과 이단비평가들도 기존 신학에 충실한 나머지, 거의 이런 '구교 뿌리'적 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딴 이단/사이비들을 열 나게 비평하면서도 정작 카톨맄교에 대해선 입을 다물거나 일선 뉴스 상에 구교의 비성경적 약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조용조용히들 지낸다. "뿌리를 짓찧어선 안 된다"는 식의 발상이다.
이것은 일례일 뿐이다.

이단들은 그런 약점을 노리고 빌미 삼아 자기네 입장과 비교해 가며, 자기네의 '우위성', '탁월성', 심지어 '유일성'을 내세운다. 그리고 믿음이 어린 신자들은 "응..그럴 듯 하네, 뭔가가 있어~" 하면서 자연스럽게 혹해, 코뚜레로 꿰인 소처럼 끌려 간다.


우린, 이단 방지를 위해서라도 성경만을 본질적인, 참 진리로 삼아야 한다! 진리성에 있어 이단이 내세우는 것들보다 훨씬 더 두드러지고 탁월해야 한다. 그러려면 성경 진리 이외의 것은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 이단에게 흠 잡히고 책 잡힐 만한 비성경적 전통 요소들은 감싸 안고 옹호할 게 아니라, "이봐, 우린 너희보다 성경에 충실해!"라고 모름지기/명실공히 공언할 수 있도록 진리만을 붙들어야 한다.

성경 말씀이 중요한지 전통이 더 중요한지 좌/우 가름을 제대로 하자. 둘 중에 취사선택을 해야 한다면, 더 중요한 성경을 택하고 덜 중요한 전통은 과감히 내 버리자.
둘 다 끼고 있다가 계속 이단들에게 당하기만 할 것인가?


    둘째로, 한국 교회는 위선을 줄이고 회개를 늘려야 한다.

비단 K모 칼럼니스트의 '왜 x판 치는 ..들이 많은가?' 따위의 센세이셔널한 공격에 굳이 신경을 안 쓰더라도, 아무개 아무개.. 등 알 만한 교계 지도자들의, 심증은 가도 물증은 안 따라 주는 알쏭달쏭 내지 알 동 말 동한 대형 범죄 건수들을, 구태여 카톨맄식 고해성사나 이유빈 식 '공개자백'은 아니더라도 진정 회개하고 뉘우쳐야 옳다.
이젠 교계 앞에 '지도자'로 더 나서지들 말고 측근의 주문에 응하는 따위의 자기망각성 '폭탄 발언'도 줄이고 조용히 근신해야 마땅하다.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공히 자신을 낮춘 표시가 나야 한다. 정녕 잘못된 기존 입장을 바꿀 것이 아니라면 '회개'라는 말도 입 밖에 내지 말아야 좋다.

그래야 이단/사이비들의 적반하장 격 공격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
 
상투적으로 '거국적', '범교계적', '범교단적'인, 스케일을 의식한(?) 거창한 규모의 대중 공동/합심 회개를 찾고 부르짖으며 명목과 이름만으로 생색을 내고, 미디어와 조명발 앞에서 대중의 여론점수나 노리는 연막탄성 회개 '생쇼'가 아니라, 개인적이고도 개체교회 지도자/목회자 차원인 진심 어린 회개 말이다.

특히 외래 영성에 부대끼며 신자들을 호도해 온 교계 명사인 목회자/지도자들은 정말로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뉘우침+고침이다. 기존 노선에서 180도 돌아서는 것이지, 어정쩡한 각도가 아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필자에게도 늘 회개는 필요하다.


    셋째로, 교회엔 마땅히 진리와 사랑이 늘 병행돼야 한다.

한국 교계는 늘지 않고 제자리를 맴돈다는 교인수 '1천만'을 의식해선지 근래 걸핏하면 사랑만 강조하는 성향이 농후하다. 교계 명사들의 잘못과 오류는 무조건 '쉬쉬~' 하며 사랑으로 죄다 덮어 주자는 식의 풍조다. 그게 과연 옳은 사랑인가? 뭐가 참 사랑인가? 진리 빼고 사랑만 설 수 있는가? 사랑은 진리와 함께, 진리 안에서만 기뻐한다. 지적할 것은 바로 지적해 주는 것이 참 사랑이다. 물론 상대방의 티를 빼 주기 전 자신의 들보부터 빼 가며.

또 사랑을 하려면, 궁극적으로 교주의 사욕이나 채워 줄 들러리로 삼는 숨은 타깉을 가진 이단들의, 목적에 내 몰린 이른 바 '러브밤'(=사랑폭탄)보다 더 강하고 뜨겁게, 이웃과 신자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사람들이 교회에서 발견할 때 쉽사리 이단에 매혹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려면 교회는 빈민/고아/과부들을 순수하게 돕는 원시적, 원초적인 온정 사역 등을 회복, 재개하고 지속해야 교회다운 사랑 무드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다.
단, 그런 사역에 불교적/수도원적인 소위 '마음 비우기', '청빈 사상' 따위의 이상 영성이 개재돼선 안 된다. 그런 게 개입되다 보면, 영적으로 효과가 현저히 줄어 들다 못해 마침내는 사라져 버린다. 이질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시지 않은 '딴 향불'과 같다.  


    넷째로, 신자들을 성경 중심으로 제대로 가르치고 무장시켜야 한다.

예컨대, 오직 성경엔 '인사이더'로, 여타 대상과 자의적 성경 해석엔 무조건 '아웉사이더'로 대하도록 본질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 식 '땜빵 교육'이 아닌, 진지하고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진리 인식 훈련을 해야 한다. 바른 성경 해석도 중요하지만, 성경 본문을 친근히 쉽게 익히고 쉽게 적용할 수 있어야 좋다. 

주님 말씀대로 각 신자 속에 말씀이 항시 머물게 해야 한다. 이단에게 반발해 '반짝' 대처를 하는 '애오라지' 수준으로는 객관적으로 제대로 된 신자라고 하기 어렵다. 어느 때, 어디를 들쑤시고 들어 와도, 설령 부지 중 이단의 '이단 옆차기'를 당하더라도 끄떡 없이 견뎌 낼 수 있게 방비를 해야 한다.
의의 가슴막이판(호심경), 믿음 방패와 구원 투구, 말씀의 검은 왜 있는 것인가? 그런 무기들을 교회가 활용하는가, 그냥 수식어일 뿐인가?
그러려면 온 교우들, 신자마다 말씀의 바위 위에 탄탄히 서 있어야 한다! 교우들의 모임 때마다 성경 말씀 진리로 포만할 정도여야 한다.


지나친 이상론으로 들릴지 몰라도, 지도자에게 성경 진리를 전적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성도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가능한 얘기다. 문제는 주로, 신학이나 철학, 성경적 경건이 아닌 외래 영성, 전통과 제도 등 비본질적인 변두리/언저리 요소들을 본질적인 성경 말씀보다 더 의존할 때 발생한다.  

 

  상식과 간단논리 차원의 분별도 중요

대개의 경우, 다수의 이단들은 상식적/논리적으로만 곰곰히 생각해도 금방 식별이 가능하다. 성도들의 상식과 건전한 논리의식만 자극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단/사이비교 추종자가 끊이지 않고 우굴대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다 늙은 문선명과 한학자가 부활/승천의 '재림주'/메시아 부부로서 감히 대관식을 거행할 수 있는가? 그들은 늙어 죽으면 그만이다. 무덤 속에만 들어가면, 이스카리옽 유다처럼 제 갈 곳으로 갈 뿐이다.
지구 역사상을 오간 수백 억 명들 중 예수 크리스토 외에 '부활'을 장담한 사람들치고 단 한 명도 되살아 현존하는 사례가 0.00000000...1%도 없다! 무함마드도 갔고, 허버트 암스트롱(세계하나님의교회 교주)도 영 가 버렸다.
오직 부활의 처음 익은 열매-예수 크리스토, 그 분뿐!

'부활'을 장담하던 모든 교주들이 한결같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죽은 거짓말쟁이들이었다. 그런데도 죽어 버린 교주의 혼백(?)이라도 "모시고" 잘 유지/운영되는 이단 단체들에 대해선 그저 할 말이 없다. 그 추종자들은 기본 상식을 훨~ 초월한 사람들이다.


김백문의 교리를 도용해다 통일교 원리를 만들어 과거에 '피가름'이라고 여성들을 유린하고, 곳곳의 길목에서 꽃팔이를 시켜 돈을 울궈내고 미국에선 대규모 탈세로 수감되기도 했던 속된 인간인 문과..그 아내가 어떻게 온 인류의 '참 부모'이며, 청소년소녀들의 '순결'운동인가를 펼칠 수나 있는가? 도무지 상상도 안 가는 일이다!
우리에게 참 아빠 아버지는 예호바(여호와/야웨) 하나님이실 뿐이다! 이건 주일학교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회나 학계 등의 엘리트(?)도 포함된 그의 추종자들은 성경 진리라곤 '쥐뿔'도 '개뿔'도 모르는, 상식 이하의 사람들인 것이다. '엘리트'라는 단어가 무색하고 불쌍할 정도다.


이단들 다수는 자기네만 구원이 있는 참 교회라고들 주장한다. 이 역시 간단한 논리로도 반박할 수 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땅 끝까지 증인들이 되리라고 하신 대로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사마리아 교회, 에티오피아(쿠쉬/구스) 교회, 첫 이방인 교회 격인 코르넬리우스(고넬료) 가정교회, 안티옼(안디옥)교회, 에페소교회, 코린토교회, 필리포교회..요한계시록의 7교회 등 다양한 교회들이 세워졌다.

이들 교회의 그 어느 곳도 "우리만 구원이 있는 참 교회"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냥 예루살렘교회가 모교회였을 뿐.

성도가 가는 곳곳마다 복음의 증인이 되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지, 어떻게 "우리 교회만.."일 수 있는가? 어떻게 세계의 수많은 교회들 중 한국의 특정 이단/사이비 교회가 "유일한 참 교회"일 수가 있는가? 조금만 머리를 굴려 봐도 간파되는, 웃기는 주장이다.


2011년 5월 26일에 지상종말이 온다며, 교회시대는 끝났으니 자기네만 구원이 있다고 기성교회를 떠나라고 밤낮 외쳐대는 미국 '패밀리 레이디오'(FR) 대표, 해럴드 캠핑과 일부 한인들을 포함한 그 수많은 추종자들도 완전 상식 이하의 무리들이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버지만 아실 뿐 아들도 천사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주님은 빼 놓고 아버지와 캠핑만(?)이 그 날을 알고 있는(?) 것이며, 지상에 한국 교회를 비롯해 아직 수많은 선한 교회들이 버젓이 지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교회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너희'(교회)와 함께 하리라 하셨는데, 왜 주님이 캠핑/FR과 그 추종자들과만 함께 하시리라고 뒤바꾸는가?  

그의 말을 듣고 속속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망에 홀린 사람들이니, 차라리 불쌍한 존재들이다. 수많은 캠핑 따르미들은 '캠핑-FR 전용 유일 천국'이 절대 있을 수 없음을 개인의 종말이 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고 이를 갈고 울며 뒤늦게 통탄할 것이다. 아니, 이르면 2011년 5월 27일 새벽에 이미 알게 될 터이다.


그리고, 보혜사(=위로자) 성령님은 분명히 전능한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인간이 전능자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이며, 감히 '보혜사'로 자임할 수 있는가?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광인인 것이다.

 
피터 러크만이나 이송오('말씀보존학회' 대표)처럼 1611년판 제임즈왕 역본 성경(KJV)만을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굳게 신봉한다면, 상식적으로 어떻게 이송오가 번역한 '한글킹제임스성경' 역시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는가? '유일무이'가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때에 따라 곳에 따라 슬쩍 '유이무삼'도 되는가?
따라서 이송오 씨는 자기 모순도 미처 못 간파하는 상식 이하의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도 한글킹제임스성경이 날개 돋힌 듯 몰수히 팔리는 현상은 한 마디로 상식 이하다.

KJV 1611년 판의 표지화는 중세 영지주의/오컬트/미신의 상징들, 가리비 장식 모자를 썼거나 곤봉을 든 '12 사도'들의 괴이한 차림새와 자세, 기둥머리 아래의 '콧구멍 장식', 불사를 상징한다는 목 뚫린 전설의 백조 등등 수상쩍은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뭘 말하는가? 성경을 이용해 영국 왕조와 당대의 주권주의적 신정(神政)의 이상을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게 어떻게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상식 이하의 주장이다. 

또, 에라스무스의 사역에 기초한 소위 수납사본(Textus Receptus)은 16세기 당대의 몇 안 되는 초라한 사본들을 갖고 번역한 것인데, 어떻게 고고학적 발견으로 축적된 현대의 5,000여 사본/파편들과 맞먹거나 능가할 수 있는 것인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다. KJV의 많은 번역들이 황당에 가깝다. 물론 다른 역본들도 다 낱낱이 나름의 문제가 발견되지만.
후대 사본/파편들로 KJV를 보완하고 현대화 한다면, 좀 더 나은 성경이 될 것이다. 더욱이 KJV의 고어체는 많은 어린이/청소년/젊은이들에게 골머리를 안겨 준다. 한글 개역 성경처럼.
그런데도 "KJV는 성령 작품! 한글개역 등은 변개된 마귀 작품!" 식으로 성경 세계 속의 완전 이원론을 주장하는 이송오의 무리는 슬기로운 게 아니라 미련하기 짝이 없는 황당무계 차원인 것이다. 이런 KJV를 적당히 보완해서 번역한 것이 '절대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일 리가 절대 없는 것이다. 논리적/상식적으로.   


 

    다섯째로, 이단의 배후엔 악령들이 늘 개재돼 있으므로, 제대로 분별하려면 지식과 정보만 갖곤 안 된다. 이단 분별과 예방을 위한 개인기도와 합심기도는 물론, 영언(방언)과 은사 등을 통한 차원 높은 지식과 슬기, 악령들을 적대해 물리치는 권능을 고루 갖춰야 한다.

하나님의 7대 완전무장(온몸값옷/전신갑주. 에페소=엡 6'10-18)의 의미가 뭔지, 마귀와 그 졸개들을 대적하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보혈과 간증으로 승리하는 게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교인들에게 여실히 보여 줘야 한다.

그런 노력을 '신비주의'라며 거부만 하면, 어제나 오늘, 영원히 한결 같으신 성령님을 불신하는 것에 진 배 아니다. 영언/은사/권능/이적 등을 모두 '어제의 것'으로 닦아 세우는 어리석은 일부 신학론에 귀 기울일 필요나 여유가 없다. 때가 급하다!
이단이나 잘못된 신비주의보다 더 강력하고 순수하고 참된 영적 권능을 마땅히 교회가 차지하고 보유해야만 한다. "혹시 잘못될까 봐" 두려워 하는 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이단들은 겉으로는 파워풀 해 보여도, 영적으로는 모두 마귀의 종졸령들 가운데서도 최말단 그룹의 하나인, 간교하고도 더럽기 짝이 없는 친숙령들(親熟靈, familar spirits. KJV 참조)의 졸때기들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유혹 받아 졸졸 끌려가는 것은 주님의 몸인 교회와 성도의 거룩한 자존심 문제다. 우리가 추종해야 할 유일한 기독교 교주/창시자/완성자인 주님-예수 크리스토님을 바로 알고 바로 찾아야 한다(히브리서 12'2a).

교역자들은 성령님께 호소하면서 교우들의 영적 분별력을 길러 줘야 한다. 이단에 관한, 업데이트된 최신/첨단 정보와 지식도 중요하지만, 왜 이단자들, 교주들이 본디 영적으로 문제시 되는지, 그들이 제 아무리 겉 보기에 정다운 웃음과 좋은 것들을 베풀며 다가와도 배후에 어떤 어둠의 세력과 그림자가 예상되는지, 필경 어떤 파멸의 내리막길로 치닫게 될지부터 성경으로 정확하게 집어 주고, 근본적으로 초기 유혹부터 철저히 거부하여 조기차단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광명한 천사로 다가오지만, 참 빛과 어떻게 다른지 구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단/사이비, 컬트와 오컬트는 악령의 범주들 가운데서도 주로 친숙령들의 담당 몫이다. 빛 같은 그림자, 미의 이면, "아름다운 가짜", 황홀하고 매력적이지만 궁극적인 환멸 따위는 주로 이들의 장난이다. 

아무튼 그래서..성경 말씀과 성령님의 권능과 은사, 어린양의 보혈의 힘을 통해 영적인 예감과 예민한 느낌, 거룩한 거부감, 민첩한 대응이 신자마다 가능하도록 이끌어야 옳다. 교회에 주신 영적 은사들 가운데 왜 '영 분별' 은사가 있다고 생각되는가?

오늘날 일반 성도만이 아닌 지도자/교역자들까지 이단에게 코뚜레가 꿰이는 현황은 모두 이런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사전 분별감식력, 영적 더듬이/안테나/레이저가 결핍된 탓이다. 아울러 진리/비진리를 가릴 만한 판단력, 순간 위기 대처의 순발력, 의지에 따른 결단력 등이 모자라서다.

교회는 마땅히 컬트와 오컬트, 다양한 악령의 작용/활동 특징들을 가급적 총망라하여 성경 말씀으로 대조시켜 대응하게 만든 '블랰-화이트 리스트'를 만들어 성도들에게 나눠 주고 매스터링 하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오늘날 가장 간교한 이단들보다 더 깊숙이 교회 안에 교묘히 침투해 있는 온갖 외래 영성들과 그 대표자인 영성가 및 교계 명사들의 이름을 나열한 리스트까지 확보해 폭 넓게 배포한다면, 더욱 분별하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목회자/교역자들은 교인들 앞에서 문제 영성에 관해 "켕기는" 바 없이 진리만으로 단호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와 사역자들이 두루 외래 영성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어리버리"해 있으면, 교우들은 자연히 "저 분들, 진리의 목자 맞어?"하고 큰 물음표 아래 불안해진다.
엉뚱한 명사들이 흘려 놓은 '명언'/'어록' 따위를 성구와 동일하게 참조하지 말자. 사실상 널리 알려진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인 외국의 엉터리 '교인' 명사를 단 한 번의 검증도 해 보지 않고 위대한 신자로 띄워 주는 어처구니 없는 사례들도 흔하다. 그들의 어젠다에 놀아나는 것일 뿐이다. 이젠 제발 좀 그러지들 말자!


    여섯째로, 그러기 위해 교회는 맨 먼저, 모든 신자들을 기본적으로, 명실공히 거듭나게 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해 줘야 한다.

'구원파'만 잘못됐다고 욕할 게 아니라, 자기 교인들을 온전히 거듭나게 해서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해 주면 될 것 아닌가? 교회나 지도자나 사역자가 교인들 다수, 심지어 자신조차도 구원 받은 건지 안 받은 건지 긴가민가한 채 대강 건성으로 얼버무리며 넘어갈 때, 교인들은 구원파 따위의 이단에게 혹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믿음을 확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일곱 째로, 교회에 편만한 잘못된 영성과 영성의식, 영성 운동들을 고사하고 물리쳐야 한다.
이것 갖고는 하나님이 이단예방을 도와 주실 수 없다. 도와 주셔야 할 명분도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더욱 더 복잡하고 미묘한 영성들이 속속 입수돼 교파와 교단을 막론하고 온 교계를 통틀어 판을 치고 있다.
관상기도나 향심기도, 렉치오 디비나 위주의 관상영성/수사영성 외에도 주로 젊은 차세대가 중심이 된 소위 '떠오름'(이머징) 영성, 맄 워런의 목적주도형 '목적영성', C.P. 왜그너의 신사도개혁운동(NAR)을 중심한 '신사도' 영성 등이 모두 한국에 상륙해 활발하게 발판을 넓혀가고 있다.  
안 그래도 이왕에 교계엔 심리학계를 통해 침투해 온 에네아그람(에니어그램) 인성 분석이나 근래에 '미로(labyrinth) 명상'('십자가 오솔길') 등 해괴한 뉴에이지성 영성들이 꾸준히 생성돼 왔다.

이들은 거의가 미국에서 들여 온 100% 외래 영성이다. 잘못된 영성은 그럴 듯 포장만 돼 있을 뿐, 이단 교리와 별 다름 없다.

예컨대 신교 교파 대부분에서 관상영성을 갖고 위대한 영성가 및 교계 명사들로 쳐 지는 헨리 나웬, 테레사 수녀, 토머스 멀튼(딴 표기 '머튼'), 리처드 포스터, 맄 워런, 레너드 스윝 등은 공히 만인/보편구원론이나 또는 종교다원성, 종교혼합성, 노골적인 뉴에이지 성향을 띤다.
워런은, 안방에다 일본 춘화도를 걸어 놓은 엉터리 중생교인인 뉴에이지 경제 구루인 피터 드러커를 필생의 사부로 모시고 20년간 연1회씩 사사한 뒤 소위 '세(3) 상다리'론을 펼친 바 있다.   
거의 매주일 여기저기 강단에서 신교 목회자들이 즐겨 그의 어록을 잠언 삼아 인용하는 나웬(딴 표기 '나우웬', '누엔')은 신교 목회자가 아닌 엄연한 카톨맄교 예수회 사제(!)였고, 장자/노자 등 동양철학 사상과 힌두교, 티벹 불교 등의 명상 등을 뭉뚱그려 종교혼합적인 20세기 관상영성을 제시한 토머스 멀튼(딴 표기 '토마스 머튼')을 열렬히 숭배하여 관상영성을 전수한 사람이고, 평생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극복하지 못했고, 죽기 얼마 전에 일기에다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이 천국문으로 이끌 것이라는 '나름 신앙'인 보편구원론을 천명했으며, 선불교 사찰 겸 카톨맄 식 수련원인 '빈 종'의 라벝 조나스 박사를 수제자로 삼고, '빈 종'의 준공식 축사도 해 준 사람이다. 

이제 교인들은 나웬을 인용하며 고상한 유식(?)을 자랑하는 (실상 무지한) '목자', '설교자'를 향해, "목사님, 그건 아닌데요!"라고 담대히 견제하여 고쳐 줄 수 있는 수준으로 제고돼야 할 때다.

'레노바레' 대표인 리처드 포스터는 그런 멀튼과 나웬을 하늘 같이 떠 받들어 온 퀘이커 사상가이며, 퀘이커 교는 기본적으로 보편구원론을 믿는다.
 
사실상 '레노바레' 한국 대표인, 관상영성가 이동원 같은 이는 지난 날 '예수님의 성생활' 어쩌구 하며 엉뚱하고 해괴한 발언을 하는 등 문제점을 노출하다가 한국교회의 반발을 받자 비로소 멈칫한 바 있다. 그가 다녀온 에드워드 틸던의 '샬롬 인스티튜트'는 카톨맄은 물론 불교/힌두교 식 명상 수련까지 가르치는 곳이다. 

명사들은 이런 유의 헛점을 만회하려고 자신들의 입지 확보를 위해 꾸준히 외래 영성적인 말발과 글, 책 등으로 명사로 뜨려 하고 서고자 한다. 자기네야 뭐라고 해명하고 발언하든지 간에.

그러나 한국 교계는 이들의 문제점은 다 '사랑'이라는 것으로 무조건 덮어 주고 그들의 명사성을 인정하면서 묵묵히 떳떳이(?) 더불어 함께 전진한다. 교계와 미디어가 모두 들러리를 서 준다. 원님 행차 앞뒤에서 요란하게 '나발'을 불어 주듯.

빌리 그래엄, 요한 파울로 2세, 베네딕토 16세 등은 문제점이 극명하고 다대한데도(!) 세기의 위대한 성자, 명사들로 떠받들려 왔다. 실은 모두가 교계의 우매하고 무모한 추종, 눈 가리고 아웅 식 타협과 안일한 대응 자세 탓이다. 


난, 이단비평가들의 노력과 헌신이 늘 고맙지만, 아울러 그들 일부에게 늘 아쉬운 점은 교계에 팽배한 외래 영성과 횡행하는 소위 영성가들-실제로는 신비가(!)들-을 그다지 별로 경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역 밖의 성역인가?
신비주의를 적극 경계한다는 (일부) 이단비평가들이 왜 이런 신비가들 앞에서는 기가 죽고(?) 굽신거리게 되는가? 미디어 물결을 타기 일쑤인 교계 명사들과 버젓한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원래 다들 기본적으로 건전한 것인가? 딱 부러진, 뚜렷한 이단성이 손에 잡히지 않아선가? 혹 자기 전문분야와 범주의 노예여선가?
성경 진리와 대조해 볼 때, 충분히 비성경적이면 그걸로 충분히 대처 대상이 아닐까?

다행히도 일부 이단비평가들이 점차 안목의 폭을 넓혀 외래 영성의 위험에도 관심을 갖고 대처하려는 기색이 보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성경은 이단/사이비의 위험만 말하지 않는다.
위험한 외래 영성과 비성경적인 신비주의, 잘못된 전통도 지적한다.


이상 일곱 가지를 파악하여 실천한다면, 성도들이 이단/사이비에 빠져 들지 않고 충분히 퇴치할 수 있다.